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2일(수)
자정이 지난 시각. 쿠알라룸푸르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은 시내에서 75Km 떨어져 있기 때문에 많은 승객들이 택시를 이용한다.
케빈이 없었다면 공항에서 기다렸다가 아침에 쿠알라룸푸르 시내로 나오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서양 여행자 세 명이 우리 쪽으로 붙어 혼자서 네명의 여행자를 인솔하게 되었다.
다행히 공항에서 KL(쿠알라룸푸르) 시내로 가는 심야 버스(8링깃)가 있다. 말레이시아 화폐 단위는 링깃으로 보통 RM으로 표기된다. 1RM은 우리 돈 350원로 계산하면 된다. 2년 전 말레이시아를 여행했을 때는 1RM에 250원 이었으니 그동안 환율이 많이 올랐음을 체감할 수 있으며 더구나 물가 역시 2년 전보다 많이 올랐기 때문에 실제 여행 경비는 더 가중되었다.
버스를 타고 1시간 반 정도를 달리자 KL 기차역(KL Central)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택시 기사들이 붙는데 숙소가 많이 모여 있는 차이나 타운까지 40~50RM을 부른다.
론니 지도상에는 KL Central에서 차이나타운까지 1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 여러 택시 기사들과 협상을 벌이다 15RM에 합의를 봤다.(이것도 비쌈 ㅡ.ㅡ)
케빈은 말레이시아 친구가 예약해준 호텔로 갔고 난 근처의 20RM 짜리 호텔에서 짐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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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은 오전 중으로 내가 있는 호텔로 온다고 했지만 11시 반까지 기다려도 감감무소식이다. 메일 주소를 받아놨으니 언젠간 볼 수 있겠지.
짐을 싸고 한국인 숙소인 한스 게스트하우스로 가기 위해 가까운 역에서 모노레일을 타고 Setiawangsa역으로 향했다. 2년 전 이집트 여행을 마치고 짧게 말레이시아를 여행했을 때 한스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었는데 그 당시 막 오픈 된 시점이었다. 그 당시 사장님과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보고 싶었다.
사장님은 잠시 이야기를 나누더니 내가 누구인지 기억해 내시며 반기신다. 게스트 하우스는 2년 전보다 많이 활성화가 되었으며 최근에는 유치원을 여셨다고 한다. 하지만 신종플루 영향 때문인지 성수기임에도 손님수가 급감했다고 걱정하신다.
한스 게스트하우스는 도미토리가 50RM이며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 그동안 근무상황부가 누락이 되어 걱정되었는데 덕분에 잘 해결되었다. 한스 게스트하우스에서 푹 쉬면서 2년 전 둘러보지 못했던 명소를 둘러보기로 했다.
저녁 시간에는 사장님 가족과 함께 식사를 했다. 사장님 딸인 서연이는 2년 전에는 꼬마였는데 훌쩍 커서 유치원에 다닌다. 서연이는 친구가 많지 않아서 그런지 한국 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사장님에게 듣기로는 이곳 국제학교를 다니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 줄 세우기 식 경쟁 위주인 한국 한교보다는 이곳 국제학교에서 다양한 언어와 취미생활을 함양하는 편이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장님 내외분에게 말레이시아 사회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말레이시아의 가장 큰 사회 문제는 인종 간 화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말레이시아는 말레이인, 중국인, 인도인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이 세 인종의 화합 여부가 말레이시아 발전 여부를 가늠할 정도로 큰 이슈이다.
구성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말레이인이 정치 쪽에 힘이 실려 있으며 중국인은 경제권, 인도인은 교육권을 나눠 갖고 있다고 한다. 다양한 인종 때문인지 이곳 사람들은 사회 전반을 대승 적인 사고보다는 나와 가족만을 생각하는 개인주의가 주를 이룬다.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우리와는 다른 문화이다.
식사를 마치고 사장님 가족과 대형 마트에서 쇼핑을 하였다. 마트를 둘러보면서 체감한 현지 물가는 우리나라 보다 그렇게 싸지는 않다는 것이다.
숙소에 묵고 있는 한국인 여행자는 밤늦게 볼 수 있었다. 말레이시아 여행을 마치고 귀국을 앞둔 선생님 두 분과 대학생 두 명이다. 늦은 시각이라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다음으로 미루고 잠이 들었다.
