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2일(일)

오늘의 미션은 톨쿠치카 바자르, 사라진 고대도시 니사, 그리고 아쉬하바르 시내를 둘러보는 것이다.

가장 먼저 톨쿠치카 바자르로 향했다. 세실 B 드밀(Cecil B de Mille)의 수많은 다양한 배역을 끌어낸 거대한 일요 시장이다. 사막시장으로도 유명하다.

마침 오늘이 일요일이라 톨쿠치카 바자르로 갈 수 있었다. 만약 다른 요일에 왔다면 가지 못했을 것이다. 의외의 행운이다.

시내에서 택시를 타고 톨쿠치카로 가려고 하니 택시들이 멀다고 거절을 한다. 할 수 없이 거금 30000마낫(1200원)에 시내에서 북쪽으로 8km 떨어진 바자르로 갈 수 있었다.

황량한 사막에 낙타와 사람들은 전통 옷을 입고 물건들을 사고파는 것을 상상했으나 정작 톨쿠치카 바자르는 꽤 넓었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바자르 풍경도 여느 바자르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중고차 시장이다. 기름 값이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투르크멘에서는 차만 구입하면 어디든지 돈 안들이고 갈 수 있다는 의식이 사람들 머릿속에 박혀있다.

기름값 때문에 차량 구입을 주저하는 우리로서는 부럽기만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이처럼 기름 값이 싸면 한반도 전체가 매연으로 뒤 덮혔을 것이다.

바자르를 쭉 걷다가 테트리스나 러시아 영화에서 볼 수 있는 털모자를 파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여행을 하면서 기념품 욕심은 전혀 안 부리지만 이 모자만큼은 꼭 사고 싶었다. 타슈켄트에서 처음 25$를 불렀고, 부하라에서는 15$까지 깍았지만 도무지 정상 가격을 부를 알 수 없어서 사는 것을 미뤘다.

시장에는 많은 카펫과 물건들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빗자루이다. 우리반 교실에서 쓰는 빗자로와 똑 같이 생겼다. 저것 몇 개 교실에 가져다 쓰면 좋을 텐데..

하지만 톨쿠치카 시장에서는 60000마낫(2400원)을 부른다. 즉시 모자를 구입하니까 상인이 악수를 하면서 고마워한다. 아마 이 가격도 비싸게 산 것이리라.

바자르에서 아쉬하바르 기차역(바그잘)까지는 10000마낫에 올 수 있었다. 기사 표정을 보니 이것도 많이 준 듯한데..

도무지 여기 택시비의 기준을 알 수가 없었다. 오늘 저녁때 한국인 사업가를 만나서 물어보니 웬만한 시내는 5000마낫(200원)이면 갈 수 있고, 조금 먼 곳은 10000마낫을 주면 된다. 택시를 1시간 렌트하는데 40000마낫(1600원)을 기준으로 조금 더 주면 빌릴 수 있다고 한다.

다음 목적지는 파르티아 왕국의 수도였던 니사이다.

니사로 가기위해 기차역에서 승용차에 다가가니 한 기사가 나를 납치하듯이 자신의 차량으로 데리고 간다.

니사에서 왕복하는데 80000마낫을 부르기에 흔쾌히 수락했다.

기차역에서 출발한 승용차는 조금 가더니 한 호텔 앞에 멈춘다. 호텔이름은 니사호텔이다.

장난하나.. 겨우 이 거리를 가지고 80000마낫이나 받으려고 하는 기사가 괘씸했다.

난 버럭 화를 내면서 안 되는 바디 랭귀지로 시내에서 20킬로 떨어진 니사 유적지라고 설명을 하니 거기까지 가려면 15만(6000원)마낫을 내라고 한다.

어제 마리에서 아쉬하바르로 온 비용이 15만 마낫이라고 근거를 대면서 10만 마낫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잠시간의 대립이 지나고 15만 마낫에 니사유적지와 아쉬하바르 남쪽으로 2킬로 떨어져 있는 Berzengi 지역까지 돌고 기차역까지 오는데 15만마낫을 주는 절충안을 마련하니 기사도 마지못해 수락한다.

