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2일(토)
오전 1시 30분 트럭은 잠시 멈추더니 짐을 내린다. 메인도로에는 차량과 사람들로 북적거릴 줄 알았는데 밤이라 그런지 고요하기만 하다. 오랜 시간 짐을 내린 후 트럭은 메인도로에서 벗어나 남쪽으로 방향을 꺾었다.
오전 3시Quelimane에 도착했다. 말라위 국경에서 차량을 잡은지 거의 12시간 만에 도착이다. 트럭이 버스가 모여 있는 정류장을 지나기에 운전사에게 여기서 내린다고 이야기 했다. 운전사에게 Mtc300을 지불하고 짐을 챙겨 내렸다. 이 트럭이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생각 만 해도 끔찍하다. 돈을 주고 버스정류장에 내리니 운전사도 같이 교통편을 알아봐주려고 트럭을 세웠다.
트럭이 버스정류장에 도착한 시각은 참 절묘했다. 이곳에서 출발하는 대부분의 장거리 버스 출발 시각이 새벽 4시였기 때문이다. 이곳에 도착하기 전 계획은 오늘 베이라(Beira)까지 가고, 내일 인함바네(Inhambane)로 이동을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베이라로 가는 버스를 찾다가 수도인 마푸토(Maputo)행 버스가 있기에 인함바네를 지나치는지 물어보니 그렇?고 한다. 베이라를 거칠 필요 없이 곧장 인함바네로 가기로 했다.
버스요금은 마푸토와 같이 Mtc1,500(50$)인 것까지는 이해하겠는데 좌석이 없어 서서 가야 한다는 것에서는 망설였다. 버스는 지정좌석제라 이미 만석인데.. 다시 베이라까지 가는 버스로 가니 좌석은 물론 서서가는 사람들로 완전히 꽉 찼다. 마무토까지 가는 금액을 내고 좌석 없이 가는 것이 억울하기는 했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지정좌석제이지만 승객들이 앉고 나서는 많은 사람들이 서서라도 버스에 타기 위해 버스로 몰린다. 나 역시 일단 버스에 우겨 탔고, 운전석 옆에 공간이 딱딱하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앉을 수 있었다. 새벽 4시 버스는 출발. 딱딱한 운전석 옆에서 곧장 잠이 들었다.
3시간을 달리다가 버스는 멈췄는데 정차 시간이 오래 걸린다. 뒷 타이어에 이상이 있어 교체를 하려고 하는데 스페어타이어도 상태가 엉망이다. 그대로 오랜 기다림이 시작된다. 버스가 오랫동안 머물게 되는 이곳은 공교롭게도 2일전 목표로 했던 카이아(Caia)이다.
버스가 정차하는 시간에 막막하게 기다리지는 않고 아침거리를 사서 먹고(계란 햄버거2개 +물) 마을을 돌아보며 시간을 보냈다.
3시간 정도를 기다려서야 스페어타이어가 도착했다. 버스의 전체적인 진행은 빨간색 옷을 입은 뚱뚱한 사내가 했는데, 전체적으로 승객들에게 고압적이고, 돈을 밝히며 제멋대로이다. 검은색 피부와 어울려 생긴 모습이 멧돼지와 비슷하다. 말이 통하지 않아 이 사내의 이름을 알 수 없었다. 이 사내에게 돼지라는 별명을 붙였다.^^
한 승객이 돼지에게 정차하는 것에 대해 항의하자 오히려 승객에게 왜 비행기를 타지 버스를 타냐며 되래 화를 낸다. 육중한 덩치의 반격에 항의하던 승객 찍소리도 못하고 물러선다.
타이어 교체를 하고, 운전사가 출발을 하는데 돼지가 기름을 넣자고 한다. 주유소에 들렸으나 기름값이 비싸서 그런지 발걸음을 돌려 가짜 휘발유를 파는 곳으로 돌아간다. 결국 가짜 휘발유로 마음에 안 들었는지 기름을 넣지 않고 다시 출발한다. 이 과정에서 20분은 지체..
메인도로 주변으로는 끝없는 신록이 펼쳐진다. 론니플래닛 모잠비크편에는 전체 지도만 있을 뿐 지역 지도는 하나도 없기에 전체지도를 보면서 버스 진행 상황을 체크했다. 다행히 도로 상태가 좋아 버스는 100Km의 속도로 쭉 남쪽으로 내려간다. 운전석 옆 자리는 받침대가 없고, 딱딱하기는 했지만 계속 타다보니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
오후 1시 30분 인초페에 도착했다. 앞으로 도시가 없는 지역이기 때문에 버스도 정차해서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다. 점심을 사 먹으려 식당에 들어갔지만 도시락 몇 개를 팔다가 음식 재료가 떨어졌다며 안 판다고 한다. 황당한 상황.. 어쩔수 없이 콜라의 당분으로 허기를 떼웠다.
