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지아 여행기 마지막편 (운수대통한 날.. 그리고 귀환 05.8.17)

8월 17일(수)

 오늘은 정말로 그루지아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하루 일정이 완전히 비어있기는 하지만 이미 트빌리시는 둘러본 상태이기 때문에 별 특별한 일 없이 내일 모스크바행 비행기를 탈 것이라 생각을 했다.

 별 할일이 없어 인터넷 카페에 갔다. 그동안 밀린 여행기도 올리고 한국 뉴스를 보기 위해서이다.

 인터넷 카페에서 한글이 되는 컴퓨터가 있는지 물어보니 갑자기 맡은편에 앉은 여학생이 깜짝 놀란다.

 그녀는 한국에 대해 아주 관심이 많다고 하면서 특히 김치를 너무 좋아한다고 한다. 또한 한국 드라마 사진을 모니터로 보여준다. 음.. 김래원과 송혜교이군..

 이름은 티나이고, 미국에 유학을 가 피아노를 전공하고 있다. 방학 기간이라 잠시 고국인 그루지아에 들렸는데 한국인을 만나게 돼서 정말 반갑다며 기뻐한다.

 나야말로 이곳에서 한국을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인터넷은 뒷전으로 두고 티나와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티나는 집에 가봐야 한다며 메일 주소와 MSN 주소를 물어본다. 티나에게 알려주고 난 후 티나는 떠난다.

 아참.. 이렇게 한국을 좋아하는 여학생을 사진으로 찍어뒀어야 했는데.. 사실 꽤 미인이었다.^^

 아쉬움을 뒤로 접어두고 다시 모니터를 보는 순간 다시 티나가 들어온다.

티나: ‘오늘 시간 있니?’
나: ‘난 내일 모스크바로 떠나기 때문에 오늘 특별히 할일은 없어’
티나: ‘그래? 그럼 나와 함께 시내로 가자..’

 티나는 시간 약속을 정해놓고 다시 집으로 간다.

 솔직히 좀 멍했다. 갑작스럽게 미녀에게 일방적으로 데이트 약속을 받게 되다니.. 훗.. 어쨌든 운수대통한 날이다.

 오후 1시에 티나와 만나 루스타벨리 역으로 향했다. 시내 레스토랑에서 점심 식사를 했는데 뷔페식 식사라 맛있게 보이는 음식을 골랐다.

 하지만... 윽... 정말 맛이 지독하게 맛없다.

 그러나 티나에게는 내 특유의 친절미소로 정말 맛있다고 이야기 했다.

 티나와 함께 트빌리시 거리를 걸었다.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우리는 거리 카페에서 맥주한잔을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티나는 21살이고, 2년 동안 미국에 있었으며 앞으로도 계속 미국에서 살 것이라고 한다.

 한국에는 정말로 오고 싶지만 아직 미국 영주권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비자가 좀 까다롭다고 한다. 한국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공부를 하면서 사귀게 된 여러 한국 친구들 때문이다.

 티나에게 그루지아에 대해 물어봤다. 티나는 그루지아는 경제적으로 암담하다고 하면서 앞으로 발전하기 힘들 것이라고 한다.

 아마 40년 전 한국에 대해 외국으로 유학을 간 젊은이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루지아의 미래가 없기 때문에 미국에 살려고 하는 티나처럼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외국으로 많이 떠났겠지?

 티나에게 그루지아 역사에 대해 물어보았다. 특히 그녀는 1991년 그루지아 민중항쟁 때 이곳 거리에서 시위를 하는 과정을 직접 목격했는데, 그때 경찰과 군인들이 1000여명이 넘는 시위 관중을 사살했다고 한다. 그때의 기억이 티나에게는 아픔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스탈린에 대해서는 아주 혐오를 한다. 나이든 이들에게는 영웅일 수도 있지만 젊은이들에게는 안 좋게 인식이 되어있다고 한다.

 티나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서 매일 8시간씩 피아노를 친다고 한다. 아마 매일 8시간씩 피아노를 치면서 좌절과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를 만나는 동안 계속해서 담배를 피운다. 14살 때부터 담배를 피웠다고 하는데 지금이야 젊기 때문에 괜찮겠지만 훗날 건강에 많이 해로울 것 같다.

