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지아 여행기 5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스탈린의 고향 (GORI 05.8.5)

8월 5일(금)

 시간상으로 보아 오늘 중으로 아르메니아로 가는 것은 불가능 할 것 같다.(트빌리시에서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가 오후 1시까지 출발)

 어제 잔 숙소는 나름대로 최악이다. 음식도 최악이지만 화장실도 밖에 있는 푸세식이고, 샤워는 불가능하다. 또한 전기가 통하지 않아 여행기를 정리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벼룩이 문제이다. 침대에 벼룩이 많았는지 온몸이 근질거린다. 여러 곳에 물려서 많이 가렵다. 하긴.. 여행을 하면서 벼룩을 많이 접해서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지만 벼룩에게 물린 곳은 모기보다 더 간지럽다.

 그래도 한국인의 이미지가 있는지라 주인아줌마에게 20라리를 주니 거스름돈을 안준다. 분명히 18라리라고 했는데.. 2라리 때문에 인상쓰고 싶지 않아 그냥 나왔다.

 개인적으로 앞으로 이곳을 방문하는 여행객에게 Vano 보다는 좀 더 좋은 곳을 추천하고 싶다. (비록 Vano가 추천한 곳이지만 마음에 안 든다.)

 어제 카즈베키에 도착했던 버스정류장에 가서 트리빌시로 가는 버스를 알아보았다. 처음에는 택시를 알아봤는데 내가 타는 비용 15라리에 짐을 실으니까 15라리를 더해 30라리를 달라고 한다. 이런 생도둑놈..

 불편하지만 버스를 탔다. 이곳 코카서스는 버스가 두 종류이다. 흔히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버스는 이곳에서는 장거리 노선에서만 볼 수 있다.

 나머지는 마스트럭이라고 불리는 미니버스이다. 시내에서 이동을 하거나 다른 도시를 갈 경우 유용한 교통수단이고 가격도 저렴하다.

 트빌리시까지 8라리(4.5달러)에 갈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택시를 타고 10라리에 카즈베키에 온 것은 대단히 저렴하게 온 셈이다.

 트빌리시의 디두베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점심거리를 사먹고 곧바로 Gori(3.5라리)로 향했다.

 트빌리시 근교에는 비교적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지만 2차선이기 때문에 빠른차가 추월하는 것이 일상적이다. 하지만 너무 모험적으로 추월을 해서 조마조마할 때가 있다. 특히 버스를 타면서 맞은편 차와 충돌하기 직전에 피하는 아슬아슬한 장면도 몇 번 있었다.

 Gori시는 세계의 역사는 물론 우리나라의 역사의 흐름까지 바꾼 인물이 태어난 곳이다. 바로 스탈린이다.

 스탈린은 세계 2차 대전을 소련의 승리로 이끌고 세계의 반을 지배하는 강대국으로 이끈 지도자이지만 그 이면에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수백만의 사람들을 죽이고 시베리아로 유형을 보내기도 했으며 또한 정치적인 목적으로 자신의 아들의 가족조차 시베리아로 보내는 비정한 정치가이다.

 우리나라의 역사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포츠담, 얄타, 카이로 회담을 통해 결정된 남,북한에 대한 소련, 미국의 신탁 통치는 결국 남북한의 분단으로 이어졌고, 김일성이 남침을 결심한 것도 바로 스탈린을 예방하고 난 직후이다.

 또한 1953년 지지부진하던 휴전협상은 스탈린의 죽음으로 빠르게 진행되었으며, 민족적으로도 사할린의 우리 동포들은 머나먼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시킨 장본인이다.

