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7일(목)

 

 오늘 이스탄불을 더 둘러보고 아간 버스로 마케도니아로 떠날지 하루 더 머물다 내일 야간버스로 갈지 고민을 했다.

 

 앞으로 일정을 생각하면 하루하루가 소중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스탄불을 덜 본 채로 떠나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하루 더 머물고 가기로 결정했다.

 

 아침에 식사를 하고 빨래방에서 빨래(10L)를 찾았다. 강한 세제향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말끔하게 건조까지 되어 있다.

 

 숙소 앞의 역에서 국철을 타고 예디 큘레(Yedikule)역으로 갔다. 예디큘레는 데오도시우스 방벽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요새로 오스만 시대에는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원래 7개의 탑과 황금문이 있었으나 지금은 황폐화 된 채 방치되어 있다.

 

 입장료(10L)를 내고 들어가니 마침 영화촬영을 하고 있었다. 방해되지 않게 방벽 위로 올라갔다. 성벽이 전체적으로 높으며 안전장치가 허술해 보여 고소공포증이 있으면 절대 올라가지 못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불평도 잠깐.. 위에 올라가 아래를 보니 압도적인 전망이 나를 반긴다. 바로 앞에는 마드마라해가 펼쳐져 있고 반대쪽으로는 데오도시우스 성벽이 북쪽으로 향해 있다.

 

 1453년 이곳에서 오스만군과 비잔틴 최후 세력 간의 혈투가 벌어졌겠지? 비록 대부분 파괴가 되었지만 그것이 옛 시대의 종말을 상상되게 하였다.

 

 이번에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유람하기 위해 다시 기차를 타고 종착역인 시르케지역으로 가서 에미노뉴 지역으로 갔다. 이곳은 대부분의 여객선이 출발하는 곳이다. 선착장에는 수많은 배들이 있는데 마침 막 출발하려는 유람선(10L)에 오를 수 있었다.

 

 유람선은 보스포러스 해협을 따라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보스포러스 다리를 지나 파티흐 다리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코스로 2시간 정도 걸린다. 겨울철이라 유람선에는 승객이 많지 않고 외국 사람들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단체 투어에도 이 프로그램을 집어넣으면 좋을 텐데..

 

 출발하자마자 유람선 2층으로 올라가 사진을 찍었다. 비록 춥기는 하지만 유람선 양쪽으로 아시아와 유럽의 풍경이 펼쳐져 있어 장관이었다. 보스포러스 해협을 거슬러 올라가자 궁전, 모스크, 미술관등이 보인다. 또한 낚시하는 사람들 관광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웅장한 포스포러스 다리를 지나갈 때면 사람들이 다리를 배경으로 연신 사진을 찍는다.

 

 유람선에서 따로 설명이 있으면 좋을 텐데.. 책에 나와 있는 정보를 보며 강가의 건물을 파악했다.

 

 유람선은 유럽 쪽 대륙으로 운행하다가 파티흐 다리를 지나면 아시아 방면으로 붙어 운행을 한다. 돌아가는 길이라 대부분 승객들은 따뜻한 1층으로 내려와 의자에 앉아 차 한잔을 하며 관람을 한다. 나 역시 짜이 한잔(2L)을 시켰는데 잔돈이 없어 10L 지폐를 내자 그냥 가지고 있는 1.8L를 내도된다고 한다. 터키를 여행하면서 지폐를 잔돈으로 거슬러 주는 것을 싫어하는 장면을 몇 번 목격했다.

 

 보스포러스 해협을 원 없이 느끼고 돌아오니 선착장에서 고등어 케밥(5L)을 팔고 있었다. 하나 사먹어 보니 여기서 먹은 케밥 중에 가장 맛있다.

 

 숙소로 돌아오면서 뉴모스크에 들렸다. 뉴모스크는 1597년 술탄 메흐메트 3세가 모후 였던 왈리데 술탄 사피예의 지시로 건립한 사원으로 400년이 지났는데도 NEW가 붙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모스크를 둘러보고 향료를 주로 거래하는 스파이시 바자르를 돌아보니 많은 상인들이 한국말로 말을 건다. 그만큼 한국인 사람들도 눈에 많이 띈다. 여행의 종착지가 이스탄불이면 이곳에서 기념품을 사겠지만 아직 갈 길이 많은 관계로 Pass~ 곧장 숙소로 왔다.

 

 며칠을 터키를 둘러보면서 한국 여행객들이 많고 터키 사람들도 한국에 대해 친근감을 느끼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여행 전 여행사에 있는 후배에게 이야기 듣기로는 터키는 옛 돌궐 민족이며 고구려와 형제국가였다고 한다. 그래서 터키 교과서에는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규정하고 있고 6.25전쟁 때 미국 다음으로 많은 규모의 병사들을 파병했다.

