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0일(토)

연속 2일 버스 안에서 잠을 자서 그런지 몸도 이제 적응이 된 듯하다. 버스 승객이 많지 않아 옆자리는 물론 건너 자리까지 다리를 펴 비교적 푹 잘 수 있었다.

버스 기사가 날 깨우더니 사윤(Sayun)에 도착했다며 내리라고 한다. 이렇게 사윤(Sayun)에 떨어진 시각은 새벽 4시반.

호텔에 가서 자기에는 돈이 아깝고 그렇다고 밖에서 기다리기도 힘든 애매한 시각이다.
일단 시내 중심으로 이동을 해서 호텔들을 알아보았다.

시내 중심에는 술탄 궁전(Sultan's Palace)이 있는데 바로 앞 가게에서 앉아있는 독일인 할아버지 폭스를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그럭저럭 아침 7시까지 보냈다.

우리 쪽으로 한 동양인이 다가오고 있는데 일본인이다. 이름은 지로이고 나이는 33살이다. 학교에서 선생님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2주밖에 시간이 안 되어 예멘만 여행하고 있다고 한다.

지로는 괴짜이면서도 많은 재주를 가지고 있다. 여행을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담은 책 2권을 냈으며 그림도 꽤 잘 그린다. 또한 항상 메모를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지로가 우리 일행에 합류하여 일행이 4명이 되었다.

아침이 되었는데도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다. 오늘은 거의 모든 가게가 쉬고 내일부터 조금씩 문을 연다고 한다.

대부분 호텔과 레스토랑도 쉬기 때문에 먹고 자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다. 또한 버스회사도 쉬기 때문에 며칠간은 사윤에 머물러야 할 팔자이다.

사윤은 하드라마트 와디(Wadi Hadhramawt)의 중심지이다.

하드라마트는 아라비아반도에서 가장 큰 와디(wadi)(계절에 따라 생기는 강)이며 약 300미터(980피트)깊이의 계곡을 따라 160킬로미터(99마일)의 돌뿐인 사막을 흐르게 된다.

척박한 이곳에 3세기경 사람들이 정착하기 시작했고 보기와는 달리 예멘에서도 비옥한 지대 중에 하나이다. 주변에는 산처럼 거대한 흙벽이 둘러쌓고 있으며 와디 한복판에 도시가 위치해 있다.

호텔은 술탄 궁전 정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 Rayboon호텔이 문을 열었다. 원래 침대 3개방을 2000YR (YR은 예멘 리얄의 줄임말, 1$=200YR)에 자기로 했는데 지로가 합류를 해서 매트리스(400YR)을 하나 더 두었다. 1인당 666YR 이라고 보면 약 3400원 정도 하는 저렴한 가격이다. 바로 옆 나라인 오만과 비교할 때 무척 싼 물가이다.

호텔을 잡고 나니 다음은 환전.. 모든 환전소가 문을 닫았기 때문에 환전하기가 쉽지 않다.

지나가는 청년에게 도움을 청하니 차를 모는 친구에게 부탁을 해 우리를 시내에서 1Km 떨어진 지점의 ATM기(병원 근처)로 안내해준다.

시티은행 현금카드는 인출이 안 되고 신용카드 인출만 된다. 일단 20,000YR(100$정도)를 인출했다. 예멘 물가로 봤을 때 당분간 돈 걱정 할일은 없을 것이다.

술탄 궁전에서 Tour Police를 찾았다. 예멘은 사나 지역을 제외하고는 외국인이 여행하려면 허가증이 필요하다.

1994년 내전을 겪은 뒤 한때 외국인 납치가 빈번하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우리가 넘어온 오만 국경지대가 위험지역이었다.

예멘이 친숙한 이유는 바로 통일국가라는데 있다. 예멘의 분단은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북예멘은 1934년 사우디와의 전쟁 때 독립을 하게 되고 1962년 군부 쿠데타로 인해 공산주의 국가인 예멘 아랍공화국(Yemen Arab Republic)을 선포한다.

