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키즈스탄 여행기 3 카라쿨(Happy new year의 건배를 키르키즈스탄에서.. 2006.1.1)

2006년 1월 1일(일)

 카작, 이란 대사관이 문을 여는 1월 3일까지 2일간의 여유가 있어 세계에서 2번째로 큰 산정호수인 Issyk-kul 호수로 가기로 했다.

 오전 10시에 사비벡 아저씨에게 2일간의 숙박료(10$)를 치루고 터미널로 향했다.

 비쉬켁은 버스체계가 워낙 복잡해서 터미널(Long Distance Bus Station)까지 직접 가는 미니버스를 찾기 힘들었다.

 일단 오쉬 바자르로 가서 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찾으려고 했지만 찾을 수가 없어 2킬로 가까이 되는 거리를 직접 걸어갔다. 도중에 길을 안내해주며 돈을 뜯으려는 사내가 있기는 하지만 싱긋 웃으며 간단하게 무시해줬다.

 오늘 목적지는 촐폰아타(Cholpon-Ata)까지 이다. 이쉬쿨 호수를 찾는 대부분의 여행자는 카라콜(Karakol)까지 가나 카라콜은 트레킹을 준비하기 위한 도시로서 지금 같은 겨울철에는 트래킹이 불가능하다. 뭐 트래킹을 할 수 있다고 해도 별로 할 의사는 없다. 시간도 촉박하고.. 원래 트래킹을 좋아하지 않는다.

 터미널에서 버스를 찾고 있는데 한 노숙자가 바지가 하반신이 드러난 채 쓰러져 있다. 한 할아버지가 발로 툭툭치며 일어나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밤새 동사한 것 같다.

 새해 첫날부터 죽음을 목격하다니.. 고인의 명복을 빈다.

 촐폰아타까지 가는 미니버스는 200솜(5000원)정도 이다. 대형버스 요금은 100솜(2500원)이기는 하지만 속도가 무척 느리다.

 미니버스를 타고 비쉬켁 시내를 벗어나자 황량한 벌판이 보인다. 나무가 거의 없어서 더욱 황량해 보인다.

 1시간 정도 달리자 저 멀리 설산들이 쭉 이어진다. 눈이 내린지 얼마 안 되서 그런지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2시간을 더 달리자 저 멀리 이쉬쿨 호수가 보인다.

 호수는 동서로 170Km이고 남북으로 70Km나 되는 거대호수이다. 구소련 시절 서방의 눈길을 피해서 고정밀 어뢰를 테스트했던 곳이기도 하다.

 남북으로 펼쳐진 설산들은 아름다운 호수를 더욱 빛내주는 조연이 되어 주었다.

 오후 2시에 촐폰알타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느낀 것은 정말 황량하다는 것이다. 겨울이라서 그런지 오가는 사람들도 많지도 않고 가게도 대부분이 문을 닫았다.

 론니에 적힌 숙소를 잡으려고 했지만 모두 문을 닫았다.

 40분을 헤메고 나서 숙소 찾는 것을 포기했다.

 어떻게 하지?

 이왕 이렇게 된 것 카라콜까지 가기로 결정했다.

 마침 지나가는 카라콜 행 대형버스를 잡았다.(60솜)

 버스 안은 그야말로 꽉 찬 사람들로 인해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나 역시 처음에는 사람들 사이에 끼여 서있기만 하다가 겨우 자리가 나서 앉을 수 있었다.

 촐폰알타에서 카라콜까지는 138Km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버스는 끝없이 달리기만 했다.

 사람들에게 치여 가며 카라콜에 도착 한 시각은 오후 6시.. 주변은 이미 어둠이 깔려 있었다.

 버스에서 내린 지점이 어디인지 위치를 종잡을 수 없었다. 또한 추운 날씨에 주변은 온통 눈밭이라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나보고 어쩌라고...?’

 처음 공항에서 새벽 1시에 내렸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아.. 정말 막막하다.

 일단 론니에 나와 있는 자크실릭 바자르를 간간히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휴.. 아무리 물어봐도 답이 안 나온다.

