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지아 여행기 8 (여행에 있어서의 마지막 위기 05.8.15~16)

8월 15일(월)

 그루지아와 작별을 고하고 러시아로 가는 배를 타러 9시 반에 여객터미널로 가니.. 이런..

 이미 배표가 다 팔려서 표가 없다고 한다. 당연히 있을 줄 알고 미리 표를 사지 않았던 것이 후회된다. 이런.. 방심을 하다니..

 다음 배는 수요일에 있다. 이번 주 금요일인 19일 오후 5시에 모스크바에서 비행기를 타야 한다.

 수요일에 배를 타면 도착은 다음날 오전.. 물론 소치에서 모스크바까지 38시간이 걸리므로 시간적으로 딱 맞기는 하지만 만약 기차표를 구하지 못할 경우 난 그야말로 한국에 못 돌아 가게 된다. 특히 지금은 피서철이라 기차표를 구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처음 여행을 하면 이리저리 고민을 하며 어쩔 줄 몰라 하겠지만 난 나름대로는 여행에 닿고 닿은 몸.. 본능적으로 다시 트빌리시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금방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럴 줄 모르고 어제 맥주를 마시며 그루지아와 작별을 했다니..

 트빌리시로 향하는 미니버스는 오전 11시 반에 출발을 하고.. 날씨도 무척 더운데다 다시 돌아가는 길이라 버스 안에서 괴로웠다.

 무엇보다 괴로운 건 옆에 앉은 아줌마들이 바람이 세다며 자꾸 창문을 닫으라는 것이다. 창문을 닫자 버스안의 온도는 무지막지하게 올라가고.. 차마 아줌마들은 나에게 또 창문을 열라고 하지 않는다.^^(한번 당해봐라..)

 결국 30분이 지나 웃으며 다시 창문을 열었다.

 버스 안에는 트빌리시에서 대학을 다니는 3명의 대학생이 탔는데 그들은 나와 몇 마디를 하더니 그루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에서 어느 나라가 가장 좋은지 물어본다. 난 당연히 서비스 차원에서 그루지아가 원더풀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그들은 그런 나의 행동에 감명을 받은 듯 버스에서 내릴 때 손수 티셔츠에다 영어로 문구를 쓴 뒤 나에게 기념으로 준다.

 무려 8시간을 달려 트빌리시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비행기 표를 구하려고 여행사에 들렸다.

 그런데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 이미 19일까지의 모스크바행 이코노믹 클래스는 매진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오직 비즈니스 클래스만 남아있는데 그 가격이 390달러라고 한다.

 185달러면 갈 수 있는 곳을 390달러에.. 그것도 고물비행기로 유명한 시베리아 항공..
다른 여행사에 가서 알아보니 역시 같은 결론 모든 항공사의 모스크바행 이코노믹 클래스 표는 다 팔렸다고 한다.

 아.. 여행 막판에 이렇게 태클이 걸릴 줄이야.. 가지고 있는 돈이 이제 얼마 안 남았으므로 비즈니스를 이용할 경우 카드를 써야 하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모스크바에서 카드를 잃어버렸을 때 다시 공수해온 것이 잘했다는 생각은 들지만..

 다시 나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오니 주인 할머니께서 반기신다. 벌써 이곳도 4번째이군..

 이곳에서 재미있는 오스트리아 아저씨를 만났다. 이름은 발터이고 지금 코카서스를 여행 중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얼마 전에 한국을 1달 동안 여행을 했다고 한다. 특히 나와 처음 마주쳤을 때 마침 ‘Korea'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우리는 한국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발터 아저씨는 한국 예찬론자이다. 특히 한국 사람의 친절성과 질서의식을 높이 샀고, 우리의 문화에 대해서도 무척 흥미 있어 했다.

 특히 우리에게는 특이하게 보이지 않는 우리의 도시모습도 발터 아저씨는 특이하다고 했다. 한국에 새로운 도시에 사는 전통적인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쓴다.

 발터 아저씨에게 북한 여행을 한 친구에 대해들을 수 있었는데 지금 유럽 사람들은 북한 여행이 가능하지만 매일 100달러를 지불하고, 2명의 감시원이 붙은 상태의 여행이기 때문에 북한 여행에 관심이 없다고 한다.

 발터 아저씨는 처음 서울~단양~안동~경주~부산~목포~제주 코스를 여행했다고 하면서 우리에게는 일상적인 모습들이 발터 아저씨에게는 무척 인상적인 모습인가보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질서도 안 지키고, 다른 나라에 비해 지저분하고 여행하기 어려운 곳이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우리의 모습은 서양인들에게 깨끗함과 편안함의 모습으로 다가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발터 아저씨는 46살이고, 95개국을 여행했다고 한다. 역시나.. 아직 결혼은 안 했다고 한다.

