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여행기 4 천일야화의 고도 사나(San'a) (San'a, 2007.1.4)

1월 4일(목)

무칼라에서 출발한 버스가 사나에 도착 예정 시각은 오전 5시이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늦어져 6시 반에야 도착했다. 두바이에서 출발한지 9일 만에 아라비아 반도 여행시 최종 목적지로 삼은 예멘의 수도 사나에 도착한 것이다.

1시간 반이나 늦어져서 많이 열 받았겠다구?

천만해~ 6시 반이라는 시각은 너무나 절묘한 타이밍이라 오히려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6시 이전에 호텔에 체크인을 하면 그 전날에 체크인으로 하는 것이 비용을 2배로 더 내야 한다. 때문에 7시가 넘을 때까지 밖에 기다린 적이 몇 번 있다.

하지만 6시 반이면 30분 정도 호텔을 찾는다고 가정하면 거의 딱 맞는 시각이다.

버스는 Bab Al-Yamen에 정차했는데 이곳이 그 유명한 올드사나(Old Sanna)의 입구가 되는 곳이다. 사나는 높은 지역에 있어서 그런지 새벽 공기가 꽤 차갑다.

버스에서 친해진 청년이 차한잔 하고 가라며 우리를 올드사나 입구의 찻집으로 안내한다. 찾 집에는 많은 현지인들이 따끈한 차로 몸을 녹이고 있는데 한잔에 10YR(50원)으로 저렴하다.

차를 마시고 일본 여행자들에게 유명한 마나하(Manakha)호텔에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따끈한 차가 나를 나태하게 만들었는지 움직이기가 싫었지만 그래도 오늘 에티오피아, 에르트리아 대사관에 가야 하기 때문에 길을 재촉했다.

Bab Al-Yamen에서 미니버스(20YR)를 타고 Tarir 광장으로 갔다. 지도를 보며 곧장 군사 박물관(Military Museum)이 있는 골목으로 가서 100m정도 더 걸어가니 왼편 건물 2층에 에 Manakha Hotel이라고 자그마하게 쓰인 간판이 보인다. 간판을 기준으로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면(바로 뒷 건물) 된다.

시설은 허름하지만 호텔요금이 1인당 600YR(3000원)으로 꽤 저렴하다. 주변에 몇몇 호텔이 더 있는데 가격대는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짐을 풀고 곧바로 에티오피아 대사관으로 가니 모레 다시 오라고 한다. 명절의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았음을 느꼈다. 에리트리아 대사관은 문을 꽁꽁 닫은 채 경비원조차 보이지 않는다. 주변 경찰에게 물으니 모레(토요일)에 다시 오라고 말한다.

타릴 광장 주변에는 많은 인터넷 카페가 있는데 속도도 무척 빠른 편이다. 싼 곳은 요금이 1분에 1YR(5원) 하고 빠른 인터넷은 2YR을 한다.

사나에서는 한글 인터넷이 된다. 오랜만에 못 다한 소식을 전하고 이리저리 메일을 보내고 슬슬 여행카페를 둘러보았다.

어? 자주 들리는 여행카페에 들어가니 예멘을 여행 중인 한국인 여행자 한명이 사나에서 글을 올렸다. 글을 올린 시간도 바로 1시간 전이다. 오늘 저녁 사윤으로 떠나기 때문에 오늘 찾지 않으면 만나 뵐 길이 없다.

부랴부랴 그분이 묵는 호텔을 찾으러 올드 사나로 갔다. 올드사나는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빈다.

천년의 고도 사나는 해발 2150m의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으며 특히 올드 사나와 같은 경우는 가장 아랍스러운 문화를 간직한 곳이다.

역사학자들은 사나가 최소한 2500년 이상 존속했다고 말한다. 기원전 2세기의 사바 왕국(아라비아 남서부에 있던 왕국)에 관한 기록에 의하면 사나는 산악지대에서 가장 중요한 요새라고 언급한다. 사나라는 이름 자체가 ‘요새화된 도시’라는 뜻을 품고 있다.

그 이후에도 ‘향료의 길’의 종착지로서 아라비아 반도와 지중해 사이를 여행하는 무역상이 수 없이 드나들었다.

