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일(월)
게스트 하우스에서 히터를 틀어주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히터가 약했을 뿐만 아니라 산악지방의 추위를 이겨내기에는 역부족했다.
덕분에 자는 내내 추위에 떨며 자야했다. 결국 제대로 자지 못하고 일어난 시각은 새벽 5시..
몹시 추워서 그런지 내 몸은 새우처럼 꼬부라져 있었다.
추위에 깨어서 그런지 다시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히터 바로 앞에 앉아 노트북을 이리저리 만지면서 시간을 보냈다.
9시가 되자 리오가 나를 부른다. 아침 식사를 하자는 것이다.
아침식사를 하면서 리오와 스티븐은 나에게 같이 스키와 온천 트래킹을 할 생각이 없는지 물어본다.
가고는 싶지만 침낭, 아이젠을 비롯해 트래킹에 필요한 장비가 아예 없고, 또한 난 지금 시간에 쫓기고 있지 않은가.
리오는 추위 때문에 감기에 걸렸다고 한다. 이곳 야크 호스텔은 여름에는 좋은 배낭 여행자들의 휴식처가 되겠지만 겨울에는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는 숙소이다.
만나서 친해졌지만 여행자는 길이 다르면 헤어지는 법..
리오와 스티븐과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Yak Tour Hotel을 나섰다.
일단 여기까지 온 이상 카라콜 시내를 탐방을 해야겠지?
밖을 나서자마자 매서운 추위가 나를 반겼다. 이곳 사람들은 모두 두꺼운 옷으로 중무장 하고 있으며 겨울 내내 눈이 쌓여서 그런지 가방 대신 썰매를 이용해서 짐을 옮기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숙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박물관으로 갔다.
박물관 문을 두드리니 잠에 덜 깬 듯 부스스한 직원이 나와 50솜을 내라고 한다. 표를 끊어주지 않는 것을 보아 개인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것 같은데..
예전에 만들어두었던 국제 학생증을 보여주며 15솜을 떠밀다시피 주니 직원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박물관 내부의 불을 켜준다.
박물관 전시물은 관람객이 가져가도 모를 정도로 허술하게 전시되어 있지만 민속 의류와 카펫을 비롯해서 야생 동물 박제까지 볼만한 것이 많았다. 모든 설명이 러시아어로 되어 있는게 흠이기는 하다.
근처에 있는 Holy Trinty Cathedral 갔다. 카라콜에 가장 먼저 지어진 러시아식 성당으로 건물 모양이 모스크바의 바실리 성당과 조금 흡사하다. 아름다운 성당이지만 다가가니 잠겨 있다.
다음은 자크실릭 바자르로 갔다. 매서운 추위 때문에 바자르는 황량하기 그지없다. 넓은 바자르에 몇몇 상인들만 장사를 할뿐.. 지나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다.
바자르를 지나 버스 터미널 쪽으로 올라가니 저 멀리 눈에 덮힌 천산이 보인다.
터미널을 가면서 들른 곳은 중국식 모스크이다.
중국식 모스크? 론니에 적혀있기에 어떤 모스크인지 궁굼했다.
답은 모스크에 가니까 알 수 있었다. 건물은 흡사 우리나와 절과 비슷한데 내부는 이슬람 교도들이 기도 할 수 있는 모스크이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비쉬켁으로 가는 버스터미널을 찾을 수 있었다. 시내에서 참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다.
새삼 어제 숙소를 제대로 찾은 내가 대견하기까지 하다.
버스는 대형 버스이고 카라콜에서 비쉬켁 까지 190솜(4750원)한다.
의외로 값이 싸네?
평소에 우리 어머님께서는 절 때 싼 걸 믿지 말라고 하셨다. 어떠한 것이든 돈값을 한다고 말씀 하셨는데 오늘도 여지없이 들어맞았다.
비쉬켁까지 느리게 가는 것도 모자라 고장이 나서 멈추기를 여러번.. 이런 고물 버스로 버젓이 운행을 하는 기사가 미워지기까지 한다.
오후 12시 30분에 출발한 버스는 밤 10시가 돼서야 비쉬켁에 도착했다.
내가 잠시 비쉬켁을 떠나온 동안 또 눈이 내렸고 매서운 추위가 나를 맞아 주었다.
사비벡 게스트하우스까지 미니버스(5솜)을 타고 찾아가려고 했지만 도저히 종잡을 수 없어 처음으로 택시를 이용했다.
게스트하우스까지 도착하니 택시 기사는 100솜(2500원)을 요구한다. 정신없고 기진맥진 하기는 했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 결국 60솜에 합의를 했다.
사비벡 아저씨는 잠에 들었었는지 부스스한 눈으로 나를 맞아 주셨다. 밤늦게 정말 죄송하다. 귀여운 고양이 니콜키드먼(고양이 이름)이 역시 반갑게 맞아준다.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빨래를 한 다음 침대에 누우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창밖으로는 눈이 계속 내리고 있고. 따스한 이불 속에서 포근하게 잠들었다.
1월 3일(화)
어제 하루 종일 버스에 타서 그런지 피곤하기는 했지만 지금 내가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은 비자를 받는 일이다.
일단 근처 인터넷 카페에 가서 여권을 스캔하고 프린트 했다. 카피를 하면 간단하지만 복사기가 있는 곳을 도저히 찾지 못해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방법이다.
오전 9시 이란 대사관에 가서 20분 정도 기다리니 비자가 나왔다.
