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4일(목)

 

 모스타르로 가기 위해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하는데 계속해서 비가 온다. 일기예보를 보니 앞으로 며칠은 더 온다. 어제 이곳을 보기를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에서 터미널까지 걸어가 모스타르행 버스에 집을 싣고(짐비 10KN) 간식을 5KN어치를 사니 딱 4KN이 남는다. 이것은 혹시 모를 화장실^^

 

 모스타르로 가는 버스는 사라예보까지 가는데 08:00, 15:15, 16:15 세편이 있다.

 

 버스에 한국인처럼 보이는 남자가 있기에 한국인인지 물어보니 일본인이라고 한다. 에구.. 민망.. 일단 각자 자리 잡으니 버스는 제 시간에 출발~ 차창 밖을 감상하며 모스타르로 향했다.

 

 이번 여행에서 전과 다르게 편리함 점은 아이폰의 구글맵을 유용하게 쓰고 있다. 거의 전 숙소가 와이파이가 되어 오전에 목적지까지의 지도를 다운 받으면 폰에 GPS 기능이 되기 때문에 어디까지 왔는지 금새 알 수 있다. 전에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막막하게 기다려야 했는데 실사간으로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오전 8시 57분 국경에 도착해서 경찰이 여권 검사를 하고 바로 통과 오전 9시 10분에 두보드로니크에서 60Km 떨어진 네움(Neum)에 도착했다.

 

 네움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유일한 해안지대로 네움(Neum)은 이 작은 마을 때문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아드리아해로 통하는 약 21km의 해안선이 있어 내륙국에서 벗어났다. 때문에 두로브니크는 크로아티아에서도 본토와 단절 된 결과를 가져왔다.

 

 해안이라고 피요드르 해안의 깊숙이 있으며 바로 앞에는 크로아티아 영토가 쭉 펼쳐져 있다. 사실상 크로아티아 섬들과 반도에 차단이 되어 있고, 배들의 크기가 작은 것을 보아 수심이 얕아 항구를 건설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네움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네이버 Hetman블로그)

 

 네움은 제 2차 세계대전 직후, 요시프 브로즈 티토(Josip Broz Tito)가 이끄는 공산당계 빨치산에 의해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Socijalistička Federativna Republika Jugoslavija)이 들어섰다. 티토는 크로아티아계로, 대내적으로는 세르비아계 민족주의자와 크로아티아계 민족주의자들을 탄압하면서 각 민족의 공화국의 단결을 위해 애썼는데, 예를 들어 보스니아 경제 발전을 위해 역사적, 전통적으로 크로아티아의 영토였던 해안 지대 네움(Neum)을 뚝 떼어다가 보스니아에 선물해 주었다.

 

 위의 소개처럼 티토의 민족 정책의 일환으로 보스니아에게 네움을 선물해 주며 유고슬라비즘이라고 하는 민족 통합을 지향했지만 티토가 사망하고 나서 그런 정책은 무너지게 된다.

 

 그리고 후에 구소련이 무너지고 민족 간의 갈등이 심해지면서 1990년대에 내전을 겪게 되고 지금의 국가들이 형성이 된다.

 

 잠깐 보스니아를 들어갔다가 다시 크로아티아로 입국 했다 또 다시 보스니아로 오전 10시 25분 입국을 했다.

 

 여권에 스템프는 따로 찍지 않은 채 버스는 북상을 했고 11시 25분 모스타르에 도착한다.

 

 이곳을 둘러보고 사라예보로 가려고 버스편을 알아보는데 버스를 탈 때 만난 일본 여행자가 나와 일정이 같다. 일본 여행자는 20살이고 이름은 오타로이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있는데 마침 11일 시간이 되어 크로아티아-보스니아-세르비아를 거쳐 터키를 여행할거라고 말한다. 단 11일 동안.. 나보다 더 강력한 일정이다. 보스니아의 화폐 단위는 마르크로 대략 1유로에 2마르크라고 보면 된다. 100마르크를 인출해 사라예보까지 가는 버스편(20MK)를 예매를 했다.

 

 모스타르는 잠깐 둘러볼 것이기 때문에 짐을 맡겨야 하는데 마침 터미널 사무실에서 1유로에 짐을 맡겨준다고 한다. 짐을 맡기고 부담없이 탐방에 나섰다.

 

 모스타르는 보스니아 내전 당시 신유고연방에서 독립을 저지하려는 세르비아 민병대와 보스니아-크로아티아 민족 연합이 전쟁을 치르다가 나중에는 크로아티아의 편입을 두고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 민족간의 전쟁이 벌어 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1557년, 오스만 제국의 황제 쉴레이만 대제가 명령, 9년에 걸쳐 만들어진 아름다운 곡선의 다리인 스타리 모스트(Stari Most)가 크로아티아 군에 의해 파괴되었다. 1991년 11월 9일 오전 10시 15분, 크로아티아 군이 보스니아 계를 고립시키기 위해 네레트바 강(Neretva River) 위에 있던 스타리 모스트를 언덕에서 정밀 포격으로 산산조각 내버린 것이었다. 오늘날 이 사건은 대표적인 전쟁범죄로 지탄을 받고 있으며(파괴를 명령한 크로아티아 장군은 이 혐의로 헤이그 전범재판소에 기소되었다.), 내전이 종료된 후인 2004년 7월 23일, 다시 재건되었다.(오늘날 네레트바 강 서쪽은 크로아티아 계, 동쪽은 보스니아 계가 장악하고 있으며, 스타리 모스트가 있던 도시 모스타르(Mostar)의 20%의 인구를 차지하고 있던 세르비아 계는 완전히 증발했다.)

