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 여행기 8 타슈켄트(스위스 여행자, 난생 처음 본 오페라, 어렵게 받은 투르크맨 비자 06.1.14~16)

1월 14일(토)

 아침에 한국인 호텔인 ‘로뎀’에서 나왔다. 잠시 다른 숙소로 옮기기 위해서이다.

 숙소에 불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 한곳에만 있다 보니 퍼지는 느낌이 들었고, 무엇보다 다른 외국인 여행자들을 만나고 싶어서이다.

 숙소에서 버스를 타고 타슈켄트역으로 간 다음 지하철을 타고 촐수바자르로 갔다. 며칠 만에 타슈켄트의 대중교통을 거리낌 없이 이용하는 내 모습이 마치 카멜레온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숙소는 어제 투르크맨 대사관 앞에서 만났던 프랑스 여행자가 소개해준 Gulnara 게스트하우스이다.

 비수기라 그런지 방 하나를 빼놓고 모든 방을 공사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나있는 방도 스위스인 여행자가 3일 동안 머문다고 한다.

 그러면서 2층 거실을 방 삼아 지내는 건 어떤지 물어본다. 사람이 드나들지 않고 따뜻하다는 말에 승낙했다. 대신 하루 15달러에서 10달러를 받겠다고 한다.

 하루 종일 노트북의 게임으로 시간을 보냈다. 여행지에서의 하루하루는 무척 소중하고 그 어느 때보다 바쁜 시간이기는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휴.. 겨우 하루 지나갔다. 이렇게 한가하게 시간 떼우기는 정말로 오래간만이다.

 여행기 쓰기, 음악듣기, 사진저장을 포함해서 노트북의 또 다른 매력이 빛난 하루였다.

 

1월 15일(일)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하는 아침식사를 하면서 스위스인 커플과 친해졌다. 그들은 9개월 동안 일본에서 활동하고 스위스로 돌아가는 여정이다. 26살의 잘생긴 청년 안드레와 28살의 누님 아리나이다.

 일본에서 출발을 하면서 한국~중국~카자흐스탄을 거쳐 이곳까지 왔는데 원래는 이란비자를 받아 투르크맨을 통과하려고 했지만 중국에서 5주, 이곳에서 계속 기다려도 이란비자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다음주 화요일 비행기를 타고 이스탄불(편도 450달러)로 간다고 한다.

 나처럼 비자 때문에 고생하는 여행자이지만 사정이 더 딱하다.

 그들은 한국에 대해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특히 경주를 방문했을 때에는 놀라움에 연속이라고 한다.

 많은 서양 배낭족들이 한국 여행을 꺼리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비싼 물가인데 그것은 문제가 안 되는지 물어보았다.

 안드레는 일본보다 싸고 볼 것도 많은 곳이 한국이라고 대답한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아무래도 배낭여행자들을 위한 인프라가 부족한 것이다.

 우리나라정부 특히 문화관광부에서는 매년 많은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서 거액의 돈을 들여 홍보를 하고 거한 호텔을 짓는 현실이다.

 하지만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한국에는 배낭족들이 거의 오지 않는 편이다.

 과연 왜 그럴까?

 우리 정부는 한가지 크게 착각하는 것이 있다. 관광 인프라나 홍보를 거액을 들고 관광하러 오는 여행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여행지가 있으면 제일 먼저 그 지역을 여행하는 것은 젊은 배낭여행자들이다. 배낭여행자들에 의해서 그 지역이 알려지면 서서히 나이든 사람을 중심으로 투어 관광이 시작되고, 나아가서는 호화 관광이 이어지는 것이다.

 서울과 경주를 제외하고 이곳 중앙아시아에서도 흔한 게스트하우스가 거의 없는 실정이고, 관광안내소 역시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또한 영어로 된 관광홍보책자에는 오직 비싼 호텔과 비싼 음식점만이 소개되어 있다. 많은 배낭여행객들이 원하는 싼 숙소, 값싸면서도 좋은 음식에 대한 내용은 없다.