시내를 빠져나올 때 도로 한가운데 거대한 조형물이 세워져 있는데 검문소이다.  검문소 가운데에는 황금색 동상이 있는데 투르크맨 대통령 니아조프이다.

검문소를 지나 한참을 달리자 기사는 언덕을 가르키며 니사 유적지라고 한다.

니사 유적지는 버젠기(Berzengi)마을에서도 떨어져 있기 때문에 택시를 이용해서 오는 것이 좋다.

사실 투르크맨에서는 교통비용이 워낙 싸서 버스를 이용할 마음이 안 생긴다. 이럴 때 택시를 실컷 이용해 봐야겠다.

니사 유적지는 기원전 3세기에 파르티아 왕조의 수도로 번영을 누렸으며 알렉산더 대왕의 침입을 받았다.

멜브와 마찬가지로 몽고의 침입으로 완전히 파괴가 되었고 그 이후 황량하게 방치되어 있다.

승용차를 주차장에 기다리게 하고 나 혼자 언덕을 올랐다. 성벽의 흔적들은 여전히 남아 있으며 그 위에 올라가 주변 풍경을 보니 마을이 주변산과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모습이다.  

니사 유적지에는 조로아스터 사원, 궁전등이 있지만 설명이 없다. 복원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어느 정도 건물 잔해는 남아 있는데 그 골목 사이를 홀로 돌아다니며 2000년전의 파르티아 사람이 되어 보았다.

파르티아 왕조는 이란과 중동지역을 지배한 거대 왕국으로 당시 최고 잘 나갔던 로마의 카이사르도 정벌에 실패한 강성한 왕국이다.

파르티아에 대해서는 돌아가면 더 공부를 해야겠다. 또 하나의 숙제가 주어지는군..

돌아오는 길에 아쉬하바르 전경을 볼 수 있어서 잠시 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었다. 아쉬하바르에 있을 때는 못 느꼈지만 여기서 관찰하니 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도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승용차를 타고 시내 남쪽의 베르젠기(Berzengi)지역으로 이동했다. 국립박물관으로 가니 화려한 공원에 거대한 대통령 황금 동상이 있고, 거기에는 군인 두명이 꼼짝도 않은 채 지키고 있다. 표정하고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아 다가가니 바로 옆의 상관인 듯한 군인이 악수를 하면서 제지한다.

투르크멘 군인과 경찰은 다른 중앙아시아 지역과는 달리 외국인에게 무척 친절하고 농담도 잘 하는 편이다. 특히 길을 물어볼 때는 소상히 잘 가르쳐주는 편이다.

그건 그렇고 거대한 대통령 황금동상을 보니 참 기분이 묘하다. 저렇게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 싶을까? 많은 독재자들이 후세에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모르는건 아닐텐데..

박물관은 둥근 원형 돔에 첨탑이 위로 뻗어 있는 아름다운 건물이다. 주변에는 수많은 투르크멘 위인들 동상이 있고, 분수들은 저마다 물을 뿜어대고 있다. 이 장소는 투르크맨 관공서에 붙어있는 대통령 사진의 배경으로 많이 쓰인다.

박물관에 들어가려 하니 2시까지는 점심시간이라 못 들어간다고 한다. 30분 정도 공원을 둘러본 후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외관과 역시 내부도 화려하기 그지없다. 현지인은 5000마낫이지만 외국인은 10달러를 내야 한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니..

대통령 찬양 전시물 반.. 역사 유물 전시물은 19세기 총, 칼이 있을 뿐이다. 기대했던 멜브, 니사 유적 유물은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기원전에 만들어진 동전들을 발견했을 뿐이다.

대통령 찬양 포스터 보려고 여기 들어왔나.. 10달러가 정말 아깝기는 하지만 좋은 건물 보고 나왔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승용차를 타고 기차역에 도착하면서 거대한 책 조형물을 보는데 제목은 르흐라마이다. 이 낮에는 접혀 있다가 밤에 펼쳐진다고 한다. 유적지 복원할 생각안하고 이런 쓸데 없는데 돈을 퍼 붓다니..

기차역에 도착해 시계를 보니 승용차를 2시간 반 정도를 이용했다. 15만 마낫(6000원)을 기사에게 줬다.

