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7일(금)
엄지발가락 상처가 걱정되었는데 어제 정성스럽게 치료를 해서 그런지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카멜레온 백패커스에서 대략적인 정비를 하고 보츠와나를 향하여 나섰다. 흑인, 백인 직원 잘 가라며 인사를 해준다. 짧은 시간이지만 다른 여행자와 달리 직원들에게 항상 웃고 다니고 재미있는 별명(National Park)도 있어서 인상이 깊었나보다.
보츠와나로 가기위해서는 고바비스(Gobabis)를 통과해야 하기에 라이노 파크(Rhino Park)까지 물어물어 찾아갔다. 생각보다 거리가 있기 때문에 택시를 타는 것을 추천한다. 라이노 파크에 주유소가 있고, 거기에 각 지방으로 떠나는 버스가 모여 있다. 고바비스까지는 R80 부른다. 1시간 정도 기다리다가 11명 정도 차자 버스가 출발했다. 나미비아에서는 버스 가격이 비싼 대신에 승객이 차지 않아도 출발하는 것은 좋다.
오후 2시 고바비스에 도착했는데 이곳에서부터는 정규 교통편이 없기 때문에 히치를 해야 한다. 다행히 보츠와나쪽으로 걷자 한 운전자가 다가오더니 국경까지 R50에 태워주겠다고 한다. 오후 3시 30분에 국경에 도착했다. 나미비아 출국 스탬프를 받은 후 운전자가 보츠와나 국경까지 태워주었다. 고바비스부터 함께 온 남아공 흑인 청년과 함께 수속을 밟았다.
보츠와나는 최근에 한국인이 무비자가 되었다. 이민국 직원은 보츠와나에 얼마 정도 있을 건지 묻더니 90일까지 체류 할 수 있는 스탬프를 찍어준다.
보츠와나는 프랑스와 같은 크기나 텍사스보다 약간 작은 넓이의 지역이지만 인구는 164만명에 불과하다. 보츠와나의 지형은 거의 평지로 반 건조지대인 칼라하리(Kalahari)사막이 중부와 남서부지역을 포함하여 국토의 거의 85%를 뒤덮고 있다. 북서부는 세계적으로 특이한 지형을 나타내는데 내륙 국가이지만 강의 하류에만 나타나는 델타 지역을 품고 있다. 북서부의 오카방고강(Okavango River)이 나미비아에서부터 흘러오며 오카방고 삼각주를 형성을 하며 곳곳에 섬들을 만들어지면서 강물은 모래사막 속으로 스며든다.
어린 시절 비행기에서 떨어진 코카콜라 병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부시맨의 모습이 기억난다. 보츠와나는 부시맨이 적어도 3만년 동안 거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부시맨은 보어인들이 경멸하면서 부른 이름이며 원래는 산(San)족이 정확한 명칭이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 된 부족으로 평균 신장이 155Cm 정도로 작은 체구에 검은 머리카락이 밤송이처럼 오그라들고, 동양인과 비슷한 황갈색 피부를 지니고 있다. 산족은 남부 아프리카에는 그들의 생활을 벽화를 남겨서 총 3,000여 곳에 10만점이 넘게 발견되기도 했다. 산족에 뒤이어 목축생활을 하는 코이코이(Khoi-Khoi)(호텐토트)족이 나타나고 그 다음에는 아프리카의 북서부와 동부지역에서 이주해 온 정착한 반투(Bantu)족이 나타난다. 츠와나(Tswana)족을 포함하여 또 다른 반투 족이 18세기까지는 칼라하리 사막에 걸쳐 비교적 평화롭게 살았다.
1800년까지 칼라하리 사막주변에 목초지로 적당한 모든 땅에는 목축민들이 정착을 하게 되면서 분쟁이 시작되었으며, 게다가 유럽인이 케이프에 도착하여 북쪽으로 팽창하고 있었었다. 1818년 남아프리카에 사는 줄루(Zulu)족이 합쳐진 후 감행한 공격으로 츠와나족은 위축이 된다.
또한 보어인들이 츠와나족과 줄루족의 영역을 차지해 원주민에게 백인의 규율을 강요하면서 보어인의 농장에서 일하게 했지만 원주민들은 그에 불만을 가지게 된다. 1877년까지 그러한 반감은 영국이 마침내 트랜스바알(Transvaal)을 합병하기 위해 개입하고 첫 번째 보어전이 터지는 정도까지 치솟게 된다. 이에 카마 3세는 영국에 보호를 요청하여 1885년에 영구 보호령 ‘베추아날란드’가 되었다. 1965년 총선거를 거쳐 1966년 보츠와나 공화국으로 독립을 성취한 후 아파르헤이트 정책을 주진한 남아공과는 각을 지기도 했다.
1967년 오라파(Orapa)부근에서 다이아몬드가 발견되고 구리가 발견됨에 따라 구미 기업이 진출하여 급격한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 보츠와나는 막대한 외환을 보유하고 풀라(pula)화(보츠와나 화폐단위)를 아프리카에서 가장 강한 통화가 된다.
다이아몬드의 발견이 보츠와나 국민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작년에 MBC TV에 W에서 칼리하리 사막의 산족에 대해 취재했는데 칼리하리 사막에 대규모 다이아몬드 광맥이 발견되자 보츠와나 정부에서는 산족의 우물을 막고, 다른 지역으로 떠나기를 종용하고 있었다. 때문에 산족의 가족 중 한명은 물을 구하러 2주 이상을 무거운 물통을 지고 물을 길어야 하는 고된 삶이 방영된 것이 기억이 난다.