 내가 여행을 하면서 쭉 느낀 것은 우리나라처럼 정말로 좋은 관광자원.. 나아가 세계적인 여행지의 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안드레와 아리나와 무려 2시간 동안 식사를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한국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한다. 안드레는 저녁 식사도 함께 하자고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먼저 해줘서 고마울 뿐이다.

 오늘은 일요일이고 해서 지난번 시간에 쫓겨서 지나쳤던 서커스 장으로 갔다. 밖을 나서니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사막지역이기는 하지만 생각보다 자주 눈이 내린다.

 눈을 헤치며 서커스장으로 가니 텅텅 비어 있다. 어라? 오늘 일요일 아니야? 알고 보니 서커스는 매주 목요일 12시부터 열린다고 한다. 왜 토, 일요일이 아니라 목요일이지? 궁굼 했지만 더 이상 알 도리가 없다.

 저녁에는 타슈켄트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하철역인 Kosmonavtlar역에서 내려 오페라 극장으로 향했다. 하루 종일 눈이 내리는 바람에 가로수에는 눈이 수북히 쌓이고 지나다니는 사람과 차들이 없는 낭만적인 분위기이다. 이런 길은 연인들이 지나가야 하는 길인데..

 지난 5일 타슈켄트 탐방을 할 때 잠깐 들렸던 Alisher Navoi Opera 극장은 중앙아시아에서 손꼽힐 만큼 아름다운 건물이다.

 오페라 극장은 오페라나 발레, 오케스트라 협주가 이어지는데 매일 그 프로그램이 바뀐다.

 주중에는 주로 오후 6시에 공연이 시작되고, 주말에는 오후 2~3시와 5~6시 두 차례 이어진다.

 오늘 공연은 오후 5시이다. 날짜별로 공연 일정을 알려주는 포스터가 있기는 한데 러시아어를 몰라 무작정 들어갔다.

 공연 티켓은 좌석에 따라서 300숨(270원)부터 1500숨(1200원)이 있는데 여러분 같으면 어느 티켓을 살 것인가?

 당연히 제일 비싼 티켓(1500숨)을 사고 오페라 극장으로 들어갔다. 극장 안에는 외투를 맡기는 코너도 마련되어 있다.

 극장 안은 러시아 전통양식의 건축으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화려한 내관을 뒤로한 채 좌석에 앉았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오페라를 이곳 우즈벡에서 볼 줄은 상상도 못했다. 티켓 가격을 보아서는 진짜 오페라라기보다는 ‘대충 연극을 흉내 내는 선에서 공연 하겠지’ 라고 생각했다. 공연시작직전까지도 좌석이 반이 안차는 것을 봐서 나의 생각은 더욱 굳어졌다.

 세상에나.. 이럴 수가.. 나의 선입견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는 그런 공연이다.

 말로만 듣던 전통 러시아식의 화려한 오페라이다.

 화려한 오케스트라에 배우들만 약 70명 가까이 되고 스텝까지 합하면 110명이 넘는다.

 발성으로만 공연을 하는 신들린 듯한 배우들의 연기와, 끊임없이 변화하는 화려한 무대.. 그리고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이 계속 이어지는 그야말로 전통 오페라이다.

 이런 훌륭한 공연을 이곳에서 보게 되다니..

 얼마 전 서울에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공연단이 와서 ‘니벨룽겐의 반지’를 공연했다. 그때 티켓 가격이 25만원까지 했던 걸로 알고 있고 그것도 2시간씩 4막에 걸쳐서 따로따로 공연했다. 즉 모든 공연을 보려면 100만원을 투자해야지 볼 수 있는 공연이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은 수준의 공연을 이곳에서는 1000원이 조금 넘는 돈으로 볼 수 있다. 만약 내가 타슈켄트에 장기간 머물게 된다면 매일 저녁마다 이곳을 찾을 것이다.

 물론 모든 공연이 러시아어로 되어 있어서 알아듣기는 힘들지만 오케스트라의 클래식 협주 감상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공연이다.