오늘 일정이 어찌될지 몰라 일단 카스피해 항구도시인 투르크맨바쉬까지 가는 기차를 알아보았다.

매일 오후 8시 반에 출발하고 11시간 정도 걸린다. 일단 오늘 일정은 아쉬하바르를 구경하고 투르크맨바쉬로 가는 것으로 결정했다.(결국 못 갔다..) 일단 기차역에서 환전을 하니 1$에 24500마낫을 준다. (여기까지가 1$당 받을 수 있는 한계인듯)

아쉬하바르 시내를 걸으면서 제일 먼저 간 곳은 아자디(Azadi)모스크이다. 이스탄불의 블루 모스크랑 비슷한 터키양식의 모스크이다.

이곳 투르크맨에서 터키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최초에 돌궐족이 있었는데 유목민 특성상 이동을 하면서 민족들이 흩어졌다고 한다. 셀주크 투르크가 이곳 투르크맨에 번성을 했지만 훗날 3개 나라로 갈라지는데 그중에 하나가 오스만투르크이고 오스만투르크는 지금의 터키가 되었으니 셀주크 후손인 이곳 투르크맨과 같은 민족인 셈이다.

또 하나의 형제는 바로 중국 신장의 위구르족이다. 개인적으로 신장을 여행했을 때도 위구르 사람들은 자신은 중국 사람이 아니고 터키 사람이라면서 중국에 대해 반감을 나타냈는데 1950년 중국이 공산화되기 전에는 '동투르키스탄’이라는 이름으로 잠시 독립을 했었고 국기도 터키국기와 색깔만 다르지 모양은 똑같았다고 한다.

터키는 투르크멘이 독립하고 가장 먼저 수교한 나라이며 많은 터키 기업들이 이곳에 진출해 있다. 또한 월드컵 시즌에는 이곳 사람들이 터키를 응원하는 건 당연지사..

독립공원(Independence Square)으로 들어서니 아쉬하바르 대학이 보인다. 이 나라 최고의 대학이기는 하지만 규모는 작은 편이다.

대통령 독재를 위해서 교육을 탄압하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실제로 11년 의무교육이 9년으로 줄어들었으며 5년제 대학과정이 4년으로 줄었고, 그나마 4년제도 2년만 수료하면 졸업할 수 있게 제도를 바꿨다.

한마디로 국민들 중에 똑똑한 놈이 나오면 골치 아프니까 그냥 무식하게 살라는 우민화 정책이다.

그럼 이곳의 유일신으로 추앙받는 대통령은 누구인가?

사파르미낫 니아조프는 1940년에 아쉬하바르 근교에 태어났다. 2차 세계대전 때 아버지를 잃고 1949년 대지진 때 어머니와 형제를 잃는 아픔을 겪는다. 러시아의 샹프페테르부르크에서 공부하면서부터 승승장구하기 시작하고 결국 소련이 붕괴되던 1990년 당시에는 투르크멘 제 1서기장이 되어 있었다.

사실 니아조프는 처음에는 소련에서 독립할 의사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고르바초프와 공산당의 몰락을 가져온 3일 쿠데타 이후 러시아에 집권한 민족주의자 옐친은 ‘우리도 힘드니 너희들은 알아서 먹고 살라,’라고 외치며 각 민족별로 독립을 시켰고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거스를 수 없게 된 투르크매니스탄은 다른 중앙아시아와는 1달반 정도 늦은 시기에 독립을 한다.

갓 독립을 한 신생국가와 그에 준하는 변화를 겪은 사회의 특징은 바로 독재자가 나타나기 쉬운 환경이 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영국의 올리버 크롬월,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그랬고 독일의 히틀러를 비롯해 우리나라의 이승만 대통령이 그렇다. 또한 대부분의 구 소련권 나라의 공통적인 특징이다.(북한이야 말할 것도 없지)

  중앙아시아 국가중에서도 투르크맨 대통령은 독재를 넘어 우상화 정책으로 나가고 있다.  니아조프 대통령은 1999년 법을 바꿔서 종신 대통령이 되었다. 이름도 니아조프에서 투르크맨의 우두머리라는 뜻의 ‘투르크맨바쉬’로 고치고 철저하게 자기 우상화 작업을 하고 있다. 도시 이름도 투르크맨밧, 투르크맨바쉬로 바꾸지 않았는가..