 

 지금껏 여행하면서 투르크 민족에 대한 발자취를 여러 번 느낄 수 있었다. 중국 실크로드 지방의 위구르족도 터키와 같은 민족으로 1940년대 동투르키스탄이라는 이름으로 독립하다가 중국인민해방군이 점령했지만 지금도 축구를 할 때면 터키를 응원하는 것을 본적이 있다. 또한 중앙아시아의 투르크메니스탄 역시 터키와 같은 민족이라고 자부심을 느끼던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터키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애정을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2002년 월드컵이다. 월드컵 예선 경기인 터키-브라질의 경기에서 한국인 심판이 브라질에게 유리한 판정을 내리자 터키 사람들이 서운함을 많이 느꼈지만 그것을 계기로 우리 스스로 인터넷을 중심으로 터키는 형제의 나라라고 알려지면서 한국 사람들이 터키 경기가 있을 때마다 그들이 홈그라운드로 느낄 정도로 열광적으로 응원하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과의 3,4위전에서 대형 터키 국기가 올라갔을 때 터키 사람들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 떨어져 지내 외형은 우리는 동양계, 터키 사람들은 서양 얼굴을 하고 있게 되었지만 정신적으로는 한 형제국가라는 인식은 여행을 하면서도 터키 사람들의 친절함으로부터 많이 느낄 수 있었다.

1월 18일(금)

 

 수중에 남은 터키 돈은 33L이다. 다시 유로를 환전하기에는 아깝고 일단 이 돈으로 하루를 버티고 마케도니아행 버스를 타기로 했다. 오늘 일정은 오토가르로 가서 마케도니아행 버스편을 확정 짓고 빼놓은 이스탄불 유적지를 둘러보는 것이다.

 

 먼저 그랜드 바자르 근처까지 걸어서 슐레마니예 모스크로 갔다.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인 슐레이만 술탄 당시 지어진 모스크로 소피아 성당의 건축양식을 모방하여 미마르 시난이라는 이슬람 최고의 건축가가 65세 때 설계한 사원으로 1550년~57년 사이에 지어졌다. 아야소피아 보다 아름답다는 평이 있을 정도이다. 건물 구조는 아야소피아 구조와 같이 중앙의 돔을 양쪽의 반쪽 돔이 받치고 있는 구조이며, 돔 직경 26.5m, 높이 53m 이다.

 

 미마르 시난은 최고의 건축가로 지금도 이름을 날리고 있으며 생전에 이슬탄불에 500여개의 건축물을 설계했으며 300개는 지금도 남아있을 정도이다. 그는 100세 이상까지 장수를 누리다가 이곳 술래이만 모스크에 영면했다.

 

 모스크 내부는 관람 시간이 지나 들어갈 수 없었지만 경찰에게 안을 살짝만 보겠다고 말해 허락을 받고 내부를 감상할 수 있었다. 거대한 돔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 옛날에 어떻게 저런 완벽한 아치형을 만들었을까? 현대 기술로도 힘든 이 기술의 백미는 세월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고 완벽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슐레이만 모스크를 관람하고 근처의 발렌스 수도교로 갔다. 수도교는 비잔틴시대때 만들어졌으며 이스탄불로부터 20km 거리에서부터 물길을 끌었다고 한다. 완벽하게 남아 있는 수도교 밑으로는 지금도 차들이 한창 다니고 있다.

 

 수도교를 관람하고 악사라이역까지 걸어왔다. 악사라이에서 오토가르로 간 다음 오늘 출발하는 마케도니아행 버스 편을 알아봤다.

 

 마케도니아 스코페까지 가려고 했는데 스코페로 가는 두 버스 회사 중 하나는 스코페를 거쳐 코소보를 가고 또 하나는 스코페를 거쳐 오흐리드로 간다. 이를 두고 잠시 고민을 했다. 코소보를 먼저 가느냐,, 오흐리드를 거쳐 알바니아로 먼저 가느냐..

 

 잠시 일정을 생각한 끝에 처음 구상한대로 오흐리드로 가기로 했다. 이스탄불에서 스코페를 거쳐 오흐리드로 가는 버스는 20:00에 출발하고 50유로이다. 스코페까지 갈 경우는 40유로이다.

버스를 확정 짓고 코라 교회(Chora)를 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다. 코라 교회는 입장료가 15L로 남은 터키 돈이 빠듯했기 때문이다. 숙소에서 코라 교회를 방문한 여행자들이 환상의 모자이크가 있다는 극찬을 한 것이 기억나 방문하기로 했다. 뭐 돈이 없으면 유로를 환전하면 되니까~

 

 코라 교회를 가기 위해서는 한번 타는데 3L(1,800원)로 비싼 교통비를 아껴야 한다. 오토가르에서 Topkapi역까지 전철을 타고 간 후 Topkapi역에서 테오도시우스 방벽을 따로 1.5km 정도를 올라가야 한다.

걸어서 언덕을 올라가는데 뜻밖의 보너스를 발견했다. 그건 예니카예프역 주변의 사거리에톱카프역에서 코라 수도원쪽으로 걸어가면 Fevzi 교차 지점에 방벽의 최고 포인트를 발견했다. 언덕 정상 위의 높은 성루가 있는데 그곳을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안전장치가 되어 있지 않은 가파른 계단이긴 하지만 방벽 위로 올라가 주변을 바라보니 온 시내가 다 보였다.

