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7일(수)
UAE의 정식명칭은 THE UNITED ARAB EMIRATES는 1971년 영국으로부터 독립된 연합국으로 Abu Dhabi, Dubai, Sharjah, Ajman, Umm Al Qawain, Ras Al Khaimah, Fujairah의 7개의 부족 국가로 이루어져 있다. 즉 하나의 왕이 지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각 부족의 족장들이 모여 연맹체를 만든 나라가 바로 UAE이다. 원래는 카타르, 바레인도 같이 참여를 하려고 했는데 지리적으로나 인구 구성에 대한 지분이 여의치 않아 따로 독립을 했다고 한다.
7개 부족 중에서 가장 두각을 내고 있는 종족이 UAE 수도로 유명한 아부다비(Abu Dhabi)와 중동의 허브인 두바이(Dubai)종족이다.
아부다비 종족은 UAE 전체영토의 2/3를 차지하며 석유 생산도 90%를 차지한다. 나머지 1/3중에서 반 정도를 차지하는 것이 두바이이다.
우리에게 두바이하면 친숙하게 들리는데 바로 우리나라가 주로 수입하는 원유가 두바이유이기 때문이다. 두바이에서 생산한 것이 아니라 사우디, UAE등지에서 생산된 원유가 두바이를 통해 팔리기 때문이다.
두바이가 중동의 허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곳 왕인 Shaikh Maktoum bin Al Maktoum의 선견지명 때문이다. 왕의 이름을 풀어보자면 Shaikh는 지도자라는 뜻이고 bin은 누구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즉 Al Maktoum의 아들인 Shaidh Maktoum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사마 빈 라덴도 라덴의 아들 오사마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사막뿐이었던 두바이에 15년 전 Shaidh Maktoum이 이곳을 관광, 무역의 중심도시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을 때 인근 국가는 물론 같은 UAE 족장들이 비웃었다고 한다. 전형적인 사막인 두바이의 지형으로 봤을 때는 당연한 이야기였으리라.
하지만 Shaidh Maktoum은 두바이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는 것은 물론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이슬람 정신도 발전을 위해 변화시키는 과감성을 보였다.
두바이는 철저한 계획되어졌으며 2000년대가 넘어 발전의 가속 폐달을 밟기 시작했다. 지금도 두바이 도시 계획을 위해 2000여명의 서양 엘리트들이 활동을 하고 있다. 중동 최대 규모의 항만시설을 보유했고 인공 섬에 조성 된 321m의 그 유명한 알버즈아랍호텔은 타이거 우즈가 호텔 헬기장에서 바다를 향해 티샷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도시 어디를 가나 거대한 쇼핑몰이 위치해 있으며, 얼마 전 완공 된 거대한 실내 스키장, 30~40개가 넘는 고급 호텔이 위치해있다.
더 나아가 미국 디즈니랜드의 8배가 넘는 테마파크가 지어지고 있으며 삼성건설이 수주한 850m(예상)가 넘는 세계 최고층 빌딩도 2일에 한층 꼴로 지어지고 있다.
지금 두바이는 도시 전체가 공사장이며 놀라울 정도의 발전 속도를 이루고 있다. 두바이가 관광 허브가 된 데에는 에미리트 항공도 힘을 보탰다. 승무원만 7000명이 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항공사로 자리매김한 에미리트 항공은 지금도 두바이에 수많은 관광객을 쏟아내고 있다.
외국인에 대해서도 무척 관대하여 다른 이슬람 국가와는 달리 여성에 대해 히잡(머리를 감싸는 스카프)을 강요하지 않으며 외국 기업에 대해 최대한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석유가 많이 나는 국가라 그런지 현지인들에 대한 국가의 배려는 상상을 초월한다. 세금은 일체 내지 않으며, 의료, 교육 시설은 무료이다.
무엇보다 아랍에미리트 정부는 모든 국민들에게 1달에 10000디르함(250만원)을 지급하고 있으며 세금이 거의 없기 때문에 모든 물건이 싼 편이다.