또한 ‘르흐라마’라는 이름의 책을 보급하여 코란이나 성경책처럼 읽도록 강요를 한다. 르흐라마의 내용은 코란에서 따온 것이라 하는데 거의 북한의 주체사상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얼마 전에는 ‘르흐라마’ 2탄을 펴냈다고 한다.

  어디를 가든지 간에 대통령의 살인미소 사진을 볼 수 있고, 아쉬하바르 곳곳에서는 황금색 대통령 동상과 대통령 찬양 조형물을 볼 수 있다.

외국인인 나로서는 이해가 안가다 못해 유치하기까지 하지만 이런 싸이코틱한 지도자 밑에서 신음하는 투르크멘 사람들에게는 큰 불행이다.

아자디(Azadi)광장으로 걷다보니 거대한 탑이 보이고 그 앞에는 거대한 황소가 지구를 강타하는 동상이 서 있다.

지진 박물관인데 박물관 위에 동상이 서 있다. 궂지 설명을 안 봐도 동상의 내용을 알 수 있다. 거대한 황소는 지진을 나타낸 것이고, 동그란 지구에 죽어가는 아우성 거리는 사람들 위로 여인의 동상이 있고 그 여인이 황금색 아기를 떠받들고 있다. 황금색 아기는 대통령이겠지?

실제 대통령은 1949년 대지진 때 어머니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살아났다고 한다. 때문에 곳곳에 대통령 어머니 동상이 많이 세워져 있다.

과연 어머니의 모성으로 아이를 살리면서 국민을 탄압하는 독재자가 되기를 원했을까? 본인의 뜻과는 무관하게 어머니 역시 우상화되고 있다.

바로 옆에는 거대한 탑이 있고 탑 위에는 거대한 황금 대통령 동상이 있다. 론니플래닛에도 이곳에 가면 웃길(Comic)거라고 쓰여 있다.

이 탑은 대통령의 사진에 배경으로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유명한 탑이다. 특히 거대한 황금동상은 태양을 따라 조금씩 움직인다고 한다. 때문에 해바라기 동상이라는 별명이 붙여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부르면 잡혀간다. 누가 이렇게까지 유치한 발상을 했을까?

하긴 대통령 자체도 유치하다.

이곳을 여행하기 전에 YTN에서 투르크멘에 대해 특별 취재를 했던 내용을 우연히 봤는데 투르크맨에서 가장 권위 있는 회의인 ‘투르크맨 민족 회의’ 때 한번은 대통령은 ‘이제 자신은 물러날 때가 나 되었다’라는 깜짝 발언을 했다.

그때 청중들은 거의 눈물을 흘리며 ‘당신이 없으면 누가 투르크맨을 이끌어가느냐.’며 아우성거렸다고 한다.

그 모습을 웃으면서 바라 본 대통령은 반려했다는 재미있는 코메디를 봤었다. 유치한 대통령과 그에 맞춰주는 유치한 측근들.. 국민들만 불쌍하다.

탑 중간에는 까지는 엘리베이터(1000마낫)를 타고 올라 갈 수 있다. 올라가니 아쉬하바르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바로 옆에 국회 의사당을 비롯해 대통령 궁등 화려한 건물들이 이어진다.

아쉬하바르 시내 전체는 화려하기 그지없다. 모든 건물이 계획된 가운데서 지어지고 새로 지어지는 모든 건물이 화려하다.

중학교 때 즐겼던 컴퓨터게임인 심시티(도시 건설 게임)가 생각한다. 대통령도 이런 도시 건설 게임을 즐기고 있는 것일까?

저녁에는 한국인 사업가 집을 방문했다. 우즈벡에서 만났던 대전의 윤선생님이 꼭 방문해보라고 소개해 주셨다.

