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4일(월)
파티마 숙소 자체 문제인지 침대가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알 수 없는 벌레에 많이 물려 결국 새벽에 깼다. 잠이 오지 않아 레스토랑에 가니 백인, 흑인 젊은이들이 맥주를 마시며 젊음을 불사르고 있다.
이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해변을 걷고 있는데 한 백인 커플이 오더니 혹시 지갑을 봤는지 묻는다. 해변에 돌아다니다가 지갑을 잃어버린 모양이다. 해변 산책을 하고 다시 잠을 청하는데 온몸이 가렵다. 도미토리 안도 무척 덥고, 물가도 비싸고.. 파티마는 숙소로는 절대 비추이다.
아침식사를 하는데 직원 한명이 나에게 와서 모잠비크가 어떤지 나의 생각을 물어본다.
‘모잠비크는 지리적으로 좋은 위치에 있고, 많은 자원과 땅이 있지만 포르투갈어를 쓰기 때문에 사업하기에는 어려운 것 같아.’
청년을 수긍을 하며 포르투갈이 식민 지배를 하면서 해 놓은 것은 하나도 없다고 이야기 한다. 실제 청년의 말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 포르투갈이 지배한 아프리카 국가에 관한 책을 봤다. 서구 열강은 수탈을 목적으로 식민지 지배를 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행정 체계와 교육시설, 의료 시설 등 기반시설을 구축하기는 했다. 하지만 포르투갈은 오로지 수탈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사회적 기반은 거의 구축하지 않았으며,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가 1965년경에 독립을 했지만 포르투갈은 끝까지 식민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고 독립 운동을 무차별적으로 탄압해 많은 주민들을 학살했다. 이는 식민지의 무력투쟁으로 이어졌으며 결국 10년이 지난 1975년에서야 쿠데타로 포르투갈 파시스트 정권이 무너지고 나서야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다.
포르투갈은 이 나라를 혼란 속에 남겨놓고 떠나갔으며 전문 인력과 사회기반의 부족, 추락한 경제상황 등은 모잠비크를 빈국으로 몰아넣었다.
그 후에는 주변국의 백인 정권의 앞잡이인 레나모(Renamo)에 의해 전형적인 내전이 잇달았다. 레나모의 목표는 모잠비크 사회기반과 통신 시설을 대대적으로 파괴하고 결국은 정부를 전복시키는 것이었다. 가뭄과 기근이 왔을 때 레나모는 구원물자를 실은 트럭을 공격했으며 곡식 창고에 불을 질렀다.
공산국과와 손을 잡았던 프렐리모는 점차 압력에 굴복, 서방에 문을 열기 시작했으며 서방은 식량원조로 화답했다. 남아공과의 관계는 1980년대 말까지 조금씩 개선되어 갔지만, 1990년 프렐리모가 마르크스 이데올로기를 포기하고 나서야 비로소 레나모와의 교전이 끝나고 1992년 양측이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그 뒤 국가 재건작업에 들어갔지만 아직도 세계 최빈국의 오명을 벗지 못한 상태이다.
포르투갈이 지배한 아프리카 국가는 모잠비크, 앙골라, 케이프베르데, 기니비사우, 상투메프린시페 5개국이다. 이 국가 가운데 정치적으로 안정된 가운데 발전을 하고 있는 나라는 원래 사람이 거의 살지 않았던 케이프베르데 정도이다.
넓은 식민지배 국가를 가지고 있었던 영국은 옛 식민 지배국들과 영연방을 결성하여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것에 비해 포르투갈은 말라위에서 국경을 통과할 때 확인했지만, 포르투갈 여행자는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 최근 포르투갈어권에 대한 통합이 이뤄지고 있는데 브라질이 큰 형님이 되어 다른 포르투갈어권 나라와 교류를 확대하고 있다.
포르투갈처럼 옛 식민지배지로부터 외면 받는 국가가 하나 더 있다. 뭐.. 멀리서 찾는가? 바로 일본 아닌가? 식민 지배로 수탈은 물론 문화적인 파괴마저 자행했던 일본은 지금도 민감한 과거사 발언으로 우리 국민에게 스트레스를 주곤 한다.
처음에는 일본에 대해 얄미운 감정이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일본이 우리나라 옆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발전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6.25 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 된 우리 국민들에게 잘 사는 일본은 항상 부러움에 대상이면서도 목표이기도 했으며 극복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어느 정도 경제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지금 일본에게 당당할 수 있게 되었다.
만약 우리 이웃 나라가 일본이 아니라 아프리카나 동남아의 빈국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무래도 얄밉기는 해도 옆에는 공부 잘하는 애가 앉아야 자극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에서 중국과 일본을 무시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고 한다.
