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5일(금)

 

 호텔에서 3유로를 추가로 내가 아침식사를 하고 짐 정리를 하면서 어제 오타로가 알려 준대로 숙소를 예약했다. 베오그라드에 저녁 늦게 도착하기 때문에 버스터미널 근처에 숙소를 10유로에 잡았다. 이 어플 참 유용하다.

 

 오전 10시 20분에 체크아웃을 하고 숙소에 배낭을 맡기고 곧장 시내 탐방에 나섰다. 어제 내리기 시작한 눈은 어느새 함박눈으로 변해 있었다. Pigoen 스퀘어로 가니 1891년에 만들어진 Sebija 분수가 보인다. Bascarsija 모스크를 스치듯이 지나가고 간 곳은 바로 Latin 다리이다.

 

 밀야츠카강에는 1798년에 놓여진 라틴 다리는 지금은 작은 다리일 뿐이지만 이곳은 제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었던 세계 역사를 흔드는 사건이 일어난다.

 

 1914년 6월 28일 세르비아 보스니아계 대학생 가브릴포 프린치프는 오스트리아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 부부를 암살 한 사건이다.

 

 세르비아는 14세기 이후 오스만투르크의 지배를 받다가 1878년 오스만투르크 지배에 저항하여 봉기를 일으켜 독립을 이뤘으나 1908년 오스트리아에 의해 병합을 당하게 된다.

 

 당시 신흥강국인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는 기존의 제국주의 국가로 광범위한 식민지를 바탕으로 세력을 다진 영국과 프랑스에 대항하기 위해 삼국 동맹을 맺는다. 이에 위협을 느낀 영국-프랑스-러시아는 삼국 연합을 맺는다.

 

 기존 강국들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었던 오스만 투르크는 삼국 동맹으로 들어가게 된 상태에서 일촉즉발의 전쟁이 상황의 도화선이 된 것이 사라예보 사건이다.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했고 그에 이어 영국, 프랑스, 러시아, 독일, 오스만투르크가 상대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면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여기에 오니 어렸을 적 보았던 만화세계사의 장면이 워낙 인 깊게 남았기 때문이다. 그때 만화세계사를 수 십번 읽으면서 거의 외우다시피 했는데 여행하면서 그 지역의 역사를 고찰하는데 꽤 많은 도움이 된다.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난 다리이지만 생각보다 기념할 만한 것이 없어 보였다. 대신 근처에 박물관이 있는데 가브릴포 프린치프가 저격을 하기 직전에 몸을 숨긴곳이라고 한다.

 

 박물관에서 그 순간의 사진을 볼까하고 들어가니 내부 수리중이라고 한다. 아쉽지만 관리인의 허락을 받아 아직 치우지 않은 사진을 대충 둘러 봤다.

 

 라틴 다리를 보고 나서 1530년에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지어진 Gazi-Husrevbey모스크를 방문했다. 이곳은 입장료를 받는데 방문객이 워낙 없어서 그런지 그럴 생각을 안 한다. 눈 쌓인 모스크를 한 바퀴 둘러보고 1740년에 리빌딩 된 정교회(Old Orthodox Church)를 방문했다. 내부에 프로스코화를 비롯해서 엄숙함이 묻어나는데 이곳 역시 론니에 나와있는 입장료(2KM)를 받지 않는다. 뭐.. 워낙 손님이 없는 건 이해하는데 내부에 아무도 없다. 그러다 유물을 가져가면 어쩌려구? 감시하는 사람 한명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CCTV가 있기는 하다.)

 

 올드 타운을 한바퀴 돈 후 세르비아 베오그라드로 가기 위한 버스편을 예매하로 트램을 타고 터미널로 갔다. 트램을 타니 놀이공원에서 느린 기차를 타는 느낌~ 지상이기 때문에 시내를 보면서 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터미널에서 예매를 하고 가까운 국립박물관으로 갈 계획이었는데 마침 트램이 박물관 옆을 지나치는데 큰 플랜카드에 박물관이 문 닫았다고 써있다. 이번 여행은 박물관과 인연이 멀다.

터미널에서 오후 4시에 베오그라드로 떠나는 버스편을 알아보니 매일 오전 6시에 출발하는 버스만 있다고 한다. 무슨 소리야? 시간표에 오후 4시라고 되어 있지 않냐고 물으니 그건 베오그라드에서 출발하는 버스가 도착하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이럴 수가? 그럼 론니의 정보가 정확 한 거야? 갑작스러운 패닉.. 론니를 보니 루카비카(Lucavica) 터미널에서 떠나는 버스는 오후 3시와 10시가 있다. 이건 정확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서둘러야 한다.(확인결과 정확했다.)

 

 그 소식을 확인한 시각이 정오가 지난 시점이기 때문에 아직 여유가 있었다. 얼른 호텔로 돌아와 루카비카 터미널로 가는 방법을 물어보니 Bascarsija의 국립도서관 앞에서 31E 버스가 출발하는데 그걸 타고 종점까지 가서 500m 정도를 걸어가면 된다고 말한다. 친절한 호텔 직원에게 감사..

 

 그런데 오타로는 어떻하지? 오후 4시차로 알고 있을 텐데.. 오타로가 빨리 이곳에 오길 바라며 상황에 대한 편지를 남겼다.

 

 두 개의 터미널이 생긴 것에는 그 유명한 보스니아 내전이 배경이 된다. 워낙 복잡한 사정이 얽힌지 것을 간단하게 이야기하지면, 1992년 4월 유고 연방은 신유고슬라비아(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의 연방),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마케도니아 등 다섯 나라로 분열되었다.