 하지만 정치에 있어서는 아주 탁월한 인물이다. 2차 대전 때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을 때 일방적으로 밀렸던 것은 군대의 계급을 없앤다고 하면서 수많은 유능한 장교들을 숙청하거나 처형했기 때문이다. 또한 군대를 스탈린의 명령에 복종하도록 길들여서 철수를 해야 할 때 철수하지 못하고 스탈린의 명령만 목 빠지게 기다리다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처럼 초반 패전의 원인을 제공한 스탈린이지만 독일군이 모스크바 바로 앞까지 왔을 때 과감한 군사퍼레이드로 사기를 충전시키고 전황까지 역전시키는 계기를 만든 탁월한 정치 감각도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너무 많은 사람들을 죽인 스탈린.. 그의 세기의 라이벌이었던 히틀러는 스탈린을 그루지아 백정이라 불렀다. 그의 고향인 이곳 Gori 사람들은 스탈린을 어떻게 생각 할까?

 버스에서 내려 스탈린 박물관으로 갔다. 너무나 더웠기 때문에 음료수 2개를 벌컥벌컥 먹었다.

 박물관 바로 앞에는 스탈린이 살았던 작은 집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입장료 1라리)에 들어가 처음 본 것은 스탈린의 어린 시절이다. 철의 남자(스탈린의 별명)도 어린 시절이 있고 가정이 있구나..

 스탈린이 살았던 이곳 고리의 사진과 어렸을 때의 모습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다음 전시실은 바로 스탈린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의 사진들과 2차 세계대전 때의 사진이 있다.(그 유명한 모스크바 군사퍼레이드도 있음)

 전시실 중앙에는 세계 각국에서 박물관으로 보내온 기념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꽤 많은 나라에서 스탈린 박물관에 기념품을 보낸 것으로 보아 그를 흠모하는 사람들도 많은 듯하다.

 스탈린은 그루지아인 아내가 죽자 러시아 아내를 맞아들였다. 특히 그루지아인 아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야곱은 비운의 남자이다.

 2차 세계대전시 야곱은 참전을 하지만 결국 독일군의 포로가 되고 만다. 야곱이 죽지 않고 포로가 된 것에 분노한 스탈린은 야곱의 가족을 모두 시베리아로 유형을 보내고..

 결국 야곱은 1945년 수용소에서 죽음을 당하게 되고, 스탈린은 종전 후에도 야곱의 가족을 철저하게 외면한다.

 또한 폴란드 역시 스탈린과는 악연을 맺고 있다. 처음 스탈린이 독일과 함께 폴란드를 침공해 나눠먹었을 때 1만3천명의 장교를 일방적으로 처형했으며, 독일 패전 직전 다 쓰러져가는 독일군과 바르샤바 시민군과의 내전을 방관함으로써 많은 바르샤바 시민들을 죽게 만들었다. 그저께 이곳에 왔던 폴란드인 역사 선생님이 어떤 마음을 가졌을지 대충 이해가 간다.

 마지막 전시실에는 스탈린이 죽었을 때 당시의 모습을 조각한 얼굴상이 있다. 평화로운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한 스탈린.. 과연 그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할까?

 박물관을 나와 얄타 회담 당시 스탈린이 탔던 기차를 잠시 보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박물관을 나오면서 한가지 궁굼한 것이 있었는데 이곳 사람들은 스탈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마침 영어가 유창한 이곳 청년이 유창한 영어로 말을 걸기에 한번 물어보았다.

 ‘나를 비롯한 젊은 사람들은 스탈린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아. 하지만 우리 할아버지는 스탈린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지금도 벽에다 스탈린 사진을 붙이고 있어’

 스탈린은 10만 명의 동족을 시베리아로 유형을 보내 죽게 한 민족적 원흉이자 그루지아에서 가장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이 된 영웅이기도 하다.

 고리시 시청에는 스탈린의 동상이 서있다. 하지만 특이한 것은 버스정류장 쪽으로 가다보면 얼마전 그루지아를 방문한 미국의 부시대통령과 그루지아 대통령이 손을 맞잡고 우의를 다지는 대형 사진이 있다.

 사실 그루지아는 소련이라는 제국을 만든 스탈린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이곳 지역에서 가장 친미성향을 지닌 국가이기도 하다. 2003년 시민혁명으로 독재자 세바르나제를 물러나게 했으며 지금은 민주화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나아가고 있다.

