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1일(토)

오늘은 결전의 날이다. 4,703m인 키보 산장까지 등반하고, 고산 적응을 하며 쉰 후 자정에 정상을 공격해야 한다. 과연 우리 셋 모두가 성공할 수 있을까? 잘 못하면 한명도 정상에 오르지 못할 수도 있다.

일찍 잠드는 바람에 새벽에 잠이 깼다. 덕분에 호롬보 산장에서의 일출을 볼 수 있었다.  어둠을 물리치고 세상을 밝게 비추는 태양... 내일 일출은 정상에서 바라볼 수 있겠지?

고도가 올라감에 따라 기온도 급격히 낮아졌다. 이제 여행사에서 대여한 외투와 양말, 목토시를 꺼내 입었다.

키보 산장은 빨리 도착하는 팀이 좋은 자리를 차지한다. 일본 단체팀과 서양 단체팀이 키보 산장까지 가기 때문에 우리는 아침 식사를 마치는 대로 최대한 빨리 출발했다.(오전 7시 50분) 날씨가 좋아 킬리만자로의 정상이 저 멀리에서 보인다.

길이 가팔라지고 식물들의 숫자로 고도가 올라갈수록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한다. 가이드인 오스왈드와 길버트는 우리가 최대한 천천히 가게 하려고 노력 하는 모습이다.

중간 중간에 바퀴 달린 침대가 있는데 조난자가 있거나 비상시에 사용하기 위해 곳곳에 배치해 두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물을 뜰 수 있는 ‘라스트 워터 포인트(last water point)’를 지나 마웬지 능선이 시작되는 지점부터 키 낮은 풀들도 자취를 감추고 사막의 풍경으로 변한다. 화산재, 화산탄이 널려 있는 화성과 비슷한 풍경이다. 바람도 점점 매서워지고 있다.

키보 산장에 가까울수록 머리가 띵해지고 숨이 가빠진다. 이제 고산 증세가 시작되나보다.

사막 한가운데 킬리만자로가 우뚝 솟아 있고 밑자락에 건물이 보인다. 저기가 키보 산장이구나. 가이드에게 금방 갈 수 있는지 물어보니 2시간은 더 걸어야 한다고 한다. 눈에 잡힐 듯 보이지만 사실 먼 거리이다.

키부 산장에서 1.5Km 떨어진 지점에 쉼터가 있는데 우리 모두가 고산 증세가 와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다. 머리도 띵하고 걷는 속도도 현저하게 느려졌다. 우리와 비슷하게 도착한 서양 단체도 마찬가지인 듯 쉼터에 앉아 찡그리는 표정을 짓고 있다.

다섯 시간의 산행을 끝에 키보 산장에 도착했다. 4700m.. 키보 산장은 킬리만자로 등반로 밑자락에 있는데 산장에서 바라 본 등반로가 급경사이다. 코카콜라 루트라고 불리는 등반로는 올라가는데 5~6시간이지만 내려오는 데는 불과 1시간이 걸린다. 그만큼 경사가 급경사이다.

산장에서는 좋은 방인 1번 방을 배정받았다. 방을 배정 받자 머리가 띵하고 숨이 가빠졌다. 이제 자정까지 어떻게 고산적응을 하는지가 관건이다.  

머리가 너무 아파 식사를 거르고 자려고 하니 오스왈드가 조금이라도 식사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말이 일리가 있어 식사를 하려고 다시 나왔다. 다른 식사는 입에 대지도 못했고 차와 과일을 좀 먹으니 나아졌다.

방의 침대는 2층 침대인데 1층은 다른 사람이 맡아 놓았다. 어제 우리와 잠깐 우리와 이야기를 했던 일본인 오쿠모가 여행사 고객을 위해 미리 와서 맡아 놓았다. 오쿠모는 킬리만자로가 3번째인데 할머니 3명을 데리고 정상을 올라야 한다. 키보 산장으로 올라오는 길에 잠깐 할머니들 걷는 걸 지나치면서 봤는데 정상에 오르기는 힘든 체력이시다. 아무리 여행사 직원이지만 오쿠모에게는 가혹한 편성이다.  

산장에 있으면 고소 적응이 저절로 될 줄 알았는데 숨은 점점 가빠온다. 최대한 숨을 크게 쉼에도 머리가 띵하고 아프다. 옆의 사람과 말을 하면 그 만큼의 산소를 얻지를 못함으로 머리가 띵해 쓰러질 것 같다.

저녁 식사도 넘어오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음식을 먹으면 구토를 할 것 같은데 이곳에서는 구토를 하면 바로 하산 처리를 한다. 아프고 지친 가운데서도 반드시 정상만은 정복할 것이라는 전의를 다졌다.

