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4일(화)

밤을 샌 채로 새벽 4시에 숙소를 나섰다.

이곳 법으로 오후 11시 이후에는 모든 술집과 가게는 무조건 문을 닫아야 하기에 밤거리에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덕분에 투르크멘에서는 밤늦게 술주정 하는 사람이 없다고 함)

하늘에는 초승달이 떠 있고 아무도 없는 거리에 나 홀로 배낭을 메고 걷고 있다. 주변에는 화려한 가로등과 멋진 조명에 비친 건물과 수많은 분수가 계속 춤을 추고 있다.

무슨 동화속의 장면같다.

시내에서 택시를 잡아(30000마낫) 공항까지 갈 수 있었다.

새벽 5시 반에 경찰과 공항 직원들이 여권과 비행기 표를 대조해가며 체크를 하는데 내 여권을 본 직원이 문제가 있다며 옆의 경찰을 부른다.

투르크멘 비자에 ‘다쉬오구스’가 적혀있지 않다는 것..

난 어제 비행기 표를 사는데 아무것도 없었으며 트랜짓 비자라 도시들을 일일이 적지 않는다고 우겼다.

내 말을 들은 직원은 잠시 경찰과 상의하더니 귀찮다는 듯 통과시켜 준다.

다음날 엥겔사의 장부장님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비자에 해당 도시가 적혀 있지 않으면 비행기를 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신다.(비행기 타는 자체가 기적이니..)

비행기 기종은 ‘보잉 717’.... 진짜 오래된 고물 비행기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30년 넘은 ‘보잉 727’을 타봤는데 이곳에서 더 오래된 기종을 타다니.. 제발 추락하지만 말아다오..(아프간에서 내가 탄 비행기는 약 8개월 뒤 추락 했다고 뉴스에서 봄)

세계 최고의 싸구려 비행기이긴 하지만 지정좌석제이고 스튜어디스도 2명 있는 웬만큼 구색은 갖췄다.

비행기가 이륙을 하니 아쉬하바르의 야경이 정말 아름답다.

곧 기내식이 나오는데 사탕 4개에 콜라 한잔..

워낙 구식 비행기라 굉음이 심하지만 어느 정도 탈만하다. 단지 비행기가 흔들릴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리곤 한다.

낮이었으면 카라쿰 사막을 관찰 할 수 있었지만 아쉽게 어두운 새벽이라 창문 밖은 암흑 세계이다.

밤을 샌 탓인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이 스르르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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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 30분에 다쉬오구스에 착륙할 때 쯤 눈을 떴다. 좀 더 잤으면 좋았을텐데.

아쉬움을 뒤로한 채 비행기에서 내리자 가장 먼저 반겨준 건 역시 추위였다.

여기서도 군인들은 내 비자에 ‘다쉬오구스’가 적혀 있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았지만 어쩌겠어? 이미 와버렸는데..

혹시 투르크멘바쉬나 아쉬하바르로 가는 비행기 표가 있는지 알아보려고 했지만 매표원에게 말을 걸어도 상대를 안 한다.

군인들에게 아쉬하바르로 가는 차량은 많이 있는지 물어보니 지금 눈이 많이 내려서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아차~ 내가 한 가지 관과 한 사실이 있구나.. 바로 폭설에 의해 길이 끊길 가능성이 있다는 것..

만약 길이 끊긴다면 내일 비자가 완료되는 나로서는 그야말로 끝장이다. 아마 학교 개학 때까지 한국에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일단 코니에 우르겐치를 둘러본 후 아쉬하바르로 돌아가는 차량을 알아보기로 했다.

공항에서 택시(30000마낫)를 타고 20분 정도 달리자 다쉬오구스 시내에 도착했다. 택시에서 내리자 너무 추웠다.

코니에 우르겐치로 향하는 택시(40000마낫)를 얼른 잡아 다른 승객을 기다리는 동안 히터를 틀어달라고 부탁했다.

비자 기간도 얼마 없으면서 왜 이곳에 올 생각을 했을까? 폭설과 추위와 불안감이 맞물려 어느덧 후회로 변하고 있었다.

승용차가 출발한지 2시간 만에 코니에 우르겐치에 도착했다. 역시 시내에 들어서는 입구에는 거대한 대통령 초상화가 있다.

