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1일(토)

투르크메니스탄은 어떤 나라인가? 가스와 석유가 많이 나오는 나라.. 대통령의 우상화 정책으로 중앙아시아의 북한이라고 불리는 나라..

인터넷의 어떤 글은 아쉬하바르는 으스스해서 귀신이 나온다는 표현까지 쓴다.

소련에서 독립한 중앙아시아 국가 중에 카자흐스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나라이기는 하지만 전 국토의 4/5가 물이 나오지 않는 사막인 척박한 땅이다.

하지만 실크로드의 중요한 교차점이었고 역사적으로도 돌궐족, 셀주크투르크의 후손이기도 하다.

몇몇 여행자들이 투르크메니스탄을 여행한 기록들이 있기는 하지만 나의 여행은 그들과는 다른 여행이다.

제일 먼저 육로로 통과했다는 것이고, 무엇보다 관광비자가 아닌 트랜짓 비자로 이곳을 통과한다.

관광비자로 여행을 할 경우에는 초청장+비자피를 합쳐 200$ 정도의 비용이 들어가고 초청장대기 시간 2주 이상에 우즈베키스탄에서 1주 이상 비자대기를 해야 한다.

무엇보다 투르크멘을 여행하는 내내 가이드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자신을 감시하는 감시원을 매일 10$~20$를 주고 달고 다녀야 한다.

반면 트랜짓비자는 이란, 아제르바이잔 비자만 있으면 타슈켄트에서 1주일 조금 넘는 기간에 받을 수 있고 비용도 31$로 저렴하다. 그리고 감시원 없이 자유롭게 여행을 다닐 수 있다.

하지만 오직 하나의 Big Problem(큰 문제)는 바로 여행 기간이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직 5일이다. 5일 동안에 크나큰 투르크멘을 다 둘러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계획을 잘 세워서 돌아다니면 어느 정도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때문에 며칠 전부터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하며 투르크멘 여행 계획을 세심하게 짰다.(마치 군사작전처럼 치밀하게 세웠음)

어제 아랏 경찰서에서 부하라로 돌아가라는 우즈벡 경찰들과 신경전을 펼치면서까지 아랏에 머문 이유도 아랏에서 바로 출발해야 멜브(Merv)를 돌아보고 아쉬하바르로 가는 것이 하루 만에 가능할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결과적으로는 내 계획이 적중했다.

국경을 걸어서 투르크멘에 볼더(국경)에 도착했다.

여러 여행기를 통해서 투르크멘의 군인과 경찰들은 외국인에게 불친절하고 적대적이기까지 하다고 알고 속으로 긴장하면서 출국심사를 받으러 갔다.

어 그런데 의외로 영어가 유창한 군인 2명이 웃으면서 환영해준다.

내 여권을 받은 군인은 여권 정보를 컴퓨터에 입력을 하고 자신의 친구도 지금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면서 반겨준다. 그러면서 입국 수속에 관한 절차를 소상하게 알려준다.

건물 내에는 3개의 부스가 있는데 들어서자마자 첫 번째 부스는 여권정보를 컴퓨터에 입력을 해준다. 다음에 맨 끝의 부스에 가서 세관심사를 받는다.

세관원은 배낭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물어보면서 보여 달라고 한다. 배낭을 풀고 짐들을 꺼내려고 하자 됬다고 하면서 통과시켜준다. 의외로 간단하네..

세관을 통과하면 중간 부스에 은행(BANK)라고 써 있는데 거기에 가서 10$를 주고 도장을 받으면 된다. 10$를 주면서 500숨이나 10000마낫을 수수료로 줘야 하는데 수중에 달러 밖에 없어서 할 수 없이 1$를 그냥 줬다.

모든 절차를 끝내고 다시 첫 번째 부스에 가니 여권에 스탬프를 찍어주면서 은행에서 얼마를 냈는지 물어 본다.

난 1$를 냈다고 하니까 친절한 군인들이 안타까워한다.

펜으로 적으라면서 여행에 유용한 정보를 쭉 말해준다. 1$에 30000마낫(사실 24500이 한계임, 군인이 암달러상을 이용하라고 권장하다니..)까지 교환 할 수 있고 국경에서 투르크맨밧까지 차 한대에 4달러니까 1인당 1달러만 내면 된다고 한다.

또한 투르멘밧에서 마리까지 2달러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두 군인이 서로 영어를 자랑하듯 여행에 유용한 정보들을 쏟아낸다. 마지막으로 건물을 나가면 경찰들이 다시한번 여권을 체크한다며 내 여권과 이미그레이션 카드들은 이상이 없는지 한번 더 챙겨준다.