100만명 이상 살기는 하지만 옛 성벽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올드 사나에는 성벽을 볼 수 있으며 성벽 안에는 400년 이상 된 가옥이 즐비하다. 이곳은 귀중한 이슬람 건축의 보고이기도 하다.

올드 사나에는 좁다란 골목길에 상점들이 오밀조밀 밀집되어 있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각종 기념품과 과일 건과류를 팔고 있으며 잠비아를 파는 가게도 제법 보인다.

잠비아는 이곳 남성들이 배에 차고 다니는 칼로서 끝부분이 구부러진 것이 특징이다. 수공예 제품이며 50$정도 한다.

건물들 빽빽이 들어서 있고 건물이며 골목이 미로 같이 이어져 지도를 가지고 다니더라도 목적지를 찾기가 힘든 곳이다.

올드 사나에서는 특별히 찾아서 볼 것은 없다. 올드 사나 자체가 거대한 옛 모습을 간직한 하나의 박물관이며 올드사나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다가 목마르면 찻집에 자리잡아 짜이(10~20YR) 한잔을 하며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면 그만이다. 일본인 여행자들에게 ‘예멘에 가면 시간이 거꾸로 가는 것을 느낄 것이라’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러한 말이 과장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서구 문명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것일까? 건물과 옷을 비롯해 모든 생활 모습까지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유네스코에서는 다른 국가의 지원을 얻어 적극적으로 이곳을 보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동양에서는 중국의 리장이 도시 전체가 옛 전통 그대로를 따르고 있다면 아라비아 반도에서는 이곳 사나가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리장은 무척 상업적으로 변해 관광객을 뜯어 먹으려고 하는 삐끼들이 많은 반면 사나는 그런 것이 전혀 없다.

처음 예멘을 방문 했을 때 지나치리만치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면 본능적으로 경계를 했었다. 많은 여행을 하면서 처음부터 지나치게 친절한 사람은 나중에 돈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기에 그런 습관이 몸에 배였다.

하지만 예멘은 말 그대로 너무 친절하다. 길을 몰라 헤매면 누군가 다가와 길을 안내해주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집에서 잠시 식사라도 하고 가라고 조를 정도이다.

지금까지는 친절을 베푼 후 돈을 요구하는 경우가 한번도 없었으며 관광객들이 많은 올드 사나에서도 길을 물으니 모두 친절히 대답해 준다.

왜 이런 곳을 우리나라 여행자들이 찾지 않는 것일까? 현재 수백명의 일본인이 이곳을 여행 중이라고 할 정도로 대중적이지만 이마저도 4번째 순위라고 한다. 독일, 프랑스, 미국에서 더 많은 여행자들이 아라비아의 숨결을 찾아서 이곳을 여행하고 있다.

반면에 난 한국말을 하고 싶어 이렇게 유일한 한국인 여행자를 찾아 헤매고 있다.

Old San'a Palace 호텔을 찾지 못하고 끙끙거리자(길이 미로 같음) 한 할아버지가 다가와 호텔을 잘 알고 있다며 같이 가자고 한다.

할아버지는 아랍어에 관심이 있으면 자신에게 연락을 주라고 하면서 영어로 된 꾸란(무슬림 경전)홍보물을 주며 이슬람교를 믿으라고 하신다.

할아버지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잠비아(전통 칼)을 파시는데 물건을 파는 것은 안중에 없고 이슬람교를 전도하는데 더 열중이시다. 영어가 유창하시기 때문에 혹시 사나에서 아랍어를 배우고 싶은 분은 777595137로 전화를 걸어 Abdul Bar 할아버지를 찾으면 된다.

Old San'a Palace 호텔에서 내가 찾으려는 여행자는 자리에 없었다. 친절한 직원에게 물으니 아직 체크아웃을 하지는 않았고 곧 올 것 같으니 편히 앉아 기다리라고 한다. Abdul Bar 할아버지는 자신의 집에 가서 차나 한잔하며 기다리자고 말하신다.

