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 여행기 6 사마르칸트 (화려한 서역의 중심지 06.1.11)

1월 11일(수)

 12시간 이상을 운행한 버스가 사마르칸트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6시 30분..

 아직 칠흙 같은 어둠에 함박눈이 내리고 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도대체 뭘 해야 하지?

 론니의 도시지도에는 사마르칸트 시내까지 무려 5Km나 떨어져 있다.

 이럴 때는 같은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을 따라 시내버스를 타면 된다. 역시 정류장에서 기다리다보니 버스 한대가 달려온다.

 200숨을 내고 사마르칸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레기스탄(Ragistan) 근처까지 갈 수 있었다.
레기스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배낭여행족의 숙소인 Bahodir B&B를 찾았다. 숙소에 들어가서 짐을 풀고 곧바로 세면을 했다. 3일 동안 제대로 세면조차 못했던 것이다.

 방에서 잠시 쉬다가 밖으로 나섰다.

 피곤하기는 하지만 내일은 타슈켄트로 가야하기에 오늘 사마르칸트를 다 둘러봐야한다. 

 사마르칸트는 부하라와 더불어 가장 번창한 오아시스도시이다. 사마르칸트라는 뜻은 푸른도시라는 뜻이며 2500년 이상이 되었지만 그 이전부터 사람이 와서 살았다.

 기원전 329년에 알렉산더 대왕이 이곳 사마르칸트까지 진입을 했었다. 덕분에 헬레니즘문화가 이곳으로 전파되었고 불을 섬기는 조로아스터교가 번영하였다.

 8세기경에는 아랍 제국인 사라센 제국이 침입을 하였고 그때부터 이슬람교가 이곳으로 전파 되었다.
1220년에는 칭기스칸이 이슬람 왕국인 호라즘을 무너트리고 사마르칸트를 차지한다. 14세기 15세기에는 티무르 제국의 수도로 실크로드의 중심도시로 번영한다.

 이처럼 숱한 시대적 영웅이 거쳐간 사마르칸트는 실크로드의 중심도시로서 무역이 발달하고 동서 문화의 교류지로서 ‘동방의 로마’, ‘동방의 이슬람교 세계의 진주’라고 불린다.

 자연스럽게 학술, 문화의 중심도시가 되었으며 울르그벡, 나보이, 루다키등 유명한 시인, 과학자들이 활동을 한다.

 11시임에도 불구하고 눈은 계속 오고 날은 어두웠다. 찬란한 사마르칸트의 문화유산을 사진에 담기 힘든 날씨다.

 제일 먼저 간 곳은 역사박물관이지만 오늘은 휴관을 한다며 내일 오라고 한다.

 다음은 사마르칸드의 상징으로 사진으로도 자주 볼 수 있었던 레기스탄이다.

 레기스탄은 광장이름이다. 모래 광장이라는 뜻이며 국가의 중요 행사가 열린 곳이다. 광장을 중심으로 3개의 메드레사(건물)가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광장으로 들어서려면 입장료를 내야 하는데 3500숨(3달러)나 한다.

 입장료를 내고 가까운 서쪽 건물로 들어섰다.

 Ulughbek 메드레세는 3개의 건물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티무르의 손자 울르벡에 의해 1420년에 완공되었다.

 메드레세에 들어서니 지구본을 중심으로 다섯명의 학자들의 동상이 인상적이다. 이 메드레세는 100명의 학생이 기거하면서 공부하던 학교였다. 국가 차원에서 학문과 과학을 장려한 것을 알 수 있었다.

 학술의 중심지였던 이곳엔 지금 각방마다 상점이 들어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기념품을 팔고 있다.

 중앙 메드레세로 이동을 하려고 하자 우즈벡 경찰이 나에게 접근하더니 유창한 영어로 미나렛(첨탑)에 직접 올라가 보라고 한다.

