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2일(화)

 

 9시에 출발하는 몬테네그로 울치니(Ulcini) 행 버스를 타기 위해 일찍 일어나 호텔에서 제공하는 아침식사를 하고 준비를 끝내고 바로 앞의 버스 정류장을 갔다.

 

 무난히 버스를 타고 갈 줄 알았는데 광장 주변의 기사들에게 물어보니 버스에 문제가 생겨 운행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런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 혹시나 해서 버스 정류장에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사내에게 물어보니 정말로 버스가 없다고 한다.

 

 여기서 국경까지 가고 국경에서 다시 갈아타고 갈까? 아니면 여기 택시와 협상을 해서 다소 비용이 들더라도 시간을 아낄까?

 

 오늘 목표는 울치니로 가서 부드바(Budva)로 가는 버스를 타고 짧게 올드포트를 돌아 본 후 코토르(Kotor)에 가는 것이 목표이다. 그럴려면 최대한 빨리 가는 것을 목표로 두기로 했다.

 

 한 택시기사에게 울치니까지 얼마인지 물어보니 20유로라고 한다. 15유로를 부르니 OK~ 비가 많이 내려 흠뻑 젖었기 때문에 지체할 것도 없이 당장 출발했다.

 

 스코트라는 알바니아에서도 가장 민족성이 강한 도시 중 하나이며 특히 스코트라성이 항쟁지로 유명하지만 아쉽게 택시를 타면서 멀리서나마 보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오전 9:12분에 국경에 도착했다. 기사가 여권을 가지고 가더니 모든 국경 수속을 해준다. 또한 기사와 국경 직원들이 친했기 때문에 지체하지 않고 금새 수속을 마쳤다.

 

 오전 9:18 통과~ 기사가 여권을 돌려주길래 몬테네그로에서 입국 수속을 밟아야 하지 않는지 물어보니 이미 다 끝냈다고 한다. 한 건물에 알바니아와 몬테네그로 사무실이 한꺼번에 있다. 이런 경우는 처음 보네.. 어쨌든 내 생애 60번째 여행국인 몬테네그로다.

 

 울치니로 가는 도중에 버스 터미널에 도착해 부드바 버스편을 알아보니 10시 28분에 출발하는 버스가 있으며 7유로이다. 알바니아에 비해 물가가 부쩍 비싸지만 대신 유로화를 쓰기 때문에 편리해지긴 하다.

 

 버스 왼편에 앉으니 아름다운 아드리아해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에 간간히 보이는 섬 그리고 붉은 지붕이 자연과 어우러진 모습.. 차창이 지저분해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부드바에는 오후 12시 20분에 도착했다. 잠깐 이곳을 탐방한 다음 곧장 코토르로 가야 하기에 터미널에서 버스 시간을 확인했다. 비교적 많은 버스가 다녔는데 1시 55분 버스를 타면 될 듯했다. 터미널에서 올드 타운까지 30분을 걸어갔다.

 

 부드바(Budva)는 2,500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특히 로마 제국이 동서로 나누어지던 시절 그 경계를 이루는 전략 요충지이기도 했다. 15~18세기에는 베네치아공화국의 식민지를 거쳐 오스트리아-프랑스-러시아-유고연방의 통치를 받았다. 지금은 몬테네그로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관광지로 많은 세계적인 부호와 스타들이 이곳에 별장을 구입하였고 향후 제 2의 모나코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터미널에서 30분을 걸어 올드 타운에 들어가니 명성과는 다르게 한산한 모습이다. 성 곳곳을 둘러봤는데 Mary's Church-Sava's Church-Church of the Holy Trinity 순서대로 교회를 둘러봤지만 모든 교회가 문이 잠겨 있었다. 이곳에서 가장 하이라이트는 Citadel이다. 2유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니 높은 성벽과 몇몇 대포가 맞아주었다. 이곳 성루에서 바다를 바라보니 과거에 해상 무역시절 범선들이 이곳을 드나드는 장면이 상상되었다. 비가 오는 가운데서도 아드리아해는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Citadel 관람 후 성벽을 돌아 본 후 바로 터미널로 걸어가 Kotor행(3.5유로) 버스를 탔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반가웠어^^~

 