 운 좋게도 내 옆 좌석에는 영어를 조금 할 줄 아는 할아버지가 앉아 계셨다. 할아버지는 공연 내용에 대해 설명해 주는데 지금 보는 오페라 제목은 러시아 근대문학의 아버지인 푸쉬킨이 쓴 ‘라보’이고 오페라 협주는 그 유명한 차이코프스키의 곡들이라고 한다.

 러시아에서 내노라하는 두 거장을 이렇게 타슈켄트에서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다.

 마침 같은 게스트하우스에 있는 스위스 커플을 오페라 극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들도 오페라를 보고 무척 감동을 받았다.

 우리 셋은 분위기가 괜찮은 레스토랑에 가서 같이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눴는데 스위스의 역사와 유명 인물, 그리고 스위스에 대해 잡다한 지식들을 늘어놓으니 그들은 깜짝 놀랜다.

 사실 서양인 여행자들을 만나면서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바로 어린 시절 수십 번 반복해서 보았던 ‘먼나라 이웃나라’라는 책과 ‘만화 세계사’이다.

 학교에서 배웠던 지루한 역사 연표던가 암기위주의 역사는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진지 오래이다.

 우리나라 역사 교육이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 몸소 체험하는 순간이다.

 안드레와 아리나는 일본에서 오랫동안 지내서 그런지 한국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물어본다. 특히 아리나는 나와 같은 초등학교 선생님이라 교육에 대해 많은 대화를 했다. 아리나는 한국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현장학습 프로그램들에 대해서 부러워했다.

 안드레는 한국의 술 문화에 대해 물어 본다.

 서양인인 그들에게 난 한국의 술 문화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술자리는 평소에 불만이 있는 친구나 윗사람에게 술을 한잔 건네면서 그 불만을 말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그리고 친구끼리 싸워도 술을 마시면서 오해를 푸는 경우가 많다고 이야기했고, 때때로 사랑을 고백 할 때도 유용한 문화라고 소개했다.(너무 좋은 쪽만 이야기했나?)

 아리나와 안드레는 개인적인 유럽 사람들에게는 생각 할 수 없는 좋은 문화라며 무척 부러워한다.(이렇게 한국의 술 문화를 합리화시키다니..)

 사실 오늘은 할 것 없이 시간만 떼우는 날이 될 줄 알았지만 난생 처음으로 제대로 된 오페라를 관람했고, 스위스인 여행자들과 진솔하게 대화하는 알찬 하루가 되었다.

 

1월 16일(월)

 오늘 가장 중요한 일은 오후 5시에 투르크맨대사관으로 가서 비자를 받아야 한다. 뭐.. 여태까지 대사관의 행태를 보아 오늘도 못 받을 가능성이 있다.

 Gulnara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아침식사를 제공하는데 제법 먹을 만하다.

 스위스 여행자들과 대화를 하면서 식사를 하니 또 2시간이 훌쩍 넘긴다. 안드레는 나에게 이메일 주소를 교환하자고 하면서 다시한번 한국을 방문할 때 만나자고 하며 스위스에 오게 되면 꼭 연락을 달라고 한다.

 스위스 여행자와 헤어지고 나도 밖으로 나서 미처 못 본 타슈켄트의 명소들을 찾아 나섰다.

 촐수바자르에서 북쪽으로 꺽어 바라크한(Barak Khan)메드레사와 체리셰이크(Telyshyakh)모스크를 보기 위해서이다.

 비교적 허름한 집들이 이어져 있는 구시가지를 2킬로 정도 걸으니 거대한 바라크 한 메드레사가 나타났다.

 1531년에 창건된 이슬람교의 본청으로서 중앙아시아의 이슬람에 관한 중요한 자료를 보관하고 있다. 중앙아시아의 이슬람교에서는 중요한 시설이지만 생각보다 허름하고 외진 곳에 있다.

 바로 동쪽에 위치한 체리셰이크 모스크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코란(이슬람교 경전으로 사실은 쿠란이라고 부름)을 보관하고 있다.

