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5일(목)

화리엔(花蓮)은 타이완 5대 국제항 중에 하나이며 웅장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대만 동부의 중심도시이다.

타이완을 방문하는 많은 관광객들이 화리엔을 방문하는데 화리엔 자체를 보기 보다는 바로 타이루거(太魯閣)협곡 관광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웅장한 대리석 절벽이 감탄사를 연발하게 하는 타이루거 타이완을 방문한 이들은 꼭 들려야 할 필수 관광코스이기도 하다. 거대한 협곡을 둘러보면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 마저 느끼게 될 것이다. 타이완 동부 서부를 잇는 최초의 도로인 중횡고속도로(中橫公路)로 오직 곡갱이와 삽으로 바위를 뚫고 도로를 놓았다고 한다. 워낙 난공사라서 탓에 도로를 만들면서 212명이 죽고 702명이 다쳐서 ‘땀과 눈물’의 도로라고도 불린다.

여행사에 오전 8시에 도착을 하니 20분 후에 출발한다고 한다. 어제 저녁을 먹었던 만두집에 가서 아침을 먹은 후 관광버스에 탔다.(1000원 지불)

버스는 화리엔 공항으로 가 4명을 더 태운 뒤 타이루거 협곡으로 출발한다. 20인승 버스에 탄 인원은 5명.. 가이드는 2명만 탔을 때도 있다면서 웃는다.

가이드 이름은 짱쭈센이고 나이는 나보다 한살 어린 27살이며 결혼을 해서 얼마 전에 자식을 보았다고 자랑을 한다. 좀 호들갑스러운 성격인 재미있는 친구이다.

짱은 계속해서 나에게 중국어로 물어보고 이야기를 한다. 중국어는 우리가 흔히 듣는 한자어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자세히 들어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내가 말은 잘 못하지만 짱이 말하는 것의 1/3 정도는 이해가 간다.

오늘 같이 여행을 하게 된 4명의 구성이 흥미롭다. 2명은 중국인(타이완)이고, 2명은 일본인이다. 한, 중, 일 3나라가 함께 모인 셈이다.

타이루거 협곡에 들어서자마자 인포메이션 센터 들렀다. 이곳에서 타이루거 협곡 영문 지도를 얻을 수 있다.

관광버스는 명소가 있을 때마다 멈춰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이래서 패키지가 편한 거구나..

옌즈커우(燕子口)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협곡이 시작된다. 거대한 절벽이 어서 오라는 듯이 나를 맞이한다. 절벽의 규모가 생각보다 훨씬 거대하기 때문에 움찔함 마저 느껴질 정도이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수십미터 아래에 계곡이 흐르고, 위를 보면 100m가 넘는 대리석 절벽이다.

지우취뚱(九曲洞) 타이루꺼 협곡 경치의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1.2Km 걷는 구간으로서 원래는 차들이 지나다니는 길이었다가 바로 옆에 터널이 뚫리면서 사람들만 지나 갈 수 있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지우취뚱(九曲洞)이라는 이름은 아홉 계곡이 아니라 굽이가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거대한 대리석 절벽은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고 거대한 계곡은 굽이굽이 장관을 이룬다. 1.2Km를 걸으면서 마치 미술관을 관람하듯이 웅장한 자연을 감상하였다. (글로는 표현이 안 된다. 나중에 홈페이지 사진을 감상하도록)

류수이(綠水) 인포메이션 센터에 가니 협곡에 도로를 놓는 과정과 사진이 자세하게 전시되어 있다. 또한 일제시대 때 만들었던 옛날 도로도 볼 수 있다.

텐샹(天祥)은 해발 480m로 타이루꺼 협곡의 중심지며 식사와 숙박이 가능한 지역이다. 텐샹에 도착하니 상덕사, 천봉탑이 보인다.

가이드 짱은 이곳 호텔에서 식사를 한 뒤 자유롭게 텐샹을 둘러보고 오후 1시 30분까지 오라고 말한다.

론니에서는(지금은 잃어버렸지만) 텐샹에서 출발해서 바이양폭포(白楊步道)까지 걷는 코스가 소개되어 있다. 현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왕복 2시간은 걸린다고 한다. 패키지이지만 나 혼자서라도 꼭 가보고 싶다. 하지만 시간이 과연 허락해줄지..  

함께 식사를 하는 4명과 달리 바이양 폭포까지 가기로 결심한 나로서는 허겁지겁 식사를 하고 폭포로 향하기 시작했다.(오전 11시 40분)

텐샹에서 도로를 따라 800m를 올라가면 차들이 지나 갈 수 없는 동굴이 보인다. 이곳이 바로 바이양 폭포로 가는 가도이다.

