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0일(목)
오늘은 갈 길이 멀기에 일찌감치 일어났다. 호숫가에서 설거지를 하며 흡수굴 호수를 바라보았다. 투명한 유리알 같은 호수와 이제 이별을 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오전 9시에 에크바야르 가족과 아쉬운 작별을 했다. 처음에는 아름다운 흡수골를 보러 이곳에 왔지만 지금은 에크바야르 가족의 아름다운 마음에 취해서 돌아간다.
7월 26일부터 시작된 몽골 여행 투어의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 지금부터는 울란바토르를 향한 강행군이 시작되었다.
3시간을 달려 흡수골 호수 입구 모론에 도착을 했다. 3일전 들렀던 몽골-한국 식당에 들려 비빔밥을 시켜먹었다. 이제 동쪽을 향해 출발..
몽골 북쪽이기는 하지만 뜨거운 더위는 사막 못지않다. 오히려 습기가 있는 기후라 견디기 힘들 정도로 더웠다. 모두가 짜증이 나지만 아무도 내색을 안 한다.
중간 중간에 오디 비슷한 열매를 페트병에 한가득 담아 파는 아이들이 있는데 800투그릭 어치를 사서 먹었는데 새콤하고 맛있다.
오후 3시 30분 Ikh Ull을 지나치고 거의 쉬지 않고 달려 오후 7시 2분 Khutag-Ondor에 도착했다.(다리세 500투그릭을 내야함)
황량한 들판에 강이 흐르고 집 몇 채만 서 있는 마을이라기보다는 잠시 쉬어가는 숙소와 비슷한 곳이다.
강가 게르 캠프에 여장을 풀고 상걸이와 식수와 먹을거리를 사러갔다. 몽골을 여행하면서 처음으로 집돼지를 볼 수 있었다.
슈퍼는 존재하지 않고 식당에 비치된 간이 상점을 이용했다.
간이 상점에서 맥주와 초컬릿을 샀는데 주인아주머니께서 잠시 기다려보라고 하신다.
아주머니는 한국어 단어 사전을 가져오더니 요즘 한국어 공부에 흠뻑 빠졌다며 몇몇 단어들을 발음해 달라고 부탁한다.
대장금 열풍을 황량한 시골 마을까지 강타했던 것이다. 잘 만든 드라마 한편이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고자 하는 동경으로 이어진 것이다.
저녁 식사를 하고 강물에 목욕을 했다. 물이 흐리기는 하지만 여기에 공장이 있을리도 없고 물살이 빨라 팬티만 입고 수영을 했다. 사실 너무 더워 온몸을 식히고 싶었다.
게르 캠프 근처에 텐트를 쳐서 숙박하는 여행자가 있는데 한국인 여행자 2명도 보였다. 다가가서 말을 거니 우리와 비슷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여성분들이다. 남자들도 힘겨워 하는 여행을 여성분들이 뚝딱 해내다니 정말 대단한 분들이다. 고추장과 라면스프를 우리에게 주신다. 그동안 고추장에 굶주린 우리라 감사히 받았다.
내일 강행군에 대비해 일찍 잠을 자려고 하니 모기가 극성이다. 상걸이가 주인아주머니에게 향을 달라고 부탁하니 에케메가 마른 소똥을 들고 게르로 들어온다.
가스불을 이용해 소똥에 불을 붙이니 독한 연기가 나온다. 모기를 잡으려다 사람을 잡겠네.. 군대 시절 화생방 훈련이 떠오른다.
다행히 강풍이 불기 시작해 모기의 활동이 뜸해졌다. 게르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준 대단한 강풍이다. 게르가 강풍에 흔들리고 바람 소리도 귀이하게 난다. 마치 귀곡 산장에 온 분위기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건장한 사나이이기는 하지만 밤늦도록 잠들지 못한 하루였다.
총 이동거리 - 340Km
8월 11일(금)
수많은 모기에 물려 온몸이 가려웠다. 모기에 대비해서 파스나 모기향을 가져왔어야 하는데 준비부족을 다시금 느꼈다.
오전 9시에 출발하기로 했지만 에케메는 식사를 한다며 차에 우리를 태운 채 30분을 지체한다. 여행 막판이니 그냥 좋게좋게 넘어가자.
찌는 듯한 무더위에 끝없는 초원이 계속 이어진다.
오후 2시 반에 아스팔트 도로가 나오면서 큰 도시가 보이기 시작했다. 몽골의 제 2의 도시 Erdenet(에르데넷)이다.
75,000여명의 인구 규모에 러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 아파트가 많이 보인다.
에르데넷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반긴 건 ‘한국 식당’이라는 간판이다. 그동안 한국 음식에 굶주려 있었는데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꼬리곰탕과 소고기찜을 시켰다. 소고기찜은 4500투그릭인데 반해 삼겹살은 6500투그릭이다. 이곳까지 와서 돼지고기를 먹는 우민들은 없으리라 믿는다.
형준이가 시킨 꼬리곰탕이 먼저 나왔는데 커다란 꼬리고기가 3개나 나왔다. 국물 또한 진했다.