 버스는 50분을 달려 코토르에는 오후 2시 40분경 도착했다. 터미널에서 두브로브니크로 가는 버스 편을 알아봤다. 하루에 두 편이 있는데 오후에 출발하는 버스는 너무 늦고 오전 8시 차로 가면 내일 하루는 두브로브니크를 관람하고 다음날 또 떠널 수 있을 듯 하다. 버스 스케줄을 확인하자마자 숙소를 잡고 바로 등산(?)을 해야 한다. 전형적인 피요르드 지형은 이곳은 바닷물이 내륙 깊숙이 들어와 호수와 같은 형태로 계곡 한 이곳은 가파른 산들 사이로 바닷물이 들어찬 형태이다. 이곳에는 정상에 요새(Fortification)가 있는데 무려 1,350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그렇지만 요새에서 내려다보는 코토르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장관이라고 들었다. 내일 아침에 오후 4시쯤이면 해가 지고 깜깜해지는 이곳으로서는 서둘러 올라가지 않으면 내일 오전에 떠나기 때문에 기약이 없다.

 

 숙소는 코토르 올드타운 즉 성안에 있는 몬테네그로 호스텔로 잡았다. 박물관 근처에 있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도미토리 하루 묵는데 10유로 호스텔에 손님은 나 밖에 없기 때문에 사실상 독방을 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짐을 풀고 곧장 요새로 향했다.

 

 코토르는 발칸의 피요르드라 불리는 코토르 만의 깊고 굴곡을 이룬 해안을 따라 형성된 고대 도시이며 견고한 성벽이 둘러싸고 있는 구시가지에는 이 도시가 가장 번창했던 시기인 12~15세기의 중세도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서 1979년 구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구시가지 안에는 오랜 역사를 거치는 동안 르네상스와 로마네스크, 그리고 바로크 양식 등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비잔틴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요새를 만든 것을 시작으로 점점 발전하여 중세엔 라구사 공화국과 경쟁할 정도로 무역과 문화, 예술이 발달했다.

 

 코토르를 방어하기 위하여 축조한 4.5km의 코토르 성벽은, 9세기에 쌓기 시작하여 19세기까지 증축이 이루어졌다. 구시가지 안으로 들어가는 바다의 문은 16세기에 지은 것이다.

 

 구시가지에는 1166년에 건립된 성 트뤼폰(St. Tryphon) 성당과 중앙 광장, 러시아 정교회, 궁전, 수도원 등 중세시대의 다양한 건축물들과 문화유적들이 남아 있다.

 

 코토르는 열강들의 각축장이기도 했는데 불가리아 왕국의 지배를 받아 베네치아 공화국, 세르비아 왕국, 오스만 트루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이탈리아에 통합되으나 파시스트 세력의 패망 후 1945년 이후 유고연방의 몬테네그로에 편입되었다.

 

 이 도시의 역사는 기원전 1세기 고대 로마인들이 정착하면서 시작되었지만 코토르가 몬테네그로의 대표적인 항구도시로 발전한 것은 세르비아 왕국의 지배 당시 세르비아의 많은 광물들이 이 도시를 통해서 수출되면서 부터이다. (인터넷 블로그 참조^^)

 

 중세도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만 겨울철이라 문을 연 상점과 왕래하는 사람들이 적은 한산한 모습이다.

 

 요새로 올라가는 길은 가파르기는 하지만 그만큼 올라갈수록 시시각각 보여지는 풍치이 달라진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한편을 본 기분~ 올라가면서도 경치에 감탄을 하며 올라갔다.

 

 처음에는 구시가지 위주로 펼쳐졌던 파노라마가 점점 바다 호수(?) 전체로 넓어지고 저 멀리 설산들이 보이면서 한폭의 그림이 완성되어 가는 느낌이다.

 

 하지만 대단한 것은 이곳의 요새 성벽이다. 500년 전에 만들어 진 것인데 이 가파른 산세에 성벽과 계단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도 대단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무너지지 않고 견고하게 남아 있는 것은 더 대단했다. 그만큼 옛 사람들의 건축은 부실공사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요새 정상에는 몬테네그로 국기가 코토르 전체를 바라보며 펄럭이고 있다. 시간에 쫓겨 올라가서 그런가? 1시간 걸린다는 요새 정상에 단 27분 만에 올라갔다. 아래에는 가파른 산으로 해가 가려져 있었는데 정상에 올라가니 햇빛이 비춰지고 있었다.

 

 참 아름다운 풍광이다. 15분 정도를 요새 정상을 배회하며 주변 풍광들을 사진에 담았다. 아무리 사진에 담아도 직접 본 것만큼의 감동이 담겨지질 않았다. 찍으면서도 불만족.. 할 수 없이 이 풍경은 마음속에 담아둬야지..

