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7일(금)

꿈이기를 바랬지만 아침에 일어나니 역시 배낭은 없다.

테헤란은 인구 1400만의 도시이다. 아파트가 거의 없어 도시면적은 서울보다 훨씬 넓으며 집들의 형태도 거의 비슷하다.

난 테헤란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예 없으며 말도 안 통한다. 무엇보다 어제 계속 비가 왔기 때문에 방향을 알 수가 없으며 정신이 없는 상태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런 상태에서 노트북을 찾을 가능성은?

그건 백사장에서 모래알 찾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백사장은 면적이 좁기라도 하지 ㅡ.ㅡ)

먼저 내가 마사드에서 온 것을 주목했다. 테헤란에는 4개의 터미널이 있는데 마사드에서 출발한 버스는 주로 동터미널에 정차한다.

터미널에서 곧장 직선으로 시내에 진입했으니까 터미널만 찾으면 되겠군..

의외로 간단할 수도 있겠다.

지하철과 택시를 이용해서 동터미널로 갔지만 어제 내가 내린 곳이 아니다. 터미널은 시내 안에 있었고, 내가 내린 곳은 시내와는 떨어진 도로상이다.

도대체 내가 어디서 내린 거지?

아참.. 어제 테헤란 대학에 갔었지.. 차를 타고 테헤란 대학에 갔을 때 분명 북쪽을 향했던 것이 생각났다.

론니 지도(테헤란)를 보니 테헤란 대학은 시내 남쪽에 있었다. 버스 운전사도 빨리 운전을 마치고 싶으니까 테헤란 시내를 삥 돌아서 내려줬을리는 없을 것이고..

테헤란 대학보다 더 남쪽에 위치한 마사드로 연결 된 도로만 찾으면 된다.

크게 두 도로가 있는데 내가 내린 도로는 고속도로일 가능성이 컸다. 어제 테헤란 시내로 들어서면서 톨게이트 비슷한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테헤란 바자르로 돌아온 후 고속도로를 향해 무작정 걸었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테헤란은 너무도 크다.

변두리 쪽으로만 나가면 어떻게 길을 찾지 않을까 싶었는데 시내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특히나 대로로 들어서부터는 더 헤매기 시작했다.

2시간을 걸었을까?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끝없는 시내는 계속 되고.. 마냥 고속도로를 향해 걸어가니 ‘그냥 마음 편하게 포기할까?’라는 유혹이 점점 끌려왔다.

그때 ‘Imam Khomeini Airport' 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공항은 내가 가려는 곳에서 완전히 다른 방향이잖아..

아..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다. 그냥 공항으로 가서 곧장 서울로 가는 비행기표를 끊어?

그런데 이상하게 이곳 대로에서 조금 떨어진 북쪽 도로로 가보고 싶었다. 이유는 없다 여행 중 자주 나타나는 웬지 모르는 감각에 의해서이다.

그래.. 저기 한번 가보고나서 돌아와 공항으로 향하자..

골목길을 500미터 정도 걸으니 도로에 자동차 수리점들이 쭉 늘어져 있다.

도로가 너무 좁잖아..

포기하고 다시 돌아서려는 순간..

영화 ‘공공의 적’의 마지막 부분에 강철중(설경구)형사가 범인을 잡을 수 있는 결정적 증거(손톱)를 찾았을 때 흐르는 음악이 있다.

그 음악이 내 마음속에서 흐르는 것이다.

바로 내가 어제 지나온 길에는 많은 차, 오토바이 수리점들이 있었던 것이다. 즉 어제 테헤란을 둘러보니 책, 가전, 자동차등 같은 업종의 가게들이 한데 모여 있는 특징을 가졌다는 사실을 추론 할 수 있다.

마침 비행기가 지나가는 방향이 어제와 비슷했다.

그 이야기는 내가 지나왔던 도로가 이 근처에 있다는 것..

변두리를 향해 더 걸어갔다.

30분 정도 걸으니 어제 내가 거쳐 왔던 톨게이트가 보였다. 어제 톨게이트 위에서 사진을 찍었었는데 비교해보니 정확히 일치했다.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이제 여기서 쭉 가기만 하면 된다. 어제 방향을 한번도 틀지 않고 쭉 갔던 것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어제 봤던 버스 정류장, 식당, 주유소, 운전 시험장이 주마등처럼 쭉 지나갔다.

결국 톨게이트에서 30분을 더 걸어 어제 샤힛과 처음 만났던 레스토랑을 찾아냈다.

일단 레스토랑으로 들어가 주인아저씨에게 사정을 이야기 하니 어제의 태도와는 달리 차를 대접해 주면서 안타까워하신다.

레스토랑 안의 손님들도 내 사정을 듣고는 안타까워하며 위로를 해준다.

난 사람들에게 어제 나를 데려갔고 샤힛의 신상정보에 대해 소상히 알려주었다. 어짜피 이 동네 사람이니까 찾을 수도 있겠지.

그런데 아는 사람이 없다. 일단 기억력에 의지한 채 집을 찾을 수밖에..

