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0일(월)
어제 테헤란에서 동남쪽 끝에 위치한 자헤단까지 왔으면 지금부터는 반대로 테헤란을 향해 돌아가는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오늘은 자헤단에서 321Km 떨어진 밤(Bam)을 둘러보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200Km 더 떨어진 Kerman까지 가는 것이 목표이다.
그러한 목표는 이해가 안 되는 이곳 외국인 관리 시스템 때문에 진작에 무너지고 만다.
오전 11시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면서 여권을 달라고 하니 경찰에게 알려야 한다며 계속 기다리라고 한다.
할 수 없이 옆의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있으니 한 사내가 다가오더니 자신은 경찰이라며 빨리 밥을 먹으라고 한다.
경찰이랑 나와 무슨 상관이지?
얼른 밥을 먹고 경찰차에 타니 버스터미널까지 태워준다. 거참 택시비가 안 들어서 좋군..
터미널 앞에서 내리려고 하자 경찰은 무전을 치더니 차안에서 계속 기다리라고 한다.
무슨 일이지?
결국 30분 만에 터미널에 인수인계 된 나는 경찰 입회하에 밤(Bam)행 버스표(25000리얄)를 끊었으며 버스에 타기 직전까지 그들의 감시 하에 있어야 했다.
무슨 범죄자도 아니구..
결국 1시가 넘어서야 밤 행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만약 체크아웃 하자마자 곧바로 밤으로 향하는 버스를 잡았으면 훨씬 더 일찍 갔을 것이다.
왜 이렇게 외국인에 대해 감시가 심한거지? 아마 국경 도시라는 특성이 있나보다.
경찰들도 내가 밤으로 떠나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한숨을 돌렸겠지..
여행자와 경찰들을 위해서도 웬만하면 자헤단에서 숙박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다.
1시간 정도 서쪽으로 달리자 검문소가 나왔는데 버스 승객이 모두 내려 신분증 검사를 받아야 한다.
거기서 한 일본인 여행자를 만났다. 그의 이름은 히로이고 오늘 파키스탄에서 넘어왔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도 밤에 묵을 것이라고 하며 잠시 후에 만나자고 말한다.
오후 5시가 넘어서 밤에 도착했다.
밤에는 실크로드 선상에서 가장 잘 보존된 성인 밤아르게(Bam Arg-e)가 있는 도시이지만 2003년 12월 27일 지진으로 도시 전체가 폭삭 내려앉고 만다.
그 이후로 많은 여행자들이 밤을 그냥 지나치지만 난 복구중인 도시와 파괴된 유적을 둘러 보려고 한다.
2년이 지났지만 밤 전체는 복구중이다. 온전한 건물은 거의 없으며 건물 여기저기에 균열이 보인다.
앙상한 철골구조가 있는 건물은 그나마 보존이 되지만 진흙으로 지어진 건물은 완전히 파괴가 되었다.
도시 전체가 공사 중이고 벽돌과 철기둥을 실은 차량들이 여기저기서 분주하게 움직인다.
사람들에게 물어 오늘 숙소인 아크바르(Akbar)게스트하우스에 갈 수 있었다.
지진 당시 이곳 게스트 하우스에는 14명의 여행자가 머물고 있었는데 그중에 3명이 죽었다고 한다.
게스트하우스는 도미토리(30000리얄)형태로 되어 있으며 도미토리에서 아까만난 일본인 히로와 홀로 여행 중인 프랑스 여성 세실을 만날 수 있었다.
세실은 1년을 계획을 세워 5개월째 여행 중이라고 한다. 또한 프랑스에서는 나와 같은 초등학교 선생님이라고 한다.
여성이 혼자서 이슬람 지역을 여행하다니..
세실이 나이를 묻기에 27살이라고 대답했더니 히로가 한국 나이는 따로 있지 않으냐고 묻는다.
한국 나이에 대해 세실과 히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힘든 눈치이다.
예전에 한국에서는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죽었는데, 아기가 오래 살라는 의미에서 태어나자마자 1살을 부여하고 새해가 시작될 때마다 1살씩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12월 31일에 태어난 아이는 다음날 2살이 된다고 말했다.
‘아 그래서 한국에서는 아이가 태어 난지 1년이 지나면 파티를 하는구나.’ 히로가 감탄한다.
그러나 세실은..
‘맙소사.. 내가 지금 한국에 가면 35살이 되잖아.. 그냥 33살로 살래.’
나 역시 한국에 돌아가면 29살이네.. 그냥 가지 말까? 헉 내년에 30살.. 20대가 시작될 때 절 때 30대가 안 올 줄만 알았는데...
오랜만에 유쾌한 기분으로 대화를 나눴다.
세실에게 이곳 남자들이 추근거리지 않는지 물어보니 매일 그런다고 한다. 그렇지만 애써 무시하면 된다고 말한다.
이슬람 남성들은 외국인은 성적으로 개방 되어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홀로 여행하는 여성 여행자에게는 항상 추근댄다.
도미토리에서 여행기를 정리하고 있으니 멋진 서양 여행자가 들어온다. 그는 뉴질랜드인이고 이름은 마크 프랑스이다. 나이는 27살로 나와 동갑이다.
도미토리에 모인 4사람..
세실은 5개월째, 히로는 9개월 째, 마크는 5개월째 여행 중이다.. 난... 1개월째..
암튼 대단한 여행자들이 한방에 모였다.
오랜만에 여행이야기로 밤을 꽃피웠다.
나 역시 영어 공부를 실컷 한 날이다.
특히 프랑스는 내가 다음 여행을 중동 지방으로 할 것이라고 말하자. 론니 플래닛 중동편이 2권이 있다며 내게 한권을 준다.
