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4일(수)

새벽 1시.. 차가 출발한지 10시간이 넘어 있었지만 아직 오쉬까지는 머나먼 여정이다.

불편한 자세와 주정뱅이 할아버지의 꼬장을 들으면서 잠이 들었다 깼다를 반복했다.

어둠을 질주하던 차는 갑작스럽게 멈췄다.

고물차 타이어가 펑크가 났는데 준비해둔 예비 타이어에 공기를 집어넣지 않은 허술함 때문에 꼼짝없이 길 한가운데 서 있어야 했다.

문제는 공기 주입하는 펌프를 구할데가 없다는 것.. 이러다가 내일 아침까지도 못 가는 것 아냐?

운전자와 주정뱅이 할아버지는 타이어를 들고 저 멀리 빛이 보이는 마을을 향해 걸어가고 나머지 일행은 추위에 떨면서 기다려야만 했다.

매서운 추위이기는 하지만 하늘을 보자 환희로 가득 찼다.

높은 고도에서 보는 하늘이라 별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이 여행기를 읽는 독자 중에 혹시 높은 지대를 여행할 독자는 꼭 별자리 공부를 하고 가라는 충고를 하고 싶다.

페르세우스 사각형, 좀생이별, 오리온자리, 카시오페아, 북두칠성은 물론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멀리 떨어진 안드로메다(200만 광년) 성운도 보였다.

주놀스에게 좀생이 별자리를 보여주면서 별이 몇 개가 보이는지 물어 보았다.

아참.. 좀생이 별은 약 200개의 별이 군집해 있는 별자리로서 옛 선조들이 시력을 측정을 하는데 요긴하게 쓰인 별자리라고 한다. 인간의 눈으로는 7개까지 보인다고 한다.

주놀스는 7개가 보인다고 한다. 하긴.. 별이 너무나 뚜렷이 보이기 때문에 웬만한 시력을 가진 사람은 7개가 다 보일 것이다.

별을 관찰하다가 추위를 피해 차안으로 들어갔다.

끝없는 기다림이 계속되고 시동이 꺼진 차안의 온도는 점점 떨어져 갔다.

결국 40분 만에 운전자는 타이어에 공기를 주입하고 돌아왔다.

같이 떠난 주정뱅이 영감은 밑의 마을에서 다시 술을 마시고 있다고 한다. 정말 대단한 술꾼이다. 차는 다시 오쉬를 향해 출발하고 잠이 들었다 깨기를 계속해서 반복했다.

오전 7시 반이 되어서야 오쉬에 도착 했다.

늦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밤새 달린 덕분에 하루치 숙박비는 아낄 수 있었다.

주놀스는 자신의 집으로 가자고 한다.

4개월 만에 주놀스가 집에 돌아오니 가족들이 반긴다. 주놀스는 6남매가 있는데 모두 다 영어를 할 줄 안다고 한다.

현대적인 아파트이면서도 집안은 이슬람 분위기가 난다. 집에서 아침을 먹고 잠시 여행기를 정리했다.

오전 9시가 되니 눈이 계속오기는 하지만 날이 밝아져 시내 관람을 해도 괜찮을 듯하다.

주놀스는 며칠을 쉬었다가라고 하지만 오늘 안으로 우즈베키스탄으로 들어가야 하기에 정중하게 거절했다. 마음을 나눈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시내로 나섰다.

오쉬는 키르키즈에서 2번째로 큰 도시로서 중국 신장,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키즈스탄이 바로 연결되는 그야말로 교통의 요지이다.

기원전 5세기부터 이미 교역의 중심지로서 성장하기 시작했고, 알렉산더 원정대가 원정을 온 이후로 일찍이 실크로드의 허브로서 지금까지도 그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도시이다. 그러한 도시에 지금 내가 서 있다는 것 자체가 믿어지지 않는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일요일마다 TV에서는 만화 ‘마르코폴로’를 방영을 했다. 만화를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저 길을 갈 것이라는 꿈을 꿨는데 꾸준히 실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쉬는 계속해서 눈이 내리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우중충하기는 하지만 포근한 분위기이기다.