 길을 헤메는 도중 영어가 되는 청년의 안내에 따라 111번 버스를 타고 톡토구타 거리까지 왔다.

 여기서 문제는 레닌거리를 찾아야 하는데..

 날은 어두워져 잘 보이지 않았고, 추위가 더욱 몸 안으로 스며들고..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휴.. 내가 왜 이렇게 여행을 해서 고생을 해야 하나.’라는 부질없는 생각마저 들었다.

 다행히 한 청년이 관심을 가지고 나와 함께 목적지인 Yak Tour Hostel 을 찾을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린지 40분 정도 추위에 떨면서 찾은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곳, 지도가 잘 안 보이는 어둡고 추운 곳, 사람들이 거의 지나다니지 않는 곳에서 목적지를 찾아 본 경험이 있는 이들은 나의 심정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야크 호스텔은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생긴 배낭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이다. 방안이 춥기는 하지만 시설이 잘 되어 있는 편이다.

 영어가 유창한 아줌마의 안내를 받아 짐을 풀고 거실로 내려갔다. 아줌마는 숙소에는 영국인 1명과 호주인 1명이 있다고 한다.

 거실에서 기다리니 2명의 여행자가 왔다. 어? 내가 비쉬켁의 숙소에서 카작 비자 정보를 물어본 여행자네..

 우리는 서로 반가워하며 많은 이야기를 했다.

 호주인 이름은 레오이고, 영국인은 스티븐이다. 둘 다 장기간 여행을 하고 있으며 꽤 레벨이 되는 고수 여행자이다. 하긴.. 겨울에 중앙아시아를 여행할 정도면 보통 레벨들이 아니겠지.

 나 역시 이들에게 여행 레벨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3번의 티벳 여행과 아프간, 코카서스 여행이야기를 하니 금새 고수로 인정해준다.

 스티븐은 이미 투르크매니스탄을 여행을 했기 때문에 나에게 매우 유용한 정보가 되었다. 재작년(2004년)에 타지키스탄 파미르 하이웨이를 여행한 이야기를 해주니 스티븐은 1달 전에 시도했다가 실패했다고 하면서 아쉬워한다.(길이 완전히 막혔다고 한다.)

 끊임없이 여행이야기와 정보를 교환하다보니 저녁이 나왔다.

 특별히 밥을 주문했는데 만둣국과 함께 나왔다. 미리 가져온 고추장과 함께 버무려 먹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한끼도 안 먹었었네..

 스티븐은 위스키를 꺼내며 한잔하라고 한다.

 난 잔이 채워지자 건배 제의를 했다.

 조금 늦었지만...

 ‘Happy new year'

 방에 돌아오자 무척 싸늘하다. 아무래도 손난로에 의지하며 자야겠다.

 이번 여행을 하기 직전에 여자친구로부터 받은 선물들이 참 유용하게 쓰인다. 목토시, 라이터기름 손난로, 자가발전 손전등이 벌써부터 모두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나의 여행을 진심으로 이해해주는 사랑을 만나서 정말 감사하다. 그전까지만 해도 혼자서 모든 것을 거침없이 헤쳐 나갔는데 이렇게 여행을 하면서 그리운 이가 생기니 마음이 싱숭생숭 하기도 하다.

IMG_2264.jpg

  카라쿨로 가는 길.. 건조한 사막지역이다.

IMG_2265.jpg

  저 멀리 설산이 보인다.

IMG_2267.jpg

  메인 도시간의 도로임에도 불구하고 차들도 별로 없고 도로 상태도 불량하다.

IMG_2271.jpg

  이식쿨(Issyk-kul)호수 입구인 Balykchy

IMG_2275.jpg

  드넓은 이시쿨 호수..

IMG_2276.jpg

  호수 반대편에는 아름다운 설산이 보인다.

IMG_2277.jpg

  카라쿨에서 길을 헤멜때 나를 도와준 고마운 청년

IMG_2278.jpg

   Yak Tour Hostel  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