재용이가 고산 증세가 심해 킬리만자로 등반 경험이 있는 오쿠모에게 도움을 청하니 고산약을 준다. 나도 머리가 너무 아파 약을 복용했다. 약을 먹었지만 별 효과가 없다. 이럴 때는 할 수 없다. 몸이 적응하기를 바랄 수밖에..

어둠이 깔리자 방안은 정적만이 흐른다. 이곳에서는 모두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다. 이 중에서 누가 정상을 밟을까? 여기까지는 쉬웠는데.. 최종 정상 정복 확률이 30%라는 이야기는 어제까지만 해도 믿어지지 않았지만 이제 믿음이 가는 현실이다.  

결국 오후 8시경 잠결에 누군가 구토를 심하게 하는 소리가 들린다. 오쿠모와 함께한 일본 할머니가 고산을 이기지 못했다. 결국 포터와 함께 하산 조치했다.

긴 침묵을 깨고 오후 10시 방에 불이 켜졌다. 11시에 출발하려는 사람들이 일어나 준비를 한다. 아직 시간의 여유가 있어 잠을 더 자려고 했지만 머리가 아파 잠들 수가 없었다. 명상하는 자세로 앉아 눈을 지그시 감고 최대한 심호흡을 했다. 입과 코 공기가 지나갈 수 있는 통로를 최대한 열어 산소를 몸에 공급하고자 했다. 그러니 머리 아픈 게 좀 나아진다.

오후 11시.. 상걸이 재용이 모두 일어났다. 모두가 컨디션이 최악이다. 우리는 일어났지만 말을 하지 못한 채 그저 따뜻한 물만 마셨다.

머리는 아프고 윗배는 매쓰껍고, 아랫배는 가스가 발생해 계속 방구가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1,100m를 더 올라가야 하다니.. 나 자신을 믿을 수밖에..

11시 40분 오스왈드와 길버트가 방으로 들어왔다.

‘준비 되었어? 이제 힘든 밤이 시작 될 거야! Let's Go~’


1월 22일(일)

밤11시 50분 고요하던 산장에 다섯명의 사내가 서면서 긴 침묵을 깬다. 다섯명은 희망과 불안, 두려움과 강인함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코카콜라 루트를 오르기 시작했다.

모든 장비를 갖추고 머리에는 헤드랜턴을 장착했다. 산장에서 출발하여 경사면까지 이동했다. 거대한 산이 등장했으며 이미 11시에 출발한 팀들의 헤드랜턴 불 빛이 멀리서 보였다. 워낙 경사가 심해 하늘 위에 빛이 있는 것 같다.

경사면을 지그재그로 오르는데 경사면이 심하고 모랫길이라 자주 미끄러진다. 오스왈드 표현으로는 카멜레온의 움직임처럼 천천히 한 발자국씩 올라야 한다.    

선두에 선 오스왈드는 정확히 한 발자국 간격으로 보폭을 유지하도록 하고 맨 뒤의 길버트는 혹시 미끄러지거나 길을 잘못 들지 않았는지 수시로 체크한다.

그러한 가이드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우리팀은 다른팀보다 안정되게 산을 오를 수 있었다. 오히려 속도가 붙기 시작해 앞서 출발한 팀들을 따라 잡았다.

‘Korea Team! Number One!'

누군가 앞질러 가는 우리에게 이렇게 외친다. 자랑스러운 말이지만 지금은 속도보다는 천천히 쉬면서 완등을 하고 싶다. 하지만 오스왈드는 그 말에 고무가 되었는지 계속 다른 팀들을 앞질러 나간다.

경사면을 오르면 오를수록 앞서 출발한 팀들 중에 중도 포기한 사람들이 가이드와 함께 내려온다. 그들에게 위로의 말을 꺼내야 하나? 아니 몸이 너무 힘들어 그럴 기력조차 없었다. 그저 지나가면서 침묵뿐..

바람은 살을 저미듯 파고들고, 손가락과 코는 매서운 추위에 동상을 걱정해야 할 정도이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두통 또한 점점 심해진다. 인간의 한계라고 할까? 태어나서 이렇게 고통 속에 휘감겨 본 적이 과연 있을까? 그래도 바로 뒤에서 묵묵히 따라와 주는 상걸이와 재용이가 있기에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바로 뒤의 재용이가 고역일 것이다. 내가 끊임없이 방귀를 뀌었기 때문이다. 참으려고 해도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길을 오르고 올라 새벽 4시가 되어 모래 구간이 끝났다. 이제 바위 산 부분이다. 모래처럼 미끄러지지는 않지만 가파른 바위라 사고가 날 수가 있다.