생각지도 않았던 아이템이다.
내일은 1월의 마지막 날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구정 마지막 날이네..
이제 돌아갈 날도 며칠 남지 않았다.
1월 31일(화)
프랑스인 세실은 파키스탄으로 가기위해 떠났고, 나와 히로, 마크 프랑스는 쉬라즈, 야즈드까지 같이 여행하기로 했다.
마크는 원래 야즈드로 가기로 했지만 갑자기 우리와 함께 여행을 하기로 결심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처음으로 집단 여행을 하는 것이다.
마크야 뉴질랜드인이니까 영어에 문제가 없고, 히로는 뉴질랜드에서 1년 동안 일했기 때문에 유창하다. 나 역시 셋 중에서는 영어가 제일 떨어지기는 하지만 말하고 듣는데 지장은 없다.
또한 셋 다 여행에 닿고 닿은 여행자라는 것.. 혼자 있을 때는 길을 찾고 가격을 협상하는 것을 모두 혼자서 해야 했지만 셋이 있으면 부담이 덜하다.
며칠 남지는 않았지만 남은 여행이 웬지 재미있어 질것 같다.
셋은 처음에 쉬라즈로 향하는 버스표를 끊기 위해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저 길이 아닌데..
반대편으로 가고 있지만 어짜피 밤 Arg-e로 가야하기에 잠자코 따라갔다. 베테랑이기는 하지만 길 찾는 것은 내가 더 뛰어 나구나^^ 웬지 모를 흡족감..
지도를 보면서 길을 찾는 것은 간단하다. 항상 태양이 지나다니는 남쪽을 기준으로 아침 시간에는 태양이 동남쪽에 있고, 저녁에는 서남쪽에 있다.
또한 여행을 많이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방향감각이 생겼다.
예를 들면 숙소에서 나와서 길을 갈 때에는 돌아가는 방향이 머릿속에 저절로 그려진다. 마치 숙소에서부터 허리에 밧줄을 묶은 것처럼 머릿속에 방향이 새겨진다.
이런 방향 감각덕분에 테헤란에서 노트북을 찾을 수 있었다.
어제도 확인했지만 밤 시내는 한창 공사 중이다. 2년이나 지났는데도 이렇게 밖에 복구가 안 되다니..
아예 복구를 포기하고 컨테이너나 텐트에서 생활하는 집도 눈에 띄었다.
시내 북쪽으로 가니 밤성(Arg-e Bam)이 보인다.
지진전만해도 이란 여행의 보석이라고 불리며 많은 여행객들이 찾은 밤성은 인도, 파키스탄, 걸프만과 유럽을 잇는 중요 선상에 위치했다. 때문에 일찍이 사산조 시대 때부터 번성했으며 마르코 폴로도 거쳐 간 곳이기도 하다.
오늘날까지도 9세기 때부터 지어진 성벽을 비롯해서 궁전과 많은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지진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앗아갔다.
밤성은 입구부터 복구공사 중이어서 안전 관계상 모든 관람객의 신상을 등록을 한 뒤 둘러볼 수 있다.(입장료는 없음)
성안은 그야말로 폐허이다. 여기저기 건물 잔해들이 흩어져 있고 온전한 건물은 하나도 없다. 한마디로 성 전체가 거대한 진흙 덩어리가 된 것이다.
같이 동행한 히로와 마크는 할 말을 잃었다. 인류의 소중한 유산이 이렇게 사라질 줄이야.
지지부진 하기는 하지만 복구공사는 계속 이루어지고 있었고 세월이 지나면 다시 원형을 다시 찾겠지..
폐허가 된 외성을 지나 내성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작업을 하던 인부들이 위험하다며 말린다.
성을 한 바퀴 돌고 버스터미널까지 남쪽으로 3~4Km를 걸어갔다. 겨울이기는 하지만 기온이 높고 태양빛이 강렬하다.
나도 모르게 외투를 벗고 반팔차림으로 다녔다.
현지 사람들은 지진으로 실의에 빠졌을 텐데도 우리를 볼 때마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인사를 한다.
그럴 때 마다 ‘살람(안녕하세요)’라고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가끔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럴 때면 마크가 ‘뉴질랜드, 일본, 한국’에서 왔다고 일일이 설명을 해줬다.
마크와 히로는 장기 여행자답게 정말 알뜰하다. 음료수 하나에도 일일이 가격을 물은 후 결정하고 먼 거리 임에도 웬만하면 걸어 다닌다.
그들과 함께 다니면서 한 가지 유용한 정보를 알았다. 버스 가격도 학생증을 내면 깍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덕분에 쉬라즈까지 버스티켓이 60000리얄인데 50000리얄로 깍을 수 있었다.
오후 5시에는 쉬라즈로 향하는 버스에 탔다. 쉬라즈까지는 12시간이 걸리니 도착 예정시각은 오전 5시..
이럴 때는 버스가 좀 늦게 도착하기를 바랄 뿐이다. 검문하는 경찰이 좀 도와줬으면..
주변 나라들과 달리 이란 버스의 좋은 점은 바로 20여개의 회사가 버스를 운영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사람이 꽉 차지 않아도 제 시간이 되면 출발을 하고 운전사와 버스 안내원도 승객들을 끌어들이려고 버스를 한 곳에 오랫동안 정차하지 않아서 좋다.
사실 승객이 꽉 차기를 기다리려고 1~2시간 기다린 적이 어디 한두번이던가..
쉬라즈까지 가는 버스는 승객이 1/3도 안 찼다. 덕분에 양방향의 4개의 의자에 누워서 편하게 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