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여행기 4 북쪽으로 히치해서 가기 (Dembech, Bahir Dar, 2007.1.22~23)

1월 22일(월)

오전 8시에 버스 터미널에 가니 Barir Dar로 가는 차들은 새벽에 다 떠났다면서 내일 다시 오라고 이야기 한다. 생각보다 오늘 가는 길이 쉽지는 않겠군.

여기서 발길을 돌릴 나와 토모미가 아니지.

우리는 최대한 북쪽으로 간 뒤 구간마다 달리는 미니버스를 타거나 히치를 해서 북쪽으로 가기로 했다.

북쪽으로 가는 버스를 알려달라고 직원에게 물으니 자기네들끼리 속닥속닥 상의를 한다. 우리를 아디스아바바에서 100Km 정도 떨어진 피셔(Fiche)로 가는 버스(13Birr)로 안내한다.

버스라고 불리기에도 민망한 고물버스라 속도가 느리지만 그래도 북쪽으로 간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아디스아바바를 벗어나자 농촌이 쭉 이어진다. 넓은 들녘에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보이고 가끔 양떼와 소떼가 길을 막아 버스가 멈추기도 한다.

버스가 지나갈 때면 손을 들어 인사하는 사람, 동냥을 하는 사람, 어떻게든 히치를 해서 가려는 사람 등 가지각색의 반응이지만 그래도 정겹다.

정오가 되어서 피셔에 도착했다. 내리자마자 사람들에게 요청을 하니 고하지온으로 가는 미니버스(13Birr)로 안내해준다. 고하지온은 이곳에서 50Km 정도 북쪽에 있다.

고하지온에서 내려 데젠(Dejen)으로 가려고 하니 차량이 없다고 한다. 지도상으로는 가까운 거리인데 왜 차량이 없지?

마을 중심에서는 청년들이 우리 주변을 어슬렁거리기 때문에 중심을 벗어나서 히치를 시도했다. 생각보다 히치가 쉽지가 않다.

40분을 기다린 끝에 도요타 트럭을 히치 할 수 있었다. 영어가 유창한 운전자는 Jaica(일본국제협력단)에 채용 된 직원으로 이곳 도로 공사를 감독한다고 한다.

고하지온을 벗어나니 곧바로 비포장도로이다. 데젠과 직선거리로는 얼마 안 되지만 거대한 블루나일계곡을 건너야하기 때문에 45Km나 된다.

거대한 계곡에 들어서니 그랜드캐년에 온 것 같은 웅장함이 나를 압도한다.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지 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도로 주변에는 많은 마을이 있어 정겨운 풍경이다.

블루나일 강에는 거대한 다리가 있는데 역시 자이카(Jaica)에서 지어준거라 말한다. 우리나라도 코이카(Koica)가 있는데 에티오피아에서는 활동을 안 하나? 우리 경제가 많이 성장한 만큼 많은 그에 걸 맞는 지원이 있었으면 한다.(며칠 후면 생각이 달라짐^^)

계곡 아래 부분에는 블루 나일강이 흐르는데 이름처럼 파란색 강이 아니라 갈색 강이다. 고도가 낮아서 그런지 무척 후덥지근하다. 꽤 더울 때는 50도까지 올라가는 지대이다. 땀이 비 오듯 쏟아져 어서 계곡 위쪽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히치 한 차는 다리 앞까지만 가기 때문에 차에서 내려 다리를 건넜다. 다리에서 사진을 찍으면 군인들이 제지를 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또 한대를 히치했다. 도요타 트럭에 짐을 가득 싣고 북쪽으로 향하던 트럭인데 외국인인 우리를 흔쾌히 태워준다.

보조석에 앉은 아저씨가 유창한 영어로 이것저것 물어본다. 좀 귀찮을 정도지만 얻어 탄 입장이라 정성껏 대답해주니 무척 유쾌해 한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에게 한국은 각별하게 다가온다. 특히 자신들이 도와줬던 가난한 나라가 지금은 선진국이 되었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때문에 여행을 하면서 한국을 좋아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6.25전쟁 당시 에티오피아가 한국에게 도움을 주었고, 때문에 지금의 발전을 이루어 한국 국민들은 에티오피아에게 고마워 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운전자는 기분이 좋은지 데젠을 넘어 80~90Km 떨어진 마르코스(Markos)까지 타고 가라고 말한다.