오스왈드는 이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은지 속도를 낸다. 하지만 난 너무나 고통스러운 나머지 오스왈드에게 사정하듯이 쉬었다 가자고 말했다.

‘안 돼! 여기는 위험해. 좀 더 위로 올라가면 바람이 없고, 안전한 곳에서 쉴 수 있어.’

오스왈드의 말이 맞기는 하지만 금새 수긍하기에는 몸과 마음이 지쳤다.

‘오스왈드. 이미 유럽 팀은 저 아래에 있잖아. 우리 속도가 너무 빨라!’
라고 이야기 하는데 뒤에서

‘형 눈이 안 보여!’  상걸이가 소리친다.

오스왈드에게 상걸이 눈이 안 보인다고 이야기 하고 상황을 파악했다.

상걸이는 지난여름 라섹 수술을 했는데 눈이 압력에 민감해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눈의 압력이 세져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오스왈드에게 사정을 설명하자 일단 산을 오르고 상황을 보기로 했다.

상걸이를 선두에 세워 오스왈드가 앞에서 끌어주고 내가 뒤에서 밀어주는 식으로 올라 새벽 5시 5,685m 길만스 포인트(Gilman's point)까지 올라갔다. 이곳은 급경사가 끝나는 지점으로 정상인 우후루 피크(5,896m)까지는 2시간을 더 가야 한다.

일단 가장 어려운 구간인 급경사는 끝났지만 대신 매서운 칼바람과 추위가 우리를 엄습한다. 노출이 된 코 부분의 고통이 심했다,  

오스왈드는

‘여기서부터는 얼음길이야. 오른쪽으로 미끄러지면 수 십 미터를 떨어지기 때문에 위험해. 그러니 중심을 왼쪽으로 잘 잡아.’

길만스 포인트에서는 얼음길이 시작되는데 20~30m의 얼음 절벽에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만한 길이 뚫려 있을 뿐이다. 눈이 보이지 않는 상걸이가 통과하기에는 너무 위험하다. 재용이 역시 거의 탈진 상태라 신경 써야 했다.  

오스왈드에게 상걸이가 너무 위험하지 않는지 물으니 자신이 상걸이를 정상까지 올려놓겠다고 하면서 상걸이 한 팔을 잡고 얼음길을 헤쳐 나간다. 길버트는 지친 재용이를 뒤에서 끌어 준다.

‘조심해!!’ 오른쪽으로 기울어지는 상걸이를 향해 소리를 지르며 다그쳤다. 이곳에서 떨어지면 끝짱이기 때문에 민감했다.

속도가 느려지기는 했지만 천천히 스텔라 포인트로 향해 나아갔다. 어느덧 새벽 6시. 동쪽 하늘이 환해지면서 주변이 밝아지기 시작한다.

‘와 아름답다!’

지금 꿈을 꾸는 걸까?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운 가운데 정신까지 몽롱해지면서 살을 에이는 추위와 바람과 별개로 주변 풍경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비춰졌다. 정상 부분은 거대한 분화구에 만년설로 둘러싸여 있다.

오전 6시 30분 5,756m 스텔라 포인트에서 다다라서 일출을 볼 수 있었다. 스텔라 포인트는 마랑구루트와 음웨카(Mweka)루트가 합쳐지는 구간으로 이제 우루후 피크가 정말 얼마 안 남았다. 음웨카 구간에서 오는 유럽 등반객과 마주쳤다. 등반객들은 서로 인사할 새도 없이 본능적으로 정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거리상으로 얼마 되지는 스텔라포인트에서 우후루피크까지는 희망고문의 연속이다. 끝이라고 생각하면 또 길이 나오기를 반복한다.

멀리 모시에서 보았던 경사면의 아이스돔이 보인다. 멀리서 보면 작지만 직접 보니 높이가 10m가 넘는 거대한 빙하의 모습이다. 이 지점을 캠코더로 찍으려고 꺼냈지만 날씨가 추워 작동하지 않는다.

오전 6시 50분..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우리보다 앞서 도착한 라트비아 원정대는 ‘congratetion!'이라고 외치며 축하해 준다. 이곳에선 주인공이 없다.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등반에 성공한 모두가 주인공이다. 눈이 보이지 않는 상걸이 탈진한 재용이 모두가 등반에 성공했다.

정상에서 기념으로 사진을 찍고 주변 만년설을 캠코더로 담으려는데 캠코더가 말을 듣지 않는다. 온도가 너무 낮아 작동할 수 없다는 메시지만 뜬다.

다행히 재용이 카메라에 동영상 기능이 되어 주변 풍경을 화면에 담을 수 있었다. 추위와 고산병 때문에 정신없기는 하지만 프로젝트를 위한 임무를 착실히 수행했다.