오랜만에 한국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좋았지만 무엇보다 4년 동안 이곳에 사신 사장님에게 투르크멘에 대해 이야기를 물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사장님께 들은 이야기는 앞의 여행기에 포함되어 있음)

대통령이 2009년까지는 공공요금을 인상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기에 가스비와 전기비는 무료이고, 석유로 거의 헐값에 살 수 있다. 무엇보다 비행기(1~2달러)와 공공 버스(50마낫)등 공공요금이 잔일할 만큼 싼 이유도 그 이유이다.

2000년 이후 3번의 숙청이 있었으며 그 숙청 과정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1994년~1995년 사이에 반정부 시위가 있었지만 시위 주동자들은 모두 행방불명이 되었다.

이곳 사람들은 정부에 대한 반감이 심하지만 어느 누구도 쉽사리 나서지 못하고 있다.

투르크멘의 어마어마 한 석유와 가스를 잡기 위해 많은 나라가 달려들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대사는 물론 민간교류도 지지부진한 형편이다.

얼마 전 삼성에서 구 소련권에서 2번째로 규모가 큰 센터를 만들기는 했다.

깡패국가로 지정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투르크멘 주재 미대사는 ‘투르크메니스탄의 정치는 자유로우며 미국의 진정한 우방이다.’라는 헛소리를 해댄다. 미국식 이기주의가 우즈벡에 이어 투르크멘에도 나타나는 현실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니 투르크멘바쉬로 향하는 기차시간이 지났다. 그곳으로 가는 것보다 투르크멘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더 좋은 경험이다.

한국에서 한 오지 여행가가  ‘투르크멘’을 여행했던 여행기를 책으로 펴냈는데 실제 여행을 해보니 과장이 너무 심했다.

처음 그 책을 읽으면서 이곳 도로 사정은 최악이고 경찰/군인들은 외국인에게 불친절을 떠나 적대시 한다고까지 되어 있어서 긴장을 했었는데 결론적으로 잘못 된 정보이다.

중앙아시아 그 어느 곳보다도 길이 잘 닦여 있고 교통도 편리하다. 또한 검문소가 많기는 하지만 실제로 검문은 심하지 않고 외국인에게는 친절하다.

무엇보다 그 책에는 투르크멘 대통령은 아들까지도 승계가 가능하다고 쓰여 있는데 실제 아들은 러시아에 살면서 카지노를 하다가 돈이 떨어지면 투르크멘으로 돌아와 아버지에게 손을 벌린다는 소문만 있고 공식석상에는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신의 가이드가 고려인 3세라고 되어 있는데 이곳 고려인 3세 중에서 유창한 한국말을 하는 고려인은 없고, 사실 그 작가에게 한국 교포가 가이드를 해줬다고 한다.

사장님은 ‘그 작가분.. 투르크맨을 4박 5일 동안 여행을 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책 한권을 펴내는지...’ 너털웃음을 지으시면서 ‘그래도 투르크멘을 조금이나마 알리지 않았나요? 제가 알기로는 초판이 다 팔려 재판을 찍는다고 하던데요.’라고 하신다.

난 그 책을 기념으로 사장님께 드렸다. 여행하는데 하나도 도움이 안 되어서이다.

남의 책을 비판하는 건 안 자제하려고 했지만 읽는 독자로 하여금 ‘투르크멘은 이상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라는 그릇된 시각을 주기 때문에 단호하게 말하는 것이다. 책을 팔기 위해 흥미위주로 쓴 것 같다.

비자 받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투르크메니스탄은 여행하기에는 꽤 괜찮은 환경이다. 이곳에 관한 정보가 부족해서 그렇지 어디 가든지 다 사람 사는 곳이고 손님에 대해서는 배려를 해준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그리고 여행자가 없는 여행지이기에 더욱 흥미로운 여행이 될 것이다.

밤 9시에 어제 머물렀던 아나노프 홈스테이로 돌아왔다.

일단 내일은 비행장으로 가서 투르크맨바쉬로 가는 비행기표를 끊어보려고 한다. 비행기표가 1~2$ 선이라 예약을 하지 않으면 구하기가 정말 힘들다고 하지만 일단은 부딪혀 보겠다.

휴.. 벌써 2일 지났다. 앞으로 3일의 시간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