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3일(월)

킬리만자로에서는 열대 우림에서 시작해 황무지를 거쳐 얼음과 빙하의 땅으로 들어선 경험을 했다. 어제 고생 끝에 정상에 섰고 그곳에서 정상의 아이스 돔을 볼 수 있었다. 한때 그 높이가 20미터에 10제곱킬로미터가 넘는 크기였으나 지난 100년 사이에 85퍼센트가 녹아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과 같은 지구 온난화가 계속 된다면 머지않아 킬리만자로는 눈이 없는 봉우리가 되고 말 것이다. 다음에 방문 할 때는 얼마만큼 빙하가 남아있을까?

오늘 하산을 완료해야 하기에 아침 식사를 일찍 했다. 아침식사를 하면서 옆의 한국 등반객들이 떡국을 먹는 모습이 부러웠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설날이구나..

숙소에서 짐을 챙길 때 오스왈드를 불러 팁을 정산했다. 팁은 69만실링으로(430$정도) 리더인 오스왈드에게 가이드, 포터, 요리사 몫은 알아서 나누라고 했다. 여행사에서 싸게 깍은 대신 우리를 위해 고생한 이들에게 팁을 후하게 쳐줬다. 어제 상걸이를 도와 준 오스왈드와 길버트에게는 별도로 10$를 더 줬다. 오스왈드도 만족한 표정이다.

상걸이의 눈 상태는 고도가 낮아짐에 따라 다소 호전 되었지만 아직 왼쪽눈이 완전히 보이지 않는다. 빨리 하산하는 것이 상택 오전 7시 하산을 시작했다.

올라갈 때는 날씨가 흐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하산 할 때는 날씨가 좋아 킬리만자로의 모습과 산 아래의 풍경이 다 보였다.

하지만 높은 산에 태양이 강해 아무리 모자로 가려도 얼굴이 많이 탔다. 한국에 돌아가면 아프리카 여행을 한 티를 본의 아니게 내게 생겼다.

나의 하산 속도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 앞서 출발한 등반객은 물론 포터들까지 제치고 오전 10시 30분 만다라 산장에 도착했다.

다른 팀원들을 기다리며 풀밭에 앉아 쉬고 있는데 원숭이 한 마리가 내 옆을 지난다. 신기하게 쳐다보며 사진을 찍는데 원숭이는 개의치 않는다. 다시 2마리, 3마리.. 총 10마리가 내 옆을 지나 바로 앞 나무에 오른다. 사람을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 모양.

만다라 산장에서 마지막으로 식사를 하였다. 이른 점심이라 배가 고프지 않다. 사실 맛에 질려 넘어가질 않는다. 이럴 때 한국 라면 하나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이제 며칠 남지 않았어!

오스왈드에게 만다라 산장에서 입구까지 어느 정도 걸리는지 물어보니 난 1시간, 다른 멤버는 2시간 정도 걸릴 거라고 농담한다. 내가 너무 빨랐나? 상걸이 눈 상태가 나쁘고 재용이 발 상태도 좋지 않기에 다 같이 천천히 내려왔다. 고도가 낮아질수록 기온도 따뜻해진다. 의식하지 않았지만 고산병도 어느새 사라졌다.

오후 1시경 마랑구에 도착했다. 오피스에서 상장 비슷한 등반 인증서를 받았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인증서이다. 빌린 배낭을 반납하고 오스왈드와 길버트와 함께 모시로 돌아왔다.

모시에 돌아와서는 여행사에서 장비 점검을 했는데 재용이 폴대가 부러져 5$를 물어준 것을 제외하고는 별 다른 이상은 없었다. 마대 자루 하나 가득 실린 장비를 보며 정말 장비 없이 등반을 했다는 것이 실감났다.

여행사와의 계약대로 New Castle 호텔에 하루를 묵었다. 두 방을 썼는데 난 방 하나를 썼고 상걸이와 재용이가 한방을 썼다.

ATM으로 돈을 뽑고 슈퍼마켓에 가서 물과 음료를 사서 숙소에 왔다. 그동안 맥주를 마시고 싶었는데 2캔을 벌컥벌컥 마셨다.