촬영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한다. 상걸이는 길버트가 한 팔을 잡고 부축한다. 나도 돕고 싶었지만 이미 모든 기력을 소진한 탈진 상태이기에 신경 쓸 수가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 명확한 건 이제부터는 내려가는 길 밖에 없다는 사실.

우후루 피크에서 스텔라 포인트로 내려 온 후 잠시 바람을 피해 바위 뒤에서 쉬었다. 따뜻한 햇살이 얼마나 반갑던지..

스텔라 포인트에서 길만스 포인트의 빙판길을 다시 가로질렀는데 이곳은 절벽 구간이기에 상걸이와 길버트가 먼저 출발했다.  

나중에 상걸이가

‘형 보이지 않았을 때는 빙판 길이 위험할 줄 몰랐는데, 돌아올 때 조금 눈이 보였는데, 내가 얼마나 위험한 길을 왔는지 몸서리쳤어.’

주변 풍경을 사진에 담고 싶었지만 너무 추웠다. 다행히 재용이가 사진 찍을 정신이 있었는지 돌아오는 풍경을 사진에 담는다.

길만스 포인트에서는 급격한 경사면. 즉 내리막이 시작된다.

위험한 바위 구간을 지나서는 안전한 모래 구간 스키를 타 듯이 내려오면 된다. 올라갈 때는 6시간이자만 내려 올 때는 1시간인 이유이기도 하다.

속도를 붙여 빨리 내려가고 싶었으나 내려 오다보면 지쳐 쉬면서 내려왔다. 올라갈 때와 달리 오스왈드도 쉬는 것에는 별 말이 없다. 아니 오스왈드 역시 지친 것이다.  

오전 9시 40분 키부 산장에 도착했다.

고산병은 여전했지만 우리 세 명 모두가 등반에 성공했다는 기쁨도 잠시.. 셋 다 침대에 쓰러져 잠들었다.

11시 30분 점심 식사를 거르고 잠을 자려고 했지만 길버트가 반드시 식사를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생각해보니 길버트 말이 맞다. 일어나 과일을 좀 들었다.

가이드 오스왈드와 길버트.. 비록 고용인과 피고용인으로 만났지만 우리의 컨디션을 항상 체크해주고 격려해 주며 정상까지 오를 수 있게 헌신적으로 도와 준 훌륭한 가이드이다. 오스왈드는 리더로서 판단하고 카리스마 있게 우리를 이끌었으며, 길버트는 옆에서 우리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격려하고 파이팅을 이끌어 주었다. 그들이 아니었으면 이처럼 모두 성공하지 못했으리라..  

키부 산장에서 개별로 등반을 온 러시아 아저씨를 제외하고는 우리가 가장 먼저 산장에 다다랐고 많은 탈락자가 있었던 다른 그룹과 달리 우리는 모두 등반에 성공했다.

그게 소문이 났는지 포터들은 우리를 볼 때마다. 'Korea Team Number One!'이라고 말한다. 기분 좋기는 하지만 이제는 어서 하산하고 싶다.

12시 30분 키보 산장을 떠나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 길부터는 여유가 있다. 오로지 내리막이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내려가도 되고, 길이 외길이라 잃어버릴 염려도 없었다. 길버트는 하산길에는 우리보고 가이드를 하라면서 농담한다.

어서 호롬보 산장으로 가서 잠을 청하고 싶기에 나와 오스왈드는 빠른 속도로 하산을 했다. 중간에 중국 팀들과 마주쳤는데 처음 출발했을 때보다 숫자가 많이 줄어있었다. 고산병 때문에 탈락자가 많았나보다.

키보 산장에서 일찍 출발한 오쿠모와도 마주쳤다. 오쿠모가 데려 온 세 할머니가 등반에 모두 실패해서 그런지 오쿠모 표정이 좋지 않다. 오래 이야기를 끌면 실례.. 다시 호롬보 산장으로 내려갔다.

오스왈드와 나는 아무 말도 없이 나란히 걸었다. 서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생각해보면 둘은 리더로서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서로 다투기도 하면서 친해지고..

오후 3시경 호롬보 산장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숙소를 정하고 침낭을 깔았다. 씻을 새로 없이 침낭에 빨려 들어갈 듯이 들어가 잠이 들었다.

그 뒤 일정은 저녁을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오로지 잠이다. 오늘을 되돌아보면 어떤 삶의 고단함도 오늘보다는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힘들고 지칠 때는 오늘의 고단함을 생각하자. 그 어떤 고통과 고난함도 그 끝에는 달콤한 결과가 있음을. 킬리만자로는 앞으로 그 고단함 위에 서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