마르코스에는 오후 6시가 조금 넘어 도착을 했다. 이제 아디스아바바에서 320Km 정도 왔다. 시내에 내리자마자 삐끼가 집요하게 달라붙는다. 버스정류장에서 확인하니 오늘은 더 이상 북쪽으로 가는 버스가 없다고 말한다.

삐끼 청년들은 더 이상 차가 없다며 자신이 소개하는 호텔로 가자고 말한다. 극성인 삐끼들을 피해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가니 계속 달라붙는다. 청년들에게 필요 없다고 따라오지 말라고 이야기를 해도

‘너희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우리의 서비스를 받아야 해.’라는 알 수 없는 논리를 둘러대며 따라온다.

청년들은 네가 아무리 북쪽으로 가려고 해봤자 불가능 할 거라고 이야기하며 돌아간다. 이제 해가 완전히 지고 어둠이 깔 리가 시작했다.

어떻게든 북쪽으로 향하는 트럭이 있을 것인데 여의치가 않다.

나는 괜찮지만 토모미는 하루 종일 피곤할 텐데..

‘토모미.. 우리 그냥 시내로 돌아갈까?’ 토모미에게 묻자.

‘아냐 파크(Park).. 지금 돌아가나 나중에 돌아가나 호텔에는 방이 있을 거야. 아직 시간이 더 있으니 더 노력하다 안 되면 가자.’

역시 대단한 여인이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얼른 돌아가자고 할 텐데 포기를 모른다. 사실 삐끼들에게 시달려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다.

더 솔직히는.. 지금 다시 시내로 돌아가면 삐끼 청년들이 비웃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알 수 없는 승부욕이 날 자극했다.

결국 트럭 한대가 잡혔다. 운전자는 이곳에서 북쪽으로 50Km 정도 밖에 안 간다고 이야기 한다. 우리는 애원하다시피 하여 트럭 짐칸에 타는 것을 허락 맡았다.

트럭은 어둠속을 헤치며 들판을 달리기 시작했다.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 위로 금방 쏟아질 듯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이렇게 야밤에 트럭 히치를 하다니.. 힘들기도 하지만 사뭇 낭만적인 분위기이다.

토모미는 배낭을 베고 잠이 들었다. 덜컹거리는 트럭 짐칸에다 차가운 바람이 온몸을 휘감는데도 잠이 들다니.. 대단한 여인네다.

쭉 별을 관찰하니 화성이 관찰이 된다. 언젠가는 인간이 가서 살아야 할 행성이지..

별을 보니 지난 야영이 생각난다.

2006년 11월.. 설악산 미천골에서 우리 반만의 야영을 했었다. 모든 프로그램을 마치고 자는 시간인데 여자아이들 숙소에서는 장난치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결국 여자아이들을 밖으로 집합을 시켜 기합을 줬다. 난 매를 들지 않는 대신 기합을 심하게 주는 편이다.

어깨동무를 하고 앉았다 일어나다를 시키는데 밤하늘이 너무나 반짝였다.

‘애들아.. 저 하늘을 봐.. 저쪽은 오리온자리, 페르세우스 사각형, 좀생이별도 보이네..’

벌을 받던 아이들은 갑작스러운 선생님의 목소리에 가만히 하늘을 보며 별을 관찰했다.

다음날 일기장에..

‘선생님 벌주시다가 왜 갑자기 별을 보라고 했을까?’라고 의문을 남긴 아이들이 몇 있었다.

그때의 회상하며 하며 피식 웃었다.

트럭은 오후 8시에 작은 마을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운전기사는 자리가 없어 짐칸에 태워 미안하다고 말한다. 무슨 말씀을.. 오히려 너무 고마운데..

이곳은 뎀베차(Dembech)라는 마을로 목표로 한 바히르다르(Bahir Dar)에서는 180Km 정도 떨어져 있다. 아디스아바바에서 370Km를 달려왔다. 총 소요 요금은 27Birr이며 히치 한 차들은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

기사가 안내해준 이 마을의 유일한 호텔에 가니 10Birr을 부른다. 1인당 5Birr(510원)에 자는 셈.. 이번 여행을 하면서 가장 싼 숙소로 기록 될 것이다.

내일도 북쪽으로 향해 올라갈 것이다. 여러 번 차를 갈아타고 무리하게 히치를 한 피곤한 여행을 했기는 했지만 평범하게 차를 타고 가는 것 보다는 훨씬 더 좋은 경험을 한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

1월 23일(화)

오전 6시 반에 호텔을 나서 운 좋게 바히르다르(Bahir Dar)로 가는 버스(30Birr)에 탈 수 있었다.

