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일(월)
오전 7시 반 호텔을 떠났다. 아리산으로 가는 길이 정확하지 않아 아침 일찍 일어난 것이다. 아리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동푸에서 7Km 떨어진 동부(東富)로 내려가야 한다.
아침에 보는 주변 풍경은 초록 신록으로 옷을 입은 거대한 산들이 장엄함을 자랑한다. 전형적인 산악의 아름다움이 묻어나 있다. 한국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곳이지만 온천욕을 할 겸 일부러 이곳으로 관광을 오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특히 계곡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구름다리가 있는데 다리 중앙에는 바로 밑이 보이도록 구조되어 있다. 깊이가 100m가 넘는 계곡을 흔들거리는 다리로 건넌다고 상상해보라. 밑을 바라보니 끝없는 절벽이다. 다리가 후들거리면서 공포가 엄습해왔다.
평소 담력이 강하다고 자부해왔지만 오늘에서야 내가 고소공포증이 조금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다리를 건너고 버스 정류장에 가니 동부(東富)로 향하는 버스는 아직 없는 모양이다. 이곳에서 산 밑자락에 위치한 동부(東富)가 보이고 계속되는 내리막길이라 하이킹을 할겸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갔지만 아무리 내려가도 끝이 없다. 그냥 히치를 할까? 몇몇 차를 히치했지만 무심한 차들은 스쳐 지나간다.
이런..
게다가 이곳 주민들은 개를 풀어놓기 때문에 가끔 나를 향해 짖어대며 달려오는 개도 있다. 개가 짖거나 달려올 때는 개와 눈을 마주치면 된다. 일종의 기 싸움으로 절대 눈을 돌려서는 안 된다.
결국 1시간 10분을 걸어 동부(東富)에 도착했다. 무려 6킬로를 걸어온 것이다.
식당에서 류러우미엔(牛肉麵)을 먹으면서 식당 아주머니에게 알리산으로 가는 버스 편을 물어보았다.
아주머니는 이곳에서 알리산으로는 1주일에 한번 버스가 지나갈 뿐이며 더 이상의 교통편은 없다고 하신다. 지도에서는 가까운 거리지만 알리산까지 65Km가 넘는다며 그냥 수이리를 가서 자이로 간 다음 알리산으로 가라고 하신다.
이건 완전히 삥 돌아가는 루트가 아닌가.. 개인적으로 여행을 하면서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바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안전한 길로 돌아가기 보다는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바로 히치를 해서 가는 것이다. 처음 여행을 했으면 망설이겠지만 이미 다른 나라를 여행하면서 많이 써먹은 방법이다.
물과 비상식량(다이제스티브 1개)를 사서 알리산으로 가는 21번 국도를 걷기 시작했다.(오전 9시 반) 시내에서 경찰에게 정확한 길을 물으니 어떻게 알리산까지 갈 건지 되묻는다. 히치해서 갈 거라고 하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행운을 빈다고 한다.
시내를 벗어나자 땡볕에 지나가는 차도 거의 없다. 티셔츠는 어느새 땀으로 흠뻑 젖었다.
이러다 하루 종일 걸어야 하는 건가?
그러한 걱정이 들 때쯤 관광버스 한대가 지나간다. 관광버스는 히치가 잘 안되지만 그래도 시도라도 해봐야 할 것 아닌가?
팔을 뻗어 차를 세우니.. 어? 버스는 서서히 속력을 줄이더니 멈춘다.
버스 안은 텅텅 비어 있고 인심 좋은 버스기사는 유산(玉山)입구인 타타지아(塔塔加)까지 태워준다고 하신다. 유산은 타이완에서 가장 유명한 명산으로 해발 3,952m로 동아시아에서 가장 높다. 이곳 도로는 신 중부횡단도로(新中橫公路)라 불리며 대중교통은 없지만 유산으로 가는 관광버스를 대절한 등산객과 관광객들이 이용한다.
히치를 한 버스는 돌아오는 등산객들을 태우기 위해 빈차를 끌고 정상까지 오르고 있는 중이다. 한마디로 운수 대통했다는 것이다.
타타지아까지 오르는 동안 절경이 펼쳐진다. 이곳 산들은 경사가 가파른 편이라 깍아지르는 절벽의 연속이다. 위에서도 수백미터 아래가 그대로 보인다.
절경도 절경이지만 도대체 이 아스팔트 도로를 어떻게 만들었단 말인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동부에서 44Km를 달려.. 아니 올라와 고개 정상인 타타지아에 도착했다. 해발 2610m이다. 높은 지대라 산자락에는 구름이 둥둥 스쳐 지나간다.
버스 기사는 이곳까지만 태워준다며 알리산까지는 다른 차를 히치하라고 한다.
이곳까지 온 이상 유산까지는 올라가지 못하더라도 그 장엄한 모습은 봐야 할 것 아닌가?
이제 등산모드로 바꿨다. 타타치아에서 500m를 오르니 장엄한 유산이 보인다. 등산로를 따라 1Km 더 가니 커다란 중국식 설송나무(Big Chinese hemlock)가 보인다. 설송나무는 우리학교(양양초등학교)의 상징이기도 하기에 더욱 반갑다.
