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0일(일)~2월 2일(수)
오늘 목표는 요하네스버그에 가서 숙소를 찾는 것으로 잡았다. 이른 아침인데도 경비원은 돈을 언제 줄 건지 물어본다. 도망칠 것도 아닌데 불쾌하다. 경비원에게 R120을 주고 잔돈 R10을 줄 것을 요구하니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면서 R10은 그냥 달라고 한다. 속 보이는 행동에 주인을 부르라고 하니 미안하다며 R10을 거슬러준다.
오전 7시 45분에 시내로 출발했다. 쉐어 택시를 타고 시내로 갔다. 시내는 한나라의 수도이기에는 작은 규모이며 그마저도 일요일 오전이라 한산했다. 마세루 브리지를 건너 남아공으로 손쉽게 입국했다. 세 번째 남아공 입국.. 이민국 직원은 내 여권을 보더니 1주일 유효한 입국도장을 찍어준다. 기간이 좀 박하기는 한데 출국이 얼마 안 남은 상태가 개의치 않았다.
국경을 통과하자마자 많은 버스들이 승객을 기다리며 줄지어 있다. 이곳에서는 요하네스버그와 블룸폰테인으로 출발할 수 있는데 요하네스버그로 가는 버스는 4군데 포인트로 나눠져 있다. 요하네스버그 중심인 Park Station으로 가는 차량을 탔다.(R160)
차량이 출발하기 전 근처 노점에서 커피 한잔을 하는데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R50 두 장을 R100으로 교환해달라고 한다. 교환을 해주고 지폐를 살펴보니 레소토 지폐이다. 남아공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화폐로 이곳을 벗어나면 쓸모없는 종이가 되는 지폐이다. 아주머니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시 돈을 바꿨다. 혹시나 해서 지갑을 점검해보니 R50이 레소토 돈이다. 버스오피스에 가서 돈을 바꿔달라고 하니 다행히 남아공 화폐로 바꿔준다.
9시 15분 요하네스버그로 출발했다. 여행의 막바지라 편안한 마음으로 차창 밖의 풍경을 감상하며 편안하게 여행했지만 요하네스버그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불안해졌다. 더반에서 봉변을 당한터라 그보다 더 한 요하네스버그는 긴장할 수 밖에 없다.
오후 1시 30분 파크 스테이션에 도착했다. 이곳은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의 가장 위험한 지역이다. 버스에 내리자마자 등골이 오싹거린다. 흑인을 제외한 인종은 전혀 보이지 않아 더 긴장이 되었다. 얼른 숙소를 찾아 가야 하는데..
목표는 배낭여행자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Gemini Backpackers이다. 이곳에 가기 위해서는 시내 북동쪽의 Crystal Gardens로 가야 하는데 택시 기사에게 물어보니 R150을 부른다. 아무리 위험한 곳이지만 너무 비싼 가격이다. 다른 택시를 알아봐도 여의치 않다.
동양인이 배낭을 메고 헤매는 것을 많은 이들에게 노출 시켰다. 일단 시내 각 지역으로 향하는 버스 정류장으로 가 북동쪽의 Alexandra로 출발 직전인 버스(R9)버스에 올랐다. 일단 시내를 벗어나는 것에 안도했다. 버스 요금은 앞좌석 승객에게 주면 모아서 운전사에게 주는 시스템이다.
넓디넓은 요하네스버그에서 숙소를 찾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았다. 일단 London St에서 내려 론니에 표기 된 얼마 안 되는 지명을 이용해서 헤메기를 1시간.. 드디어 Van Gelder St를 찾았다. Gemini Backpackers가 있는 도로이다. 백패커즈는 간판은 없고 Van Gelder No1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이곳을 찾으려면 전화를 먼저 한 다음 찾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숙소는 수영장, 당구장, 레스토랑을 비롯해 DVD를 볼 수 있는 시설이 잘 되어 있다. 말 그대로 배낭여행자들의 천국이다.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은 위험한 요하네스버그의 치안을 감안해 공항 픽업서비스가 잘 되어 있다. 이메일이나 전화로 요청을 하면 공항으로 직접 픽업을 와준다. 픽업 차량은 하루에 한번 쇼핑몰로 여행객을 태워줘 먹거리와 필요 물품을 살 수 있게 배려했으며 젊은 배낭여행자들이 이용하는 Baz버스의 경유지이기도 하다. 주방이 완전히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며칠을 쉬면서 여행의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다른 나라 여행자들과도 친해졌으며 그들과 함께 여행에 관한 많은 정보를 나눌 수 있었다. 나야 여행 막판이기 때문에 정보를 주는 축에 속했다.
이곳에서 포르투갈 흑인 친구와 친해졌는데 이름이 산토스이다. 나와 단짝으로 다니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이 친구 붙임성이 꽤 좋다. 특히 백인 여성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많다.(부럽네 ^^)
여행의 마지막은 숙소에서 푹 쉬면서(시내는 위험해서 나가지 못함 ㅡ.ㅡ) 다른 여행자들과 DVD 영화를 보면서 지냈다. 평소에 영화를 거의 안 보는데 이곳에서만 10편 이상 봤다.
도미토리에는 포르투갈, 브라질, 터키 등 다양한 여행자들이 묵었는데 특히 브라질 여성 2명은 꽤 개방적이다. 둘 다 백인으로 다른 남자 여행자들과 포옹을 자주 한다. 이들이 떠나는 날 콤비 버스까지 가방을 들어주었는데 포옹을 하며 고맙다고 표현한다.(순간 당황했다.)
2월 2일 숙소에서 콤비로 공항까지 배웅을 해줬다. 공항에는 나 혼자 밖에 가지 않아 미안했는데 운전사는 하루에 5번 공항을 갈 때도 있다면서 괜찮다고 이야기 한다.
이제 여행의 끝이다. 1달이 넘는 기간 동안 긴 거리를 여행하면서 많은 경험도 하고 많은 고생도 했다. 비행기를 타면서 이 모든 것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돌아오는 비행기는 요하네스버그~아부다비(UAE), 아부다비~인천으로 한번 갈아타야 하는데 인천으로 오는 비행기는 전체 승객이 10명 남짓이다. 취항한지 얼마 안 되어 승객이 승무원보다 적다. 덕분에 최상의 서비스(맥주 무한 리필^^)를 받으며 중앙 자리에 누워서 올 수 있었다.
길지만 짧았던 남아프리카 여행이 끝났다. 워낙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여행에 지칠 법도 한데 돌아오는 길에는 어느덧 다음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역시 여행의 본능을 어쩔 수 없나보다. 다음 여정은 어디가 될까? 그 어디든 지금보다 더 알찬 여행지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