예를 들면 도요타의 랜드크루저는 우리나라에서는 8000만원 넘게 들여야 구입 할 수 있지만 이곳에서는 3500만원 정도면 구입 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UAE 국민이 외국에 유학을 하게 될 경우에는 전액 국가에서 지원을 해주며 직업을 가져 사고를 당하게 될 경우.. 예를 들면 고액 봉급인 비행기 기장을 해서 사고를 당해 죽는 경우에는 그 자식들이 20세가 될 때까지 봉급의 75%를 지급한다.
최근 우리 언론이 두바이를 집중 조명을 하면서 두바이의 발전상을 본받자고 연일 칭송을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 사는 사람은 천국에 산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꼭 이런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권사장님께서 지적을 하신다.
가장 큰 문제는 이곳 젊은이들이 거의 일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UAE는 엄연히 독재 국가이기 때문에 모든 집회가 금지가 되고 시위는 상상도 못한다.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해줘서 불만이 없게 만드는 우민화 정책을 쓰는 것이다.
이곳에서 필요한 노동력은 모두 인도, 파키스탄 외국인들이 채우고 있다. 어제 북경~두바이 행 비행기를 타면서도 대부분이 중국인 노동자임을 알 수 있었다.
물질적으로 풍요하기 때문에 일을 안 하는 젊은이들이 대다수인 UAE가 정상적인 사회는 아닐 것이다. UAE의 주 수입원인 석유가 고갈되었을 때 편하게 생활하면 UAE 국민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일터에 나갈 수 있을까?
이곳에 진출한 기업입장에서도 비싼 돈을 주고 현지인을 고용하는 것보다는 임금도 덜 들고 영어도 능숙하며 일을 잘하는 인도, 파키스탄 인들을 고용한다. 즉 모든 노동은 외국인 노동자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100만이 넘는 두바이 인구에서 현지인은 30만이 안 된다고 하며 주요 경제 활동은 외국인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현지인을 보기가 힘들 정도이다.
두바이 발전에 편승해 한국 교민도 3000명이 넘었다. 한국인들의 근면 성실함은 이곳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데 예를 들면 에미리트 항공사에서 처음에는 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인, 한국인을 같이 뽑았지만 이내 중국인들은 선발을 중단하고 지금껏 한국인들만 뽑는다고 한다. 그만큼 처음 에미리트 항공에 입사했던 한국인 승무원들이 후배를 위해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일했다.
내년에는 두바이에 영사관이 생긴다고 하는데 대사관에 볼 일을 보려면 아부다비로 가야 했던 교민들에게는 무척 반가운 소식이라고 한다.
얼마 전 신문에서 두바이 아파트를 서울에서 분양하는 뉴스를 봤는데 최근 2년 동안 이곳 아파트값이 어마어마하게 올랐다고 한다.
김성학 사장님과 아침 식사를 하면서 UAE에 관한 많은 것들을 물어보았다. 김사장님은 두바이의 발전 과정을 설명해주시면서 두바이의 발전에 자극받은 바레인, 카타르를 비롯한 인근의 다른 도시들이 뒤늦게 두바이를 벤치마킹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라고 하신다.
두바이에서 가장 먼저 할일은 바로 예멘 대사관에서 비자를 받는 것이다. 오늘 시내 관광은 에미리트항공 승무원인 김미순씨와 함께 하기로 했다. 마침 오늘이 쉬는 날이라 가능했다. 두바이에서 미인과의 데이트라니..^^ 미순씨는 내일 영국 맨체스터로 떠난다.
두바이의 에어포트(Airport)로드를 쭉 가다보면 대사관들이 모여 있는 블록이 있는데 이곳에서 예멘 대사관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대사관에서 비자를 신청하려고 하니 친절한 영사가 이곳에서 비자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하며 국경에서 비자를 발급하니 그곳에서 받으라고 말한다.
공항 비자 발급은 알고 있었지만 육로는 안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혹시나 해서 오만에서 넘어갈 국경을 지목하며 물어보니 확신에 찬 어조로 국경비자를 발급한다고 한다.
이 정도면 믿을만하지만 아직 국경비자를 발급 받았다는 정보가 없어 불안하기만 했다. 영사에게 부탁하니 전화번호를 적어주며 국경에서 문제가 생기면 자신에게 전화를 하라고 한다.