투르크멘 군인들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었던 터라 감동의 물결이 쓰나미처럼 다가왔다.(여기서 챙긴 서류들은 출국할 때 꼭 필요하므로 반드시 여권과 함께 보관해야 한다.)
경찰 체크까지 끝낸 뒤 볼더를 나오니 오전 10시 50분..

잘만 하면 오늘 아쉬하바르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일단 환전을 했는데 1$에 23500마낫을 부른다. 10달러를 환전하니 235000마낫을 준다. 투르크멘에서는 10000마낫 지폐가 가장 큰 단위의 돈이므로 지폐 뭉치들이 우르르 손에 쥐어진다.

우즈벡 국경 쪽에서는 1$에 10000마낫을 불렀는데 외국인 상대로 한탕주의 암달러상이다.

투르크멘에서는 공식 환율이 1$에 5000마낫을 약간 넘기 때문에 은행에서 공식 환율로 환전하는 것은 투르크멘 정부에 4/5를 기부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잖아도 석유와 가스에서 벌어들인 수입으로 정부 재정은 풍부하기 때문에 은행에다 기부를 하지 말고 바자르(시장)이나 바그잘(기차역)앞에서 환전을 하면 협상력에 따라 제값을 받을 수 있다.(1$에 24000마낫을 기준으로 보면 됨)

투르크맨밧으로 향하는 승용차와 흥정을 하니 한차에 120000마낫을 받는다고 한다. 한사람당 30000마낫이지만 그건 4명이 다 찼을 때의 이야기이다.

아랏에서부터 함께 온 러시아계 아줌마는 2명이 더 올 때까지 기다리기 힘드니 내가 90000마낫을 내고 자신은 30000마낫을 내겠다고 한다.

당연히 2사람이 올 때까지 더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사실 투르크맨에서 만큼은 돈을 아끼지 않고 시간을 더 우선시한다고 다짐했지만 액수에 여하 없이 내가 바가지 쓰는 경우는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일어난다.

결국 조금 기다리니 60000대 60000으로 균등해진다.

투르크맨밧으로 달리니 우즈벡과는 달리 모래 사막이 쭉 펼쳐진다. 국경하나 넘었을 뿐인데..

승용차는 35분쯤을 달려 아무다리야강을 넘어 투르크멘밧으로 진입 한다. 우즈벡보다 훨씬 못 살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거의 비슷한 환경이다.

하나 다른 것은 이곳 대통령의 사진이 여기저기 붙어있다는 것이다.

기차역 앞에는 마리(Mary)로 향하는 수많은 승용차가 있다. 내가 나타나자마자 운전자들이 우르르 나타나는데 처음 운전자는 마리까지 50$를 부른다.

옆의 운전자가 머리가 돌았다는 재미있는 시늉을 한다.

일단 4$까지 떨어트렸는데 과연 맞는 가격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마침 확실한 서양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지나간다. 가서 말을 거니 투르크멘에서 활동하는 미국인 6명이 여행 중이다.

그들에게 물어보니 2$면 충분하다고 한다. 또한 환전은 1$에 24000마낫에 할 수 있다고 확실하게 말해주었다. 20$를 환전했다.

차량도 다른 승용차를 2$에 협상을 해서 갈아탔다. 지도상으로 마리까지는 250km는 넘는 것 같은데 어떻게 3시간 만에 마리에 도착 할 수 있지?

해답은 승용차가 출발하자마자 알 수 있었다. 모래사막 사이로 도로가 일직선으로 나 있고 승용차는 130킬로가 넘는 속도로 질주를 한다. 예전에는 낙타로 이 사막을 건너왔겠지?

지금은 실크로드 낙타 상인들을 대신하여 많은 대형트럭들이 이 길을 달리고 있다.

중간 중간에 검문소가 있기는 하지만 반 정도는 그냥 통과하고 나머지 반은 여권을 운전사에게 맡기면 알아서 등록해주고 온다.

오후 12시10분에 출발해서 2시 50분에 마리에서 북쪽으로 30킬로 떨어진 바이람알리(Bairam Ali)에 도착했다.

바이람 알리에서 내린 이유는 이곳에서 고대 실크로드의 유적지 멜브(Merv)를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바이람 알리에도 이곳저곳에서 성벽이 보인다.

유적지는 넓은 지역에 분포하고 있어 걸어서 다니기에는 힘들고, 차량을 이용해서 다녀야 한다.

내리자마자 승용차를 섭외해서 멜브 유적지를 한바퀴 돌기로 했다. 비용은 2$를 요구한다.

론니에는 7.5$라고 되어 있는데 2$가 정상가격인 듯하다.

  멜브는 유네스코 지정유산으로 실크로드 전성기 시대 때 중앙아시아의 모든 실크로드가 연결되는 지점에 있었으며 사막 한가운데 있어서 지친 여행자들에게 좋은 휴식처를 제공했다.