‘코니에(Konye)’는 이곳 말로 옛날이라는 뜻이다. 12세기 셀주크 투르크때 이미 주요 도시로 성장해 있었으며 다음 세대인 호라즘 왕국 시대에는 이슬람 제국의 중심지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제 2의 알렉산더 대왕이라고 외치며 기고만장했던 모하메드 2세가 칭기스칸을 잘 못 건드리는 바람에 몽고군의 침략을 불러왔고, 결국1218년 징기스칸이 이끄는 몽고군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징기스칸 사후 다시 도시가 재건되기는 했지만 티무르 시대 때는 중심도시가 코니에 우르겐치에서 사마르칸트로 이동이 되면서 코니에 우르겐치는 역사의 뒤편으로 서서히 퇴장한다.

16세기 아무다리야 강줄기가 이동을 하면서 이곳에서 남동쪽으로 150킬로 떨어진 지금의 우르겐치(우즈벡)으로 도시를 완전히 옮긴다.

최근에 와서는 다시 코니에 우르겐치에 도시가 생기기는 했지만 수 많은 유적지들은 몇백년 동안 방치 되면서 거의 파괴되었다.

그나마 유적지가 남아 있는 곳은 시내 중심의 네자메딘 쿠브라(Nejameddin Kubra)마우솔레움과 시내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남쪽유적지(Southern Monument)이다.

다쉬오구스에서 타고 온 승용차는 원래 시내에서만 승객을 내려주지만 기사에게 5000마낫(200원)을 더 주고 남쪽 유적지까지 태워달라고 부탁했다.

유적지는 순서대로 볼 수 있도록 길이 잘 정비되어 있다. 입구에서 입장료 25000마낫을 주고 바로 투라벡 칸(Turabeg Khanym) 마우솔레움을 둘러보았다. 12세기에 지어졌고 중앙아시아에서는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마우솔레움이기도 하다.(대부분은 복원 된 것임)

중앙에는 무덤이 그대로 있고, 특히 아치 형태로 된 천장이 아름다운 문양으로 지어져 있다.

마우솔레움에서 도로를 건너 사비드 아메드(Sayid Ahmed) 마우솔레움으로 갔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현지 사람들이 기도를 드리러 마우솔레움 안으로 들어선다. 지금은 마우솔레움이기보다 모스크로 쓰이고 있는 것 같다.

이 추운 날씨에도 기도를 드리러 이곳까지 오는 것으로 봐서는 현지인의 알라신에 대한 신앙심이 깊은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옆에는 티무르(Gutlug Timur)미나렛이 우뚝 서 있다. 1320년에 지어졌으며 코니에 우르겐치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메인 모스크 건물이다.(나머지는 모두 세월의 풍상을 견디지 못했나보다.)

원래는 68m로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모스크였으며 입구는 7m높이의 다리를 통해 메인 모스크와 연결 되었다고 한다.

모스크와 미나렛이 원형 그대로 보존 되어있었으면 사마르칸트 못지않은 대단한 볼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황룡사지 9층탑이 문뜩 떠오른다.

통일신라시대 지어진 황룡사지 9층탑은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목조 건물이었지만 몽고군의 침략으로 모조리 불에 타고 말았다. 만약 남아있었으면 세계적인 문화 유산이 되었을 것이다.

미나렛 주변에는 우물이 있는데, 들어가보니 지금도 물이 나와 우물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

술탄 텍쉬(Sutan Teksh)마우솔레움은 12세기 호라즘 왕국의 위대한 정복자 호라즘샤가 스스로 만든 마우솔레움이다. 옆에는 도서관으로 쓰인 큰 메드라사도 지었지만 지금은 사라졌다.

아무도 다니지 않은 눈길을 걷다보니 너무 추웠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추운 나머지 손이 빨갛게 변해있었다. 코는 아예 감각이 없다. 그래도 입은 목 토시에서 내 놓았다. 만약 춥다고 해서 입김을 코로 불게 되면 습기 때문에 코에 동상이 걸릴 것이다.