8월 13일(목)
숙소에서 두 대학생 모두 공대생인데 그중에 여대생인 고은이는 공대 대학원에 다니고 있으며 학회일 때문에 쿠알라룸푸르로 왔다고 한다. 고은이는 해외여행은 물론 집을 장시간 떠나있는 것이 처음이라고 이야기 한다.
학회일은 마쳤지만 말레이시아 공대를 둘러보는 미션이 남았다고 이야기 한다. 쿠알라룸푸르에서 코타키나발루로 떠나는 Air Asia 비행기는 18일에 있기 때문에 비교적 많은 시간이 남았다.
아침을 먹으며 이야기를 듣다가 두 대학생과 함께 이곳 대학을 탐방하기로 했다.
처음 간 대학은 시내에 위치한 대학으로 말레이시아에서는 명문인 대학이다. Universiti 역에서 내려 500m 정도를 걸으니 정문이 나왔다. 정문에서 본관까지는 금새 갈 줄 알았는데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마침 졸업식이라 졸업 풍경을 볼 수 있었는데 학사모를 쓰고 친구들 가족과 함께 사진을 찍는 모습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꽃과 함께 곰 인형을 선물로 주는 모습이 특이했다. 인형 중에는 국산 캐릭터인 마시마로의 모습도 보였다.
한참을 걸어 공대에 도착해서 과사무실을 찾았을 때 외국인 학생을 대하는 태도가 미적지근해서 실망을 했다. 크게 반기는 걸 바란 건 아니지만 시설을 둘러보려면 2시간 지난 뒤에 오라는 반응이다.
다음 행선지는 UKM 대학이다. KL(쿠알라룸푸르) 외곽에 있으며 말레이시아 최고 명문 학교로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학교이다.
KTM(우리로 치면 국철)을 타고 UKM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UKM대학 공대로 갈 수 있었다. 이곳 과사무실에 가니 간단한 신분 확인 절차를 거친후 마음껏 둘러보라고 이야기 한다.
고은이는 임무를 제대로 완수를 할 수 있어서 그런지 연구실을 드나들며 연구원들에게 많은 질문을 하는데 나야 전공이 완전히 다르니 물어 볼 게 있나. 우리나라에서도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공대였는데 말레이시아를 여행하면서 가게 될 줄이야. 덕분에 공대에 어떤 기계가 있는지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직장인인 나 역시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데 교사가 다니기에는 특이한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바로 뮤지컬 대학원이다. 2004년 발령을 받자마자 아이들과 함께 했던 연극 활동이 이제 교육 뮤지컬을 만들어 보겠다는 꿈으로 발전을 했다. 교사인 내가 뮤지컬을 전공하겠다고 했을 때 많은 분들이 말렸다. 대학원에 입학 면접을 주관하시던 교수님도 의아해 하셨을 정도였으니..
여행이 끝나고 2학기에는 그 어느 때 보다 바빠질 것 같다. 휴대폰을 충전 할 수 있어서 오랜만에 휴대폰을 켰는데 YMCA에서 원주 문화의 거리에서 뮤지컬 공연을 해달라고 요청이 들어왔다.
학교에서는 동아리와 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뮤지컬을 하고 있는데, 반 아이들과는 2학기부터 연습을 시작하여 10월 말에는 국립극장에서 개최되는 전국어린이연극경연대회에 참가할 예정이다. 때문에 여행을 하면서 스토리를 고민해왔다.
1학기에 어느 정도 완성 된 뮤지컬 동아리는 역시 10월 말 대전에서 열리는 전국동아리경진대회에 출품할 예정이고, 11월 14일부터 21일에 인도 뉴델리에서 열리는 인도국제아동연극제에 우리나라 대표로 참가할 예정이다.
11월 말에는 제 1회 강원어린이연극제를 개최하기로 예총과 이야기가 되어 있고, 12월에는 동아리와 반 아이들과 함께 소극장에서 마무리 공연을 할 예정이다.
또한 내년에는 작곡과와 협조해 뮤지컬 음악까지 창작으로 만드는 완전 창작뮤지컬을 만들 예정이고, 내년이면 예총 산하 어린이 연극단을 창단 요건이 충족되기 때문에 어린이 연극단을 만들 예정이다. 대학원 논문도 써야 하고..
항상 여행을 하면서 구상하게 되고 돌아와서는 거침없이 추진을 하는 과정을 밟았다. 아마도 이번 여행이 끝나면 거침없이 질주하겠지.