저녁에 재용이와 상걸이가 쉬고 있는 사이 15분을 걸어 아캄바 버스오피스에 갔는데 버스편이 없어서 이미 문을 닫았다. 대신 주변 바에서 내일 2시에 나이로비로 가는 버스가 도착한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호텔로 돌아와 주변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4박 5일 간의 산행이 끝나서 그런지 모두가 피곤한 표정이다. 이럴 때는 별다른 일정 없이 쉬는 게 약. 숙소에서 달콤한 휴식을 취했다.

과연 킬리만자로 등반에 성공 한 걸까? 사실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다.  
  

1월 24일(화)

아침에 재용이가 기쁜 소식을 가져온다. New Castle 호텔 3층 발코니에서 와이파이가 잡히는 것을 발견했다. 덕분에 우리 셋은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마음껏 쓸 수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발코니에서 외국인 3명이 휴대폰을 들고 있는 모습이 신기한 모양.

아캄바 버스가 오후 2시 있는지라 호텔에 최대한 시간을 보내려고 했는데 오전 10시에 체크아웃이라고 연락 온다. 할 수 없이 짐을 꾸리고 호텔 1층 바에서 시간을 보냈다.

1층에서도 와이파이가 잡혀 여행기를 올리는데 산행에 함께했던 길버트와 요리사, 포터들이 반갑게 인사한다. 이제 보니 이들 모두 친한 친구였던 모양. 길버트는 다른 한국 여행자에게도 자신들을 소개 해 달라고 부탁한다.

숙소에 짐을 맡기고 Taj-Mahal 레스토랑에 가서 마지막 식사를 했다. 벌써 이곳에 4번째.. 모시에서 우리의 공식 레스토랑이 다 되었다.

우리가 식사를 시키자 직원이 알아서 매운 고추 소스를 준다. 음료는 주스를 추천해 주기에 오렌지와 망고 주스를 시켰는데 한 컵에 1,000실링(750원)이다. 탄산음료보다 주스를 훨 났다.

재용이와 상걸이가 기념품을 사고 싶어 하기에 기념품샵을 찾아 물건들을 구입했다. 재용이가 100,000실링, 상걸이가 50,000실링 어치를 구입했다. 난 원래 기념품을 구입하지 않아 구경만 했는데 동생들의 대량 구매 덕분에 엽서 한 장을 얻을 수 있었다.    

은행에서 돈을 찾아가지고 오는데 오스왈드와 마주쳤다. 잔뜩 취한 모습인데 어제 일이 끝나서 하루종일 술을 마셨나보다.

이제 나이로비로 가야 할 시간.

아캄바 버스오피스에 가서 짐을 맡기고 옆의 바에서 맥주한잔을 하는데 청년 두 명이 오더니 바나나잎 그림을 사라고 한다. 한 장에 얼마인지 물어보니 20$를 부른다.

우리는 기념품을 많이 샀다고 말하니 가격은 금새 내려가 1장당 5$까지 떨어진다. 결국 세명이 한 장씩 샀다.

우리가 그림을 살 때 아캄바 오피스 직원이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버스가 도착했다며 타라고 한다. 친절한 직원 덕분에 버스에 무사히 오를 수 있었다.

나이로비로 가는 버스는 승객이 많지 않아 쾌적했다. 모시에서 아루사, 아루사에서 케냐 국경으로 가는데 가파른 Meru 산이 보인다. 4,400m가 넘는데 저 곳에 오르는 사람들도 있겠지?

메루산을 지나치자 저 멀리 킬리만자로가 보인다. 날씨가 좋아 수십 Km가 떨어진 거리임에도 킬리만자로는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사바나에서 바라보는 킬리만자로라 더욱 운치가 있었다.

오후 5시 48분 탄자니아-케냐 국경을 통과했다. 아캄바, 다르 익스프레스, 캄팔라 코치 이 세 버스가 몰렸지만 탄자니아로 올 때보다 승객이 적어서 그런지 통과하는데 시간이 지체되지는 않았다. 외국인은 우리 셋 밖에 보이지 않는다.

국경에는 기념품 파는 사람들이 한국어로 서로의 물건을 사라고는 하지만 그렇게 귀찮게 하지는 않는다. 청년 중 한명은 나에게 하늘 위를 날아가는 비행기를 가리키며 오늘은 남아공에서 오는 비행기이고, 내일은 두바이로 간다고 이야기 한다. 왜 이런 이야기를 나에게 할까? 남아공이나 두바이로 가고 싶은 걸까? 덕분에 이 청년이 국경에서는 가장 인상 깊었다. 국경을 통과해 케냐 통신회사가 휴대폰에 뜨자마자 UNEP 방문을 도와주실 정종선 참사관님에게 연락을 드렸다.  