 특히 얼마전 부시의 방문 사진은 그루지아 어디를 가나 쉽게 볼 수 있으며 그루지아 국민들도 그루지아(러시아식)로 불리기보다 조지아(미국식)으로 불리기를 원한다.

 과거와 현재가 한 장소에 교차하는 곳이 바로 이곳 스탈린의 고향 Gori 이다.

 인심 좋은 아줌마가 차로 직접 버스정류장까지 태워다줘서 어렵지 않게 트빌리시로 돌아 올 수 있었다.

 트빌리시에서 줄곧 머물렀던 Nasi 게스트하우스에 왔다. 이제 정이 들어서 마치 집으로 돌아온 듯한 느낌마저 든다. 주인할머니 역시 손자를 맞아주시는 듯 정답게 맞아주신다.

 마침 3명의 이스라엘 여자 여행자가 있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들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가기 전에 여행을 하는 듯하다.

 한 여자애가

 ‘너 여자가 군대 간다는 것을 들어본 적 있니?’

 ‘아니.. 하지만 한국의 모든 남자들은 군대를 가.. 나 역시 2년 2개월 동안 군대에 있었어.’

 ‘세계 어느 곳에도 여자가 군대를 간다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우리는 가야해.. 왜 우리만 가야 하는 거지? 말도 안되..’

 역시 이스라엘인이라고 해서 군대 가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구나.. 세여행자는 자신의 그런 처지가 억울하다는 듯 나에게 말하고 있다. 군대 가기전의 심정은 어디나 같은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 남자들이 모두 군대를 가는 것도 스탈린의 영향이 큰 듯하군..

 오늘은 같은 방을 미국인 친구와 쓰게 되었다. 25살이고 노스캐롤라이나 대학(명문이군..)에 다니며 방학 기간을 이용해서 3개월 동안 여행을 한다고 한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와 통하는 게 많다. 여행스타일도 그렇고 여태까지 여행한 나라도 주로 아시아지역이다.

 그 친구에게 한국을 싸게 여행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그 친구도 미국을 싸게 여해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무엇보다 반가운 건 내가 어렸을 때 봤던 외화를 미국인 친구가 다 알고 있다. A특공대, 전격 Z작전, 맥가이버 등 어렸을 때 나를 설레이게 한 외화시리즈로 이야기를 했고, 또한 내가 초등학교 시절 열광적으로 받아들였던 미프로레스링(WWF) 이야기도 통했다. 빅보스, 워리어, 헐크호간, 짐더간, 달러맨 이야기가 통하는 인물을 만나다니^^

 내일은 그루지아를 잠시 떠나 아르메니아로 간다. 또 다른 나라로 간다는 설레임이 날 두근거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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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즈베키에서 머문 다음날.. 화창한 햇살이 붓으로 변한 듯 그림과 같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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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과 주변 풍겨이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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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에도 많은 야생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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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편 위에는 츠민다 교회가 보이고 오른쪽에는 카즈베키 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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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과 마을을 잇는 중요한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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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슬아슬하게 도로가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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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트빌리시로 가는길.. 작지만 아름다운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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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악도로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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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빌리시로 가는 중간에 위치한 휴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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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리의 스탈린 박물관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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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탈린 박물관 앞부분.. 안의 건물은 스탈린이 어렸을 때 살았던 집을 옮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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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 내부에는 스탈린에 관한 많은 자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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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얄타회담 때 스탈린이 타고 간 기차.. 이 기차에서 스탈린은 세계사 역사를 바꿀 생각들을 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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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시에서 가이드를 해주겠다던 친절한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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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시 중심에는 고리성이 우뚝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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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청 청사 앞에는 스탈린 동상이 우뚝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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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두베 터미널의 노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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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빌리시 시내 지하철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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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시 게스트 하우스에 가려면 건물 사이의 골목에 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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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날 아르메니아로 향하는 터미널에 가면서 찍은 사진.. 우뚝 선 교회와 저 멀리 나리카라 요새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