 

 남북으로 뻗은 테오도시우스 방벽이 쭉 이어져 있으며 골든혼과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저 멀리 아시아 대륙 쪽의 섬들이 한눈에 보인다. 이곳이 이스탄불 전체가 한눈에 보이는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20~30m 높이에도 안전장치가 없고 바람이 많이 불어 무섭기는 했지만 무서움을 무릅쓰고 올라 온 보람이 있다. 왜 이곳을 관광자원화 시키지 않지?

 

 근처의 코라 교회는 비잔틴 모자이크에 관심이 있으면 꼭 와야 하는 명소이다. 코라 교회의 원래 이름은 콘스탄티노플 성벽 밖의 성스러운 구세주 교회(Church of the Holy Saviour Outside the Wall)이라는 긴 이며 11세기 후반에 건설되어 후에 보수, 재건축, 모스크로의 전환이 이뤄졌다.

 

 많지 않은 관광객이 작은 교회를 찾는 이유는 오직 모자이크.. 원래 모자이크는 아야소피아와 마찬가지로 모스크로 개조 된 후 회칠되어 가려져 있었지만 덕분에 오늘날까지 복원되어 보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아야소피아에서의 모자이크는 멀리 떨어져 있어 생동감이 떨어지면 이곳에서는 바로 앞에서 선명한 색체의 모자이크를 감상할 수 있다. 주로 예수와 성모마리아와 그 주변 인물에 관한 모자이크가 그려져 있는데 그 중에서도 성모 마리아의 임종 장면을 그린 모자이크가 가장 감명 깊었다. 모자이크 하나하나가 뚜렷한 색체를 띄고 있고 생동감 있는 표정을 잘 묘사했다. 아침의 이곳에 올까말까 한 고민은 당연히 이곳에 오길 잘 했다는 생각으로 변해있었다. 아쉬운 것은 회칠을 했다고 해도 파괴가 된 부분이 있으며 본당의 모자이크는 남김없이 파괴 된 것이다.

 

 코라교회에서 언덕 아래로 내려가 아이반사라이 부두로 가서 여객선을 타고 에미노뉴 지역으로 돌아왔다. 연락선은 시내 교통요금(3L) 동일하며 정해진 시각에 시내버스처럼 부두를 오가고 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 부두에서 내리면 된다. 덕분에 골든혼 여객선에서 바다를 둘러볼 수 있었다. 어제는 보스포러스 유람선을 타며 아시아와 유럽 지역을 둘러봤다면 오늘은 여객선으로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를 관람했다. 내린 곳은 어제와 동일한 부두이다. 역시 어제 맛있게 먹은 고등어 케밥을 팔고 있다. AGORA 게스트하우스에 돌아와 잠시 있어도 되는지 물으니 스텝은 마음껏 있으라고 한다. 와이파이가 되어 뉴스를 보고 다음 여행지에 대한 검색을 했다. 떠나는 시간이 되자 키 큰 스텝은 여행을 잘 하라며 악수를 청한다. 여행자를 배려 할 줄 아는 친절한 스텝이다. 시설도 괜찮고 아침도 잘 나오며 뜨거운 물도 펑펑~ 이스탄불에 숙소를 묵을 분이라면 이 게스트하우스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남은 돈은 9L.. 그래도 저녁 먹을 것은 남겨야지? 게스트하우스에서 한번에 기차를 타고 갈 수 있는 악사라이 역까지 1.5Km를 걸어서 오토가르로 지하철을 타고 갔다. 이제 6L가 남았다.

 

 오토가르에서 저녁 식사로 양고기 샌드위치와 짜이 한잔을 4L에 먹고 나니 2L 남았다. 2L는 가다가 화장실이 급할 수도 있으니 일단 남겨놓았다.(결국 쓰지 않고 남았음) 버스회사에 도착한 시각은 6시 정도.. 사무실 2층에서 밀린 여행기를 치면서 시간을 보내고 오후 7시 45분에 버스에 탑승했다.

 

 버스에 타니 꽉 찼다. 만약 오전에 미리 예매하지 않았으면 오늘 출발하지 못했을 것이다. 예매할까 아니면 버스에 탈 때 표를 살까 고민했었는데 예매하지 않았으면 오늘 하루 완전히 날렸을 것이다.

 

 이스탄불과 마케도니아까지 거리가 돼서 그런지 환송을 나온 사람들이 많다. 저마다 가족에게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하는데 얼굴에 서운함이 가득하다. 어떤 이들은 서로 껴안고 우는 사람도 있다. 각기 사연이 있겠지? 어디서나 멀리 떨어진 가족을 환송하는 것은 같은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가 출발하자 이스탄불과의 이별이 아쉬웠다. 여건이 되면 더 오래 남고 싶었는데 다음을 기약해야지 많은 감동과 느낌을 주었던 이스탄불은 잊지 못할 것이다.

 

 버스가 터키-그리스 국경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1시 15분. 국경을 넘는데 다소 시간은 걸렸지만 별 무리 없이 통과를 했다.

 

 이제 본격적인 발칸반도 여행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