 이곳 유적지와 사마르칸트의 유적군을 보고 싶어 올라가겠다고 했더니 3000숨을 내라고 한다. 1000숨을 내고 미나렛으로 올라가니 눈에 쌓인 사마르칸트 시내가 한눈에 보였다. 미나렛에서 바로 동쪽 건물인 Sher Dor 메드레세 현관의 사자그림이 보인다.

 다음에 간 곳은 중앙에 위치한 Tilla-Kari 메드레세는 화려한 내부가 인상적이다. 화려한 금색 장식으로 되어 있다. 특히 천장은 아름다운 도자기를 보는듯 했다.

 마지막으로 동쪽의 Sher Dor메드레세는 티무르 제국 이후 이곳의 영주에 의해서 건축이 되었는데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내부에는 인간과 동물의 모습을 닮은 그림을 내부 장식으로 꾸몄다고 한다.

 원래 이슬람교는 우상 숭배를 부정하기 때문에 사람이나 동물을 그려 넣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만 이 영주는 자신의 권력이 종교를 뛰어넘는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었나 보다. 때문에 끊임없이 논란이 되었다고 한다.

 다음에는 남쪽의 Guri Amir 마우솔레움(무덤)으로 향했다. 아침을 먹지 않았기에 길거리에서 만두와 라그만(국수)를 사먹으니 제법 먹을 만하다.

 Guri Amir 마우솔레움은 우즈벡의 영웅 티무르 왕의 무덤으로 울루그벡의 유해를 비롯한 일족의 무덤이다.

 입장료(2300숨)을 내고 들어가니 무덤들이 보였는데 티무르는 평소에 스승을 존중하여 자신의 묘보다 스승의 묘를 더 크게 만들었다고 한다.

 시대의 영웅도 스승을 존경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론니에는 1941년 한 소련의 학자가 티무르 무덤과 울루벡의 무덤의 유해를 조사를 했다고 하며, 티무르는 키가 1.7m이고 25살에 전쟁에서 부상을 입고 오른쪽 다리와 팔이 불편했다고 한다. 티무르의 손자인 울르그벡은 목이 잘려 있는 것을 보아 그의 최후가 불행했음을 반증한다.

 티무르와의 만남을 끝내고 방향을 돌려 다시 레기스탄을 거쳐 Tashkent 거리로 갔다. Tashkent거리는 다른 거리와는 달리 잘 가꾸어진 가로수에 차들이 거의 지나다니지 않아 산책하기에 좋은 거리이다.

 Tashkent거리를 500m정도 걸으니 비비하님(Bibi-Khanym) 마우솔레움과 모스크가 나타났다.

 비비하님은 티무르가 가장 사랑했던 중국인 왕비이다. 전설에 따르면 인도에서 개선을 한 티무르를 놀래키 위해 가장 훌륭한 모스크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공사는 지지부진하고 비비하님을 짝사랑했던 건축가는 그녀에게 키스를 요구했고 마음이 다급한 왕비는 키스를 허락했다고 한다.

 전쟁에서 개선하고 돌아온 티무르는 왕비의 얼굴에 키스자국이 있는 것을 보고 탑에서 떨어트려 죽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을 소개한 책자마다 전설의 내용이 다르다. 건축가가 손등에다만 키스했다는 것과 건축가가 죽었다는 것과 도망쳐서 살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냥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급하게 지어진 건축물이라 많이 무너졌었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복원이 되었다고 한다. 사마르칸트 유적 전체가 아직도 복원 작업 중이다.

 모스크를 바로 옆에는 바자르가 있다. 바자르를 잠시 스쳐 지나간 후 살아있는 왕이라는 샤히진다(Shahr-I-Zinsah)에 갔다.

 샤히진다 주변에는 공동묘지가 있으며 낮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들어와 코란구절을 암송하며 기도를 하고 있다.

 많은 묘들이 안치되어 있는 아름다운 건물이다. 샤히진다 뒤쪽으로 나가서 공동묘지를 보면서 Hazrat-Hizr 모스크로 향했다.

