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일(금)

2일 동안 발품팔면서 부하라와 근처의 유적들을 거의 봤기 때문에 오늘 할 일은 투르크멘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아랏(Arat)으로 가는 것이다.

부하라에서 투르크메니스탄 제2의 도시 투르크멘밧(도시이름)까지는 146킬로에 불과해서 하루 만에 갈 수 있지만 이미 내일 시선은 투르크멘밧을 넘어 실크로드의 중심지였던 멜브(Merv) 나아가 수도인 아쉬하바르(Ashgabat)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랏까지 이동만하면 되기에 숙소에서 11시까지 TV를 틀어놓고 누워서 KBS월드를 보고 있었다. 평소에 거의 안 보던 드라마를 여행을 와서 더 많이 보는 것 같다.

샤워를 하고 12시쯤에 숙소를 나섰다. 아랏으로 가기 위해서는 부하라 북서쪽의 시장(Main Farmers Market)으로 가야한다.

그전의 2일과 달리 오늘은 날씨가 구름 한 점 안 낀 화창한 날씨이다. 갑자기 부아가 났다. 진작에 날씨가 좋았어야지..

이대로 부하라를 떠나면 억울하기에 부하라의 상징인 Kalon 미나렛에 한번더 올라가 부하라 시내를 바라보기로 했다.

어제 거금 3000숨을 주고 산표가 있기 때문에 Kalon 모스크에 가서 바락바락 우기면 그냥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

모스크에 가서 표를 보여주니 처음에는 새로 표를 끊어야 된다고 하지만 어제 날씨가 흐려 제대로 못 봤다고 이야기하니 매표원이 잠시 고민을 한다.

매표원은 오늘은 금요 예배일이라 12시에 미나렛을 써야 하기에 2시 이후에나 오라고 한다.

그럴순 없지..

  ‘지금 투르크메니스탄으로 가야 하기에 시간이 없다. 그리고 난 한국에서 여행 작가이기 때문에 칼론 미나렛에서 바라 본 부하라 시내를 무조건 사진에 담아야 한다. 내가 필요한 것은 오직 사진이니까 10분만 시간을 달라.’

약간의 과장과 거짓말(자창 여행작가^^)을 양념삼아 잘 조리하니 매표원은 열쇠를 주면서 나올 때 문을 잘 잠그로 나오라고 한다.

다시 칼론 미나렛에 올라갔다.

흐린 어제와는 달리 저 멀리 사막도 또렷이 보이다. 무엇보다 부하라의 발품을 팔면서 탐방했던 여러 모스크와 메드레사, 또한 아르크가 수많은 흙벽돌집들과 어울려 아름다운 실크로드 도시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도시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정류장은 바자르와 어울려 혼잡한 모습이었는데 아랏으로 가는 버스를 찾는것이 쉽지 않았다.

결국 한 우즈벡 대학생의 도움으로 아랏과 가까운 도시인 카라콜(Karakol)까지 가는 버스를 찾을 수 있었다.

버스에 짐을 풀고 자리에 앉아서 론니플래닛을 펼쳤는데 갑자기 나에게 도움을 준 대학생이 버스에 오르더니 버스비 500숨(400원)을 내 손에 쥐어주는 것이다.

난 절대로 안 받겠다고 했지만 자신의 성의이니 꼭 받아달라고 한다. 정말 고마운 청년이다.

버스는 12시 반쯤에 출발했다. 부하라 시내를 벗어나니 끝없는 평원에 밭들이 쭉 펼쳐져 있지만 겨울이라 작물이 심어져 있지 않아 무엇을 심는지는 잘 모르겠다.

오후 1시50분에 카라콜에 도착했다. 겨우 1시간 20분밖에 안 왔네? 한국에서 차를 타고 한시간반 정도를 달리면 서울에서 대전까지 도착하는 긴 거리이지만 그동안 숱한 장거리 여행으로 한국에서의 감각이 무뎌졌다.

카라콜에서 아랏까지는 승용차를 타고 1000숨에 올 수 있었다. 승용차 뒤편에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인 3명이 탔는데 계속 나를 보면서 키득 거린다.

