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0일(목)
토고에 대해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나 역시 월드컵에서 우리나라와 한판 붙을 때까지 토고라는 나라가 있는지조차 몰랐다. 독일 월드컵 당시 MBC ‘월드컵 특집 이경규가 간다.’에서 로메로 찰스를 보내 이곳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는 코너가 있었다.
찰스는 토고 사람들과 함께 축구를 보면서 응원을 했는데 안정환 선수가 역전골을 넣자 대놓고 좋아하지 못하고 차안에 숨어서 기뻐했던 장면이 인상적으로 남았다.
그곳에 내가 서 있다니...
우리에게도 익숙한 토고의 스트라이커이자 아스날에서 뛰고 있는 아데바요르는 이곳에서는 우상처럼 여겨지고 있다.
토고 사람들에게 아데바요르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웃으면서 알 수 없는 불어로 축구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제 2의 아데바요르를 꿈꿔서 일까? 많은 청년들이 해변에서 축구를 하고 있다.
토고는 1884년까지 아프리카의 호전적인 흑인국가였던 아샨티(가나)와 다호메(지금의 베냉) 사이의 완충지대 역할을 했었다.
1847년 독일 선교사들이 들어오고 시작했으며, 식민지 열풍이 분 1897년 독일은 이곳을 식민지로 삼는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영국군과 프랑스군이 토고를 점령했고 종전 후 국제연맹의 위임 하에 서쪽은 영국이 동쪽은 프랑스가 통치하게 된다.
영국의 통치 지역은 1956년 골드코스트(가나 식민지 이름)에 편입이 되어 이듬해 가나로 독립을 했으며 프랑스가 차지하고 있던 지역은 1960년 독립을 해서 지금의 토고가 되었다. 아마 독일이 계속 차지하고 있었으면 지금의 토고는 더 큰 나라가 되지 않았을까?
독립 초기 암살과 쿠데타의 혼란의 시기를 맞아 1963년 아프리카 최초의 군사정부가 되었으며 1967년 냐싱브 에야데마 장군이 집권하게 된다.
2005년 에야데마가 죽자 그의 아들이 집권하게 되고 그에 반대하는 500명을 죽이고 수 천명이 베냉이나 가나로 피신을 하게 된다.
대를 이어가는 독재의 흔적은 시내 곳곳에 배치 된 무장 군인들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심지어는 기관총을 들고 순찰하는 군인이 있을 정도이다.
론니에는 프랑스 영사관에서 5개국을 통과할 수 있는 비자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토고, 베냉, 니제르, 부르키나파소, 코트디부아르인데 만약 이 비자를 받을 수 있다면 앞으로 비자 받을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프랑스 영사관에 가니 2007년 1월 1일부로 폐지되었고 부르키나파소, 중앙아프리카, 지부티, 코트디부아르 비자를 따로 발급한다고 하지만 비자피도 40000CFA(88000원)나 한다.
베냉은 국경비자(10000CFA)가 되기는 하지만 2일짜리 밖에 받지 못하고 연장을 하려면 경찰서에 가서 12000CFA를 더 주고 연장해야 한다. 결국 22000CFA를 주고 비자를 받는 셈이다.
프랑스 영사관 경비원에게 물어보니 얼마 전 베냉 대사관이 새로 생겼고 로메 서쪽에 위치해 있다고 한다.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베냉 엠브라사데(프랑스어)’를 말하니 300CFA에 베냉대사관까지 태워다 준다.
오토바이가 택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어디에 이동을 하려면 길가에 서 있기만 해도 오토바이가 선다. 200CFA~300CFA를 정도 주면 시내 어디든 데려다 준다. 베트남을 여행한 사람에게는 아마 익숙한 장면일 것이다. 수많은 오토바이가 뿜어내는 매연 때문에 도시 안의 공기는 탁하기 그지없다.