30분 정도 지나자 한국인 여행자가 호텔에 들어왔다. 경상남도 진주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시는 이인지 선생님이다. 전부터 내 홈페이지에 들어와 봤다고 하시면서 전부터 만났고 싶었는데 이곳 예멘에서 만나 더욱 반갑다며 오늘 저녁 사나로 가기로 했는데 표를 취소하겠다고 하신다.

버스 회사에 가서 표를 취소 한 후 찻집에서 짜이 한잔을 하고 이인지 선생님이 소개해 준 일본인 마사토를 만났다. 그는 내일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에 한국음식을 먹고 싶다며 한국 음식점으로 가기를 원한다.

택시를 타고 한국 식당을 찾았지만 명절이라 그런지 다 문을 닫았다. 택시비만 날렸네.(왕복 800YR)

하는 수 없이 Tarir 광장으로 돌아와 닭고기 냄새가 물씬 풍기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식당에 자리 잡자 영어가 유창한 직원이 와서 주문을 받는다. 가격을 묻자 닭 반마리에 400YR, 밥 1인분에 150YR... 어? 어? 이건 아니잖아.

아무리 관광지라고 하지만 바가지가 너무 지나치다. 사윤에서 먹었던 가격으로 닭 반마리에 200YR, 밥은 3인분에 200YR을 한다고 항의를 하니 직원은 싫으면 관두라고 한다.

식당을 나와 현지인들이 즐기는 식당으로 갔다. 닭 한 마리에 500YR로 비교적 만족할 만한 가격이다. 여기서 콜라 한 캔(60YR)을 더 추가해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한국음식을 열렬하게 좋아하는 마사토를 위해 맛있는 회냉면, 닭갈비, 해장국과 같은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알려줬다. 마사토는 한국음식을 먹지 못했지만 다음에 한국을 방문하면 꼭 먹겠다며 메모를 한다.

셋이서 올드 사나 시내를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누군가 한밤중에 스피커로 크게 떠들어 시끄럽기 그지없다.

어떤 일이 있기에 이렇게 시끄러운 건가? 찾아가니 결혼식 전야제 행사를 하고 있다. 그들은 외국인이 반갑다며 같이 사진도 찍고 담소도 나눴다. 우리가 결혼 전에 함을 파는 것과 같은 분위기이다.

스피커로 동네가 떠나 갈 듯이 소리를 질러 시끄럽지만 이곳에서는 너그럽게 봐주는 분위기이다. 마사토에게 ‘일본에서 결혼 전에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되니?’ 라고 묻자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 이야기 한다.

올드사나에서 사진을 찍고 Tarir 광장으로 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11시가 넘어갔다. 이인지 선생님은 사윤에 갔다가 9일에 돌아 올 테니 그때 다시보자고 말하신다. 맥주만 있으면 밤새 한잔하며 이야기를 할 수 있을 텐데 이곳은 이슬람 지역이 아닌가.. 맥주 대신 딸기 주스로 마무리 하고 셋 다 헤어졌다.

마나하 호텔에 돌아오니 토모미가 많은 정보를 가지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예멘에서 에리트리아로 배를 타고 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마카(Makha)항에서 파키스탄인 배를 타고 지부티로 넘어간다고 한다.

지부티 비자가 하루 만에 발급이 되면 좋을 텐데.. 에리트리아, 에티오피아, 지부티 비자 상황을 봐서 일정을 결정하기로 했다.

지부티 비자가 오래 걸리면 그냥 비행기를 타고 에티오피아나 에리트리아로 것이 더 낳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렇다고 배도 타고 싶어.. 여러 생각이 든다.

에이 모르겠다.. 일단 모레까지는 푹 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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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알 야멘에서 차 한잔.. 따뜻하게 온몸을 녹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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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원 한글 '스피드 세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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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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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사나의 집 모양은 거의 비슷한 형태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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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사나 입구(밥알 야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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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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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외국인들이 올드 사나를 방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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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둘 할아버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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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주인 아저씨와 마사토, 나, 이인지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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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장에서 신랑과 함께.. 어린 나이인 것 같은데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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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사나 외곽. 폭우가 내리면 물이 흐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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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등 비치는 한적한 골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