 나 역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에 대해 물어봤고, 또한 예전의 오스트리아는 아주 컸었다고 이야기 하니, 아저씨는 지도를 보여주며 오스트리아 최대 영토를 설명해준다.

 오스트리아하면 사운드 오브 뮤직이 생각난다고 하니 그건 오직 헐리우드 영화일 뿐이라며 일축한다.(나의 실수~)

 숙소에서 처음 나와 같은 방을 쓴 미국인 여행자를 다시 만날 수 있었고, 내 옆 침대에 26살 독일 청년과 친해졌다.

 이번 여행처럼 한국 사람을 만나기가 힘든 적도 없기는 하지만 반대로 이번 여행처럼 서양인들과 어울리는 적도 없었던 것 같다. 다양하고 많은 서양인들과 접촉을 하고, 그들 역시 이곳에는 동양인 여행자가 거의 없기 때문에 같은 서양 여행자로 취급을 해준다.

 한가지 나 자신에 대해 아쉬운 것이 있다면 내가 서양인들에 비해서는 영어가 매우 취약하다는 것이다. 나를 같은 여행자로 취급하는 대신 대화를 할 때 그들의 평소 스피드로 나에게 영어를 구사하는데... 좀 힘들 때가 있다. 언제 한번 영어를 본격적으로 배워야겠다는 교훈을 이번 여행에서 얻었다.

 음.. 그건 그렇고.. 어떻게 한담.. 19일까지는 반드시 모스크바로 가야 하는데..

 일단 침대에 누워서 세가지 방법을 생각했다.

 일단은 모스크바로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고 가는 것.. 제일 편한 방법이긴 했지만 문제는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고 무려 200달러를 앉아서 버려야 한다는 것. 이 방법은 일단 두고 보고..

 두 번째는 내일 다시 바투미로 가 수요일에 소치로 향하는 배를 타고 러시아로 간 뒤 다시 모스크바로 향하는 방법.. 제일 저렴하기는 하지만 만약 기차를 구하지 못 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이 주어진다.

 휴.. 이럴 때 내가 학생이면 좋았을 텐데 대학시절 예의상 개학 후 2주일 정도 수업을 빠졌을 때가 그립다. 그때는 교수님들도 의례히 내가 여행을 간 것을 알고 결석체크도 안 하셨는데..

 지금은 31명의 아이들이 다음 주 월요일에 나를 만나기를 고대하는 상황이다. 사실 여행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많은 메일이 왔지만 한글을 쓸 수 없어 답장을 해주지 못한 게 미안하다. 아이들도 방학이 슬슬 지겨워지는 모양이다. 나도 아이들이 그립다.

 음.. 일단..

 세 번째 방법은 모스크바 이외에 다른 곳으로 날아가 그곳에서 기차를 타고 모스크바로 향하는 것이다.

 네 번째는 내일 트빌리시 국제공항으로 가서 모스크바행 비행기가 떠나기 직전 캔슬을 내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다.

 아.. 네 번째.. 아무래도 4개의 비행사가 운행을 하는 만큼 1000명 이상이 하루 동안 모스크바로 간다는 이야기이고, 그중에서 이륙직전 사정이 생겨 캔슬을 내는 사람이 분명히 생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다.. 일단 내일 아침에 공항으로 가는 것이다.

 휴... 여행 막판.. 또 하나의 시련이지만 최대한 잘 헤쳐 나가야겠다. 곧 있으면 꿈에도 그리던 한국으로 가지 않는가..

 

8월 16일(화)

 아침 8시에 일어나 공항으로 향했다. 지하철을 타고 루스타벨리 역으로 간 후 친절한 경찰관과 군인에게 물어서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를 찾을 수 있었다. 론니에는 대부분의 여행자는 택시를 이용한다고 쓰여 있는데 그것보다 37번 버스(0.5라리)를 타면 도심에서 15킬로 떨어진 공항으로 갈 수 있다.

 일단 공항에 가자마자 실망을 했다. 아무리 작은 나라지만 국제공항 분위기가 안 난다.
특히 항공사 부스는 대부분 비어있어서 사람들이 캔슬을 내더라도 곧바로 표를 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쩔 수 없이 비즈니스 클래스를 사야 하나.. 에라이.. 그냥 곧바로 비즈니스 클래스를 사고 편하게 모스크바로 가자.

 비즈니스 클래스라도 사기 위해 시베리아 항공 부스로 갔다.

 마지막으로 이코노믹 클래스를 사기 위한 노력으로 직원에게 물어보니 직원은 컴퓨터로 검색을 한 후 오늘, 내일(17일)은 이미 표가 동이 났다고 한다.

 그럼 18일은.. 직원은 컴퓨터를 잠시 검색했다.

 그런데 이코노믹 클래스가 하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 캔슬을 냈구나.. 아싸~ 예상 적중..