당연한 결과이지만 일단 비자가 나오니 기분이 좋았다. 일단 투르크매니스탄을 여행할 수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카자흐스탄 대사관을 찾기 위해서 이란 대사관에서 1킬로 정도 떨어진 Manas 거리로 가서 남쪽 방향으로 달리는 266, 298 미니버스를 타고 4킬로 정도 가면 새로 지어진 카자흐스탄 대사관으로 갈 수 있다.
리오말로는 카작 비자는 하루 만에 나온다고 했지만 대사관 입구에 가니 오늘도 쉬는 날이라며 2일 뒤인 목요일에 다시 오라고 한다.
아 정말 열받어.. 뭔 놈의 대사관이 이렇게 오래 노냐..
이렇게 된 이상 카자흐스탄은 포기 할 수 밖에..
긴급히 여행계획을 수정했다.
사실 여행을 하면서 키르키즈스탄 남쪽의 오쉬(Osh)를 여행할지 안 할지를 가지고 계속 고민을 했었다.
Osh는 작년 타지키스탄을 여행했을 때 여행객이 거의 가지 않는 파미르 하이웨이를 여행했다.(www.travel4edu.com 타지키스탄 편 참조)
파미르 하이웨이의 종점은 바로 키르키즈스탄의 오쉬(Osh)이지만 키르키즈스탄 비자가 없는 나로서는 당시 막 생겨난 타직~중국 국경을 건너 타쉬쿠르간으로 갔었다.
때문에 Osh에 대한 미련이 계속 남았다.
카자흐스탄을 가야 되는 나로서는 오쉬를 갔다가 다시 비행기를 타고 돌아올까 생각도 했지만 내심 빠듯한 일정 때문에 오쉬를 포기하고 그냥 카작으로 넘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카자흐스탄을 포기한 이상 우즈베키스탄으로 가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오쉬를 거쳐야만 한다.
비쉬켁에서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까지 가는 버스가 있기는 하지만 카자흐스탄을 거쳐야 함으로 카작 비자가 있어야 한다.
결국 육로로 우즈벡으로 가는 길은 오쉬로 가는 수밖에 없다.
카작 비자를 못 받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기까지 하다.
사비벡 아저씨와 작별을 하고 곧장 오쉬바자르로 향했다. 오쉬로 가는 차량은 오쉬 바자르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바자르의 버스 정류장에 가니 영어가 유창한 젊은이가 나를 반긴다. 처음에는 삐끼인줄 알고 별 신경을 안 썼으나 알고 보니 나처럼 오쉬로 가려고 하는 젊은이 이다.
이름은 ‘주놀스’이고 23살 청년이다. 4개월 동안의 러시아 여행을 이제 막 끝내고 오쉬의 집으로 가는 중이라고 한다.
명절이라 그런지 오쉬까지 가는 승용차 비용이 터무니없이 올랐다. 800솜이면 충분하다는데 1500~2000까지 올라 있었던 것이다. 거의 비행기 값과 비슷하다.
왜 이렇게 올랐을까? 주놀스 말로는 지금 오쉬에서 비쉬켁으로 오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차량이 오쉬까지 가서 그대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 생각에는 강추위와 눈 때문에 비행기가 무더기로 결항을 해서 그런게 아닌가 추측해본다.
시간이 좀 지나면 나아질까?
주놀스와 나는 계속 기다리면서 가격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문제는 날씨.. 너무나 추웠다. 영하 20도 정도가 되는 것 같은데 발하고 손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거의 2~3시간을 추위에 떨면서 택시를 찾았지만 1500솜이었던 가격은 오히려 1700솜(4만2천5백원)으로 올랐다.
론니를 뒤척이며 다른 루트를 알아봤지만 우즈벡으로 들어가려면 오쉬로 가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결국 주놀스와 난 각각 1700솜에 차 한대를 잡았다.
4명이 다 채워지고 드디어 택시가 출발..
외국인인 난 앞좌석에 앉도록 배려를 해준다. 정말 고맙기 그지없다.
신발을 벗어 발가락을 만져보니 얼음장 같이 차갑고 발에 감각이 없다. 아무래도 발가락 쪽에 습기가 얼어붙은 것이리라. 이대로 방치해두면 동상에 걸릴 것이다.
필사적으로 손으로 발을 비볐다. 다행히 차에 히터가 켜지고 발가락에 감각이 돌아왔다.
오늘 춥기는 정말 추웠나보다.
비쉬켁 시내를 벗어나자 끝없는 눈밭의 장관이 펼쳐졌다. 오쉬까지는 오트멕패스(3330m) 알라벨(3184m)를 넘어야 하는 험난한 길이다.
험난하기는 하지만 길이 잘 닦여져 있는 편이라 여태 여행을 했던 동티벳 알룽창포 협곡이라던지 타지키스탄 파미르하이웨이에 비해서는 그나마 괜찮은 편이다.
오후 3시경에 출발을 해서 오트멕 패스 이외의 다른 경치를 못 보게 되었다. 겨울이라 그런지 5시가 되면 어두워지기 때문이다.
길은 전체적으로 눈이 얼어서 빙판이다. 매우 위험한 길이기 때문에 오쉬까지 승용차로 10시간 걸리는 거리가 더딜 수밖에 없다.
영어가 유창한 주놀스는 내가 심심할까봐 계속 말을 건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는 자동차 히터에 날아갔지만 문제는 주정뱅이 할아버지가 있다는 것..
저녁 식사를 할 때 그 독한 보드카 1병을 꿀꺽 다 마시더니 차에 타는 내내 계속해서 주정이다.
나름대로 최악인 상황에서 계속 자동차는 오쉬를 향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