어서 빨리 아쉬하바르로 돌아가고픈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그래도 어렵게 이곳까지 왔으니 나머지 유적도 봐야한다고 다시 마음을 추스렸다. 일 아르스란 (Il-Arslan)마우솔레움은 1172년 일 아르스란의 묘로서 코니에 우르겐치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마지막으로 마눈 (Mamun II)미나렛으로 갔다. 매표원이 미니 미나렛이라고 하기에 작은 크기의 미나렛인 줄 알았는데 1011년에 지어져 13세기 몽고군에게 완전히 파괴되었다가 14세기 다시 지어져 1895년에 지진으로 파괴되어 밑둥만 남아있는 미나렛이다. 나름대로 고난의 세월을 보냈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눈보라와 추위로 내가 너무 고달프다. 발걸음을 돌려 종종 걸음으로 입구로 향했다.

그런데 아까부터 관찰했지만 작은 언덕에 사람들이 계속 올라가는 모습이 신경 쓰인다. 혹시 무슨 유적지 인가? 왜 사람들이 다른 유적에는 관심이 없고 저 언덕에만 올라가는 거지? 주변 모습이 잘 보여서 그런가?

언덕에 오르려고 하니 한 아줌마가 미끄러우니 나보고 손을 잡아달라고 한다. 뭐 춥지만 친절 미소는 잃지 말아야지.

사람들을 따라 언덕에 오르니 수많은 파편이 있고, 주변의 공동묘지만이 보일뿐이다.
어? 그런데 아줌마들이 눈에 쌓인 언덕 위에서 아래를 향해 온몸을 던져 구른다. 뭐하는 짓이지? 혹시 내려가기 귀찮아서 그런 건가?

아줌마들은 나보고도 굴러보라고 한다.

지금 동상 걸릴까 걱정하고 있는 상황에 눈 쌓인 언덕에서 구르라고? 절대 그렇게 못한다.

다음날 엥겔사의 장부장님께 들은 이야기지만 이 언덕 이름은 킬크몰라(Kirkmolla) 언덕으로 40명의 뮬라가 몽고군에게 마지막까지 저항한 언덕이다.

이곳에서 몸을 구르면 임신을 한다는 전설이 있기에 이 추운 날씨에도 많은 젊은 여성들이 몸을 던져 구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보고는 왜 구르라고 한 거야?

유적지 관람을 다 마치니 12시가 조금 넘었다. 코니에 우르겐치 시내에 또 다른 유적지가 있기는 하지만 추위와 눈보라로 이미 관심권에서 벗어났다.

어서 따뜻한 곳으로 가야겠다.

입구에 가니 친절한 매표원이 택시가 올 때까지 잠시 몸 좀 녹이고 가라고 한다. 매표원이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를 불러내어 기도를 청하는 것을 보면 사제인 것 같기도 하다.

택시(3000마낫)을 타고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아쉬하바르로 가는 승용차가 있다. 아직 길이 막히지는 않았던 것이다. 원래는 18만마낫(7200원)이면 되는데 운전사는 25만마낫(10000원)을 요구한다.

어짜피 다른 차량은 없고 해서 앞좌석에 앉는다는 조건으로 25만마낫을 내기로 했다.

지금이 오후 1시 반이니까 모래사막인 카라쿰 사막을 보면서 갈 수 있겠다.

승용차가 출발하기 위해서는 4명이 모여야 하는데 3명까지는 쉽게 모였다. 나머지 4명 째를 태우기 위해 승용차가 한 집 앞으로 갔는데 타기로 한 사람이 도무지 나오지를 않는다.

40분정도를 기다리니 정장을 입은 사내가 탄다.

이제 아쉬하바르로 출발하나 싶었는데 또 다른 건물에 멈추더니 마지막에 탄 사내와 운전자는 건물에 들어가더니 도무지 나올 생각을 안 한다.

기다림에 지쳐 건물에 들어가 보니 운전사는 사내가 여권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아 못가고 있다고 한다.

결국 2시간을 흘러도 사내는 여권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 신경질을 내며 택시를 잡아 집으로 돌아간다.

자신 때문에 3시간을 기다린 나머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은 전혀 볼 수 없는 뻔뻔함이다.

운전사는 나보고 50만 마낫을 내면 지금 출발한다고 꼬시지만 내가 미쳤나.. 여태까지 기다린 것도 열 받는데 웃돈주고 출발하게..