오후 8시 40분경 나이로비에 도착했다. 아캄바 버스 오피스에서 가까운 뉴케냐 롯지로 갔다. 롯지에 오니 우리 집에 돌아 온 기분이다.

우리가 떠날 때 만났던 오스트리아 할머니에게 킬리만자로를 갔다 왔다고 하니 자신 20년 전에 등반했다고 하신다. 그 때는 만년설이 지금보다 더 많았고 지금처럼 인증서를 발급해주지 않았다고 회상하신다.

숙소의 여행자들의 환대와는 달리 직원인 노인은 좀 쌀쌀맞다. 4명인 도미토리를 다 이용하려면 4명분의 요금을 내라고 이야기 한다. 3명인 우리가 왜? 1명이 들어오면 그 1명이 불편하지.. 밤도 늦고 더 이상 들어올 사람도 없을 것 같아 1명이 더 들어와도 상관없다고 말하고 3명분 도미토리비를 냈다. 아무래도 숙소를 옮길 때가 된 것 같다.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뉴케냐롯지 앞의 바에서 맥주한잔을 했다. 마침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이 시작되어서 말리 대 기니의 축구 시합을 볼 수 있었다.

이제 여행의 정리 단계로 UNEP 방문만이 남았다. 나이로비에서 쉬면서 그동안 밀린 여행기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1월 25일(수)

뉴케냐 롯지 4~6번방은 밤 12시까지는 바로 밑 바에서 트는 시끄러운 음악소리를 들어야 하고 새벽 6시부터 교회에서 들리는 마이크 소리를 감수해야 한다. 민감한 여행자에게는 적응하기 힘든 숙소이지만 험난한 여행을 한 우리에게는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오늘은 아무런 일정이 잡혀있지 않다. 오랜만의 달콤한 휴식을 꿈꾸는 찰나 정종선 참사관님에게 전화가 온다.

킬리만자로에서 뵈었던 김응수 한글학교 교장선생님께서 오늘 점심 식사를 함께하자는 내용이다. 오전 11시 옷을 챙기고 시티 마켓 부근에 와이파이가 잡히는 곳에서(이미 우리가 지정 된 와이파이 장소^^) 참사관님에게 UNEP 방문에 필요한 여권번호를 보내드리고 차이 하우스 7층의 한글학교를 방문했다. 7층은 세라젬이라는 의료기기 업체 사무실과 세종학당이 같이 있다.

한글학교는 초급 정원이 35명, 중급은 한국으로 유학 간 학생이 있어 8명 정도이다. 한글학교는 김응수 선생님이 2008년부터 혼자 해오시다가 문화관광부와 주케냐 한국대사관의 도움으로 지금의 세종학당으로 발전했다.

김응수 선생님과 현지 직원, KOTRA에서 일하시는 분과 함께 근처 중국음식점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비록 중국 음식이지만 오랜만에 맛보는 입맛에 맞는 음식이다.

식사를 하면서 아프리카의 농업, 농업용수, 기후 변화, 지역 문제, 항만 건설 등과 같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케냐는 동아프리카의 물류 중심으로 이미 뭄바사 항구는 포화 상태에 있기 때문에 북쪽에 신항구를 건설하고 있다.

반면 물 문제는 심각해서 현지 주민들이 파는 우물은 괜찮지만 기업이 파는 우물은 지역 전체를 오염시키고 있다. NGO에서 많은 우물을 파주고 있지만 현지 주민들이 우물을 운영하는 능력이 안 되어 방치되는 경우도 있다.

식사를 하고 돌아오니 마침 수업이 시작되었다. 우리 셋은 교실로 들어가 학생들에게 인사를 했다. 특히 상걸이는 정선 아리랑을 불러 학생들에게 큰 박수를 받았다. 교장선생님에게 케냐 커피에 대해 여쭈니 옆의 사무실에서 주문을 하면 케냐 커피를 싸게 살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옆의 사무실을 방문해 우리 셋 합쳐 100g 커피 40통을 주문했다.  

UNEP 방문은 27일 오전 10시로 정해졌다. 내일까지 시간이 남는데..

당초 마지막으로 헬스게이트 탐방을 고려했으나 여행 막바지 쉬는 쪽으로 결론을 냈다. 이제 아프리카에서의 일정은 2일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