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일(월)
Pelni 오피스로 향하면서 배 편 변경에 대해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다.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는 배겨 결항 되거나 매진이 되어 꼼짝없이 1주일을 자야푸라에서 지내야 하는 상황. 이때는 비행기를 이용해야 한다.
최상의 시나리오는 무사히 오늘 배를 타며 차액을 환불 받는 것이다.
Pelni 오피에서 간 결과는 50%..
배를 탈 수 있게는 되었지만 예약한 표는 50%의 손해를 봤다. 거의 20$ 정도를 손해 본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미리 예약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설레발 치다가 본 손해라 마음 아프기는 했다.
오피스에 짐을 맡기고 시내를 탐방했는데 자야푸라는 작은 도시라 탐방이라고 할 것도 없다. 항구 지역을 둘러보다가 목 좋은 곳에서 시내 전경을 사진에 담았다.
점심 식사는 KFC에서 했는데 야끼니꾸라 불리는 도시락 메뉴와 프렌치 프라이, 콜라를 시켰는데 꽤 비싸다.(54,000루피아) 그래도 야끼니꾸라는 도시락 메뉴는 우리나라에 도입하면 꽤 인기를 끌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맛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닭요리가 워낙 인기가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KFC가 가장 인기 있는 패스트푸드점이다. 조류 독감이 한창일 때 다른 동남아 지역의 KFC는 불황에 몇몇 매장이 문을 닫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 만큼은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인도네시아 패스트푸드점의 특징은 밥과 국을 같이 판다. 우리나라로 의 김치 버거가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나 할까.
시간이 돼서 항구에 가니 어마어마한 인파로 장사진이다. 시간이 안 되어 철조망으로 사람이 출입하지 못하게 막아 �는데 철조망을 타고 배 쪽으로 가는 사람이 많이 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다 들어 갈 수 있을까? 6.25 전쟁 시절 흥남 철수 작전이 연상 된다.
오후 4시에 승선을 하게 되자 많은 사람들로 혼잡하다. 혹시나 배를 타지 못할까 걱정되어 필사적으로 줄을 섰지만 결론은 모두가 탄 다는 것이다.
단 빨리 타는 자가 좋은 자리를 맡을 수 있기 때문에 서두르긴 해야 한다. 승선하자마자 자리를 찾아 헤매는 데 웃돈을 주면 자리를 양보 해준다는 삐끼도 있다.
안전을 생각해서 일부러 군인들이 있는 자리를 맡자 한 아저씨가 알 수 없는 말로 떠든다. 짐작해보니 미리 맡아 놓은 자리인데 내가 차지했다는 것.(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아저씨는 부두에서 일하는 짐꾼으로 웃돈을 받고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승객에게 넘기려고 했음. 내가 옮기지 않았어도 됨.)
참 자리 가지고 신경전이 대단하다. 다행히 바로 옆의 청년이 자리를 양보해 준다. 그 청년 자리는 창가라 결론적으로는 좋은 자리를 맡은 셈이다.
원래 오후 4시 출발이지만 오후 7시 반이 되어서 출발했다.
출발하고 시간이 지나면 표 검사를 하는데 승객이 많아서 그런지 표 검사는 저인망식으로 한다. 구역마다 왕래를 못하게 막아놓은 다음 페리 직원들이 총 동원 되 표 검사를 한다.
표 검사가 끝나면 이제 자유로운 시간.
비행기와 달리 페리 여행은 여유가 있고 운치가 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타 복도에서 잠을 자는 사람이 꽤 많을 정도로 북적거리지만 달리는 배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이런 저런 생각하는 즐거움은 페리에서만 느낄 수 있다.
옆 자리에는 한 가족이 차지했는데(아마 웃돈을 주었을 것 임.) 영어가 약간 통한다. 가장인 할아버지는 공항에서 일하다가 얼마 전에 정년퇴임을 하셨다고 한다. 그걸 기념으로 한 가족 전체가 자야푸라로 여행을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라고 말한다.
오랜만에 여행기 짧아졌다. 그동안 쉼 없이 달렸으니 템포를 조절을 해야겠지?
배는 칠 흙 같은 어둠의 바다를 헤치며 나아가고 있다.
8월 4일(화)
옆 좌석의 가족들이랑 꽤 친해졌다. 가족들과 짧은 영어로 이야기를 했는데 깊은 이야기까지 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의사소통이 되는 게 어딘가!
할아버지는 나에게 쿠키를 권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신다. 술라웨시 지역의 마나도(Manado)로 가는 길이라고 하니 부낙켄(Bunaken)이라는 섬에 꼭 가보라고 한다. 론니에 찾아보니 세계적인 다이빙 포인트이다. 그렇잖아도 다이빙을 하려고 했는데 꽤 좋은 정보를 얻었다.
가족들과 친해지면서 얻은 보너스는 짐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아도 된다. 짐을 자리에 나두면 혹시나 훔쳐갈 수도 있을 거라는 걱정이 될 텐데 그런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아도 된다. 뭐 그걸 의도해서 가족들과 친해진 건 아니고 상황이 그렇게 되었다.
장거리 기차나 배를 탈 때에는 옆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며 친해지면 비교적 관리하기가 편하게 된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을 경계하며 배낭을 꽉 쥐고 있는 사람이 틈이 나면 배낭을 도난당하는 경우가 많다. 배낭을 꽉 쥐고 있다는 것은 값나가는 것이 있다고 티내는 셈이다.
오전 11시 25분에 비악(Biak)도착했다. 비악은 일리안자야 중심의 섬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기지가 있었던 곳이다.
페르니(Pelni) 페리는 중간 기착지마다 4시간 정도 머물며 그때 잠깐 하선해서 시내에 들어 갈 수 있다고 한다.
남는 시간 동안 2차 세계대전 당시가 기록된 박물관을 보려고 했는데 어제 늦게 출발해서 그런지 머무는 시간이 1시간 밖에 안 된다고 말한다.
할 수 없이 부두 근처 제과점에서 도넛과 빵, 마켓에서 음료 등 먹거리를 사들고 배에 탔다. 배 여행의 재미는 바로 먹거리인데 배 안에는 매점이 많기는 하지만 가격이 세기 때문에 중간에 들리는 도시에서 사가지고 들어오면 된다.
배 안의 풍경도 참 재미있다. 비행기가 인도네시아에서 좀 산다하는 사람들이 이용한다면 배는 전형적인 서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타이타닉만큼은 아니지만 여기저기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젊은이를 비롯해 징징 대는 아이를 달래는 엄마 등 많은 사람이 승선한 만큼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있는데 승객 중에는 배안의 목 좋은 곳에 자리 잡아 물건을 파는 상인으로 돌변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이들이 중에서 백과사전에서만 볼 수 있는 파리지옥이라는 식충 식물을 파는 사람도 있다. 옆 자리의 할아버지가 식물 수집에 관심이 많은지 여러 종류의 식물을 사신다. 덕분에 파리지옥을 제대로 관찰 할 수 있었다. 이 식물을 배에서 보게 될 줄이야..
이 배에 가장 유명인은 내가 된 것 같다. 이유는 하나..
외국인은 나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지나갈 때마다 ‘꼬레아’라며 수근 대는 사람. 한 청년은 어정쩡한 영어로 말을 걸기에 웃으며 대답해 주었더니 옆의 애인에게
‘봐봐~ 내가 영어 좀 하지.’ 하는 표정으로 뿌듯해 한다. 애인인 여자는 짙은 사랑의 눈빛으로 청년을 바라보고..
내가 느끼한 연애의 도구로 활용 될 줄이야.. 이것 참 씁씁 하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