알렉산더의 그리스군이 멜브를 통했으며, 페르시안,  크리스찬, 불교, 조로아스터 등이 이곳에 영향력을 끼쳤다. 그야말로 모든 문명의 교차점에 있었고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11~12세기 셀주크투르크 수도였을 때 가장 최전성기였지만 1221년 이곳을 침입한 칭키스칸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고 그 이후에는 화려한 역사를 뒤로 한 채 공허한 폐허로서 남게 된다.

멜브의으며 바이람알리에서 3킬로를 달리자 멀리서 보이던 유적지들이 윤곽을 나타낸다.

가장 먼저 간 곳은 키즈 칼라(Kyz Kala)이다. 7세기에 만들어진 성벽 사이로 파괴된 궁전이 남아있다. 역시 7세기에 만들어져서 600년 동안 셀주크 술탄둘이 사용했다고 한다. 궁전 뒤편에 보면 16개의 기둥들이 쭉 나열되어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성안에는 깊은 구덩이가 있어 후래쉬를 비취며 계단을 내려갔지만 아무것도 없다.

단체 관광을 온 현지 가족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결론적으로 멜브에서는 그나마 가장 잘 보전된 건물 중에 하나이다.

다음에 간 곳은 티무리드(Timurid)마우솔레움인데 영어를 조금 하는 현지 청년이야기로는 티무르시대 때 만든 마우솔레움이라고 한다. 지금은 복원 공사 중이지만 마우솔레움이 무너질까봐 나무 기둥을 받쳐놓았다. 바로 옆의 기념품상에 가니 나무 조각에 현지 글자를 그린 목걸이를 1개에 1000마낫에 팔고 있었다.

갑자기 우리반 아이들이 생각이 나서 30개(30000마낫)를 샀다. 우리 돈으로 1200원이다.

기아울 칼라(Giaur Kala)로 향하는 길에는 많은 낙타들을 볼 수 있다. 예전에는 실크로드 상인들의 중요한 운송수단이었지만 오늘날은 식용으로서 방목되고 있다고 한다.

기아울 칼라는 페르시아 사산조에 의해서 기원전 3세기경에 만들어졌다. 성벽의 흔적은 또렷하지만 성안의 건물과 활기찬 거리는 지금은 온데간데없이 초원으로 변했다. 2000년 전에는 이곳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나마 흔적이라도 남아 있는 곳이 기아울 칼라 북쪽에 위치한 에르크 칼라(Erk Kala)이다. 언덕에 위치해 있어 멜브 유적지 주변을 볼 수 있는 좋은 전망대이기도 하다.

기원전 6세기에 만들어져 멜브에서는 가장 오래 된 에르크 칼라는 마시 달의 분화구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고 중앙에는 성터가 불쑥 올라와 있다.

특히 주면에는 많은 돌조각과 파편들이 있는데 아마 이곳에 세워졌던 건물들이나 토기 조각일 것이다.

하나하나 이어 맞추면 훌륭한 유물이 될 것인데 그대로 방치되어 있어서 안타깝다.

12세기에 지어졌다가 최근에 새로 지어진 유수프 하마다니(Yusuf Hamadani)모스크를 지나 술탄 칼라(Sultan Kala)에 들어섰다.

술탄 칼라 중앙에는 술탄 산자르(Sultan Sanjar)마우솔레움이 있는데 최근에 복원을 마쳐서 비교적 말끔한 모습으로 서 있다. 이곳 유적지에서는 몇 안되는 온전한 건물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마치 황량한 사막에 우뚝 서 있는 카우보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우솔레움에 들어서려고 하자 관리인이 이곳 유적지표를 구입하라고 한다. 원래 입구에서 20000마낫을 주고 표를 구입해야 하는데 여지껏 그냥 관람했던 것이다.

입구로 가서 20000마낫을 주고 입장권을 구입했다. 사진피는 35000마낫을 달라는데 난 사진은 안 찍는다고 말했다. 이미 찍을 대로 찍었고 찍는다 해도 감시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궂이 낼 필요가 없다.

다시 술탄 산자르 마우솔레움을 관람한 후 샤흐리얄 아르크(Shahriyar Ark)로 향했다.

아르크에는 몇몇 건물터들이 영국의 스톤헨지 돌들처럼 서 있었으며 성터와 건물들을 비교적 많이 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12세기에 만들어진 모하메드 이븐 제이드(Mohammed Ibn Zeid)마우솔레움이다. 유적지이기는 하지만 일반 농가로 사용되고 있었다.