남부 예멘은 영국의 지배를 받다가 1967년 독립을 한 뒤 1969년 국명을 예멘 인민민주주의 공화국(People's Democratic Republic of Yemen)으로 선포한다.

즉 독립하는 시기가 다름에 따라 분단이 된 것이다. 네덜란드, 벨기에가 나눠진 것과 같은 이유이다.(원래 하나의 국가였으나 스페인에 독립한 시기가 다름.)

북예멘은 빠른 속도로 정치적 안정을 찾은 반면 공산주의 국가인 남예멘은 소련의 몰락에 따라 혼란기를 맞는다. 결국 1990년 남, 북예멘간의 합의하에 통일이 되었지만 당파간의 권력다툼은 1994년 전면적인 내전으로 치닫게 된다. 남부 인들이 다시 자신들의 국가를 세우려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군사력으로 우위에 있는 북부 인들에 의해 나라는 사실상 살레대통령의 지도하에 재통합된다.

혼란기를 거쳐서 그런지 이슬람 전통을 무척 강하게 적용한다. 모든 성인 여성은 얼굴은 물론 손까지 가린 차림으로 거리를 다닌다.

투어폴리스에서 퍼밋(허가증)을 받으려고 하니 사나까지 가는 버스표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은 명절이라 버스 회사는 모두 문을 닫았다..

예멘은 낮 시간에는 더위를 피해 모든 가게가 문을 닫고 차량도 극히 줄어든다. 그렇잖아도 명절이라 거의 문을 닫았는데 그나마 있던 가게도 문을 닫으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일본인 여행자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그럭저럭 저녁이 된다. 날이 시원해지니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호텔 바로 뒤편의 와디 절벽으로 올라가 시내를 바라보니 정말 장관이다. 사막 한가운데 움푹 패인 와디 한가운데 하얀 집들이 빽빽하게 차 있는 모습은 흑백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보는듯하다. 나 역시 흑백영화에 출연해야겠지?(도시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음)

저녁이 되자 1명의 일본인이 더 합류를 했다. 이름은 미찌이고 간호학과를 다니는 대학생이고 방학 중 2주간의 시간이 나서 예멘을 여행한다고 한다. 일본인 4명에 한국인 1명.. 방안에서는 일본어가 난무하는 가운데 나 혼자 노트북으로 여행기를 치고 있다.

지금 유럽이나 동남아, 인도는 한국인 여행자로 넘쳐 날 텐데.. 어느 때보다 한국말이 그리워지는 하루이다.


12월 31일(일)

2006년의 마지막 날이다. 2005년의 마지막 날은 키르키즈스탄에서 보냈고 올해는 예멘에서 보내게 되었다. 내년은 어디서 보내게 될까?

어제보다는 상황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열지 않는다. 분명히 버스회사는 문을 닫았을 것이다.

거리를 걷다보니 사람들의 나뭇잎을 씹는데 볼 쪽에 동그랗게 말아서 씹고 있다. 카트라고 불리는데 약한 흥분제이다. 우리로 치면 담배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예멘의 모든 남자들이 카트 씹기를 하고 서로 모여 카트 잎을 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자연스러운 문화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서로 친구가 되면 담배를 교환하지만 이곳에서는 카트를 교환한다.

한 할아버지가 건강에 좋다며 씹어보기를 청한다. 씹으니 쓴맛이 나지만 뭐 그런대로 씹을만하다. 카트는 비중독성이며 어떤 부작용도 없지만 장기간 사용하면 만성변비에 걸릴 수 있다.

하드라마트 와디(Wadi Hadhramawt)에는 3군데의 주요도시가 있는데 지금 있는 사윤과 쉬밤(Shibam)과 타림(Tarim)이 있다. 쉬밤은 사윤에서 서쪽으로 20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타림은 동쪽으로 40Km 정도 떨어져있다.

쉬밤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1인당 100YR을 부르고 택시는 200YR을 부른다. 우리는 5명이서 택시를 한대 잡아 300YR에 쉬밤으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동안 양쪽으로 와디 절벽이 끝없이 이어졌다.