 타슈켄트에서 가장 유명한 이슬람 사원이기는 하지만 바라크한 메드레사처럼 허름하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해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모스크의 상징성을 알 수 있었다.

 모스크 별관에는 여러 코란들이 보관되어 있는데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이 7세기에 만들어진 오스만 코란이다.

 최초의 코란은 4개로 필사(손으로 쓰면서 복사)되어 중요 이슬람 국가에 보내졌는데 정복자 티무르가 그 중에 한 본을 사마르칸트로 가져왔다. 러시아가 이곳을 지배했을 때 코란을 샹트페테르부르크로 가져갔다가 1989년 다시 이곳 모스크로 반환을 했다고 한다.

 세계에서 오래된 코란이라는 상징성 못지않게 격변의 역사를 직접 겪은 산 증인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볼 수가 없다. 별관 관리인에게 잠시만 코란을 볼 수 없는지 물어보니 정해진 시간 이외에 문을 열게 되면 경보기가 울린다며 곤란하다고 한다.

 아쉽지만 별관안의 수많은 코란들을 볼 수 있었다.

 오후 5시에는 투르크맨 대사관으로 갔다. 제발 오늘만은 비자를 받았으면..

 대사관 앞에서 21살 고려인 청년을 만났다. 한국말은 전혀 하지 못했지만 음식 이름만은 아직도 한국말이 통했다.

 김치, 떡, 비빔밥 등이 여전히 통했고 국수를 국시, 두부를 두비라고 부르기는 했지만 지금 한국에서 부르는 호칭들과 거의 비슷했다.

 투르크맨 대사관은 오전 11시에서 오후 1시까지 열었다가 다시 오후 5시에서 6시까지 여는데 주로 비자 발급 업무를 한다.

 오후 5시에 정확히 여는 것이 아니라 20분쯤 늦게 열었다. 다행히 비자(31달러)는 발급 받았지만 문제는 날짜이다. 19일에 들어갈 것이라고 해도 고집스러운 대사는 무조건 21일을 하라고 한다.

 왜 날짜를 제한하는 건지 이해가 안가지만 그래도 발급받았으니까 다행이다. 만약 다시한번 1주일 뒤에 오라고 했으면 이란과 투르크맨을 포기하고 카자흐스탄으로 발길을 돌릴려고 했다.

 결과적으로 우즈벡에서의 일정이 2일이나 늘어났다. 덕분에 좀 더 여유 있게 여행할 수 있기는 하다.

 다시 로뎀으로 돌아왔다. 로뎀은 이제 집이나 마찬가지인 듯하다. 친절한 주인아저씨가 맞아 주셨다.

 로뎀에서는 다양한 한국음식들을 먹을 수 있는데 육개장, 설렁탕이 4500숨(3800원)선이고, 백반, 삼겹살, 갈비 등이 6000숨(5000원)정도로 저렴한 편이다.

 실로 오랜만에 삼겹살을 맞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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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커스는 볼 수 없었지만 내부 시설은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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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에 쌓인 서커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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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페라하우스 1층.. 사진은 어둡지만 내부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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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겉옷은 이곳에 보관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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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급스러운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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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객 대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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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장에는 아름다운 상들리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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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객석은 3층까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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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전 오케스트라가 연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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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층에는 아름다운 예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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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스텝 110여명이 동원된 오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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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이 끝나고 커튼 콜~ 맨 왼쪽의 노신사는 이작품 연출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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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위스인 여행자 안드레와 아리나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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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촐수 바자르 근처의 쿠켈다쉬(Kukeldash)메드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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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한번 찾아간 주마(Juma) 모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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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슈켄트 북쪽의 멋드러진 건물.. 정확한 용도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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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아시아 이슬람 본청인 바라크한(Barak Khan) 메드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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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드레사안에는 아름다운 정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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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에서 바라 본 바라크한 메드레사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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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리셰이크(Telyshyakh)모스크 별관.. 이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코란이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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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종류의 코란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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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층에는 학습실이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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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코란은 못 봤지만 그 내용이 적힌 필사본(사진)은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