 모스크 앞에서 북쪽으로 향해 쭉 걸어갔다. 먼거리임에도 불구하고 걸어가는 이유는 바로 아프락시압(Afrosiab)언덕으로 향했다. 예전의 사마르칸트가 위치했던 곳으로 많은 유물들이 발굴된 곳이다.

 언덕 아래에는 박물관으로 갔다. 박물관은 닫혀 있다가 내가 도착한 직후 관리인이 저 멀리서 오더니 문을 열어준다.

 역사박물관처럼 문을 닫는 날인데 마침 관리인이 무엇을 찾으러 박물관에 들린 듯 하다. 어쨌든 행운이다. 감시하는 아줌마들이 없으므로 사진을 마음껏 찍을 수 있었다.  

 박물관의 하이라이트는 691년 국왕 와르흐만 즉위식 때 축하사절로 온 각국의 사신 벽화이다.

 벽화는 특별실에 따로 보관되어 있는데 벽화는 보관상태가 안 좋아 색깔이 거의 없어진 채 훼손되어 있다. 안내판을 통해 벽화의 원래 모습을 알 수 있었는데 중앙 벽화의 오른쪽에 두명의 화랑도 복장을 한 인물에 ‘Coree'라고 쓰여 있다. 바로 한국인이라는 뜻이다.

 아마 통일신라시대 사신을 이곳까지 파견한 것을 보아 삼국시대부터 교류가 있었던 듯하다. 이곳 사마르칸트에서 우리 조상의 흔적을 보게 될 줄이야..

 황량한 아프랍시압 언덕을 지나 1킬로 정도를 걷자 울르그벡 동상이 보인다.(바자르를 기준으로 같은 길로 쭉 걷다보면 1Km 떨어진 곳에 아프랍시압이 있고 다시 1Km정도를 더 걸으면 울르그백 천문대가 나온다.)

 울르그벡 천문대는 티무르의 손자 울르그벡이 만든 천문대로서 당시 측정한 항성시(1년)은 지금의 항성시와 1분의 오차도 안 난다고 한다.

 티무르 제국의 영토를 넓힌 티무르와는 달리 손자 울르그벡은 천문, 과학, 학술에 대단한 관심이 있어서 이곳 사마르칸트를 세계적인 학술 도시로 만든다. 이때 사마르칸트에는 많은 학자들과 건물들이 세워졌다.

 티무르는 우리나라로 치면 조선을 개국한 태조이고, 울르그벡은 세종대왕에 비견될 수 있겠다.

 하지만 당시 승려들은 영토를 넓힐 생각을 안 하고 학술에만 관심이 있는 울르그벡에게 많은 불만이 있었나 보다.

 결국 그의 아들을 시켜 울르그벡을 죽이고 만다. 그 이후 티무르 제국은 쇠퇴기를 맞게 되고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울르그벡 동상을 지나 언덕으로 올라가니 거대한 원형대 중앙에 길다란 건물이 보인다. 건물 안을 살짝 보니 깊게 파여져 있다.

 지금이야 기상위성을 통해서 날씨를 예측하지만 당시는 별의 움직임을 통해 시각과 날씨를 예측했다고 한다.
즉 천문대를 만든 것은 울르그벡 개인 취향이 아니라 백성들을 위해 만든 것이리라.

 흔히들 왕이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개혁성향의 왕은 그렇지 않다. 개혁을 실히하려면 기득권자인 신하들의 거센 반대에 부딧치게 되고 심지어는 왕의 자리에서 쫏겨나기까지 한다. 우리나라의 광해군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울르그벡도 아마 같은 고민을 했으리라.. 사실 제국을 건설하는 것 보다 유지하는게 더 힘들다는 것을 호전적인 신하들에게 설득하는 것이 힘들었으리라.

 비록 죽임을 당하기는 했지만 지금 우즈벡 전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게 바로 역사의 힘인 것이다.
울르그벡 박물관을 들르고 버스를 타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온 시각이 3시이니까 사마르칸트 관람은 4시간이 걸린 셈이다.