베냉 대사관에서 신청을 하니 15일 비자를 10000CFA에 준다. 오늘 하루 만에 받기 위해 사정을 잘 설명을 하니 오후 4시에 오라고 이야기 한다.
대사관 주변에는 갤러리가 있는데 이곳 사람들의 생활상을 잘 그려 놓았다. 필립이라는 화가는 자신이 그린 그림이라며 자랑스럽게 설명을 해준다.
베냉 비자를 받는 오후 4시까지 시간이 있어 로메 시내를 돌아봤다.
은행에 가서 환전을 하니 1$에 432CFA으로 환전을 해준다. 코트디부아르보다 11CFA가 더 올랐다. 은행원에게 물어보니 1유로는 655.957CFA이다.
2년 전 발행 된 론니플래닛과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유로환율은 고정시켜놓고 달러를 변동시키는 것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은행 주변의 암달러상은 1$에 435CFA를 준다고 하지만 어제 국경에서도 느꼈듯이 안전하게 교환하는 것이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더운 날씨 속에 행상인들이 많고 누워서 자는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살기 힘들다는 반증이 아닐까? 갈증이 나서 파인애플 파는 아줌마에게 하나 달라고 이야기 하니 200CFA를 부른다. 하나 달라고 하니 머리에 이고 있던 큰 대야를 내려놓고 시커먼 칼로 파인애플을 우직스럽게 썰어 준다.
서아프리카 사람들은 무거운 물건을 질 때 머리 위로 이고 다니는데 옛 시절 우리의 아낙네를 연상시키는 풍경이다. 무겁고 커다란 물건도 머리 위로 잘도 이고 다니는 모습이다.
2006년 서아프리카를 자전거로 여행한 행창스님의 여행기를 보면 토고는 관리들의 부패와 공포 정치 때문에 사람들 전체가 경쟁을 박탈당한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썼다.
해변으로 가면 그 이야기를 더 실감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대 낮부터 잠들어 있으며 해변이면 활기차고 젊음이 넘쳐야 하는데 무기력함이 느껴진다. 아름다운 해변이지만 수영하는 이는 하나도 없는 것이 황량한 분위기를 더욱 올려준다.(사실은 물이 차서 못한다고 함)
한 젊은이가 유창한 영어로 말을 건다. 이름은 카미나 벱스테(KAMINA BEBSTE)로 나이가 25살이다.
토고 축구에 대해 물어보니 축구는 잘하지만 경제는 엉망이라고 이야기 한다. 외국에 어필할 상품도 없으며 희망이 없다고 이야기 하며 자신도 로메의 대학에서 전기 기술을 배웠지만 직업을 구하지 못했다고 열변을 토한다.
오죽 답답했으면 외국인에게 하소연을 할까? 행창스님은 이곳에서 직업을 구하지 못한 의대생을 만났다고 했을 때 반신반의했는데 이제야 제대로 믿을 수 있겠다.
여행자인 내가 카미나에게 할 수 있는 것은 희망을 주는 것이다. 앞으로 토고 경제는 발전을 할 것이며 좀 더 공부를 해서 발전하는 시대에 기회를 잡으라는 격려를 해줬다. 혹시 한국어를 배울 기회가 있으면 배우라는 조언도 해줬다.
카미나와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경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경제에 대해 과욕을 부린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는 ‘경제를 살리겠습니다.’말하는 후보가 당선이 되었는데, 그 당시 상대 당은 10년 동안 경제를 파탄 냈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경제가 파탄 났다는 것은 경제 활동 자체를 할 수 없을 정도를 이야기 한 것이 아닌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지난 정부를 되돌아 볼 때 대단한 업적을 이뤘다고 생각한다. 집권기간인 5년 동안 수출은 2배 이상 올렸으며 주가는 3배를 더 올려놓았다. 여행을 하면서 생각했던 것보다 한국의 위상이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작년 경제성장률 4.9%는 세계에서 10위인 수치로서 우리 경제 성장 수준을 봤을 때 상당히 선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쌍팔년도 고성장 시대가 그리운지 저성장이라며 왕왕대고 있다.