바이양 폭포 길은 이곳에서 2.2Km 정도 되고 계곡을 따라 폭포까지 걸어가는 하이킹 코스로 되어 있다. 380m나 되는 동굴을 통과하니 수려한 협곡과 주변경관이 보인다. 경관을 감상할 새도 없이 앞으로 무조건 내달렸다. 4~5개 동굴을 통과하고 12시 25분이 되자 백양교와 전망대가 보이고 저 위로 바이양 폭포가 보인다. 길이 평평하기 때문에 의외로 빨리 왔다.

길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Cave of water Curtain(물커튼 동굴)’이라는 동굴로 이어진다.

물커튼?

동굴 속에 들어가 보니 그 뜻을 알 수 있다. 바로 동굴 여기저기에 물이 새어 나와 커튼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옆으로는 많은 양의 물이 내리고 있기 때문에 랜턴이 꼭 필요하다.

동굴을 통과하면서 온몸이 물에 흠뻑 젖어 있다. 이 동굴을 마지막으로 트래킹 코스는 끝난다.

거대한 계곡에 걸쳐 있는 백양교는 흔들다리이며 한꺼번에 10명이 올라가지 못한다고 한다. 다리를 건너 전망대로 가서 바이양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바이양 폭포는 두개의 거대한 폭포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한다.  

이제는 돌아올 차례이다. 아직 50분 정도가 남아있기 때문에 여유 있게 걸어 올 수 있다.

바이양 폭포로 가는 길에 마주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양 여행객들이다. 아마 론니플래닛의 위력일 것이다. 바이양 폭포는 현지인들은 잘 모르고 외국인들은 잘 아는 코스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관광명소인 인사동과 하회마을도 외국인들에 의해 먼저 알려진 것과 같은 이치이다.

처음 통과 했던 동굴로 갈 무렵.. 어제 싼시엔타이에서 만났던 서양 여행자와 또 마주쳤다. 벌써 3번째로 마주친다.

서로 반가워하며 이야기를 했지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어 아쉽게 헤어졌다. 인연이 있으면 또 볼 수 있겠지?^^

텐샹으로 돌아오니 1시 20분이다. 뿌듯한 마음에 콜라 한 캔을 뽑아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여유를 즐겼다.

오후 1시 35분 텐샹에서 출발해 Chimu Brige(론니를 잃어버려 이렇게 밖에 표기 못함)에서 잠시 촬영을 한 다음(이미 거대한 절벽들을 워낙 많이 봤기에 이쯤에서는 식상했다.) 타이루거 협곡 입구에 있는 장춘사로 갔다.

장춘사는 절벽위에 걸쳐진 절로서 아름다운 폭포와 함께 절경을 이루고 있다. 사원의 이름으로 칭기스칸 시대에 도교의 대가 ‘구처기’를 모시는 사당이 아닌가 추측해본다.(확실하지 않음) 주어진 시간은 얼마 없지만 이왕 이렇게 온 김에 절벽위에 걸친 정자도 뛰어 올라갔다.(장춘사에서 15분 정도 올라가야 함) 오늘만큼은 패키지여행이라 편하게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힘든 여행이다.(스스로 자초한면이 있음)

가이드 짱에게 왜 천수이벤을 하야 시키려는 움직임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짱의 대답은 명쾌했다. ‘민진당(여당)이 10을 먹으면(뇌물) 국민당은 5를 먹어 그래서 둘 다 마음에 안 들어..’ 타이완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불신이 어느 정도인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오후 3시 50분에 타이루거 협곡을 떠나 화리엔으로 향했다. 도중에 공군 기지가 있는 바닷가를 들렸는데 거대한 파도가 일품이다. 바로 위를 쳐다보면 F-16 전투기가 이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덕분에 꽤 시끄럽다.)

나를 제외한 4명은 다시 비행기를 타고 타이베이로 간다. 타이베이로 편하게 가는 그들이 정말 부러웠다.

혹시나 해서 어제 내렸던 화리엔 터미널에 가서 가이드북을 찾으니 없다고 하다. 이제 가이드북은 완전히 포기하고 기차역으로 갔다. 터미널에서 기차역까지는 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가야 한다.

기차역에서 타이베이로 향하는 기차표를 끊었다.(445원) 표를 끊고 바로 10분 뒤에 출발이라 저녁거리를 사지도 못한 채 기차를 타러 플래폼으로 향했다.

화리엔에서 타이베이까지 3시간 10분이 걸린다. 기차 안에서 편하게 잠을 자다가 깨면 노트북으로 여행기를 치는 달콤한 꿈을 꾸며 시트 번호를 확인하는 순간..

이럴 수가.. 입석표다.

기차 출발 3분전이기 때문에 표를 바꾸지 못하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기차를 탔다. 가장 비싼 기차라 입석은 없을 줄 알았는데 매표원에게 배신감마저 느껴진다.(표를 제대로 확인 안 한 나의 잘못이다.)