만약에 사실이면 앞으로 아라비아 반도를 여행하는 한국인들은 비자 걱정 없이 여행할 수 있는 획기적인 정보가 될 것이다.
사실 여부를 확인도 할 겸 비자를 받지 않기로 했다. 만약 안 되면 비행기를 타고 예멘으로 입국하기로 결심했다.
비자 문제를 해결하니 미순씨 핸드폰으로 권휘 사장님에게 전화가 온다.
권사장님의 사무실을 방문하니 인도인 직원들이 맞아준다.
권사장님은 두바이가 발전하기 시작한 90년대 중반 종합상사 직원으로 발령을 받으셨다가 이곳에서 의류 사업으로 성공하신 분이다. 두바이를 취재하는 TV와 신문에서 자주 인터뷰 요청을 받을 정도이다.
권사장님은 최근 언론에서 두바이의 단점을 완전히 배제한 채 좋은 점만 너무 부각을 시키는 언론의 태도를 못마땅해 하신다.
사무실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시내 관광에 나섰다. 가장 먼저 간 곳은 UAE의 상징인 알버즈아랍 호텔이다.
시내 중심가를 관통해서 가야 하는데 차들이 너무 밀려 타고 3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알버즈아랍호텔은 육지에서 100m떨어진 인공 섬에 지어졌으며 높이가 무려 321m이다. 건물 전체가 삼각돛을 형상화한 아름다운 건물이며 모양에 따라 오징어 건물이라고 불리기도 하다.
전 세계적인 공모를 해서 스웨덴 건축디자이너의 작품이기도 한 알버즈아랍호텔은 디자이너가 독실한 기독교라 바다에서 바라보면 십자가 모양으로 보인다는 루머가 있기는 했지만 Shaidh Maktoum의 한마디에 의해 일축되며 지어졌다.
알버즈아랍호텔을 비롯해 주변 해변에는 4~5성급 호텔이 30개 넘게 늘어서 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역이 되었지만 처음에는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서방국가를 대상으로 1000달러에 비행기를 포함한 모든 숙식을 할 수 있는 4박 5일 패키지를 팔았다고 한다.
지금은 하룻밤 자는데 2000$를 가볍게 넘는다.
알버즈아랍호텔에 들어가려면 입장료 100$를 내야한다는 정보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없어져서 투숙객 이외에는 들어갈 수 없다.
근처 호텔에서 차한잔을 하며 알버즈아랍호텔을 감상할 수 있었다.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전형적인 한상(韓商)인 권사장님은 처음에는 사업이 너무 힘들어 남몰래 해변으로 나와 운적도 많았다고 하실 정도로 고생을 하시다가 지금은 중동에서 유명한 의류 상인이 되셨다. 해외에서 무역을 하는 한상의 고충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은 400개의 상점이 몰려있는 에미리트몰로 갔다. 이곳은 사막 한가운데 개장한 실내스키장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두바이는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건축물이 많이 지어지는데 그것은 바로 홍보효과를 노리기 때문이다. 화려하고 거대한 건축물을 많이 만들면 만들수록 언론의 두바이에 대한 기사거리가 많이 나오게 되고 그것이 바로 두바이의 관광수입원이 되는 것이다.
실내스키는 60디르함을 내면 2시간을 탈 수 있고 장비 일체가 제공된다. 수많은 현지인들이 스키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스키장이 한눈에 보이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권사장님은 20세기의 최고의 발명품 중에 하나로 에어컨을 꼽았다.
UAE는 여름철이 되면 45도~50도를 오락가락할 정도로 살인적인 더위를 자랑하는 곳이다.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 활동하는 생활을 했는데 그러한 패턴을 깬 것이 바로 에어컨이다.
하루는 두바이 시내 전체가 6시간 동안 정전이 된 적이 있는데 이때 시내의 모든 업무가 마비가 되고 도로는 차들로 완전히 꽉 찼다고 한다.