 결국 214달러에 모스크바행 그루지아 에어라인 이코노믹 클래스 표를 구할 수 있었다. 18일이면 내가 가장 원하던 날짜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시베리아 항공보다 30달러 정도 비싸기는 하지만 비즈니스 클래스에 비해 175달러 저렴하다. 역시.. 노력하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아마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코노믹 클래스를 기다릴 텐데 내가 좋은 타이밍에 표를 알아봤던 것 같다.

 음.. 이제 2일이 비는데..

 그럼 마지막으로 내가 가보지 못한 다비드 가레자(Davit Gareja)에 가기로 했다. 다비드 가레자는 유명한 사원으로 론니에도 꼭 가보라는 표시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일단 디두베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가르다바니(Gardabani)행 버스를 탔다. 이제 지하철을 타고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다른 도시로 향하는 버스를 찾은 것은 일도 아니다.

 1시간에 걸려 가르다바니(2라리)에 가니 바로 앞에 있을 줄 알았던 다비드 가레자가 40킬로나 더 떨어져 있고, 택시만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택시 기사가 다가와 50라리(28달러)에 간다고 말하는 순간 다비드 가레자로 가는 것은 포기.. 이미 사원과 교회는 볼데로 본 상황

 다시 트빌리시에 돌아와 나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게스트하우스에 돌아오니 많은 서양인 뉴페이스들이 보였다. 특히 나와 같은 방을 쓰게 된 독일인 할머니 3명과 이야기를 했는데 오늘 여행을 시작했다고 한다.

 할머니들에게 여행 코스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니 고마워한다. 특히 한 할머니가 간호사라고 이야기 하자 난 1970년대 많은 한국 간호사들이 독일로 건너갔고, 한국은 그들이 송금하는 외화로 발전 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 했다.

 간호사 할머니도 자신의 동료 중에 한국인이 많았다고 한다.

 사실 우리가 이토록 발전을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우리 스스로의 노력이 크기는 했지만 외부적인 요인도 컸다.

 한때 우리나라 재정의 60%를 미국이 지원해줄 정도로 취약했지만 베트남 전쟁과 때마침 많은 인력이 필요한 서독의 경제 성장 또한 자본주의 공산주의 대치 상황에서의 국제 정세도 우리에게는 성장 할 수 있는 요인이었다.

 특히 독일에 대해서는 난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발전하고자 할 때 가장 사심 없이 우리를 도와준 나라가 바로 독일인 것이다.

 아마도 독일 입장에서는 2차 대전 패전 후 눈부신 경제 성장을 했지만 나찌 시절 다른 나라를 괴롭혔던 역사적 사실이 그들 스스로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했으리라..

 때문에 독일은 다른 나라에 대해 경제적인 지원을 많이 해줬고, 특히 같은 분단국가이고 스스로 일어서려고 했던 노력이 보였던 한국에 대해서는 조금 더 특별하게 생각을 했으리라.

 1970년대 시절 독일은 가장 쉽게 우리나라에 돈을 지원하고 빌려줬으며 특히 우리가 역동적으로 도약 할 수 있었던 88서울 올림픽 또한 독일 회사인 아디다스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기에 유치가 가능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도 미국에 가려면 비자가 필요하지만 독일을 비롯한 유럽은 우리가 가난한 시절이던 1970년대에 이미 무비자로 유럽을 여행할 수 있었으며, 지금처럼 우리나라가 전자 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한국 학생들이 독일로 건너가 기계와 전자 관련 공부를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우리나라 역시 2006년 독일에서 월드컵이 유치 될 수 있게 지원을 아끼지 않은 사실을 보아 독일과 우리는 좋은 인연을 가지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독일인 할머니에게 이 같은 사실을 이야기 하며 많은 한국인들이 독일에 대해 고마워한다고 말했다.

 생각해보니 이제 우리가 예전의 독일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사실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에서는 한국을 경제 발전의 모델로 삼고 있다.

 사실 독일과 일본은 미국에 맞서 싸울 정도의 국력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시작했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경우는 해방 후 아무것도 없었다.

 또한 있던 것 또한 6.25 직후 완전히 부서지고 만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대부분의 서양 학자들은 한국은 이미 가망이 없고, 다시는 일어서기 힘든 나라라고 진단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맨주먹으로 시작한 경제 발전.. 1965년 아프리카의 가나와 비슷한 수준의 GNP가 지금은 15배로 차이가 날 정도로 발전했다.

 참고로 처음 경제 성장을 시작할 때 모델로 삼았던 나라가 파키스탄이었다는 사실을 과연 몇 사람이나 알고 있을까?

 지금의 11위 경제 대국으로 성장 할 수 있는 요인은 바로 교육이다. 1960년대 아무리 못 살았던 시절이라도 산골짜기에는 학교가 있었고 도시 아이들과 같은 교육을 받았다.