제일 처음으로 간 곳은 실크로드 박물관(50솜)이다. 입장료를 내니 박물관 직원이 따라오라고 한다. 알고 보니 관람객이라고는 나 밖에 없어서 전시관의 잠겨 진 문을 열기 위해서이다.

오쉬의 역사와 실크로드 유물 그리고 다양한 동물들 박제가 있다.

박물관을 나서서 오쉬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산인 ‘솔로몬의 왕좌(solomon's throne)' 라고 불리는 산으로 올라갔다.

가파른 바위산이지만 길이 잘 정비 되어 있어 어렵지 않게 산을 오를 수 있었다. 단지 눈이 많이 내리 길이 미끄러워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산 주변은 이슬람식 무덤으로 둘러싸여 있다. 산을 다 오르고 나서 오쉬가 왜 실크로드의 한축을 이루었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바로 이 솔로몬의 왕좌라고 불리는 산 때문이다.

눈이 계속 내려 잘은 보이지 않지만 오쉬 시내는 물론 주변 평야를 폭넓게 볼 수 있어서 적들의 침입에 쉽게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을 내려오면서 Rabat Abdullah Khan 모스크를 들리고 곧바로 시내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훌륭한 바자르 중에 하나인 자이마 바자르(Jayma bazaar)로 갔다.

오쉬의 명성답게 정말로 큰 규모이다.

가지각색의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고, 눈이 내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왕래를 하고 있다.

그런데 바자르 입구에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사라진 야바위(놀음)꾼들이 있다.

컵 3개중에 공을 하나 넣은 후 야바위꾼이 컵을 섞은 후 공이 들어있는 컵을 고르면 돈을 따는 것이다.

어린 시절 잠깐 봤던 추억이 생각나 잠시 놀음에 관심을 보이자 옆에 바람잡이들이 나에게 접근해서 놀음을 해보라고 꼬신다.

돈을 걸지 않고 그냥 공이 들어 있는 컵만 지목했는데 갑자기 20솜(500원)을 준다. 다시 컵을 지목하자 1000솜(2만5천원)을 준다. 바로 옆에 돈을 잃는 사람도 있다.

어라 갑자기 1000솜이 생겼네?

하지만 이건 뻔히 속임수임을 알고 있다. 옆에서 나를 도와주는 척 하는 사람과 돈을 일부러 잃는 사람이 다 한통속인 걸 눈치 챘다.

주변에 사람들이 몰린다.

바람잡이는 이제 본격적으로 돈을 걸고 놀음을 하라고 한다.

당연히 속임수에 안 넘어가지.. 그냥 훌쩍 1000솜을 다시 던져주고 길을 나섰다. 구경꾼들은 왜 1000솜을 그냥 던지고 가는지 의아해 한다.

난 도박과 거리가 먼 인생이라는 것은 이미 몸소 체험했고(한번도 돈을 딴 적이 없음) 뻔히 보이는 속임수에 넘어가고 싶지 않다.

슬슬 출출해져서 바자르 안의 식당에 갔다. 이런 대형 시장에서의 또 하나의 즐거움은 바로 군것질이다.

물만두와 양꼬치구이를 시켜 배불리 먹었다.

배를 채우고 남은 키르키즈 돈을 우즈벡 돈으로 환전을 하였다. 1000솜을 주니 29500숨(우즈벡 돈)으로 환전을 해준다.

바자르에서 동쪽으로 가면 큰 길이 나오는데 북쪽으로 10킬로 정도 가면 국경이 나온다. 7번 미니버스(5솜)을 타고 우즈벡 국경으로 향했다. 남은 돈이 있어 택시를 타도되지만 끝까지 알뜰하게 여행을 하고 싶어서 그냥 미니버스를 이용했다.

짧지만 많은 경험을 했던 키르키즈와도 이제 헤어질 시간이다. 사실 키르키즈스탄은 겨울보다는 여름에 여행하는 것이 더 좋다고 한다.

처음 여행의 막막함과 한해를 새로 시작하게 해준 비쉬켁(가끔 비스켓으로도 들린다.) 여행의 진수를 알려준 카라콜, 그리고 실크로드의 중심지 오쉬..

이 모든 경험들이 나의 추억의 한 페이지에 기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