 사마르칸트는 여러 제국, 여러 민족에 의해 끊임없이 주인이 바뀌고 끊임없이 침략을 당한다. 그만큼 실크로드에 있어 중요한 도시이다.

 그런데 서양, 동양의 다른 나라와 달리 유독 이곳 실크로드는 왜 제국의 역사가 짧은 것일까?

 그건 바로 끊임없는 사막이 답인 듯하다. 즉 끝없는 사막은 대부분이 평지임으로 강한 힘을 가졌을 때는 끊임없이 뻗어나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방면 한번 약해지면 끊임없이 밀리는 특성이 있다.

 특히 이곳 실크로드 자체가 오아시스 도시로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산에 들어가서 항전을 한다든지의 전략은 먹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한 사막전은 2차 세계대전 때 찾을 수 있다. 당시 아프리카 전차전은 다른 전선과는 달리 영토의 개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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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hodir B&B .. 내부는 잘 꾸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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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소에서 바라본 레기스탄(Regis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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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개관하지 않은 역사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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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의 사마르칸트를 있게 해준 실크로드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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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마르칸트의 상징 레기스탄(Regis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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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기스탄 동쪽의 세르도르(Sher Dor)메드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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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쪽의 울르그백(Ulughbek) 메드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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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드레사 앞에서 기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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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르그벡 메드레사 안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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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본을 중심으로 5명의 학자들의 동상. 울르그벡 메드레사가 어떻게 활용 되었는지 잘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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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드레사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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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 세계에서는 쭉 논란이 되었던 그 그림.. 인간과 동물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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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나렛 위에서 바라본 사마르칸트 시내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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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나렛 꼭대기에서 셀프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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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드레사 내부는 수리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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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간 위험했지만 그래도 기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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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층에서 바라본 메드레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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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한 틸라-카리(Tilla-Kari) 메드레사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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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색과 파란색 타일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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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틸라-카리(Tilla-Kari)메드레사의 외부는 내부와 달리 초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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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파형 돔이 인상적인 세르도르(Sher Dor)메드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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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렴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길거리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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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ukhobod 마우솔레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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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즈벡 영웅 티무르가 잠들어 있는 구리 아미르(Guri Amir)마우솔레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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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리 아미르 마우솔레움 내부.. 티무르의 스승의 관이 가장 크고 위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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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가 거의 지나다니지 않는 아름다운 거리 타슈켄트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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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무르의 애처 비비하님이 잠들어 있는 비비하님(Bibi-Khanym) 마우솔레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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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비하님 마우솔레움에서 바라 본 비비하님 모스크. 이곳에서는 가장 큰 규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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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스크 내부는 아직 수리가 덜 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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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곳곳에서 균열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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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스크 옆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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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 천장 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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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한 앞모습과는 달리 뒷편은 초라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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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비하님 모스크의 화려한 앞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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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인 바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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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편의 건물은 하즈랏-히즐(Hazrat-Hizr)모스크.

  주변 공동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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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히진다(Shiahr-i-Zindah)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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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히진다에서 바라본 비비하님 모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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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히진다 안에서 한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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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를 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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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들 이벽을 향하여 기도를 하는데.. 뭐 특별한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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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히진다 내부로 향하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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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사마르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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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락시압(Afrosiab)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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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락시압 유적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조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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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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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이 지워지긴 했지만 오른쪽의 2명의 화랑도의 윤곽은 뚜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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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화는 특별실에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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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덕위의 낙타 동상. 실크로드의 또 다른 상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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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무르의 손자 울르크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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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울르그벡 천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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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문대 언덕에서는 사마르칸드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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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문대라 그런지 건물 모양이 심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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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학자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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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천문 관측기구를 엿볼 수 있는 그림(육분의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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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고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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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크로드 루트가 제세히 나온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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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 내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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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문대 내부는 깊에 파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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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인 바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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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육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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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갑게 인사하는 소세지 가게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