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2일(목)
오늘 오후 5시까지 타슈켄트주재 투르크맨 대사관으로 가서 비자를 받아야 한다. 사마르칸트에서 타슈켄트까지는 버스로 4시간정도 걸리니까 오후 4시까지 타슈켄트로 가면 딱 좋을 것이다.
오전 9시 반에 숙소를 나서려고 하니 종업원이 아침식사를 하고 가라고 잡는다.
잠시 응접실에서 기다리니 요거트, 빵, 과일 등 푸짐한 아침이 나온다. 아침을 먹고 숙박비(11달러 10달러 숙박비+저녁식사비 1$)를 지불 했다.
Bhodir B&B 주인은 숙박객에게 예의바르게 대해준다. 마치 상전을 모시듯이 깍듯하고 내가 숙소를 나와 역사박물관으로 가는 그 순간까지도 문밖에서 지켜본다.
어제 문을 닫았던 역사박물관(2300숨)을 갔다. 제법 넓은 박물관이며 주요 유물은 2층에 전시되어 있다.
마침 우즈벡과 한국의 미술작품 공동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의 우리나라는 일본에 비해 훨씬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인류가 이곳에 정착할 때의 유물부터 시작해서 실크로드 시대의 유물이 꽤 전시되어 있다. 특히 알렉산더 시대부터 호라즘, 칭키스칸, 티무르 시대 등 다양한 시대의 유물을 서로 비교해보며 관찰 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전시관에서는 실크로드 시대 때의 카펫을 비롯한 교역품과 다양한 전통의상을 볼 수 있었다.
1층에는 오래된 흑백사진으로 파괴되었던 유적지의 모습과 복원된 현재의 모습이 비교되어 있는데 사실 사마르칸트의 대부분의 유적들은 심하게 훼손되었다 막대한 투자로 지금의 모습을 찾은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예전의 사마르칸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비비하님 모스크 근처에 메인 바자르가 있는데 거기서 다마스를 타고 타슈켄트로 향하는 차량들이 모인 곳으로 갈 수 있었다.
파키스탄에서는 미니버스가 일본의 스즈끼 차량이 유행을 했다. 그래서 미니버스 하면 스즈끼라고 고유명사화가 되어서 부러워했는데 이곳에서는 택시나 버스를 물어보면 이곳 사람들은 티코, 다마스라고 한다.
이미 이곳 사람들에게는 티코, 다마스가 고유명사화 되었다. 우즈벡을 여행하면서 얻은 또 하나의 뿌듯한 수확이다.
타슈켄트까지는 처음 넥시아(대우자동차)를 타려고 했지만 15000숨을 내라고 한다. 결국 5000숨을 주고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 자세히 보니 다른 승객들은 2500숨을 낸다.
방심하던 사이 바가지를 쓴 것이다.
게다가 이 버스를 탄 것은 최악의 선택이다. 버스 승무원들이 외국인이라고 계속 통하지는 않는 말을 걸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버스가 정말 느리다는 것이다.
도중에 승용차로 갈아타려고 승무원들에게 오후 4시까지 도착할 수 있는지 물을 때마다 승무원은 충분하다고 대답할 뿐이다.
결국 믿고 갔지만 느린 버스는 결국 5시가 조금 넘어 도착한다. 더욱이 뻔뻔한 승무원은 투르크맨 대사관으로 가는 택시를 잡아준다며 5000숨이면 된다고 한다.
급한 마음에 다마스를 탔다. 타기 직전 다마스 운전자가 승무원에게 커미션(웃돈)을 주는 것을 목격했다.
나에게 버스 요금을 2배로 바가지 씌운 것은 물론 거짓말로 타슈켄트에 늦게 도착하게 했으며 결국 비싼 택시를 이용하게 하여 커미션을 챙긴 승무원..
돈 몇 푼 때문에 열 받지 말자고 다짐을 하지만 화가 치밀어 오른다.
다마스가 투르크맨 대사관에 도착한 시각은 5시 30분..