이곳에서 유산 쪽으로 더 가고픈 욕망을 꾹 눌렀다. 일단 등반 준비가 전혀 안되어 있고(비상식량 다이제스티브 1개) 시간이 넉넉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타타치아로 돌아와 알리산 쪽으로 히치를 시작했다. 이번에도 히치를 시도하자마자 승합차 한대가 선다.
차안에는 이탈리아, 현지인 여행자들이 나를 반겨준다. 그들은 어제 밤 도로에 산사태가 나서 길이 막히게 되자 차를 놔둔 채 타타치아에서 하루를 지내고 다시 두고 온 차를 찾으러 가는 길이라고 말한다.
산사태가 난 지점에 가니 밤새 복구 작업을 했는지 산사태가 정리가 되어 있었다. 주변 풍경도 그렇고 산사태도 그렇고 4년 전 여행한 동티벳과 흡사한 풍경이다.
걸어 내려오면서 또 다시 히치를 시도했다. 이번에도 히치를 시도하자마자 승합차 한대가 선다. 의외로 히치가 잘 되는 날이네.
차에는 발랄한 운전자와 노파 2명 타고 있는데 중국 본토에서 여행 왔다고 한다. 중국에서 타이완으로 직접 오는 항공편이 없기 때문에 홍콩을 경유해서 왔다고 말한다.
오후 1시가 조금 넘어 알리산에 도착했다.
알리산은 고산 삼림철도로 유명하다. 인도의 따지링 히말라야 등산철도와 페루의 안데스산 철도 그리고 타이완의 알리산삼림철도가 세계3대 등산철도이다. 철도는 목재를 실어 나르기 위해서 건설되었지만 최근에는 유용한 관광자원이 되었다.
먼저 자이(嘉義)로 향하는 기차표를 예매를 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입구에서 경찰에게 기차역을 물어보니 친절하게 알려준다.
내가 기차역과 다른 방향으로 가자 친절한 경찰은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제대로 된 방향으로 다시 알려준다. 친절하고 고맙기 그지없다.
기차역에 가니 오후 1시 18분 행(399원) 기차밖에 없다고 한다.
헉.. 지금이 1시 10분인데.. 이왕 온 김에 알리산 주변의 명소를 보려고 했는데 이대로 가야만 하는가..
잠시 갈등이 되었다.
자이로 가는 버스 편도 많기에 이곳을 보고 갈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내가 이곳에 온 가장 중요한 목적은 바로 산림철도를 타는 것이다.
아쉽기는 하지만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기차를 타보지 못하고 이곳을 지나쳤을 것이다. 다르게 생각하면 오늘은 행운이 따라주는 날이다.
해발 2274m에서 출발한 기차는 병풍처럼 펼쳐진 원시림 속을 느린 속도로 달리기 시작한다. 50개의 터널들과 77개의 교량이 건설되어 있으며 시간대별로 온대, 아열대, 열대 식물들을 보며 해발 30m인 자이로 내려온다.
급격한 경사를 내려가기 때문에 스위치백(경사가 가파른 구간에 지그재그로 열차가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며 목적지에 오를 수 있도록 설계한 선로)이 4번이나 이어진다. 독립산(獨立山)을 지나니 삼중 스파이럴(급한 경사를 지그재그로 3회전을 하며 내려오도록 설계)를 경험할 수 있다.
3시간 50분을 달리지만 차창 밖의 변화무쌍한 파노라마를 감상하며 지루하지 않은 기차여행이다. 타이완을 방문한 여행객은 꼭 한번 타보도록.
자이에 도착(오후 4시 50분)하자마자 은행으로 환전을 하려고 했지만 오후 3시 반 이후에는 환전이 안 된다고 한다. 주변에 환전할 곳을 찾았지만 마땅히 할 곳이 없다.
결국 신용카드로 현금인출을 했다. 빗지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기에 신용카드 인출은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자이역에서 타이난(臺南)으로 향하는 기차표(91원)를 샀다.
기차라기보다는 우리나라 지하철과 비슷한 시스템이다.(좌석도 우리나라 지하철과 같다.)
1시간이 걸려 타이난에 도착하니 오후 6시 반이다. 론니(Lonely Planet) 지도를 보며 역에서 남쪽으로 100m정도 떨어진 쳉쿠앙(成光)호텔에 600원(한화 18000원)에 방을 잡았다. 가격에 비해서 시설은 괜찮은 편이다.(에어컨, TV, 샤워시설 다 있음)
호텔 근처는 전자상가이기 때문에 타이완에 맞는 전기 콘센트를 쉽게 구할 수 있다. 자 이제 여행기를 쓸 수 있겠군..
타이완은 외식 문화가 발달해 있기 때문에 여기저기 식당이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을 관찰해서 저녁식사를 했다.
오늘이 여행 2일째 맞나? 마치 몇 주는 되는 느낌이 든다.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보느라 힘들게 여행을 하지만 그만큼 남는 것이 많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