 

 발칸반도는 다양한 역사의 굴곡 속에서 다양한 민족이 살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보스니아가 가장 복잡한 인종 구성을 지니고 있었다. 유고 연방이 해체가 되는 시기 각 민족의 이익에 따라 전쟁이 벌어지고 인종 청소가 이루어졌다.

 

 네레트바 강을 중심으로 무슬림과 기독교가 양립하고 있는 이곳은 곳곳에 ‘Don't forget 93' 문구를 돌 위에 새겨놨다. 이곳 사람들도 각 민족의 이기심으로 전쟁을 벌였으며 그 과정에서 세계문화유산인 다리가 무너졌던 것을 교훈 삼자는 뜻일 것이다.

 

 도시 곳곳에는 총탄의 흔적이 보이고 재건되지 못한 건물들이 많이 보인다. 전쟁 후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그 상처는 치유되지 못하고 있었다.

 

 일본인 여행자 오타로와 함께 다니는 덕분에 독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오타로는 나중에 영어 교사가 되고 싶다고 말하면서 한국에서는 교사가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많이 놀라는 눈치이다. 일본의 교사들은 어떤지 물어보니 방학에 여행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이야기 한다. 오타로를 어원이 비슷한 오타쿠라고 놀리나 살짝 삐진 표정^^ 그래도 살갑게 다시 다가와 말을 건네는 모습을 보니 정감이 간다.

 

 오타로와 스타리 모스트와 그 주변을 돌아 본 후 함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오후 3시 사라예보로 가는 버스편을 탔다. 모스타르에서 사라예보로 가는 버스 편은 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려 창문에 김이 서릴 정도이다.

 

 오후 5시 30분에 사라예보에 도착하자 이미 어둠이 깔리고 눈이 내리고 있었다. 버스터미널에서 시내까지는 멀기 때문에 트램을 타고 가야 한다. 오타로는 이미 휴대폰 어플을 통해 숙소를 잡았다고 한다. 먼저 교통편을 알아보기 위해 터미널 시간표를 보니 오후 4시에 베오그라드로 출발하는 버스 편이 한 편 있다.

 

 부근에 기차역이 있어 베오그라드행 기차 편을 알아보니 노선 자체가 없다고 한다. 내일 사라예보 시내를 보고 터미널에서 오후 4시 버스를 타고 가면 딱 맞을 듯하다.

 

 사라예보에는 트램이라고 하는 지상 열차가 다니고 있는데 선로에 따라 사람이 직접 운행을 하고 있다. 트램은 중간에 신호등이 켜지면 멈췄다 달리기도 하고 승객에게 표를 팔기도 한다.

 

 트램의 표(1.6MK)를 사면 기계에다 표를 집어넣어야 표를 쓴 것이 된다. 만약 기계에 넣지 않다가 걸리면 벌금을 낸다.

 

 눈이 많이 오고 있어서 오타로가 어플로 예약한 호텔은 20유로라고 하는데 같이 호텔로 가서 괜찮으면 나도 묵기로 했다. 트램을 타고 Bascarsija로 가니 광장이 나온다.

 

 광장에서 하얏트 호텔로 가니 4성급 호텔이다. 이런 호텔의 싱글룸이 20유로 밖에 안하다니.. 리셉션에 가서 나도 같은 가격에 싱글룸을 잡았다.

 

 오타로와 함께 시내를 둘러보는데 여자들 중에 미인이 많다. 지금껏 여행하면서 모스크바가 가장 미인들이 많았는데 오늘부로 사라예보로 수정.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면서 오타로에게 숙박 예약에 관해들을 수 있었다. 요즘 거의 모든 숙소가 와이파이가 되기 때문에 오타로는 매일 아침 일어나 그날 갈 도시의 숙소를 검색해서 예약을 하면 저렴하고 위치가 좋은 숙소를 구한다고 말한다.

 

 아~ 그런 방법이 있구나. 스마트폰이 있는 이상 숙소를 오타로와 같이 정하면 미리 예약이 되고 위치와 주소도 메일로 전송이 되어 구글맵으로 찾을 수 있음으로 꽤 유용하게 숙소를 잡을 수 있다. 앞으로 이런 방법을 써야겠다.

 

 보스니아는 전체적으로 물가가 싸다. 근사한 저녁이 4유로이고 마트에서 맥주를 사니 1MK(700원 정도)도 안한다. SKY 콜라라고 독자적인 콜라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것도 이채롭다.

 

 호텔에 돌아와 여장을 풀고 침대에 누웠다. 싱글룸은 다락방에 있어서 눈이 내려 지붕에 쌓이는 소리가 들린다.

 

 오랜만에 아늑한 분위기에서 푹 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