결국 대사관문은 닫혀 있었다. 대사관을 지키는 경비원에게 물어보니 내일 오전 11시에 오라고 한다. 그러면서 경비원은 콜라를 사달라며 뇌물을 요구한다. 그렇잖아도 악덕 버스 승무원 때문에 열 받아 있는데.... 웃으면서 무마했다.
타슈켄트에서 묵었던 로뎀으로 다시 가니 주인아저씨가 반갑게 맞아주신다. 오랜만에 한국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갖은 고생 때문에 주인아저씨는 내 얼굴이 얼었다고 말한다. 고생을 많이 하긴 많이 했나보다.
오랜만에 한글 인터넷으로 여행기를 올리고 메일을 보니 3년 전 카페 정모 때 만났던 대전의 윤선생님이 투르크맨에서 지금 타슈켄트에 도착했다는 메일이 왔다.
얼른 전화를 해서 윤선생님과 러시아 대사관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택시를 타고 어설픈 러시아어로 ‘루스키 파스위치’라고 말하니 정확하지 않은 발음인데도 불구하고 택시기사가 알아 듣는다. 러시아 대사관 앞에 가니 아직 윤선생님이 나오지 않았다.
러시아 대사관은 다른 대사관보다 규모가 크고 경비가 삼엄하다. 특히 차량이 대사관 안으로 진입 하려고 하자 경비원이 금속탐지기로 폭팔물을 검색하는 모습이 눈에 띄였다. 러시아 역시 테러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없나보다.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윤선생님과 재회를 하고 맥주를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했다. 투르크맨 정보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우즈벡 경찰이 왜 뇌물을 많이 요구하는지도 들을 수 있었다. 한달에 정부에서 주는 월급이 50달러 정도 하는데 그 월급으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사회 도처에서 뇌물이 성행이다.
결국 정부에 문제가 많았던 것이다. 아마 예전의 우리나라도 같은 모습이었으리..
윤선생님은 10일부터 12일까지 투르크매니스탄 명절이었기 때문에 아예 대사관을 열지 않았다고 하신다. 결국 오늘 제 시간에 갔어도 비자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계속되는 반전의 연속이다. 내일이면 비자를 받을 수 있겠지?
1월 13일(금)
오전 11시 투르크맨대사관으로 갔다. 대사관 앞에 경비원에게 먼저 이름을 말해서 리스트에 올려야 한다.
한 프랑스인 여행자를 만났는데 파리 근교에서 운전을 하고 있다고 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여행을 하는데 대략 50개국 정도 여행을 했다고 한다. 투르크맨 비자를 받기위해서 11일째 타슈켄트에 머물고 있다.
나처럼 다른 지역을 여행했으면 좋았을텐데..
나보다 앞서 프랑스 여행자는 트랜짓 비자를 받고 유유히 떠나고 1시간 반 정도를 기다려서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한참 서류를 뒤적이던 영사는 아직 결재가 나지 않았다며 16일(월) 오후 5시에 오라고 하는 것이다. 어떻게 오늘 안으로 안 되는지 물어보니 무조건 안 된다고 한다.
휴..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허탈하다.
16일까지 뭘 하지?
부하라를 여행할까 생각을 했지만 다시 왔다 갔다 하기가 싫다. 페르기나 계곡으로 가는 것도 좋은 일정이기는 한데 너무 빠듯하다. 타슈켄트에서 쭉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카자흐스탄을 포기하면서 투르크맨을 거쳐 이란 그리고 터키까지 여행할 것을 계획했었지만 이렇게 되면 터키를 포기하고 이란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이처럼 중앙아시아 여행은 각종 변수가 돌출한다. 특히 휴일이 많은 1월은 비자에 있어서는 돌발변수가 많다.
하지만 일정하게 정해진 여행보다는 변화무쌍한 여행 스케줄은 마치 여행을 게임을 하는듯한 즐거움을 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어제부터 계속 반전드라마의 연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