소말리아 여행기 1 화물선으로 예멘에서 홍해를 건너 소말리아로 가기 (화물선, Berbera 2007.1.12~13)

1월 12일(금)

배는 어제 봤던 수천마리의 가축을 소말리아에서 이곳 모카로 운반한 가축 운반선이다. Berbera로 돌아갈 때는 빈 배로 가는데 이때 승객들을 태우고 간다.

소말리아인을 포함해서 10명 정도가 Berbera로 가는데 선원들은 우리를 가축우리로 안내한다.

맙소사.. 파리가 들끓고 냄새나는 이곳에서 40~50시간을 지내야 한다 말인가? 마치 우리가 가축이 된 기분이다.

그래도 일단 출발하니 기분은 좋다. ‘이제 아라비아 반도 여행도 끝이네.. 그동안 정들었던 예멘아 이제 빠이빠이~’ 점점 멀어지는 모카항을 바라보며 회환에 잠겼다.

아라비아 반도 여행을 마친 걸 하늘도 아는지 저 먼 바다로 일몰이 진행 중이다. 이제 아프리카로 향해야겠지?

선원들은 외국인 여행자인 우리가 신기한지 계속해서 말을 걸며 친절히 대해준다.

냄새나는 가축우리에서 나와 화물선 뒤편에서 거친 바다를 바라보았다. 인도양과 홍해가 좁은 해역을 두고 만나는 지점이라 바다가 매우 거칠다.

선원과 친해지니 식사를 챙겨준다. 메뉴는 ‘파솔리아’와 ‘호브즈(예멘의 주식인 빵)’인데 맛이 꽤 있다.

예멘을 여행 하면서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은 ‘파솔리아’와 ‘사루다’이다. 특히 사루다는 토마토에 치즈, 계란 등을 넣어서 볶은 것으로 우리 입맛에도 딱 맞다.

오후 9시 정도가 되어 잠이 들었다. 아니.. 잠을 청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거친 바닷바람 때문에 파리들은 다 날아갔지만 냄새는 그대로 남아있다.

바다 역시 매우 거칠어 배가 바이킹 수준으로 흔들린다. 간혹 큰 파도를 만나면 배의 시동을 끌 정도이다. 배의 중간쯤에서 잤지만 배가 매우 흔들리다보니 내 쪽으로 바닷물이 튀긴다. 침낭이 없는 상태라 옷을 덮고 잤는데 바닷물로 옷이 다 젖었을 것이다.

극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즐겁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모험이 아닌가? 점점 소말리아가 가까워진다.

1월 13일(토)

어제 그 극한 상황에서도 간간히 잠을 이뤘다는 자체가 참 신기하다. 인간이 적응의 동물이라 그런지 내가 적응력이 뛰어난 건지 어쨌든 하루는 때웠다.

좁은 홍해를 벗어나 인도양으로 들어서서 그런지 아침이 되자 배가 속력을 내기 시작한다. 선원들에게 Berbera에 언제 도착하는지 물어보니 오늘 도착한다고 말한다.

어? Immigration 직원은 적어도 40시간 많으면 50시간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아마 우리가 Berbera에 가는 것을 포기하게 하려고 거짓말을 한 것 같다. 그래도 우리의 안전을 생각해준 Immigration 직원이 고맙다.

오늘 Berbera에 도착하면 처음으로 아프리카를 밟아보는 순간이 될 것이다.

생각해보니 내 여행의 운명도 참 기구하다. 남들은 처음 아프리카를 방문할 때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이집트나 남아공을 방문하고 일부 여행자들은 케냐를 방문하는데 나의 첫 아프리카 방문지가 소말리아 일 줄이야..

배에서는 별로 할일이 없다. 그저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는 것 뿐..

간간히 선원들이 어설픈 영어로 말을 걸면 정성스럽게 대답해주는 것이 대화의 전부이다.

14세기부터 시작된 대항해시대로 지금과 같았겠지? 망망대해의 바다를 보며 미지의 세계에 대해 꿈을 꾸었겠지?

오늘날의 배는 석유를 연료로 하여 비교적 바람의 영향을 덜 받지만 대항해시대의 돛단배는 바람과 씨름을 하며 나아갔을 것이다.

선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괴혈병을 비롯해 쥐떼, 식량부족, 물 부족과 싸웠을 것이다. 때로는 해적을 만나서 변을 당하거나 방향을 잃어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로 간 선원들도 많았을 것이다. 또한 지겹도록 바다를 보며 언제 끝날지 모르는 항해에 대해 염증을 많이 느꼈을 것이다.(하루만 가는데도 벌써 지겹다.)

그래도 외부 세계에 대한 동경과 꿈이 많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대항해시대에 동참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가 가는 소말리아는 포르투갈의 항해가 바스코 다가마가 희망봉을 지나 소말리아 부근에서 아랍상인의 안내를 받아 인도로 가는 항로를 발견했던 곳이다.

지금은 끊임없는 내전으로 신음하고 있지만 한 때는 아프리카의 뿔이라 불리며 중요 항로로 발전했던 곳이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지점이지만 갈매기들이 우리 배를 따른다. 바다에 둥둥 떠 있다가 배를 발견하면 뛰 따르는데 배에서 음식물을 버릴 때까지 몇 시간이고 배 뒤를 따른다.

기약 없는 갈매기들의 날개 짓이 불쌍하게 느껴진다. 갈매기는 한두시간 날개 짓을 하고 포기를 하지만 간혹 운 좋은 갈매기는 주방장 할아버지가 바다로 버리는 빵과 고깃덩어리를 건저 먹기도 한다.

낮이 되자 가축 축사에 파리가 들끓고 냄새가 심하게 난다. 만약 40시간 항해였으면 끔찍했으리라..

예정 도착 시각이 오후 5시였지만 바다가 거칠어서 그런지 오후 11시에야 Berbera에 도착했다.

Berbera에 도착한 순간 긴장이 되기 시작한다. ‘혹시 소말리아를 여행하다가 잘못 되는 것은 아니겠지? 그냥 지부티로 갈 껄 괜히 이리로 왔나?’ 후회마저 되었지만 이미 돌이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른 승객들은 항구에 내려 제 갈 길을 찾아가지만 비자가 없는 토모미와 나는 배에서 대기를 해야 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갑판위에 잠이 들었다. 잠결에 친절한 선원이 이불을 덮어주는 것이 느껴졌다.

소말리아의 첫 밤은 배위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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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의 마지막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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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위의 모습. 선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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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위에서 일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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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홍해를 가르는 배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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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장 할아버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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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가 비교적 능통한 소말리와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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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위에서 버린 음식물을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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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한 선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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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숙소.. 가축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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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곳에서도 잠을 잔 것이 스스로 대견하게 여겨질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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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위에서 바라 본 베르베라. 첫 아프리카 도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