나 말고 다른 입석자도 있지만 난 외국인이지 않은가? 수많은 시선들이 나를 향하는 것이 느껴진다.

아.. 괴롭다..

다행히 반 정도 갔을 때 빈자리가 생겨 앉으면서 갈 수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청년은 내가 한국인인 것이 신기한지 어떻게 여행을 하는지 연신 물어본다. 친절히 설명해주고 그에게 타이완에 정치에 대해 물어보았다. 역시 정치에 대한 불신이 깊다.

괴롭게 기차를 탔지만 철도청 시계는 돌아가는 법.. 오후 8시 45분 타이베이 역에 도착했다. 역시 한 나라의 수도답게 역의 규모가 크다.

남(南)문 쪽에 일식집이 있어서 허기진 배를 달래서 갔다. 회전식 초밥 집으로 전형적인 일식집이다. 한 접시에 30원을 해서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이다. 배가 많이 고팠는지 8접시나 먹었다.

동(東)1문을 나와서 ‘히타치’ 간판이 보이는 건물로 향했다. 그 건물 아래에는 OK 편의점이 있는데 편의점 바로 뒤 건물 2층이 Happy게스트하우스이다.

도미토리가 하루에 300원 밖에 안 한다. 처음 계획은 여행 막판이니만큼 편한 호텔에 묵으려고 했지만 나의 여행 본성이 가장 싼 숙소로 내 몸을 인도한다.

열악한 숙소이기는 하지만 여러 서양인들과 만날 수 있고 자기에는 불편치 않은 숙소이다.

숙소에 론니플래닛 ‘North East Asia'편이 있어서 한번 펼쳐보았다. 1992년 발행 된 것으로 1991년까지의 정보를 담았으리라.

중국, 한국, 대만, 일본, 홍콩 등 동북아시아 여행에 관한 정보를 담았는데 여행 경비를 비교하는 도표가 참 인상적이다.

15년 전에는 우리나라를 물가를 1로 하면 일본은 10이고, 대만은 5이다.(중국은 너무 싸서 비교할 수 없음) 당시 우리나라 물가가 일본, 대만보다 싼 것도 있지만 다르게 말하면 그만큼 우리가 일본, 대만보다 못 살았다는 이야기이다.

지금은 완전히 역전이 되어 대만 물가가 우리보다 싼 것을 넘어서 엔저 현상으로 일본 물가마저 뛰어넘을 태세이다.

그만큼 우리 경제가 발전했다는 것이 아닐까? 그동안 대만의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보다 높았었는데 작년에 처음으로 우리가 대만의 1인당 국민소득을 추월했다.

그 힘은 바로 정치체제에 있다고 생각한다. 1980~90년대 이어진 민주화 투쟁 시기의 뉴스를 기억하면 ‘한국의 잦은 시위 때문에 외국인들이 한국 여행을 꺼려한다.’라는 헛소리를 뉴스로 보낼 정도로 시위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국민들 스스로가 정부를 교체 했다는 것은 그만큼 성숙한 시민 의식을 함양해야 된다는 책임감을 시민들 스스로 심어주었다.

그러한 의식이 소위 ‘어글리 코리안’이라고 불렸던 우리를 스스로 변화시킨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즉 정부가 통제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변화가 가능한 시민으로 발전한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많은 고통이 있고 지금도 진행형이지만 최소한 우리 국민은 정치가에 의해 모든 이념이나 생각이 좌우되는 시대를 떠나 시민들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민주 의식이 심어진 것만은 틀림없다.

예를 들면 최근 태국에서 일어났던 쿠데타가 우리나라에서는 통할 수 있겠는가? 태국 군부의 쿠데타의 정당성을 떠나서 태국 시민들 스스로 정권 교체를 하지 못한 탓이 크다.

최근의 우리사회의 보수, 진보 갈등은 시민들 스스로 생각을 하고 사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기에 서로 부딪치는 것이라 생각한다.(10년 전만 해도 그러한 사상 갈등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일본은 자민당, 대만은 장제스, 장칭궈 총통, 우리나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계획 경제에 의해 국가 경제를 어느 정도 발전의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면 이제 시민의 힘에 선진국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일본 대만과 비교하면 우리는 최소한 이들보다 발전 된 정치 체제를 가지고 있고 그러한 것이 밑바탕이 되어 우리 경제의 성장 엔진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너무 한국 예찬을 했나?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보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더 발전적이라는 나름대로의 변명을 해 본다.(내 여행기가 여행 정보만을 담았기를 원했던 분들에겐 미안..)

새벽 2시까지 여행기를 정리하였다. 싼 숙소라 그런지 바로 옆 칸(도미토리가 고시원처럼 칸막이로 되어 있음)의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 여행의 막바지에 든 시점이다. 여행을 하면서 가장 조심해야 할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여행이 끝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더 배우고자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