기다린 덕분에 좋은 점도 있었다. 시내 중심의 네자메딘 쿠브라(Nejameddin Kubra) 마우솔레움 주변을 생각지도 않게 볼 수 있었다.

사실 너무나 추워서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덕분에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기다리니 한 아줌마가 승용차에 탔다. 이제 정말로 아쉬하바르로 출발했다.

승용차가 주유소에 들러 주유를 하는 동안 차에서 내러 기름값을 봤다. 휘발유를 1리터에 400마낫(14원), 경유는 300마낫(11원)..

한국에 돌아가면 아무도 안 믿을까봐 사진을 찍어두었다.

그런데 이놈의 운전사는 또다시 행방불명이다.

결국 1시간 뒤에 운전사가 돌아왔다.

이제는 성질이 폭팔하려고 했지만 사실 이번에는 나 때문에 지체 한 것이라 한다.

아까 주유소에서 사진을 찍은 것이 문제가 되어 경찰한테 불려갔다는 것이다. 주유소에서 사진 찍는 것이 문제가 되나? 어쨌든 나 때문에 고초를 겪은 운전사에게 정말 미안하다.

오후 6시 반..

이제 진짜로 출발했다.

낮이었으면 사막을 감상하며 가겠지만 밤이라 그냥 시간 지나가기를 바랄 수밖에..

코니에 우르겐치에서 아쉬하바르까지는 사막을 그대로 통과를 하는데 마리~아쉬하바르 도로와는 달리 소통하는 차량 숫자가 극히 적었다.

무엇보다 경찰들의 꼬장이 심하다.

검문은 딱 4번 있었지만 그냥 넘어가지를 않고 30분 정도를 지체한다. 특히 내 여권을 이리저리 헤집고 여권 내용물까지 뒤진 흔적이 있을 때는 기분이 나쁘다.

2번째 검문에서는 나를 불러내어 심문하기까지 했다.

또한 운전사가 여권을 등록하러 간 동안 경찰이 지 멋대로 운전석에 앉아 음악을 크게 틀며 차량을 이리저리 몰면서 장난치는 행태는 깡패.. 그 모습이다.

장부장님은 경찰의 검문이나 권인적인 모습이 코니에 우르겐치 쪽이 가장 심하며 오늘 내가 이곳 경찰들에 대해 제대로 본 것이라 하신다.

첫날 군인과 경찰의 친절로 투르크멘 경찰들은 외국인에게 친절하다는 그릇된 인식을 줄 뻔했다.

친절한 경찰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지저분한 경찰들도 많다. 지역적인 차이가 있고, 시골 지역일수록 지저분함의 정도가 심하다.

중앙아시아에서는 가장 많은 120~150$의 월급을 받기 때문에 뇌물을 요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단지 국경을 통과할 때 비자나 거주등록증에 문제가 있으면 뇌물을 요구한다는 사실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아쉬하바르에 도착하니 새벽 3시이다. 운전사는 이름 모를 곳에 멈추면서 택시를 타고 시내로 들어서라고 하지만 25만마낫이나 내서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했다. 원래는 새벽에 아쉬하바르로 오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결국 숙소인 아나노프 게스트하우스 근처까지 왔다.

늦은 시각인데도 불구하고 주인아저씨는 ‘No Problem'이라고 연신 외치며 반갑게 맞아 주신다.

내가 올 것을 아셨는지 미리 이부자리도 펴 놓으셨다. 정말 고마운 아저씨이다. 그러고 보니 투르크멘에서의 4박을 아나노프 게스트하우스에서 다 하네..

그러고 보니 투르크멘에서 불가능한 것을 다 이루었네..

기적에 가깝게 비행기 표를 샀고, 탑승이 불가능한데도 비행기를 탄 것을 비롯해 새벽에 아쉬하바르로 진입이 금지되어 있는데 들어왔고 무엇보다 짧은 시간에 투르크멘의 여러면을 봤다는 것이다.

어제 밤을 새고 추위에 시달리며 코니에 우르겐치를 보다가 밤새 사막을 종단해 왔고..
쌓인 피곤이 엄습해서 거의 쓰러지다시피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