 입시 전쟁이라는 부작용을 낳기는 했지만 교육은 우리를 성장시킨 원동력이 된 것은 틀림없다.

 교육은 바로 우리에게 경제 발전 못지않은 성과.. 바로 민주화를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많은 학생들이 공부를 하면서 독재 정권의 부당함을 깨닫게 되었고, 그 힘이 바로 우리의 민주화를 앞당기는 원동력이 되었다.

 사실 아시아에서 우리나라만큼 민주화가 된 나라는 없다고 본다.

 일본? 표면적으로는 민주주의지만 거의 자민당 독재 아닌가.. 특히 의회가 마음에 안 든다고 의회를 해산 할 수 있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간혹 지금 우리나라에는 박정희와 같은 카리스마적인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나라 경제를 크게 일으켜 세운 것은 맞다. 하지만 그 당시는 지금과 상황이 다르다.

 당시 우리 국민들은 해방 후 처음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접했고, 마치 주인 잃은 양처럼 아무런 판단을 못하고 우왕좌왕 할 때였다.

 누군가 애국심이 투철한 강력한 지도자가 나와 방향을 정해주고, 국민들은 그 방향을 향해 우루루 돌진했던 그 시절이 것이 바로 우리의 경제가 발전 할 수 있게 된 힘이었다.

 지금은? 지금 우리 국민은 개인 스스로가 판단을 하고 자기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시대이다. 누군가 방향을 정해주지 않아도 자신의 삶과 욕심을 위해 개인적으로 발전을 도모하게 하고 그게 바로 지금의 성장이다.

 예를 들면 1970년대에는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학생들을 외국으로 유학을 보냈지만 지금은 개인 스스로가 판단을 해서 자신의 삶을 위해 스스로 유학을 가지 않는가..

 음.. 독일인 할머니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야기가 잠시 샜네.. 이제 한마디만..

 개인적으로 앞으로 중국이 그런 딜레마에 빠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강력한 공산당이 모든 경제 정책을 결정하고 국민들을 이끌지만 어느 정도 발전이 되었을 때 반드시 민주화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 민주화가 되는 과정에서 각지에서 독립요구가 거세지고 오히려 중국이 분열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이 된다.

 그러한 딜레마를 이미 1989년 천안문 사태 때 경험했지만 그때는 중국 경제가 막 일어설 때이다. 개인적으로 2008년 이후 중국이 크게 변화할 것이라는 판단을 한다.

 휴.. 오늘 별로 한일이 없으니 이렇게 쓸데 없는 이야기만..^^(죄송~)

 나시 게스트하우스의 특징은 매일 새로운 얼굴로 숙소가 채워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발터 아저씨가 돌아와 즐겁게 나와 이야기를 하고.. 좀 있으니 나와 개고기 논쟁을 했던 이탈리아 인이 보인다. 우리는 서먹서먹하게 인사를 했다.

 발터 아저씨와 새로 온 오스트리아 22살 청년과 함께 터키인 식당에 가서 같이 저녁(8라리)을 하고, 커피숍에서 커피한잔(2.3라리)을 했다.

 홀로 동양인인 나를 위해 챙겨주는 발터 아저씨가 정말 고맙다. 발터 아저씨는 한국에 대해 딱 하나만 싫어한다. 바로 김치이다.

 언제 한번 발터아저씨가 한국에 오면 꼭 김치를 대접해야 겠다.

 이제 모레인 18일에 이곳에서 비행기를 타고 모스크바로 가고, 19일 오후 5시에는 베트남 하노이행 비행기를 탄다.

 하노이에 새벽 5시에 도착하면 잠시 베트남에 입국해 하루를 보내다 같은 날 24시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20일 새벽 6시 반에 도착한다. 그리고 다음날인 21일은 개학^^ 아이들이 정말 보고 싶다.

 개학을 하면 아이들에게 이번 여행에 있었던 에피소드와 사진.. 그리고 느꼈던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특히 난 아이들에게 대학생이 되면 꼭 여행을 하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여행만큼 좋은 공부는 없기 때문이다. 방학 전 아이들에게 가르친 나의 여행관..

한 학생 : ‘선생님 왜 여행을 하나요?’
나 : ‘애들아... 선생님은 여행하는 여행지가 교실이고, 여행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이 바로 선생님이고, 그 사람과 부대끼며 느끼는 많은 것들이 바로 선생님의 공부란다. 때문에 선생님은 여행을 하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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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빌리시로 가는 도로에 전시된 각종 그릇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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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멀리 바투미가 보인다. 미니버스에 탄 채로 찍어서 그런지 사진이 흐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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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안에서 친해진 그루지아 대학생들.. 이들은 티셔츠를 기념으로 나에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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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빌리시의 한 버스 터미널.. 정말 지저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