 

 요새에서 내려오면서 서양 여행자와 마주쳤다. 혼자서 이곳을 여행하는 모양. 서로 독사진을 교차하면서 찍어주고 다시 내려왔다.

 

 구시가지를 잠깐 탐방하고 싶었지만 이미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저녁 식사는 스스로 해결해야 했기에 터미널 근처에 있는 마트에 가서 스파게티 재료를 샀다. 처음 해먹어 보는 스파게티.. 나름 레시피를 보면서 요리해봤는데 별로다. 양만 많구.. 이럴 때 라면이라도 있으면..

 

 몬테네그로 호스텔에 손님은 오직 나 하나.. 스텝에게 물어보니 여름에는 꽉 찰 정도로 북적거리지만 겨울에는 게스트가 거의 없다.

 

 몬테네그로는 아직 익숙치 않은 이름이다. 원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라고 얼마전까지 불리다가 2006년 국민투표로 독립한 신생국가이다.

 

 몬테네그로는 검은산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고 실제 산악국가이기도 하다. 몬테네그로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2012년 K리그 MVP 데얀이 바로 몬테네그로 출신이라는 점? 몬테네그로는 유고연방이 붕괴해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등이 독립을 선언했을 때, 세르비아와 함께 신유고연방을 수립하지만 발칸의 도살자라는 별명을 가진 세르비아의 밀로세비치 대통령의 위시한 세르비아 민병대의 잔혹한 학살로 국제 사회의 고립을 자초하게 되고 세르비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제적 제재가 심해지면서 몬테네그로도 독립을 하게 된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46년 세르비아에서 분리되어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을 구성하는 6개 공화국의 하나로서 주권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1980년 유고연방 대통령 티토가 사망한 후 민족주의가 대세를 이루면서 1992년 1월 연방공화국 중 크로아티아·마케도니아·슬로베니아·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4개 공화국이 먼저 독립했다. 그 해 4월 같은 동방정교회 문화권 국가인 세르비아와의 연방 결성을 결정하는 국민투표를 치러, 이슬람교도, 알바니아인, 가톨릭교도, 독립파가 불참한 가운데 투표율 66%, 찬성 95.96%로 세르비아공화국과 함께 신(新)유고연방을 수립하였다.

 

 그러나 신유고연방의 주축을 이룬 세르비아가 보스니아 등 주변국 내전에 개입하고 코소보사태, 인종청소 등으로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고 경제제재를 받자, 같은 연방국가인 몬테네그로도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세르비아로부터 공식·비공식의 차별을 받아왔던 데다가, 외교와 국방을 뺀 대부분의 주요 정책을 스스로 결정했던 몬테네그로는 밀로 주카노비치 총리를 중심으로 연방 탈퇴를 적극 추진했다. 그러나 국내 연방잔류파의 주장을 거스르지 못하고, 세르비아 이외 발칸반도의 갈등 재연을 우려한 EU(유럽연합) 및 미국이 독립을 반대하는 탓에, 2003년 베오그라드 협약에서 외교와 국방만을 묶는 느슨한 형태의 세르비아-몬테네그로 국가연합으로 바꾸고 3년 후 독립선택권을 보장받는 데 합의했다. 이에 세르비아는 몬테네그로의 독립이 티토 대통령이 건설한 옛 유고슬라비아 연방과의 역사적 단절이라며 적극 반대했다.

 

 그러나 2006년 5월 21일 밀로 주카노비치 총리 주도로 분리 독립을 결정하는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투표 결과 48만 5000명의 유권자 중 86.3%인 41만 9240명이 참여하여 55.5%인 23만 661명이 찬성함으로써 UN이 제시한 '투표자 가운데 55% 이상 독립 찬성'이라는 조건을 충족시켜 독립이 확정되었으며, 세르비아도 이러한 결과를 인정했다. 2006년 6월 3일 몬테네그로는 독립을 선포했다.

 

 두산백과에 소개 된 내용을 보니 전체적인 독립과정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신생국이니만큼 독립적인 화폐를 쓰지 않고 유로를 쓰고 있는데 이건 유럽연합의 승인을 받지 않고 일방적으로 유로화를 통용하고 있다. 여행자 입장에서는 편리한 일이지만 국가적으로는 경제 정책을 독자적으로 수립하는데 힘들지 않을까 싶다.

 

 오늘의 짧은 몬테네그로 여행을 마치고 내일은 발칸의 진주라고 불리는 두브로브니크로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