 

 하지만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는 이미 세르비아인과 크로아티아인 등이 많은 숫자를 차지하고 있었고 세르비아 계는 스르프스카 공화국을 세운다. 한 나라 안에 두 공화국이 생긴 것은 자연스럽게 내전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비교적 훈련이 잘 된 스르프스카의 세르비아 민병대와 신유고 연방군은 무슬림 보스니아 압박하기 시작했고 결국 보스니아 영토의 70%를 장악하게 된다.

 

 특히 3년 동안 이어진 보스니아 포위작전은 1989년 세르비아의 권좌에 오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이 "대 세르비아주의"의 기치를 내걸었고 밀로셰비치는 보스니아 내의 세르비아계 주민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1992년 보스니아의 수도인 사라예보를 공습..사라예보는 세르비아에 의해 포위되었다.

 

 또한 밀로셰비치는 세르비아 점령지역의 무슬림들을 몰아내기 위한 "인종청소"를 자행하였고 나치 시대에나 볼 수 있었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보스니아의 많은 무슬림들이 죽었다. 민족과 종교의 이름의 야만스러운 보스니아 내전은 27만 명이라는 엄청난 사망자와 2백만 명 이상의 난민을 발생시켰다.

 

 사라예보의 거점은 스르프스카의 세르비아 민병대에 의해 장악이 되어서 저격수들이 사라예보 시민들을 저격하고 포격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지만 미국 등 강대국들은 내정 간섭이라는 이유로 전쟁에 관망하는 자세로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이는 같은 기독교계인 세르비아가 무슬림인 보스니아와의 내전이기에 그러한 태도를 견지했으리라.

 

 하지만 1994년 스르프스카 공화국군이 벌인 무차별 학살 중에서 가장 많은 피를 불렀던 것은 1994년 2월 5일 제 1차 마르칼레(Markale) 시장 학살과 1995년 8월 2차 학살이 이어지고 발칸의 도살자라는 별명이 붙은 밀로셰비치의 만행이 극에 이르자 UN과 NATO는 세르비아를 공습하기 시작하며 전쟁에 개입을 했으며 이에 보스니아-크로아티아 연합군대가 반격을 하면서 스르프스카 공화국이 점령지를 일부 되찾게 된다. 1996년 2월 29일, 스르프스카 공화국군이 도시를 떠나고 포위망을 출자, 보스니아 정부는 기나긴 포위가 드디어 종료되었음을 선언하였다.

 

 이로서 내전이 종결되었지만 이곳 역사를 공부하면서 한 가지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영토 구성은 보스니아(무슬림)와 헤르체고비나(크로아티아인 다수)가 51%, 스르프스카 공화국이 49%이라는 것이다. 하나의 나라이지만 2개의 정부를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워낙 복잡한 민족과 종교 구성이라 종전시 상황 그대로 정부가 유지되고 있다. 이 두 공화국의 충돌을 막기 위해 종전 후에서 UN 평화유지군이 주둔햇다.

 

 진정한 화합을 위한 연합 정부에 대한 시도가 몇 차례 있었지만 무산되어 지금의 체제가 이어져오고 있다. 내전이 일어나 서로 죽고 죽였는데 쉽게 화합하기는 힘들 듯 하다.

 

 앞서 이야기 했듯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로 가려면 스르프스카 지역은 루카비카 터미널로 가야 한다. 트램을 타고 종점에서 내린 후 버스 티켓을 사니 40KM(20유로)이다. 그래도 화폐는 같이 쓰네? 베오그라드까지는 7시간이 걸리는데 이 터미널의 스크린에는 버스의 출발 시각과 도착 예정 시각이 나와 있어 편리해 보인다.  어제 인출했던 100KM 중에 10MK가 남았다. 터미널 커피숍에서 마끼아또 한잔을 마시며 눈 오는 차창 밖을 감상했다. 나름 운치가 있네~ 이왕이면 맥주한잔을 하고 싶었지만 그럼 생리적인 현상으로 장거리 버스 여행에 막대한 재앙(?)이 올 수도 있다.

 

 커피 2.2KM, 화장실 두 번 1KM, 버스짐피 1KM, 과자 3KM을 샀는데도 3KM이 남는다. 이것 비상용이나 나중에 기념으로~(결국 기념이 되었음)

 

 출발 시각인 오후 3시가 되었는데도 오타로는 오지 않는다. 결국 내 편지를 일찍 보지 못했나보구나.. 버스가 출발하면서 발밑에 히터가 나오는데 며칠 동안 눈이 내려 신발이 젖었는데 요긴하게 말릴 수 있었다.

 

 버스는 높은 지대에 있는 사라예보 시내 외곽을 지나간다. 눈 쌓인 사라예보가 아름답게 비춰진다. 시내를 벗어나자 산악지역이 이어지고 버스는 느리게 달리기 시작한다. 사라예보 이름은 아름답지만 역사적으로는 한이 많은 도시와의 이별이다.

 

 오후 7시 국경에 도착해서 보스니아 출국 심사를 받는데 생각보다 삼엄하지 않다. 세르비아 입국도 마찬가지~ 오후 7시 17분 생각보다 빨리 세르비아에 입국했다.

 

 오후 10시 25분 베오그라드에 도착했다. 아침에 예약한 기차역 바로 앞의 Central Station 호스텔에 체크인을 하고 10유로를 결재했다.

 

 이곳의 장점은 오로지 위치.. 시설은 열악하다. 다행인 것은 도미토리를 사람이 아무도 없는 방으로 챙겨 준다.

 

 내일은 베오그라드를 탐방하고 코소보로 떠난다. 여행 막바지 강행군의 연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