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9일

 

 버스는 그리스 영내를 밤새 달려 5시 30 분 마케도니아 국경에 도착했다. 버스기사가 여권을 걷어 가서 무리 없이 통과할 줄 알았는데 시간이 계속 지체된다. 무슨 문제 있나?

버스 기사는 나에게 오더니 잠시 내리라고 하더니 이민국 직원에게 안내한다. 이민국 직원은 내 여권을 보면서 남한인지 북한인지 물어본다. 쉽게 대답할 수 있겠지만 영어가 통하지 않아 사우스 코리아라고 이야기해도 통하지 않는다.

 

 갑작스레 한 단어가 떠올랐다. 바로 ‘강남스타일’~ 이민국 직원에게 ‘강남스타일’이라고 이야기 하니 ‘오우? 갱남 스타일?’이라고 말하며 갑작스레 밝은 표정을 짓는다. 이 한마디로 난 한국인이라는 걸 증명하게 되고 아무 탈 없이 통과한다. 먼 이국땅에서 싸이의 도움을 받아 국경을 통과하다니.. 이곳 국경은 한국인 개별 여행자가 거의 없어 남북한을 구별하지 못 했나 추측해 본다.

 

 국경에서 2시간 반 정도를 달리자 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페에 도착했다. 처음 생각하는 목적지였지만 오흐리드로 직접가는 바람에 잠시간 안녕~ 아마 여행 막바지에 코소보에서 불가리아로 갈 때 다시 올 것이다.

 

 스코페에서 벗어나자 산악 도로가 이어진다. 주변이 눈에 쌓여 있는데 예전에 홍천 내면에서 구룡령을 넘어 속초로 운전해 간 적이 있는데 그때와 비슷한 풍경이다.

 

 

 오전 11시 40분에 버스 기사가 여기가 오흐리드이니 내리라고 한다. 도시의 길 한가운데인데.. 일단 오흐리드에 내려 올드 타운 쪽을 물으니 한쪽 방향을 가리키며 그쪽으로 쭉 가라고 한다. 인구 5만 정도의 도시이니 어떻게 찾아갈 수 있겠지..

 

 시내 중심에 들어서자 큰 건물들이 보인다. 마케도니아 돈이 하나도 없음으로 환전을 해야 하는데 토요일이라 환전상이 문을 닫을 확률이 컸다.(확인결과 열었음 ㅡ.ㅡ) 은행 ATM기를 찾아 3,000디나르(앞으로 MKD로 표기) 인출했다. 1디나르에 22.5원 정도 한다고 계산하면 된다.

 

 시내에서 호수 쪽으로 들어서는 순간 수건만 걸친 청년들이 길을 걸어간다. 추운 날씨에 참 특이한 청년일세.. 그런데 호수로 가가 갈수록 그 숫자가 더 늘어난다. 토요일 아침인데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것도 이상했다.

 

 사람들과 분위기를 관찰해보니 마침 오늘 축제를 하는 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흥겨운 음악에 맞춰 오흐리드 호수에 목욕을 한다. 아마 새해맞이 축제일거라 생각이 된다. 생각지도 않게 축제를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호숫가에는 많은 숙소가 있는데 겨울이라 많은 숙소가 문을 닫은 상태이다. 인터넷에서 찾은 Sunny Lake 게스트하우스를 찾으려고 해도 찾기가 힘들었다.

 

 ‘Can I help You?' 한 신사가 천사처럼 다가와 혹시 도울 일이 있는지 물어 보기에 게스트하우스를 찾는다고 하니 도와준다며 따라 오라고 한다. 골목을 헤쳐 Sunny Lake 게스트하우스에 가니 아무도 없다. 대신 부근의 괜찮은 숙소를 소개 해줬다. 방 하나를 혼자서 쓰며 12유로~ 더운물과 와이파이가 빵빵하게 터지는 건 물론 호수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이다. 휴대폰을 보니 어느덧 한 시간이 더 늦어져있다. 우리나라와는 8시간 시차.. 보너스로 한 시간을 번 기분이다.