국경을 통과하는데 총 한 시간 정도 걸렸는데 이제부터가 문제이다. 국경에서 가까운 마을(Charles Hill)까지 4Km 정도 되는데 교통편이 마땅치 않다. 남아공 청년은 국경에서 교통편을 알아본다고 했는데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남아공 청년에게 ‘난 걸어가면서 차편을 구해볼게.’ 라고 말하고 길을 나섰다.
햇볕이 강하고 덥기는 하지만 저녁이 되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여기서 180Km 정도를 더 가야 간지에 도착을 한다. 간지에서 마운까지는 286Km를 더 가야 한다.
서둘러 걷는데 트럭을 체크하는 세관원이 흥미롭게 어디로 가는지 물어본다. 마운까지 간다고 이야기 하니 자기가 검사하고 있는 트럭도 마운을 간다며 운전사에게 말해보라고 한다. 운전사에게 말해보니 대답이 시큰둥하다. 일단 패스~
다행히 지나가는 승용차가 땡볕에 걷는 내 모습이 불쌍했는지 마을까지 태워준다. 원래 2$ 정도 내야 하지만 돈을 받지 않고 태워주었다.
마을 주유소에서 환전을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주유소가 문을 닫았다. 일단 보츠와나 풀라화가 없는 상태에서 여행을 하는 불안한 상황이다.
주유소 앞에는 몇몇 주민들이 차를 히치하고 있는데 쉽지가 않다. 아까 세관원이 가리킨 트럭이 지나가기에 히치를 하려니 마을쪽으로 들어간다. 이 트럭은 나와는 인연이 없나 보다.
다행히 오후 5시에 간지로 가는 미니버스 한대가 선다. 간지까지는 39풀라인데 풀라화가 없다고 이야기 하자 다른 주유소에서 환전하면 된다며 안심시킨다. 1풀라는 남아공 랜드화보다 환율이 약간 높으며 우리나라 돈으로 1풀라에 180원 정도로 계산하면 된다.
간지로 가는 길은 아스팔트로 잘 포장이 되어 있으며 사바나 초원이 쭉 이어지고 있다. 도로 중간 중간에 소와 당나귀, 말 등이 지나가기 때문에 운전사는 주의하며 운전을 한다. 버스에는 산족 할머니 할아버지가 함께 탔는데 흑인과 달리 피부가 갈색이고 키가 작다. 말투가 어눌하기 때문에 흑인인 운전사가 잘 알아듣지 못한다.
간지로 가는 중간에 주유소에 멈췄는데 1풀라에 1.15R라고 표기되어 있다. 약간 손해 보는 것 같지만 어짜피 나미비아 달러는 쓸데가 없음으로 일단 환전했다.(250N$를 217풀라로)
주유소에서 음료수 한 캔을 사(5풀라) 벌컥벌컥 마셨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 숙소에서 제공한 아침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 일단 갈증은 해소 했다.
오후 7시 10분 간지Ghanzi)에 도착했다. 이미 해가 넘어가고 있고 마운으로 출발하는 버스는 내일 새벽 6시에 첫 차가 떠난다고 한다. 론니에 표시 된 시내 유일한 호텔에 가보니 인상이 까칠한 백인 아줌마가 495풀라를 부른다. 좀 더 싼 방이 없는지 물어보니 그 인상처럼 쌀쌀맞게 돌아선다.
어둡기는 하지만 마운으로 가기로 했다. 마운으로 가는 길목에 서서 히치를 하려는데 날이 꽤 어두워졌다. 한 백인 운전사가 차를 세우더니 이곳에서 이 시간에 차량을 히치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충고해 준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야간에 히치 하는 것은 에티오피아 여행이후 처음이다. 그때는 성공했는데..
길가에는 주유소가 있는데 기름을 많이 먹는 트럭이 마운으로 가기 위해 이곳에서 주유를 하고 가야 된다는 계산을 했다. 주유소 직원들에게 트럭을 히치해서 마운으로 간다고 양해를 구하고 마운행 차량을 기다렸다.
주유소 직원에게 혹시 주유소에서 먹거리를 팔지 않는지 물으니 과자나 음료수 밖에 팔지 않는다고 이야기 한다. 이거 완전히 굶어야 하는 판이네..
쭉 기다리다 보면 언제 간 한대 걸리겠지.. 주스 하나를 사서 장기전을 준비하는데 어째 눈에 익은 트럭이 주유하러 들어온다. 아까 국경과 국경 마을에서 마주친 트럭이 주유소에 들어 온 것이다.
신나게 뛰어가 운전사에게 ‘우리 세 번째로 만나는 거야!’라고 말하니 운전사는 ‘그래, 너 이거 타고 갈 수 있어.’라고 말한다. 이 트럭은 나와는 인연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마운까지 가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트럭은 주인과 보조가 타고 있는데 나미비아 웰비스베이에서 중고차량 2대를 가지고 짐바브웨로 가는 중이라고 한다.
주유 후 마운으로 향하는데 주인 운전사와 축구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축구이야기로 우리는 금새 친해질 수 있었다. 그는 작년에 남아공 월드컵 직전 짐바브웨와 한국이 평가전을 했다고 이야기 하며 그때 2대2로 비겼다고 이야기 한다.
‘짐바브웨도 축구 잘 하는 것 같은데 왜 월드컵에 못 나와?’라 물으니 ‘짐바브웨가 돈이 없어서 그래. 결정적인 순간에 심판이 매수를 당해 상대편에 유리하게 하거든.’
‘맞어.. 우리도 같은 이유로 중동한테 가끔 당해.’ 축구이야기를 비롯해 그의 솔직한 짐바브웨 경제 이야기를 하며 마운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