이야기가 샜네.^^
UKM 대학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예멘에서 유학 와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연구원이다. 연구원에게 예멘을 여행했던 것을 이야기 하니 무척 반긴다. 하긴 이곳에서 예멘을 여행했다는 사람을 만나는 게 쉬운 건 아니겠지.
연구원이 결혼을 했다기에 부인이 한명인지 물어보니 지금은 한명이지만 돌아가서 교수가 되면 세 명까지 둘 거라고 자랑스레 이야기 한다.
UKM 대학은 우리나라 여느 대학에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은 시설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학생들의 자부심이 대단해 보였다. 비록 말레이시아가 우리 보다 경제적으로 뒤쳐질지 몰라도 그럴수록 그 나라 최고의 엘리트들은 자신의 나라를 일으켜 세워야겠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찬다는 것을 느꼈다.
대학 탐방을 마치자 어느덧 저녁이 되어 있었다. 하루 종일 밥을 먹지 않아서 그런지 무척 배가 고프다. 고은이는 굶주린 모습이 미안했던지 KL에서 유명한 쌍둥이 타워가 있는 KLCC역으로 가자고 한다. 역은 거대한 쇼핑몰과 연결되어 있는데 3층에는 Food 코너가 있다. Sushi King 라는 일식집에서 모처럼 일식을 실컷 먹을 수 있었다.
8월 14일(금)
KL 즉 쿠알라룸푸르는 말레이시아어로 흙탕 강의 합류자 라는 뜻이다. 도시 중심을 관통하는 Gombak강과 Klang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쿠알라룸푸르가 세워졌다. 19세기 중반 주석 이 발견되면서 중국인 노동자들이 대거 이주하였고 점차 말레이시아의 중심지로 발전되었다. 1896년 말라이 연방 수도로 영국의 지배의 중심이 되었고. 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이 지배했다.
1957년 쿠알라룸푸르 중심의 메르데카 스퀘어에서 독립선언을 했다. 말레이시아 국기를 보면 미국 국기와 비슷하게 빨강 하얀 줄이 쳐져 있는데 연방을 구성하는 14개주를 뜻한다고 한다. 원래는 싱가포르까지 14개 주였으나 싱가포르가 독립을 하면서 13개로 줄었다가 쿠알라룸푸르가 연방직할주가 되면서 다시 14개 주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흔히 독립 당시 말레이시아의 한 주였던 싱가포르가 중국인들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어서 스스로 독립했다고 알고 있는데 우연히 디스커버리 채널을 보면서 그게 아님을 알게 되었다.
당시 싱가포르의 총리였던 리콴유 총리는 싱가포르가 말레이 연방에 가입하기를 강력하게 추진해서 결국 말레이 연방에 가입했지만 말레이 연방에서 리콴유가 2인자인 것을 탐탁치 않게 여기던 주류 세력에 의해 거의 일방적으로 말레이 연방에서 탈퇴됨을 통보 받는다. 리콴유는 그 당시가 정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점이라고 회고했지만 덕분에 싱가포르는 독자 노선을 걷게 되고, 물류의 허브로서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발전 하게 된다.
만약 싱가포르가 계속 말레이 연방을 유지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궁굼하기는 하지만 역사에서는 가정이 허락되지 않는다.
KL 탐방의 첫 코스는 Batu 동굴이다. KL 시내에서 북쪽으로 13Km 산 속에 위치한 거대한 종유석 동굴에 위치한 흰두교 성지이다. 인도 외의 나라에서는 가장 큰 흰두교 성지로 유명하며 많은 순례객과 관광객이 찾는다. 한스 하우스에서 택시를 타면 15RM~20RM 정도 나온다고 하지만 나 답게(?)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전철을 타고 시내 중심인 Masjid Jamek 역에서 내려 남쪽으로 걸으면 Le Village 라는 숙소가 있는데 그 앞에서 11번 버스(2RM)를 타고 가면 Batu 동굴까지 갈 수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거대한 무르간 신상으로 앞도 되는데 기네스북에 세계 최대 동상으로 등재되어 있다.
바투동굴은 석회암 동굴로 천정이 뻥 뚫려 있는 특이한 동굴이다. 가파른 272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272계단은 사람이 지을 수 있는 죄의 가지 수 와 같다고 한다. 계단 하나하나를 오를 때 마다 마다 죄를 뉘우치면서 천천히 올라가야 죄를 모두 씻지만 그냥 2~3개씩 성큼성큼 올라갔다.