1800년 정도 된 쉬밤은 인구가 7000명이고 사막 한가운데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성벽 안으로 집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대부분의 가옥이 흙벽돌로 만든 5층 건물로 16세기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렇게 흙벽돌로 만든 집이 500년 가까이 무너지지 않는 것을 보아 이곳에 비가 거의 오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쉬밤에서는 특별한 볼거리가 없다. 좁다란 골목에 빽빽하게 들어선 집들이 바로 볼거리 이며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외국인에게 인사를 건넨다. 특이 어린 아이들이 외국인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다가온다.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아무에게나 사진을 찍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슬람 전통이 강한 예멘에서는 사진 찍는 것을 꺼려하고 특히나 여자를 찍는 것은 큰 실례가 됨으로 주의해야 한다.

골목 한 귀퉁이에 골동품 가게가 있어 들어가 보니 장신구와 무기류를 팔고 있다. 주인아저씨는 구식 총에 대해 설명해주는데 긴 장총에 기름과 화약을 넣고 쇠구슬을 넣으면 장전이 된다고 설명한다.

아저씨도 꽤 심심했는데 물건을 사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친절히 설명해주신다.

쉬밤에서 사윤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일본인 친구들이 택시비를 500YR(2500원)에서 300YR로 깎으려고 필사적이다. 일본인들은 작은 돈이지만 아껴 쓰는 생활 태도를 배우기는 배워야 하는데.. 솔직히 너무 짠돌이 이다. 덕분에 현지인과 친해서 현지어를 배울 수 있었다. 결국 지나가는 차를 히치해서 사윤으로 돌아왔다.

점심식사 후 나와 토모미 미찌는 타림(Tarim)으로 가기로 했다. 타림은 사윤에서 동쪽으로 4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많은 모스크들이 있다.

토모미가 택시를 잡아 3명이서 300리얄을 부르니 기사가 선선히 응해준다. 지로가 800리얄을 주고 타림으로 갔다던데.. 이상하지만 일단 타고 봐야지.

택시 기사는 매우 친절해서 사진 포인트가 있으면 설명을 해주며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차를 세워준다.

타림의 알-무다르(al-Muhdar)사원 앞에서 내렸다. 사원 앞에는 남부아라비아반도에서 가장 큰 미나렛이 있는데 무려 50m나 한다.

특별히 볼거리는 없지만 와디 절벽 위로 올라가 타림을 바라보면 사윤에서와 같은 정말 벅찬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006년의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시내 한가운데서는 축제가 열리고 있다. 마을 남자들이 정렬을 한 다음 박자에 맞춰 막대기를 내리치는 것이 꼭 군대 사열을 하는 모습이다. 물론 여자들은 절대 참석할 수 없지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토모미와 미찌는 특권을 누린다.

아까 탄 택시 기사가 모스크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택시기사는 일본이나 한국으로 가서 일하고 싶다며 전화번호를 적어달라고 한다. 이곳 사람들에게도 우리나라는 선망의 대상임을 알 수 있다. 사윤으로 돌아와 택시기사에게 600리얄을 지불했다.

숙소에서 요시가 영어를 잘한다고 잘난 척을 해서 화가 났다. 1년 동안 미국에서 유학을 한 것은 이해가 가지만 자신의 영어를 이해 못하면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어 화를 냈다.

요시는 미안하다며 밖으로 나가고 토모미는 요시가 너무 어리기 때문에 그러니 이해를 하라고 한다.

2006년의 마지막 날을 화를 내며 보낼 수는 없지.

내일까지는 사윤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2006년의 마지막을 보내면서 맥주한잔 걸치고 싶지만 이곳은 술을 절대 먹을 수 없는 이슬람 지역 아닌가?

밑의 가게에서 음료수와 비스킷을 사서 나만의 망년회를 했다.

이제 한국 나이로 30살이다. 1997년 대학에 들어가면서 한 가지 다짐을 했었다.

‘ 20대 만큼은 후회 없이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하자.’

20대를 지내면서 항상 다짐을 했던 만큼 후회는 없다. 단지 20대에 세계 일주를 하겠다는 계획은 이루지 못한 것이 아쉬운 점이다.