소고기찜은 우리를 더욱더 놀라게 했다. 소고기 등심 부위인데 우리나라에서는 3인분이 될 듯한 양이다. 소고기로 이렇게 포식하기는 실로 오랜만이다. 식당 바로 옆에는 한국 식품점이 있어 고추장, 김치를 쉽게 구할 수 있다. 진작에 이런 가게가 나왔으면 여행하면서 음식 먹기가 수월 했을 텐데..
에르데넷 시장에서 장을 봤다. 낯선 외국인이 신기한지 사람들이 우리를 흘끔흘끔 쳐다본다.
여기서부터는 쭉 아스팔트길이다. 비포장도로에 익숙해서 그런지 아스팔트길이 편하게 느껴진다.
오후 6시가 넘어 ‘Amarbayasgalant Khild 35Km'쓰인 간판이 보인다. 비포장도로를 한 시간 정도 달려야 하는데 도중에 솔롱고(무지개)가 보인다. 몽골인들에게 우리나라는 솔롱고스(무지개가 뜨는나라)라고 불리는데 저 무지개의 끝도 우리나라일까?
쓸데없는 감상을 하며 달리니 아름다운 사원이 보인다 바로 Amarbayasgalant Khild이다.
청나라 옹정제에 의해 1737년 건립된 훌륭한 몽골 불교 사원이다. 이곳도 공산 혁명의 열풍을 피하지 못해 1937년 10개의 사원이 파괴가 되었지만 그런대로 잘 보존이 되어 있는 사찰이다.
사원 건물양식은 중국의 자금성을 떠올릴 정도로 흡사한 만주족 양식이다. 종교로서 몽골을 지배를 강화하고자 했던 청나라 황제의 의도가 잘 나타나있다.
흔히 불교 사찰의 기와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이곳의 모든 기와에는 용이 새겨져있다. 용은 황제의 상징임으로 황제의 은덕을 입은 사찰이라는 뜻도 되겠다.
사찰 내부에 문이 잠겨 있어 창문을 기웃거리며 안을 보고 있는데 어린 동자승이 와서 문을 열어준다. 내부를 둘러보니 티벳의 한 사찰에 온 것 같다.
론니에는 입장료가 3000투그릭이라고 했는데 찾는 사람도 거의 없고 입장료는 걷지 않는다.
게르에 돌아와 햄과 양배추를 반찬 삼아 저녁식사를 했다.
오늘이 게르에서 지내는 마지막 날이다. 모두들 보드카 한잔을 들이키며 그동안의 여행을 회상하고 한국에 들어가면 먹을 맛있는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 몽골 일주로 몽골 전체를 볼 수는 없었지만 몽골인들과 비슷한 환경에서 그들과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17박 18일..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여행이겠지만 내 마음 속에는 영원히 멋진 여행으로 기억될 것이다.
8월 12일(토)
어제 잘 때 난로를 피웠었는데 난로가 꺼지자 곧바로 추위가 엄습해왔다. 너무나 추운 나머지 새벽 6시 40분에 모두 일어났다. 지금이 8월이 맞나..
오늘은 꿈에 고대하던 울란바토르로 가는 날이다. 오전 9시에 출발해서 어제 이곳을 올 때 왔던 비포장도로를 그대로 돌아갔다.
1시간을 달려 다시 아스팔트 도로로 들어서 남쪽을 향해 달렸다. 18일 동안 지겹도록 본 초원이지만 이제는 마지막으로 감상한다고 생각하며 끝없는 초원을 바라보았다.
중간에 식당에 들러 호쇼(호떡 같은 몽골 음식)을 5개를 먹고 배를 채웠다. 아침, 점심을 거른 이유는 울란바토르에서 한국음식을 실컷 먹기 위해서이다.
식당 아주머니가 한국말을 조금 하는 게 신기해서 물어보니 역시 대장금의 영향 때문이다. 오후 4시가 되어 나라 친척집에 들린다. 나라 누나라고 밝힌 여자아이기 우리와 동행한다. 나라는 양고기 한 조각을 나에게 줬는데 ‘짬통(군대에서 음식 쓰레기를 버리는 통) ’이라는 별명을 가진 상걸이에게 넘겨줬다. 상걸이는 명성 그대로 어그적 어그적 잘 먹는다.
오후 6시 산을 넘자 울란바토르 시내가 보인다. 아.. 얼마나 고대했던 순간인가..
하지만 차들로 빽빽한 도시에 들어서자 답답한 마음마저 든다. 여지껏 드넓은 초원을 달리기만 했었는데..
UB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6시 40분이다.
도착하니 UB게스트하우스의 김사장님께서 우리를 반겨주신다. 짐을 풀고 근처 인터넷 카페에서 인터넷을 하고 오랜만에 더운물로 샤워를 했다
오후 8시에 김사장님이 우리를 데리고 ‘무지개 한국식당’에 갔다. 사장님과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해야 했는데..
갈비찜, 제육볶음, 김치찌개, 청국장이 너무 맛있어 한마디 말도 못하고 먹는데 열중했다. 무지개 식당은 한국의 여느 식당보다도 음식 맛이 맛있다. 그래서 그런지 수많은 사람들이 식당을 찾아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어제 추운 밤을 보내서 그런지 결국 몸살 기운이 생겼다. 여행의 막바지라 긴장감이 풀려서 그런가? 코피마저 난다.
형준이가 준 감기약을 먹고 KBS WORLD를 보며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