혹시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얼굴을 훝어봐도 이상이 없는데.. 자꾸 왜 웃는 거지?

아랏에 도착하니 답을 얻을 수 있었다. 3명의 여인 모두 자신의 사진을 꺼내더니 나보고 이름을 써달라고 하는 것이다. 한술 더 떠 사인까지 해달라는 것이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욘사마가 되어 살인미소를 지으면서 이름과 사인을 해줬다.

사진을 돌려받은 여인들은 연신 고맙다며 인사를 하며 좋아한다.

이 맛에 연예인이 할 만하구나..

그런데 왜 사인을 해달라는 거지? 한국인을 처음 봐서 그런가? 아니면... 이크.. 또 왕자병 도지겠다.

론니에는 아랏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승용차 기사에게 러시아말로 호텔이라는 뜻의 ‘가스티니샤’라고 말하니 알아서 호텔을 찾아준다.

호텔에 들어서니 갑작스러운 외국인의 출입으로 여기저기서 수군거렸지만 이내 2층 방으로 안내해준다.

화장실은 건물 밖에 있고, 세면은 불가능에다가 무엇보다 추운 방.. 나름대로 최악의 방이지만 하루 묵는데 2500숨(2000원)이다. 거의 거저라는 생각이 든다.

근처 바자르에 가서 주린 배를 채우고 다시 호텔에 돌아오니 한 청년(호텔에 일하는 청년인 듯)이 나를 차에다 태워서 경찰서로 간다.

경찰서에 가니 내 여권을 본 두 명의 경찰과 청년이 나를 세워두고 한참을 이야기 한다. 난 그저 멀뚱멀뚱 서 있었을 뿐..

경찰 말로는 아랏은 외국인이 숙박할 수 없는 지역이기 때문에 다시 부하라로 가서 호텔을 잡으라고 한다.

나 내일 하루 만에 아쉬하바르로 가야 되기 때문에 절대 부하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또 나를 두고 한참을 수군거리던 경찰은 그래도 가야한다고 한다.

이럴 때는 자존심을 좀 건드려야지..

‘어이 친구~ 타슈켄트, 사마르칸트, 부하라와 이곳 아랏은 다 우즈베키스탄 영토잖아. 그리고 난 우즈벡 비자가 있는데 왜 아랏에 머물지 못하는 거지? 혹시 여기가 투르크멘이야? 뭐 네가 투르크멘 경찰이면 난 그렇게 알고 부하라로 돌아갈게.’

영어와 몸짓을 섞어 내 뜻을 정하니 결국에는 아랏에 머물라고 한다.

역시 끝까지 바락바락 우기는 쪽이 이긴다.(내가 아랏에 머문 최초의 한국인일수도..^^)

나를 경찰서로 데리고 온 청년은 이번에는 시내 외곽의 한 집으로 나를 데리고 간다.

집에서 점잖은 인상의 청년이 나오는데 한국말을 꽤 잘한다. 물어보니 경기도 이천에서 3년 동안 일했다.

한국에서 돈을 많이 벌어온 후 이곳에서 집도 사고 차도 마련해서 택시기사를 하고 있다. 나름대로 우즈벡에서는 잘 사는 편이다.

호텔로 돌아와 쉬었다가 저녁을 먹으려고 호텔을 나서는데 종업원이 지금은 가게와 식당 문이 다 닫았다고 한다. 시각을 보니 오후 9시..

대신 계란후라이 4개와 햄 5개, 짜이(차)와 난(빵) 2개를 2000숨에 해주겠다고 한다. 뭐.. 이 청년 용돈도 벌게 해줄 겸 그렇게 하라고 했다.

청년은 요리를 정중하게 내 방으로 가져온 후 계속 나를 쳐다본다.

청년은 한국에 일하러 가고 싶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갈 수 있는지 묻는다. 그러면서 자기가 아는 사람은 한국어를 몰라도 3년 동안 한국에서 일했다고 한다.(아까 만난 그 사람인가?)

