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6일(토)

 

 밤새 도미토리에는 2명이 더 들어왔는데 그중에 한면이 오타로!

 

 오타로에게 어떻게 왔는지 물어보니 어제 오후 3시에 쪽지를 봐서 3시차를 타지는 못했고 오후 10시 차를 타고 막 도착했다고 한다. 바깥을 보니 오늘도 눈이 펑펑 내린다. 왜 눈은 내가 오는 곳을 따라오는지?

 

 짐을 챙겨 체크아웃을 한 후 오전 9시 45분에 버스터미널로 가서 코소보행을 알아보았다. 프리슈티나행은 오후에는 16:30, 21:30, 22:00에 차가 있다. 요금은 1,670디나르(1유로에 111디나르 선)

베오그라드는 하얀 도시라는 뜻이다. 구유고연방의 수도였기도 하고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칼레메그단 요새는 기원전 3세기 독일 남부 켈트족이 정착한 이래 요새로 축성되었고, 이후 동로마제국이 이곳을 정복한 후 유스티니아누스 1세 시대에 지금의 요새가 건축이 되었다고 한다. 오스만 제국이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킨 후 요새가 방치가 되었다가 18세기 초기에 오스트리아가 지배를 하면서 요새를 수리했다. 1,2차 세계대전 때도 요새를 손상 되었으며 1999년 코소보 사태에 이은 나토의 폭격에도 영향을 받았으나 끄떡없이 남아 있다.

 

 요새에 들어가서 밀리터리 박물관에 들어갔다. 박물관은 생각보다 큰 규모였으며 고대 전쟁부터 시작해 중세 현대 전쟁에 이르기까지 많은 장대한 전쟁 역사를 그 당시 무기와 군복등을 전시하며 설명하고 있다. 특히 2차 세계대전에 티토가 이끄는 유격대 활동과 구유고 시절의 모습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에는 1999년 격추시킨 스텔스기의 잔해를 전시했다. 전시관 끝 편에는 나토의 공습으로 피해를 본 사진과 나토와 세르비아의 군사력 차이를 강조하면서 일방적인 전쟁이라는 다소 억울한(?)면을 강조한 부분이 있지만 그들이 코소보에 한 만행은 생각하지 않는지 되묻고 싶다.

 

 전쟁기념탑에는 오스만 투르크에서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한 빅토르 동상이 서 있는데 이곳에서 도시를 바라보니 요새가 꽤 높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곳은 사바강과 다뉴브강이 합쳐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요새를 돌아볼 때 누군가 “Park~'라고 소리친다. 마침 이곳을 들린 오타로~ 오타로에게 오늘은 어떻게 할 건지 물어보니 밤에 비행기를 타고 이스탄불로 가서 바로 카파도키아로 간다고 한다. 5일 만에 터키를 둘러보려는 야심찬 일정. 아무튼 짧은 시간 최대한 많은 것을 보려고 노력한다.

 

 요새에서 가까운 Bayrakli 모스크를 둘러보려고 하니 기도시간이라 들어갈 수가 없었다. 마침 정오가 되어 시내의 카페에서 점심 식사를 했는데 와이파이가 터져 휴대폰으로 잠시 인터넷을 했다. 그리고 곧장 국립박물관(100디나르)로 가서 관람을 했는데 내부 공사 중이라 1층의 절반만 개방되어 있다. 세르비아 박물관을 방문하니 토요일이라 사람이 없어 문을 닫았다고 한다. 정말 이번 여행은 박물관 운이 없다.

 

 공화국 광장의 국립박물관 앞에 미하일로 왕사의 기마상이 서 있다. 미하일로 왕은 1832~1842년 세르비아를 통치한 왕이며 오스만 투르크로부터 해방 된 후 6개 주를 종복한 왕이다. 주변 건물은 1870년대 건물들 아름다운 모습이다.

 

 국회의사당을 둘러보고 시내 남쪽으로 가는데 한 사내가 차에 쌓인 눈을 치우는 도구를 홍보물로 준다. 과연 필요가 있을까? 달력도 같이 주기에 일단 챙겼다. 외국에서 이렇게 홍보 물건을 받아보는 건 처음이네..

 

 Sveti Marko 교회는 세르비아 정교회로 빨간 벽돌이 인상적이다. 내부에 들어가니 웅장한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드리고 있다. 낯선 외국인의 등장에도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교회를 둘러보니 양쪽에 무덤이 있는데 1903년 육군 장교들에게 살해 당한 오브레노비치 왕의 무덤이 교회 안에 있다.

 

 마르코 교회 옆의 러시아 교회까지 둘러보니 오후 2시 25분. 이제 코소보로 발길을 돌릴 시간이다. 워낙 눈이 많이 와서 제대로 둘러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터미널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버스 시간을 기다리다가 출발 10분 전 버스를 탔다. 오후 4시 30분 버스는 남쪽을 향해 출발했다.

 

 오랜 시간을 달려 오후 9시 국경에 도착했다. 세르비아는 코소보 독립을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삼엄한 검문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냥 가볍게 신분증 검사만 한다.

 

 더 신기한건 코소보 국경사무소와 같은 건물을 쓰고 있다. 코소보 측에서는 나와 뒷자리에 앉은 동양 여성을 불러내어 어느 호텔에 숙박하며 돈은 얼마를 쓰며, 다음 코스는 어디로 갈건지 꼬치꼬치 물어본다.

 

 마케도니아 스코페로 나갈 예정이라고 하니 OK~ 외국인이 코소보에서 세르비아로의 입국은 금지되어 있다.

 

 옆좌석에는 하심이라는 사내가 앉았는데 영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친지 방문차 코소보로 간다고 한다. 그와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여권을 보니 세르비아 출국 스탬프는 없고 코소보 입국 도장만 있다. 세르비아 입장에서는 독립하지 않은 코소보도 세르비아이기 때문에 출국 도장을 찍을 이유가 없는 셈이다.

 

 국겨을 넘자마자 가게에 들렀는데 이곳은 세르비아돈을 받기 때문에 남은 돈으로 먹거리를 샀다. 그래도 78디나르가 남았는데~ 이건 그냥 한국으로..

 

 오후 10시 30분경 프리슈티나에 도착했다. 터미널은 시내에서 떨어져 있기 때문에 택시를 타려고 했는데 부르는 가격이 만만치 않다. 동양인 여성 여행자는 자신이 알아온 숙소가 가깝다며 함께 가자고 말한다.

 

 터미널에서 내일 마케도니아 스코페로 출발하는 버스편을 알아보니 원래는 하루에 5~6편이 있는데 일요일이라 새벽 6시와 오전 11시 30분에 차만 있다고 한다. 이런 내일 스코페에 반드시 가야 하는데..

어쩔수 없이 아침 일찍 프리슈티나를 둘러보고 오전 11시 30분 스코페행 버스를 타기로 했다. 터미널과 가까운 동양 여행자 숙소로 가기로 했다.

 

 동양인 여행자는 말레이시아 여행자로 여자 혼자서 8개월째 세계 일주를 하고 있다고 한다. 둘 다 비싼 택시를 이용하는데 취미가 없다. 1.5Km 걸어 프리슈티나 호스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호스텔에는 청년 한명이 지키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온 손님에 놀란듯한 표정이다. 이곳에서 여장을 풀었다.

 

 짧은 베오그라드도 아쉽지만 내일 아침에만 주어진 프리슈티나 역시 아쉬운 하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