일단 거리 표지와 레스토랑을 사진에 담았다. 이정도만 해도 오늘 목적은 달성했다. 단서와 사진을 대사관에 전달해서 경찰 수사 자료로 넘기면 충분히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스스로 노트북을 찾고 싶었다. 북서쪽의 집들을 쭉 ?m어 봤지만 집들의 형태가 거의 비슷하고 어제 비를 많이 맞어 정신이 없는 상태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공원 끝머리에 있었던 것 같은데..

북서쪽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돌리니 공원이 나타났다. 웬지 이 근처일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지만 도무지 알 수가 있어야지..

공원을 벗어나자 아까 레스토랑에서 만난 청년들과 마주쳤고 그들은 바로 앞의 집을 가리키며 초인종을 눌러보라고 한다.

초인종을 누르니...

이럴 수가.. 샤힛이다..

만나자마자 주먹한대 날리고 싶었지만 샤힛은 나보고 왜 사라졌는지 되물으며 일단 집안으로 들어오라고 말한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주머니에는 손난로(쇠)와 디카를 준비해 두었다.

샤힛은 차를 마시라고 하지만 이미 그럴 정신은 없는 상태..

난 무조건 배낭을 달라고 했고 샤힛은 배낭을 보관한 장소로 안내한다. 그는 자신은 배낭을 잘 보관했으며 내가 안 올까봐 걱정했고 주인을 찾아주려고 경찰에 알렸다고 한다.

그렇게 말하니 미안해지기 시작한다.

괜히 외국인을 도와줬다가 낭패만 당한 것 아니야? 이렇게 샤힛의 호의가 나쁜 결과로 오면 오히려 샤힛에게 상처만 주는 건 아닌지..

고개를 들 수가 없었지만 일단 배낭을 찾아야 한다.

배낭은 어제 차를 운전했던 동생이 보관하고 있었지만 중요한 노트북은 다른 친구에게 맡겼다고 한다.

노트북을 맡긴 친구 가게에 가니 마침 금요일이라 문을 닫았다.(이란은 금요일이 쉬는날임)

샤힛은 내일 다시 오면 안 되는지 물어본다. 난 단호하게 안 된다고 말을 하니 근처 병원으로 데려가서 영어가 통하는 의사를 통해 사정을 설명한다.

하지만 내일 여기까지 어떻게 찾으라고.. 난 의사를 통해 내일 한국으로 출국을 해서 오늘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전화로 친구를 불러 노트북을 찾을 수 있었다. 아.. 정말 사랑스러운 노트북이여..
그나저나 샤힛에게 미안했다. 그는 나 때문에 고생을 했고, 또한 누명까지 쓸 뻔하지 않았는가.. 좋은 일 하려다고 혹시 상처를 받는 건 아닌지..

너무나 미안한 마음에 샤힛에게 50$라도 쥐어줄까 고민을 하다가 관뒀다. 이란 사람들은 자신의 호의에 대해 돈으로 답례 하는걸 무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샤힛에게 한국에 오면 꼭 연락하라고 한 후 포옹을 하고 헤어졌다. 오전 10시부터 7시간 동안 노트북을 찾으러 다녔던 것이다. 안도감과 함께 피료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맘 호메이니 역 근처에 Khazar Sea 호텔(60000리얄)을 새로운 숙소를 잡고 생각을 정리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샤힛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 난 분명히 기다렸는데 20분 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것과 헤어지기 직전 반 강제로 내 배낭을 메었던 것, 그리고 왜 노트북은 따로 전자 가게에 맡겨 놓은 거지? 무엇보다 샤힛은 자신은 배낭을 절대 건드리지 않았다고 계속 강조했던 것도 이상하고..

정답은 배낭을 푸니 알 수 있다. 이미 캐비어는 자기들이 먹었는지 없어지고 특히 노트북 모니터는 깨끗하게 닦여지고 노트북 프로그램 설정도 많이 바꿔놓았다.

또한 주변기기도 잘 포장이 되어 있었다. 그 이야기는 노트북을 팔기 위해서 전자 가게에 맡겨놓았던 것이다.

휴..

하지만 다행이다. 만약 샤힛이 자신이 언제 훔쳤냐며 오리발을 내밀었으면 난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또한 오늘이 휴일이었기 망정이지 만약 가게 문을 열어 노트북이 팔려 나갔으면 더욱더 찾기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쯤 샤힛은 변두리라 절대 못 찾아 올 줄 알았는데 집 앞까지 찾아온 나를 생각하며 지독한 놈이라고 혀를 차고 있겠지?

어떻게 노트북이 다시 내 손에 돌아왔는지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어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직선으로만 걸었던 것부터 여러 운과 노트북을 찾겠다는 집념과 올바른 상황 판단이 해변에서 모래알을 찾게 해준 것이다.

어제 오늘 일로 앞으로 여행을 하면서 절대 방심하면 안 된다는 커다란 교훈을 얻었다.(캐비어는 그냥 수업료로 생각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