난 상황이 바뀌었다고 이야기 했고, 한국어와 영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국가에서 실시하는 테스트에 합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곳 젊은이들의 꿈은 한국에서 일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한국은 아름답고(영화와 드라마 영향인 듯) 발전된 선진국이며 무엇보다 노력만 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천국의 나라라고 생각한다.

정작 천국에 사는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지?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항상 걱정이 없고, 웃고 지내며 불만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아주 행복한 사회인데..

우즈벡의 마지막 밤은 맥주를 들이키며 나름대로 고뇌하는 아마추어 철학자가 되었다.


1월 21일(토)

오전 7시 누군가 내 방문을 똑똑 두드린다. 어제 나를 경찰서로 안내해준 청년이 투르크메니스탄에 일찍 가려면 아침부터 서둘러야 한다면서 깨워준 것이다. 고맙기 그지없다.

청년에게 국경까지 가는 차량비가 얼마인지 물어보니 10000숨 정도는 한다고 대답한다.

지금 지갑 속에는 4000숨 밖에 없는데..

사정을 이야기 하니 청년이 한 티코까지 데려다 주더니 4000숨에 갈 수 있도록 배려해준다. 정말 고마운 청년이다.

티코는 내가 탄 뒤 러시아계 아줌마 한명이 더 타자 곧바로 국경으로 출발한다.

차량은 빠른 속도로 국경을 향해 달리고 마침 동쪽으로는 멋진 일출이 나를 반겨주고 있다.

국경에서 2킬로 정도 떨어진 지점에 티코에서 내려서 다시 1달러를 주고 택시를 타고 국경 검문소 앞까지 도착했다. 이미 여러 대의 대형트럭들이 국경 앞에서 국경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오전 9시 국경업무가 시작되었다. 트럭운전자들은 서류가방을 들고 금방 출국 수속을 밟는데 나를 비롯한 일반 출국자들은 컴퓨터에 등록을 한 뒤 여권을 장부에 등록을 해야 하는데 계속 트럭운전자에게 순서가 밀린다. 언제 해주는지 물어봐도 계속 기다리라고 한다.

40분 정도 쭉 지켜보니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한 트럭운전사가 여권 심사를 받고 제일 나이 지긋한 군인에게 악수를 하면서 돈을 건네주는 것이다.

유리창을 사이로 내가 그 장면을 뻔히 쳐다보고 있자 그 군인은 멋쩍었는지 아랫사람에게 내 여권을 기록하도록 지시한다.

장부에 기록한 뒤 세관검사를 받으러 큰 건물로 들어갔다. 그런데 건물 안에는 몇몇 군인들만 있을 뿐 세관원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결국 한 트럭기사의 도움을 받아 담당자 사무실을 찾아갈 수 있었다.

우즈벡 출국심사는 까다롭기로 유명하다는데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의심 없이 도장을 쾅 찍어준다. 그러면서 좋은 여행되라는 말을 하면서 여권 스탬프를 받는 곳을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세관원의 도장을 받고 출국 도장을 받은 후 2킬로 떨어진 투르크메니스탄 볼더(국경)로 향했다. 우즈벡 국경 쪽을 통과하니 오전 10시가 가까웠다.

만약 부하라에서 출발했으면 아무리 빨라도 오후 1시나 2시쯤 통과했을 것이다.

우즈벡과 투르크멘 사이에 1달러를 주고 승용차를 이용할 수 있지만 걸으면서 우즈벡과 이별을 하고 싶었다.

우즈벡에 있으면서 참으로 많은 경험을 했다. 어린 시절부터 동경하던 실크로드의 옛 도시들과도 만났고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환경파괴인 아랄해도 만났다. 무엇보다 우리와 같은 핏줄을 지니면서도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고려인과의 만남도 좋은 공부가 되었다.

또 다른 공부를 위해 이제 투르크메니스탄으로 향하다. 과연 어떠한 공부를 할 수 있을까? 특히 투르크멘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기에 걱정 반 기대 반의 심정으로 투벅투벅 걸어갔다.

뭐.. 어디 가든지 간에 사람 사는 동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