버스는 다시 출발하고, 비가 오는 가운데서 오후 5시 Save강의 큰 다리를 건넜다. 메인도로는 다리 시설이 잘 되어 있는데 다리를 건너기 전과 건넌 후 검문을 받아야 했다. 경찰은 소말리아인을 찾는다며 버스 안을 헤집고 다닌다.
오후 6시 30분.. 아직 225km가 남은 상태에서 비란쿨로(Vilankulo)에 도착했다. 이제 모잠비크 남쪽으로 들어선다. 오랫동안 딱딱한 곳에 앉느라 온 엉덩이가 아팠다. 최대한 자세를 바꾸면서 적응하려고 애썼다. 그래도 난 나은 편이다. 14시간 동안 서서 가는 사람들도 있다. 이제 하차를 하는 승객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포악했던 돼지 사내는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많이 유순해졌다. 처음 나에게는 거추장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제는 나에게 얼마 정도 남았는지 웃으면서 설명해준다.
Pomene에 도착해서 검문을 받는데 경찰은 좌석에 앉지 않는 승객들은 모두 내려 숫자를 체크한다. 처음에는 검문하는 경찰을 원망했지만 지켜보니 승객 초과에 대한 벌금을 부과하는 것 같다. 무려 30명 정원 초과.. 버스가 출발하고 돼지 사내는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감싸안은 채 한참을 말을 잇지못한다. 그러니 사람 좀 작작 태우지 그랬어.. 바로 뒤에서 싱긋 웃는 나.
오후 9시 35분..
드디어 목적지에 Maxixe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인함바네까지는 배를 타고 건너면 된다고 한다. 그저께부터 이곳까지 오기 위해 시행착오와 많은 고생을 이루면서 온 것이다. 감격하며 지도를 확인하고 있는데 돼지가 빨리 내리라고 재촉한다. 그래도 17시간 동안 동고동락하며 정들었는줄 알았는데 끝까지 안 좋은 인상을 주네.. 그래도 악수를 청하고 선착장으로 향했다.
인함바네까지 가는 배는 마침 도착을 했는데 오늘 출발하는 마지막 편이다. 배를 타고 곧장 요금을 지불(Mtc10)하고 바닷바람을 느끼기 위해 배 밖으로 나가니 선원이 안에 들어가 있으란다.
배안에 경찰 청년이 있는데 약간 영어가 되어 함께 배 밖으로 나가니 선원들은 아무소리 안 한다. 경찰은 영어를 초등학교 때 조금 배웠다고 말하며 왜 자신에게 한국의 이미지는 좋은지 알려달라고 한다. 내가 어떻게 알아? 그냥 한국이 그렇게 다가왔겠지.
인함바네 선착장에 내려 선착장 북쪽에 있는 Pensao Pachica에 갔다. 가는 도중 해변에는 많은 차량이 서 있고, 차량마다 시끄러운 음악을 틀며 사람들은 맥주한잔을 하고 있다. 특히 좋은 차량일수록 음악소리가 크다. 우리나라에서는 15년 전쯤 유행했던 오렌지족이 연상이 된다.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도미토리(Mtc400)에 들어가니 서양 여행자 한명이 자리 잡고 있다. 오늘 아무것도 먹지 않았기에 식당을 찾아 시내로 나갔지만 모든 식당이 문을 닫았다. 우리나라의 24시간 편의점이 그리운 순간이다.
시내 남쪽으로 노점상에 맥주를 파는데 주변에 맥주를 마시는 청년들이 있다. 청년 6명이 함께하자며 반갑게 맞아주는데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니 청년들은 함께 마시자며 흑맥주 한잔을 따라준다. 모잠비크 흑맥주인데 꽤 맛있다. 마침 노점상 주변에 닭꼬치를 파는 아낙네가 있다. 오늘 식사는 닭꼬치 2개와 약간의 맥주로 마무리..
숙소에 돌아와 샤워를 하는데 엉덩이에 물집이 잡혔다. 하루 종일 딱딱한 곳에 앉아서 그런 탓이다. 엉덩이에도 물집이 잡힐 수도 있구나.. 스스로가 증명했다.
임함바네는 전체적으로 조용한 도시이지만 해변만 음악소리와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대화소리로 시끄럽다. 숙소가 해변이라 좀 시끄럽기는 했지만 워낙 피곤했기 때문에 곧장 잠이 들었다. 아마 코를 많이 골 텐데.. 괜시리 옆 침대의 서양여행자에게 미안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