무더위를 이기지못한 사람들이 에어컨이 나오는 차안으로 피신을 했던 것이다. 이렇게 들어보니 에어컨도 대단한 발명품임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두바이는 쇼핑축제이다. 모든 물건을 30~70% 할인된 가격으로 살 수 있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리고 있다. 때문에 쇼핑몰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공항에서 인접한 시계탑 근처에는 오만 무스카트 행 버스가 출발하는데 50디르함(12500원)에 표를 구입할 수 있었다.(오후 4시 30분 출발)
권사장님과 미순씨에게 2월초에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하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출발하고 시내를 벗어나자 황량한 사막이 나타난다. 저 모습이 예전의 두바이 모습이었겠지? 다시금 두바이의 발전에 감탄을 했다.
UAE~오만 국경은 Hatta시 근처에 있는데 방심한 나머지 대실수를 하고 만다. 바로 플래쉬를 터트리며 국경의 모습을 사진에 찍었다.
아차 싶어 황급히 사진기에 찍힌 사진을 삭제하고 황급히 버스에 올랐지만 결국 국경수비대에게 걸려 사진기를 압수당했다.
수비대는 절대 사진기를 돌려줄 수 없다며 그대로 무스카트로 가라고 한다.
아.. 여행 초반에 웬 재앙이냐.. 권사장님으로부터 아라비아 반도에서는 절대 경찰에게 복종을 해야 한다고 충고를 받았지만 이대로 카메라를 버릴 순 없다.
먼저 잘못을 인정하고 최대한 공손하게 용서를 빌었지만 국경수비대원은 카메라를 돌려줄 수 없다고 한다.
15분을 실랑이를 벌여도 소용이 없었다. 다른 승객들에게 미안할 뿐이지만 이대로 떠날 수 없다. 곤란한 표정을 짓는 버스 기사에게 내 짐만 내리고 떠나라고 했다. 국경수비대에게 카메라를 찾지 못하면 이곳에 계속 남는다는 의사를 표시하기 위해서이다.
내 짐을 내린 후 버스가 출발하려고 하자 국경수비대원이 황급히 나를 부르더니 카메라를 돌려주며 다시는 그러한 행동을 하지 말라고 한다. 정말로 외국인이 국경에 남는 곤란한 상황을 우려한 것도 있지만 처음부터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 효과가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카메라를 돌려받고 버스에 오르니 버스 승객들이 자신의 일인 양 박수와 환호를 보낸다. 겸언적인 미소 지으며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다. 여행을 하면서 절대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한국인은 서방세계로서는 유일하게 오만 무비자 국가이다. 바로 오만과 우리나라의 우호의 상징이기도 하며 비자 없이 1달 동안 체류 가능하다. 다른 승객들이 국경비자와 대사관 비자를 제시하는 동안 어렵지 않게 스탬프를 받고 버스에 올랐다.
국경을 통과한 후 무스카트에 도착하니 밤 11시 반 정도 되었다. 예정 시각보다 꽤 늦게 도착했다.(나도 원인이 되었음.)
밤에 도착한 것까지는 괜찮은데 문제는 환전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쩔 수없이 달러 가지고 숙소를 구해야 한다.
오만은 생각보다 꽤 발전이 되어 있으며 과거 영국의 지배를 받아서 그런지 영어가 능통하다. 단 하나의 문제점은 숙소가 지나치게 비싸다는 것이다. 싼 수준의 숙소가 10리얄(24000원정도)한다. 최대한 일정을 앞당겨 예멘으로 넘어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무스카트는 하나의 도시가 아니고 크게 3군데 지역으로 나눠진다. 전통적인 무스캇의 모습을 볼 수 있는 Mutrah, Muscat 지역과 신시가지인 Rawi지역으로 나눠진다.
론니에 싼 숙소가 Mutrah 지역에 있다고 표시되어 있다.
터미널에서 Mutrah로 가려고 하는데 인도인 아저씨가 자신의 차에 타라고 하니 Mutrah로 데려다 준다. 정말 고마운 분이다.
걸어서 1시간을 돌아다녀 호텔이 있는 항구를 찾을 수 있었다. 론니에 표시된 호텔들은 방이 꽉 찼고 한 호텔에 들어가니 15리얄(36000원)을 요구하기에 사정사정을 해 10리얄로 깍을 수 있었다. 방안에 들어가니 다른 여행지 7000원~10000원 수준의 방이다.
단 2일을 여행했지만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고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된 유익한 시간이었다. 앞으로 더 많은 것들이 나를 기다리겠지. 여행기를 정리하며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