오전 11시 40분 체크아옷을 하고 어제 컨택 했던 다이빙샵에 가서 펀 다이빙을 하려고 하니 오후에 한번 할 수 있다고 한다. 분명 2번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아마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나보다. 1번이라도 하기 위해 곧바로 준비를 했다.
다이빙 포인트는 토포 남쪽인 사이먼스 타운.. 남아공에서도 사이먼스 타운에 갔는데 유독 이번여행에서 나와 인연이 많은 이름이다. 1년 반만의 다이빙이라 장비를 챙기는데 좀 버벅 댔는데 친절한 마스터가 챙겨준다. 물이 따뜻하기 때문에 온 몸을 감싸는 �슈트 없이도 다이빙할 수 있다. 한번 도전해보기로 했다.
포인트까지는 보트를 타고 가기에 해변 풍경이라도 찍으려고 아이폰을 챙겼지만 곧 배가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알고 후회를 했다. 만약에 바다에 빠트리기라도 한다면.. 다행히 매니저가 아이폰을 안전한 곳에 보관해준다.
포인트에서 마스터 설명한대로 배에서 곧장 다이빙을 시작하는데 귀가 매우 아프다. 내려가면서 수압을 더 심해지고 귀는 더 아프다. 이러다 고막이 터지겠는데.. 순간 당황을 했지만 ‘아차.. 이걸 까먹었구나.’ 코를 막고 숨을 힘껏 불어 넣으니 귀 아픈 것이 없어진다.
이번 다이빙은 왜 이렇게 고문관처럼 행동할까..
그래도 물속에서의 유영이 시작되니 환상의 풍경이 펼쳐진다. 열대어가 뭉쳐 다니는 것이 보이고 여기저기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는 가운데 마스터의 싸인 종이 들린다. 마스터가 가리킨 곳에 대형 가오리가 헤엄치고 있다. 대형 가오리는 이번에 처음 보는데 크기가 내 키보다 큰 대형이다. 대형 뱀장어(확실하지 않음)를 볼 수 있었다. 고래상어 생김새가 어떤지 몰라 확실히 봤는지 안 봤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마 수많은 물고기 중에 있었지 않을까 싶다. �수트를 입지 않았기 때문에 다이빙 마지막에는 몸에 한기가 느껴지기는 했지만 덕분에 가볍게 다이빙을 할 수 있었다.
다이빙이 끝나니 오후 3시 30분.. 다이빙을 끝냄으로서 토포에서의 할 일은 다 끝났다. 오늘 마푸토로 가는 버스편을 찾거나 인함바네에서 하루를 묵거나.. 일단 인함바네로 향했다. 미니버스와 달리 마침 대형버스가 왔는데 요금이 Mtc10로 반값이지만 시간은 더 걸린다.
인함바네에 도착해 작은 배를 타고 Maxixe로 가 마푸토로 가는 버스 편을 찾았지만, 아침 일찍이만 출발한다. 도중에 지나치는 버스를 찾을까 고민했지만 오늘 다이빙을 해서 피곤한 상태에서 무리하지 않고 일찍 자는 것을 선택했다.
터미널에서 버스편 대신 맛있는 밥집을 찾았다. 작은 박스건물에 하얀 쌀밥과 튀긴 물고기를 파는데 꽤 맛있다. 밥을 먹는 도중 꼬마애가 내 옆으로 오더니 내가 먹는 모습을 쭉 지켜본다. 꼬마는 내가 밥을 다 먹자 기다렸다는 듯 밥과 튀긴 물고기를 신나는 표정으로 채간다.
오후 5시 30분 다시 배를 타고 인함바네로 돌아와 원래 묵었던 숙소인 Pensao Pachica에 가니 나를 알아본 직원이 반갑게 맞아준다. 마푸토로 가는 버스편을 물어보니 첫차가 새벽 4시인데 사람이 몰릴 수도 있음으로 3시 반쯤에 가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 해준다. 오늘 일찍 자야겠군..
도미토리에는 여행자 두 명의 배낭이 보인다. 미국인 여행자는 아직도 묵고 있나? 샤워를 하고 반바지와 바지를 빨래를 했다. 팬티밖에 입지 않았지만 뭐 남자끼리 어때? 도미토리에서는 자연스러운 문화이다.
막 잠이 들려고 하는 순간 백인 여성 두 명이 도미토리에 들어온다. 헉.. 나 팬티바람인데.. 두 여행자는 침대에 잠든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자기네들끼리 뭐라고 나지막하게 이야기를 한다. 아.. 지금 와서 일어날 수도 없고.. 왜 난 당연히 남자 여행자일거라 생각했는지? 황당한 것은 두 여행자가 내 침대 양옆으로 자리를 잡고 눕는다. 뒤척이는 척하면서 이불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