30대에는 ‘변한지 않는 나.’로 목표를 정하고 싶다. 세상에 예속되지 않고 꿈을 펼칠 수 있는 내가 되기로 했다. 지금처럼 항상 새로운 것을 찾고 피하기보다는 부딪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한번 더 다짐한다.


1월 1일(월)

2007년 새해가 밝았지만 오늘도 역시 버스회사는 문을 열 줄을 모른다. 택시를 타고서라도 이곳에서 남쪽으로 330Km 떨어진 항구도시 무칼라(Al-Mukalla)로 가고 싶지만 토모미와 지로가 내일 무칼라(Al-Mukalla)로 같이 가자고 말한다.

결국 하루 더 머물게 되는군.

오늘은 잠시 휴식을 했다. 여행기를 정리하고 간간히 시내를 돌아다니며 군것질을 했다.
만약 오만에서 연휴를 맞았으면 비용이 꽤 들었을 텐데 예멘에서 지내게 되어 그나마 다행이다.

호텔에서 하루 종일 쉬면서 일본인 친구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친구들과 이야기 하면서 소토코모리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는데 일본 여행자들이 장기간 여행을 하면서 일본에 돌아오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의 젊은이들이 경쟁이 치열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일본 사회에 두려움을 느끼거나 환멸을 느껴 일본에 있기보다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동남아나 중국에서 아무런 할일 없이 지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소토코모리’가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소토코모리가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내일이면 예멘의 수도 사나를 향해 또 다른 여행이 시작 될 것이다.

술탄 궁전 앞의 음료수 가게에서는 음료를 즐기며 앉아있는 외국인 관광객을 쉽게 볼 수 있다. 마침 독일인 아저씨를 만났는데 성격이 매우 유쾌하다. 3년 동안 예멘에 머물었다고 하면서 1988년에 한국을 방문했는데 서울 근처의 큰 화산분화구가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화산분화구? 제주도면 몰라도..

그곳이 어딘지 묻자 ‘너 한국인 맞아? 그곳은 세계에서 가장 큰 화산 분화구야..’

이런 뻥쟁이 아저씨.. 뻥이 심해도 재미있게 이야기를 했다.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은 이렇게 낯선 외국인과의 만남이다. 집이 강원도 속초이기 때문에 론니플래닛 한국판을 들고 여행하는 외국인 백패커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나 먼저 다가가 말을 걸지 못한다. 여행을 할 때 현지인이 갑자기 다가와 이것저것 물어보면 꽤 귀찮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외국인 여행자는 같은 처지의 동료이자 열린 마음을 가진 친구이다. 때문에 거리낌 없이 대화를 할 수 있다. 간혹 서양 애들 중에 우월감에 휩싸여 싸가지 없이 행동하는 애들이 있는데 그런 애들은 간단하게 무시해주면 된다.

12월 31일 명절 때문에 온 세상이 멈춘 듯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는데 이제 그 마법이 슬슬 풀리기 시작한다. 카피샵(복사기가 있는 가게)를 발견 할 수 있어 일본인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론니플래닛을 복사 할 수 있었다. 다시 강력한 무기를 탑재한 기분이다. 이제 두려울 것이 없다.(다시 무적 모드로^^)

이곳 사윤에는 많은 일본인 여행객들이 보인다. 간간히 그룹투어도 볼 수 있는 반면 한국인 여행자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예멘은 여행하기에 천국 같은 곳이다. 물가는 동남아와 거의 비슷하며 사람들도 과하다 싶을 정도로 친절하며 외국인이라고 사기를 쳐서 돈을 뜯는 경우는 더더욱 없다. 음식도 우리 입맛에 잘 맞고 맛있어 다른 나라와 달리 여행을 하면서 음식 때문에 고생 할 일은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옛 아라비아 전통과 문화를 그대로 볼 수 있으며 척박한 사막 속에서 유쾌하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여행지로서는 최적의 조건을 가졌음에도 한국인 여행자가 거의 없는 이유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항공편으로의 접근이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본 여행문화를 쫓아간다고 봤을 때 3~4년 뒤면 한국인 여행자도 많이 방문할 것이라 예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