다 올라가니 천장까지 100m 높이의 거대한 동굴이 나오고 내부에는 무수한 석회암 기둥들이 서 있다. 중앙동굴의 홀 천정은 크고 작은 구멍이 뚫려있고 이곳을 통해 자연광이 들어와 내부의 신비함을 더하고 있다.
사원은 그 안에 있으며 주변에는 많은 원숭이들이 관광객 주변을 서성이며 먹을 것을 찾는다.
바투 동굴 탐방을 끝내고 시내로 돌아오려는데 택시 기사들이 택시를 타라고 잡는다. 시내까지 가는 버스가 없다며 35RM을 내면 태워준다고 하는데 정문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100m만 가면 새빨간 거짓말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시내로 돌아와 차이나타운(China Town) 탐방에 나섰다. 첫 탐방지는 말레이시아 독립선언이 이뤄졌던 Merdeka 스퀘어이다. 1957년 8월 31일 영국 국기를 철거하고 말레이시아 국기 게양하면서 독립 선언을 했던 광장이며 주변에는 술탄 빌딩(Sutan Abdul Samad Building)등 영국식 큰 건물들이 보인다.
광장 남쪽에는 국립 박물관이 있는데 가보니 경비원은 KL역 근처에 세워진 박물관으로 모두 이전했다며 시내 지도를 주며 박물관을 안내해준다. 새 박물관은 2년 전에 간 적이 있었다. 방향을 남서쪽으로 틀어 본격적인 차이나타운 탐방에 나섰다. 차이나타운은 식민지 시절의 건물이 잘 보존이 되어 있어서 많은 외국인이 둘러보는 것이 보인다.
스제야(Sze ya) 사원은 작은 중국식 사원으로 전형적인 화교 사원이다. 대만에서 봤던 사원과 비슷한 분위기로 참배객은 향을 피우고 사원 한 켠에 지전을 태우는 모습이다.
다음 행선지는 Central Maket이다. 전통 기념품을 살 예정이면 이곳에서 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큰 건물에 각종 귀금속 및 기념품 가게들이 들어서 있는데 발을 담그면 나쁜 살을 먹는 닥터 피쉬도 있다.(10분에 5RM) 무엇보다 건물 전체에 에어컨이 빵빵해 잠시 더위를 식히면서 기념품을 구경하는 재미를 누릴 수 있다.
Lee Rubber Building는 큰 서점인데 우리나라로 치면 교보문고와 비슷한 역할이라고 하겠다. 교보문고보다는 훨씬 작은 규모지만 자유롭게 말레이시아 서적들을 볼 수 있다. 론니 플래닛이 비치된 코너로 가서 한국 편을 찾아보니 Seoul 가이드북만 있다.
관음사(Guandi Temple)는 흰색 외벽이 아름다운 중국 불교 사원으로, 마하라잘렐라 사원 맞은 편에 있다. 사원 자체는 수수한 편이지만 푸젠 성 출신의 화교나 자손들이 많이 찾는다. 사원 안에는 관우를 모신 사당답게 관우 상이 많이 보인다.
스리 마하라자렐라(Sri Maharajalela) 사원은 1873년 지은 쿠알라룸푸르에서 가장 큰 흰두교 사원으로 신발을 벗고 들어가면 많은 인도인 참배객 모습을 볼 수 있다. 내가 찾았을 때 마침 교리 수업 시간이라 교리 문답을 나누는 모습을 엿 볼 수 있었다.
차이나타운을 둘러보다 갈증이 나 마켓을 찾았는데 초콜릿 맛이 나는 콜라가 있다. 콜라와 초콜릿 맛의 중간 정도? 우리나라에 시판하면 괜찮은 반응이 나올 것 같다.
진씨 서원(Chan See Shu Yuen Temple)은 진시 일가의 선조를 모시는 사당으로 1897년 지어졌다. 외관이나 내부 모두 정교한 광동풍의 조각으로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사당 한쪽에는 역대 선조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걸려있다.
마지막으로 들른 구이양 사원(Koon yam Temple)은 부처님상을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부처님상과는 다른 모습이다. 사원은 MAharajalela 역과 붙어 있다. 역 앞의 주차장에 가니 자동차 한대가 완전 분해 된 채 방치되어 있다.