 티나에게 설명을 해도 그저 웃기만 할뿐..

 티나는 나와 헤어지기 아쉬운지 동물원에 같이 가자고 한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동물원(입장료 0.5라리)은 우리나라의 화려한 동물원에 비해 초라한 동물원이지만 많은 티빌리시 시민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공간이다.

 티나와 나는 동물을 보면서 주변의 놀이기구를 탔다. 오래된 고물 놀이기구이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티나와 함께 탔다.

 티나는 바이킹이 제일 무섭다고 하면서 한번 타보라고 한다. 작은 규모의 바이킹.. 이런것 쯤이야.

 티나에게 함께 타자고 했지만 너무나 무서워서 탈 수가 없다고 한다. 후훗.. 이럴 때 한국 남자의 용기를 보여줘야지.

 에버랜드의 어마어마한 규모의 바이킹을 탔는데 이런 작은 바이킹쯤..

 하지만 바이킹을 타고 나서 난 경악하고 말았다. 안전장치가 제대로 되지 않아 잘못하면 떨어질 위험이 있었고, 기계는 사람이 수동으로 조작을 하는데 지나치게 높게 바이킹을 올린다.

 평소 강심장이라고 생각했던 난 공포에 휩 쌓였다. 그래도 미인이 지켜보고 있기에 웃음은 잃지 않았다. 왜 지금 따라 MBC프로그램 상상원정대가 생각나는지..

 공포의 바이킹을 타고 동물원을 둘러본 후 티나와 헤어지게 되었다. 티나는 아쉬워하며 꼭 메일을 보내달라고 했고, 다시 또 만나자고 한다.

 숙소에 돌아오니 어제 만난 오스트리아 여행자가 Tobias가 호주인 여행자를 소개를 해준다. 호주인 여행자는 35살이고 이라크에서 NGO 활동을 하다가 잠시 휴식을 위해 그루지아를 여행 중이다. 호주인 NGO에게 현재 이라크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토비아스가 함께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한다. 갑자기 웬 영화? 호주인 여행자와 나.. 그리고 흥미롭다는 듯 따라 나온 이스라엘 청년.. 이렇게 4명이 길을 나섰다.

 그런데 영화관을 도저히 찾을 수 없어 지나가는 아줌마에게 물어보니 겁에 질린다.

 하긴.. 나를 비롯한 덩치 큰 외국인 4명이 갑자기 달라붙어 길을 물으니 무서울 수밖에..

 우리 넷은 이렇게 거리를 활보했지만 결국 영화관을 찾지 못하고 숙소로 돌아와야 했다. 숙소에서 호주인 여행자와 많은 이야기를 했다. 주로 내가 많이 배울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다.

 이제 그루지아.. 아니 코카서스 여행도 끝이 나는구나.. 아무런 정보 없이 론니 하나만 덜렁 들고 여행을 한 코카서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더 많은 색다른 경험을 한 여행이다.

 그루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이 발전 가능성과 숙제를 알 수 있었다. 이들 세나라가 가지고 있는 지리적 위치와 자원들.. 또한 사람들의 마인드는 이들 세나라가 크게 발전 할 것이라는 확신을 주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 전제 조건이 있다. 이들 세나라가 서로를 진정한 이웃으로 인정한 상태에서 안정과 화합이 우선되어야 하고, 또한 아시아와 유럽의 중간이라는 애매모호한 위치를 기회로 살리는 것이 바로 그들이 가진 숙제이다.

 난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가야겠지? 지금은 한국에 돌아갈 날이 기다려지지만 머지않아 또  나의 마음은 여행의 그림움으로 가득 차게 되고 또 떠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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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빌리시에서 만난 발터 아저씨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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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빌리시 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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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적인 놀이 시설을 갖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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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티나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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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나와의 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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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이 청룡 열차를 타며 즐거워하는 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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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라크에서 잠시 휴가를 나온 오스트레일리아 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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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름한 트빌리시 국제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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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모스크바 말랍꼽스까야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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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이륙직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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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 돌아왔을 때.. 비행기 안에서 일출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