우리나라의 주식이 오른 것은 그만큼 외국인 투자가 늘었다는 뜻이며 외국인이 안심하고 투자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남북 관계가 안정적인 것이 결정적임에도 불구하고 대북 퍼주기라는 논리가 언론의 부추김 속에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 앞으로가 걱정이 된다. 북한에 대한 강경책은 북한의 반발을 불러 올 것이고 한반도의 위기감이 조성될 가능성이 있다.
한반도 대운하등 대형 프로젝트를 위해서는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데 그것은 곧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것이고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경제로 전환이 되면 그에 걸 맞는 시스템과 환경을 갖춰야 함에도 불구하고 성장률에만 너무 의존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지난 정부에 가장 큰 업적은 성장률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전에는 언론에서 불경기라고 뉴스를 쓸 때마다 큰 돈(대부분이 나라의 세금)을 들려 인위적인 경기 부양을 함으로써 성장률을 끌어 올렸는데, 그러한 정책은 후진국에서 통할까 말까한 정책으로 일시적인 성장은 하겠지만 다시 거품이 꺼지는 것을 반복해야 한다.
또한 외국인 투자자에게도 국가 주도의 경기 부양은 신뢰가 가지 않은 정책이기 때문에 투자를 꺼리게 된다.
성장률이 오르면 개인별 소득이 늘어날 것이라는 환상을 가진 분들이 많은데 이웃 일본은 1인당 국민소득은 우리의 2.5배가 넘음에도 불구하고 삶의 질은 우리보다 떨어지는 사실을 좀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은 성장률보다는 국민들이 안심하고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고, 최첨단 산업을 더욱 육성시켜야 할 시기이다.
뭐 그렇다고 걱정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우리 국민은 현명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을 교체해 준 것은 어떤 정부든 장기 집권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국민의 의지가 반영되지 않았나 싶다.
또 그 정부가 못하면 교체하고 그러한 선례를 계속 남기는 것은 괜찮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로 년 7% 성장을 하는지는 쭉 지켜봐야 할 일이다.
오후 4시에 베냉 대사관에 가니 비자가 나와 있다. 오늘은 목요일이라 금요일인 내일까지 니제르 비자를 받지 못하면 토요일, 일요일 3일을 허비해야 한다.
로메에는 니제르 대사관이 없기 때문에 얼른 베냉으로 넘어가야 한다.
베냉은 수도는 포르토노보(Porto Novo)이지만 실질적인 수도는 바로 옆의 코토누(Cotonou)이다.
코토누까지 가는데 쉐어 택시가 3000CFA를 부르는데 론니에 나와 있는 가격이라 괜찮다고 생각해서 탔다.
운전기사는 원래 뒷좌석에는 4명이 타야 하는데 4500CFA를 내면 세 명이 탄 채로 출발하겠다고 한다. 이왕이면 편하게 가는 것이 좋겠지..
500CFA씩 깎아서 4000CFA를 내고 편하게 올 수 있었다.(오후 4시 40분 출발)
45분을 달려 국경에 도착했다. 토고~베냉 국경은 가나~토고 국경과 비슷한 분위기이다. 국경을 지키는 군인이 보이지 않고 스탬프도 여행자가 알아서 찾아가서 받아야 한다.(찾기는 쉬움) 국경은 24시간 문을 여니 쫓기든 넘지 않아도 된다.
짧지만 즐거웠던 토고여 안녕~
총 세 시간을 달려 코토누에 도착 했다. 코토누는 로메보다 큰 도시이지만 매연은 더 심하다는 것이 단번에 느껴졌다.
기차역 근처의 콩고드(Concorde)호텔에 자리를 잡았다. 방값은 10000CFA. 1인당 5000CFA이다.
가나에서부터 숨 가쁜 일정으로 왔기 때문에 내일 하루는 니제르 비자를 받고 이곳에서 푹 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