덕분에 이곳 시골 집안 풍경과 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멜브 유적지를 돌아보고 난 소감은 한마디로 공허하다이다. 실크로드의 중심지로서 그 영화를 누리던 한 도시가 지금은 현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찾는 이 없는 완벽한 폐허로 남아 있다.(오늘 외국인 방문자는 나 혼자이다.)

이곳 멜브에 박물관이라도 하나 세우는 게 어떨지.. 아쉬하바르에는 대통령을 찬양하기 위한 수많은 건물들을 세우고 있다면서 자신들의 선조인 셀주크 투르크의 수도였던 이곳 Merv에 대해서는 왜 이렇게 무심한 걸까? 유목 민족이라 역사를 중시하지 않아서 그런가?

그런 아쉬움을 품은 채 다리암알리로 돌아왔다.

오후 4시 50분쯤에 돌아왔으니까 2시간 동안 차량을 빌린 것이다. 2달러를 건네주자 기사는 시간이 많이 지났다며 1달러를 더 달라고 애원한다.

맞는 말 같아서 1달러(1000원)를 더 주었더니 두 손을 꽉 잡으며 고마워한다. 도대체 여기 물가는 얼마나 하는 거야? 종잡을 수가 없다.

다리암알리에서 30킬로 떨어진 마리까지 승용차(10000마낫)를 타고 와서 그곳에서 아쉬하바르로 가는 차량을 찾았다.

차량은 한대밖에 없었고 손님을 기다라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만약에 혼자서 가려면 15달러를 달라고 한다. 말도 안되는 소리..

난 더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손님이 안 온다. 다시 삐끼의 2차 작전.. 나보고 25만마낫(10달러)를 내면 출발하겠다고 한다.

상황을 보니 기사 집이 아쉬하바르이기 때문에 무조건 아쉬하바르로 출발을 해야 한다. 그러한 사정을 알기에 난 더 느긋했다.

결국 손님 한명을 구했지만 2명 가지고는 모자른 모양이다. 결국 15만마낫(6달러)에 출발하기로 했다. 기사는 내 손을 꼭 잡으며 감사해 한다.

아쉬하바르까지는 360킬로이지만 3시간 반이면 도착한다고 한다.

저녁 7시가 안되어 출발한 승용차는 사막 도로를 날아다닌다. 120킬로 밑으로는 절대 안 떨어지고 165킬로까지 달린다. 밤이기는 하지만 상대편 수 킬로 떨어진 상대편 차량의 라이트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빨리 달리는 것이다.

투르크맨에 도착하자마자 계속 품은 의문은 어째서 이렇게 차량비가 싼 것일까?

그건 승용차가 주유소에 들어서서야 알 수 있었다. 휘발유 50리터를 넣는데 20000마낫..

그럼 5리터에 2000마낫이고.. 1리터에 400마낫..

맙소사 휘발유 1리터에 14원이다. 우리나라를 휘발유 1리터에 1400원에서 1500원을 오르락내리락 하는데 이곳에서는 800원이면 50리터를 꽉 채우는 것이다. 때문에 투르크멘의 모든 물가가 싼 것이다.

여러 여행기를 통해사ㅓ 마리에서 아쉬하바르까지는 검문이 심한 줄 알았는데 반정도는 그냥 통과하고 나머지 반은 여권만 보고 통과시켜준다.  

밤 10시가 넘어서 아쉬하바르에 도착했다. 도시의 첫인상은 정말 아름답다는 것이다. 가로등은 물론 건물 하나하나에 조명이 입혀졌는데 정말 아름다운 야경이다. 밤새도록 전등은 끄지 않는다고 한다.

택시 기사와는 의사소통이 안 되어 론니 지도를 보며 1.5킬로를 걸어 아나노프 홈스테이(Amanov Homestay)를 찾을 수 있었다. 구소련 국가는 도로에 이름이 다 붙여져 있고 집마다 번지가 매겨져 있다. 길과 번지수만 알면 집 찾기가 용이하다.

하루 숙박비는 5달러이다. 여행 비자를 가지고 왔으면 무조건 호텔에 묵어야 하기에 이곳에 올 수 없지만 트랜짓은 자유롭게 숙소를 정할 수 있다.

투르크멘 사람들에게 가스는 무료로 공급된다. 때문에 가스 불을 켜놓고 끄지를 않는다.  풍부한 가스 덕분에 난방과 샤워는 걱정 없이 할 수 있다.

투르크맨에서의 첫날은 이렇게 끝이 났다. 오늘 만약 부하라에서 출발했으면 마리에서 발이 묶였을 텐데 아랏에서 출발했기에 이렇게 아쉬하바르까지 올 수 있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4일..

역시 투르크멘은 다른 여행지와는 달리 색다른 모습들이 많은 재미있는 여행지이다.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경험을 하려고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