버스는 손님을 모은 후에 7시에 출발했다.

시원스럽게 달릴줄 알았던 버스는 거북이처럼 느리게 간다. 그냥 히치해서 갈 걸 그랬나?

50Km 떨어진 부레(bure)를 8시 45분에 지났다. 아디스아바바에서 441Km 온 것이다.

버스가 바히르다르(Bahir Dar)에 거의 다 도착할 때쯤 한 마을에 멈췄는데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간다고 한다.

점심을 먹으러 이리저리 돌아다니니 한 청년이 돈을 달라며 동냥을 한다. 애써 무시하니 청년이 시비를 건다.

비아냥거리는 말투에 건들거리는 청년을 보며 계속 무시를 했다. 한주먹감도 안 될 것 같지만 난 외국인이 아닌가? 그냥 참았다.

대신 현지인 집에서 과일을 대접 받았다. 무슬림 가족인데 낯선 외국인을 반겨준다.

버스는 다시 출발하고 운전기사는 나보고 괜찮은지 묻는다. 웃으며 괜찮다고 이야기 했다.

누군가 악기를 연주하기 시작하고 버스 안에서는 노래판이 벌어졌다. 특히 악공의 어린 딸이 전통춤을 추고 모두가 박수를 치며 흥겨움을 더해간다.

버스 안에서 전통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어린 딸이 애교스럽게 돈을 걷는다. 1Birr을 주자 돈을 이마에 붙이더니 애교스럽게 춤을 춘다.

오후 1시 23분에 바히르다르(Bahir Dar)에 도착했다. 근처 커피 가게에서 차 한잔을 하면서 토모미와 다음 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토모미는 곤다르를 본 후 Simien 산맥을 트래킹을 하고 싶어 한다. 나 같은 경우는 시간이 거의 없기 때문에 트래킹을 할 여유가 없다. 짧은 일정에도 불구하고 에리트fp아가 욕심나서 악슘을 포기하고 곤다르(Gondar)에서 라리베라를 본 후 지부티로 빠지기로 결심했다.

기독교 제국인 악슘의 유적지를 못 본다는 것이 마음 아프기는 하지만 곤다르에서 가는데 하루, 둘러보는데 하루, 라리베라로 가는데 하루가 걸린다고 계산하면 악슘을 포기하면 3일의 시간이 남는다. 기약은 없지만 악슘은 다음기회로 넘겨야겠다.

바히르다르(Bahir Dar)의 명소는 블루나일폭포(Blue Nile Falls)이다. 시내에서 35Km 떨어진 지점에 있어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데 토모미는 이곳에서 쉬고 싶어 한다.

시간이 없는 난 당연히 이왕 온 김에 이곳을 보고 곤다르로 떠날 계획을 세웠다.

토모미와 일정이 맞지 않아 헤어질 시간이다. 30일 같이 했지만 헤어지는 데는 10분도 걸리지 않는다. 냉혹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것이 여행자들의 세계이다.

토모미와 악수를 하고 Tis Isat으로 향하는 버스(5Birr)에 올랐다. 버스 안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니 현지인인데도 불구하고 서로 영어로 대화하는 모습이 보인다. 옆에 청년에게 물어보니 같은 민족이라도 쓰는 언어가 83종류나 돼서 이렇게 영어로 대화를 한다고 말한다. 무슬림 같은 경우는 아랍어로 대화를 한다고 설명해준다.

Tis Isat에 도착해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끊고(어른 15Birr, 학생 5Birr) 블루나일폭포로 향했다.

30분 정도를 걸어가야 하는데 농촌 마을을 지나니 많은 사람들이 말을 걸며 동냥을 한다. 어린이 같은 경우는 돈보다도 손에 쥐고 있는 플라스틱 물병을 요구한다.

길을 걸으니 당나귀를 모는 사람들과 함께 걷게 되었다. 여기 사람들은 당나귀를 냉혹하게 다룬다. 채찍을 들고 때리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날라 차기까지 한다.

이솝 우화에는 당나귀가 꾀를 많이 피운다고 묘사되어 있지만 사실 꿋꿋이 자기 일을 잘 한다는 생각이 든다. 다리는 짧지만 묵묵하게 자기 일을 하는 생각이 든다.

17세기에 만든 포르투갈 식 다리를 건너니 블루나일 협곡이 보인다. 용암대지가 오랜 세월 침식해서 만들어진 계곡이다.

산등성을 올라 뷰(View) Point로 가니 웅장한 폭포가 보인다. 블루나일폭포는 아프리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