 

 론니에는 ‘오흐리드를 보지 않고는 마케도니아를 봤다고 하지 말라!’라고 할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며 오래 된 모스크와 유서 깊은 교회, 자연적으로는 오흐리드 호수와 주변의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인구는 55,000명 정도이지만 BC4세기부터 고대 그리스인들이 살기 시작해 BC 148년부터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았고 867년에는 불가리아 슬라비인들이 정착했다. 이곳은 아드리아해와 에게 해를 잇는 교역과 군사적으로 중심지 역할을 하면서 발전 하였다. 이곳에서 중요한 인물은 10세기에 등장한 클레멘트인다 그는 30년 동안 이곳에 중요한 여러 교회를 세우고 학교를 세웠을 뿐만 아니라 성서를 최초로 키릴 문자로 번역하였다. 클레멘트의 활동으로 이곳 오흐리드가 슬라브인에 대한 선교의 중심이 되었고 오흐리드는 많은 교회가 세워졌기 때문에 도시는 197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오흐리는 호수는 아름다운 풍경과 맑은 물로, 무엇보다 물의 유입이 바닥에서 스스로 샘솟는 물로 형성 도니 호수 구조가 특이하여 1980년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솔로몬 캐슬을 시작으로 명소를 돌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먼저 허기를

  달래기 위해 식당에 들어가 소고기와 빵으로 식사를 했다. 맥주한잔을 곁들였는데도 200MDK가 나왔다. 터키에 비해 물가가 훨씬 싸다.

 

 아래에서 15분 정도를 올라가 Upper Gate에서 탐방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가까운 성클레멘트 성당(Sveta Bogorodica Perivlepta)을 방문했다. 원래는 성 클레멘트 성당이었다가 13세기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오흐리드에서 가장 오래 된 교회로 1295년 성모마리아에게 봉헌하기 위하여 세워진 교회이다. 성 클리멘트 주교 유해를 안치하게 되어 성 글리멘트 교회라고 부르게 되었다가 오스만 제국 지배하에 모스크로 사용하기도 있다. 아야소피아가 모스크로 바뀜에 따라 이 교회가 이 지역의 종교회의를 주관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내부에 들어가려면 100MDK를 내야하지만 문이 굳게 닫혀있다.

 

 다음은 아래에 고대원형극장이다. 마케도니아 내의 유일한 그리스 시대의 극장으로 지금은 아랫부분만 남아있고 윗부분은 집들이 들어서 있다. 로마 시대에는 검투사들의 경기장이었다가 기독교 집회 장소로 쓰였지만 로마 제국의 영향이 약화되고 나서 이 극장은 방치가 되어 오랜 세월 땅에 묻혔다가 1980년 우연히 이 근처에 주민들이 집을 짓기 위해 땅을 파다가 발견하게 되었다. 많은 부분이 복원이 되었으며 지금도 발굴이 진행 중이다. 지형적으로 음향효과가 좋아. 여름에는 이곳에서 음악 콘서트가 열리기도 한다.

 

 다음은 이곳의 하이라이트 칼 사무엘 요새이다. 오흐리드는 예부터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기 때문에 BC3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필립 2세의 지시에 의해 지어졌으며 불가리아 제국의 융성기 때 황제 삼우엘 시대에 황제의 명에 의해 지어진 요새이기에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다.

 

 요새에 입장(입장료 30MDK)해서 성벽에 올라가니 주변 도시와 풍경들이 한눈에 다 보인다. 오드리드 호수도 한눈에 보이며 건너편의 알바니아 지역도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 올라 사진을 연신 찍었다. 아쉬운 것은 구름이 많이 껴 주변 풍광이 어둡게 보인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오솔길로 내려와 성판텔레이몬 수도원(Sveti Kliment I Pantelelejmon)을 맞았다. 수도원은 전체적으로 발굴이 계속되고 있다. 5세기 경 바실리카 양식으로 지어졌는데 성 클레멘트가 예배당과 수도원을 893년에 세워 이곳에서 대학을 겸하며 제자들에게 글리골 문자를 가르치는 쳤다고 한다. 때문에 이곳을 유럽 최초의 대학이 되었다. 성 클레멘트는 헬라어로 되어 있는 성경을 키릴 문자로 번역해 보급을 하며 평생 복음을 전파하던 그는 916년 영면하자 이곳에 묻혔다고 한다.