그 모습을 보니 여행을 떠날 때 터미널 앞 주차 해 놓은 내 차 생각이 난다. 설마 저 차의 운명을 따라가지는 않았겠지?
Little India 탐방은 다음 기회로 넘기기로 하고 내일은 페낭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8월 15일(토)
페낭(Penang)으로 이동하기 위해 짐을 싸고 한스 하우스 사장님에게 인사를 드리려고 하니 뭐가 그렇게 급하냐며 점심이나 같이 먹자고 이야기 하신다.
짐을 잠시 풀고 숙소에 있는 수영장을 갔다. 숙소가 있는 맨션에는 수영장이 있다. 시설이 훌륭하고 맨션에 있는 사람들만 상대하기 때문에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는 한산한 분위기이며 옆에는 레스토랑이 딸려 있는데 주로 외국인을 상대하기 때문에 꽤 맛있다고 한다.
그동안 말로만 들었던 수영장에 가서 받은 첫 느낌은 왜 진작에 이곳을 오지 않았는지 후회가 되었을 정도로 훌륭했다. 한산한 분위기의 도심에서의 여유..
수영장 옆 레스토랑에서 사장님 가족과 고은이와 함께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1시 반..
사장님과 이야기도 더 많이 하고 싶고, 함께 했던 고은이도 내일 떠난다고 하고.. 무엇보다 수영장에서 아늑함의 영향일까..
“사장님 페낭은 내일 갈게요.”
사장님은 좋아하시며 대신 오늘 저녁 때 콘서트를 보러 가자고 하신다.
나머지 시간은 수영장의 오두막에서 책을 보면서 지냈다. 책을 읽다가 잠들었다가 다시 깨어서 책을 보다가..
저녁 때 쯤 폭우가 쏟아진다. 이럴 때는 오두막에서 책 읽는 것보다는 파전 구우면서 소주 한잔 하는 것이 최고인데..
말레이시아는 엄연한 이슬람 국가이기 때문에 술에 세금을 많이 매긴다. 차이나타운에 세금이 붙지 않는 술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술을 찾고 싶지는 않다. 여행을 시작함과 동시에 금주.. 한국에 돌아가면 많이 마시게 되겠지?
저녁에는 사장님 가족과 고은이와 함께 국립미술관(National Art Gallery)앞의 콘서트를 보러 갔다. 콘서트라고 하지만 자그마한 공원에 간단한 무대와 엠프를 설치 해 놓고 공연을 하는 수준이다. 주변에는 테이블이 펼쳐져 있는데 관람하는 사람들은 근처 노점에서 먹 거리를 사다 먹으며 공연을 즐기고 있다.
허술한 공연시설이지만 이곳에서 공연하는 이들은 말레이시아에서도 이름난 가수들이다. 말레이시아는 공연 시설이 발달해 있지 않기 때문에 가수들이 자신의 노래를 홍보하기 위해서 매주 토요일 거리 콘서트를 연다고 한다.
그런데 관람하는 사람들 반응이 우리랑 영 다르다. 가수의 공연이 끝나도 박수 소리 하나 없다. 또 공연을 마치고 나오는 가수에 대해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무엇보다 관람하는 사람들 숫자가 얼마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같으면 상상도 못할 풍경이지만 덕분에 연예인과 사진을 많이 찍을 수 있었다. 외국인이 다가가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포즈를 취해주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공연 수준도 민속춤부터 시작해 다양한 장르를 망라하는데 경쾌한 인도리듬에 랩을 가미한 4인조 인도인 공연이 인상적이다. 매주 토요일마다 콘서트가 열림으로 쿠알라룸푸르를 방문하는 여행자는 꼭 들려 볼 필수 코스라는 생각이 든다.
푸트라(Putra)라는 이름의 가수는 우리 테이블로 찾아와 싱글 앨범이 새로 나왔다며 10RM에 싱글앨범을 구입하라고 한다. 싱글앨범을 구입하면서 사인을 해달라고 하니 흔쾌히 해준다. 푸트라는 다음주에 TV 드라마에 출연한다고 하며 꼭 보라고 당부한다.
오후 11시가 되자 공연이 끝났다. 숙소 근처의 편의점에 들려 먹을 거리를 사는데 종업원에게 푸트라 싱글 앨범을 보여주며 아는지 물어보니 종업원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꽤 유명한 가수라고 대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