 

 2000년 12월 이 교회는 재건축을 시작하여 2002년에 지금의 교회가 완성이 되었다. 건설당시 기계는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손으로 일일이 지었다고 한다. 교회 안에 들어가니 지하여 통로는 아직도 발굴을 계속하고 있다. 발굴중인 통로에는 참배하러 온 사람들이 던진 돈이 수북히 쌓여있다.

 

 교회를 둘러보는데 갑작스레 햇빛이 들고 있다. 해는 구름 사이에 빼꼼히 모습을 드러내 주변을 밝히고 있다. 이번이 성에서 사진 촬영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기회! 다시 정상으로 올라가 매표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주변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10분 정도 지나자 태양은 수줍듯 구름 사이로 숨는다.

 

 성판텔레이몬 수도원을 다시 관람하고 호수가에 있는 성요한교회(Steti Jovan at Kanneo)로 내려갔다. 이 교회는 요한복음의 저자 성 요한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으며 오스만투르크 제국 이전인 13세기에 지어졌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비잔틴 양식의 건물에 아르메니아 교회 구조의 특징을 반영했다. 호수가를 배경으로 하는 이 교회 사진은 론니플래닛에 마케도니아의 상징으로 실릴 만큼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오흐리드호수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으로 4백만년 전에 형성이 되었으며 최대깊이가 288m이고 평균 깊이는 155m인 발칸반도에서도 가장 깊은 호수이다. 이곳의 물은 20%는 10km 떨어진 프레스파 호수에서 흘러들어 오고 50%는 호수내의 수많은 샘물에서 물이 유입된다. 나머지는 일반 호수처럼 외부에서 물이 유입되는 특이한 구조이다. 물을 자급자족하는 구조이다보니 호수 물은 항상 맑은 상태를 유지한다. 호수의 2/3는 마케도니아 구역이며 1/3은 알바니아 구역이다. 바다가 없는 마케도니아에서 여름에 많은 사람들이 피서를 온다.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소피아 교회(Sveti Sofija)이다. 11세기에 불가리아 제국 시대에 지어진 교회로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을 때에는 모스크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곳은 이 지역의 대주교로서 종교회의를 주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아야소피아와 마찬가지로 프레스코벽화가 있는데 석회로 덧칠했다가 1951년부터 벽화를 복원하기 시작하여 현재는 예수의 승천과 성모자좌상 복원되었다. 교회는 굳게 잠겨 있어 둘러볼 수는 없었다.

 

 오흐리드 관람을 하고 나서 숙소로 돌아와 정리를 하는데 수건이 보이지 않는다. 아차 이스탄불에 두고 왔구나.. 이번 여행 들어 첫 분실물이다.

 

 샤워를 해야 했기에 수건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쉽게 살 줄 알았던 수건 구입은 만만치 않는 작업이 되었다. 영어가 통하지 않는 상태에서 마트에서 수건을 설명하는 게 쉽지 않았다. 마트에 들어가 샤워 후에 닦는 거라고 몸짓으로 설명을 해도 알아듣지 못해 샴푸나 주방용품으로 안내를 한다.

 

 결국 영어가 통하는 마트 직원을 만나 시내에서 수건을 살 수 있었다. 수건 하나의 소중함을 몸소 느꼈다. 도움을 받은 마트에 가서 먹거리와 맥주를 샀는데 맥주 가격이 33MDK(730원 정도)~45MDK 수준으로 터키에 비해 대폭 저렴해졌다.

 

 숙소에서 오드리드 호수를 바라보며 나 홀로 맥주한잔을 했다. 여기에서 며칠 더 쉬면 좋겠지만 벌서 여행의 반환점을 돌고 있기에 서둘러 떠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