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7일(목)    

더반은 남아공에서 3번째로 큰 도시이다. 이곳의 나탈 항구는 아프리카 최대의 항구로 세계에서도 9번째의 규모를 자랑한다. 바스코 다가마가 1497년 12월 25일에 정박한 기록이 있다. 그 후 보급기지와 상아 수출 항구로 발전했고, 보어 전쟁을 계기로 급성장했다.

버스는 생각보다 빠른 새벽 4시 45분에 도착했다. 터미널에서 1시간 정도 대기 한 후 새벽 6시에 숙소를 찾아 시내로 나섰다.  

시내에 들어서자 구걸 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Hay! Friend!' 하면서 다가와 배고프니 돈 달라고 한다. 모조리 외면..

한국어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Beach 유스호스텔을 찾았지만 폐점했다. 대신 다른 숙소를 소개 해 주는데 Beach 유스호스텔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Cato 로드의 건물 3층의 숙소에 갔다. 아직 개시를 안 해서 그런지 간판이 없고 시설이 미흡하지만 새 침대라 비교적 깨끗했다. 아직 도미토리는 90R로 저렴한 가격이다. 이번 숙소도 도미토리에 나 혼자 있게 되었다.

샤워를 하고 잠시 쉬다가 오전 9시 30분에 바로 시내 탐방에 들어갔다.

첫 방문지는 해변의 바스코 다가마 시계탑. 바스코 다가마가 나탈베이를 발견한 400주년을 기념해 포르투갈 정부가 1897년에 기증을 한 시계탑이다. 크기가 작기는 하지만 역사적인 의미는 그보다 클 것이다.

조금 걸어 나탈 해양박물관(Port Natal Maritime)으로 갔다. 입장권을(5R) 끊으니 백인 매표원이 Duban Walking Tour 지도를 준다. 이것을 참고해 더반 시내를 잘 돌아 볼 수 있었다. 나탈 해양 박물관은 우룬디와 J.R 모어, 2척의 배를 그대로 공개한 박물관이다. 배 내부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으며 근세의 배의 구조를 엿볼 수 있다. 여러번 배를 탄 나에게는 좀 식상하기는 하지만 큰 배를 타보지 않은 관람객은 볼 만하다.

시청은 1910년에 세운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으로 호화로운 돔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시청에는 두 가지 볼거리가 더 있는데 과학박물관과 더반 미술관이다. 이들 박물관은 입장이 무료에다가 사진을 자유롭게 찍을 수 있다. 시청 옆 분에 입구가 있어 들어가니 1층은 도서관이다.

2층은 과학박물관인데 올라가는 순간 커다란 코끼리, 코뿔소 박제가 반겨준다. 과학박물관은 지금껏 들러본 박물관 중에 가장 정리가 잘 되어 있으며 볼거리도 풍부하다. 실물크기의 티라노사우르스 인형이 있는 것이 이채롭다. 각종 동식물 표본을 비롯해 많은 지질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사람을 진화과정을 비롯해 물고기, 말, 새 등 다른 동물의 진화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한 것이 인상적이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볼거리를 제공한다. 3층의 갤러리는 비교적 현대적인 미술 작품이 있으며 인종의 화합에 관한 작품과 창의적인 작품들이 눈에 띈다. 박물관과 갤러리를 감상하니 어드덧 점심이 다되가고 있다.

시청 주변에는 먹거리 장터에서 밥과 핫도그, 음료수를 시켜 잠시 쉬면서 점심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면서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니 가지각색의 인종이 지나간다.

시청에서 기차역까지는 각종 쇼핑몰과 상점들이 즐비하다. 물건 구경도 하면서 내일 언더버그(Underburg)로 가는 차편을 알아보기 위해 기차역 주변에 버스정류장에 가니 많은 미니버스가 있지만 정확한 차 편을 알 수는 없었다.    

발걸음을 북쪽으로 돌려 크와무르(Kwa Muhle Museum)박물관으로 갔다. 아프라헤이트 시대에 대한 흑인들의 생활상을 엿 볼 수 있다. 남아공의 인종차별은 1948년 국민당이 정권을 획득하고, 말랑이 총리에 취임하면서 시작된다. 국민당은 정권 획득 후, 1950년부터 인종차별정책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으며 이 정책을 국민당은 인종별로 분리하여 발전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격리"(아프리카에서 아파르트 헤이트)라고 불렀다. 그때까지 차별법 외에도 인종 간 결혼을 금지시켰던 잡혼 금지법(1949년), 인종별 거주를 법제화한 집단 현지법(1950년)과 흑인의 신분증 휴대를 의무화했던 통행법(1952년), 교통 및 공공 시설을 인종별로 분리하여 격리 시설을 명시한 보유법(1953년), 인종별 교육을 실시한 반투 교육법(1953년) 등이 차례로 법제화되어, 백인, 유색인종, 인도인, 흑인 네 인종 사회의 모든 면에 분리를 시키는 정책이 실시되었다.

또한 1951년국민당은 유색 인종에게 선거권을 주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사법부는 이를 강력하게 저항했지만, 1956년에는 양원 3분의 2 이상의 가결을 거쳐 마지막으로 유색인종의 선거권을 인정하게 되었다. 반면 흑인을 대표하는 아프리카 민족회의 등은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선거권을 가진 대부분의 백인은 이것을 환영하였고, 국민당은 이후 1989년까지 선거에서 계속 승리를 하였다.

1959년 반투 자치법이 제정되어 국토를 백인 지구(87 %)와 흑인 지구(13 %)로 나누어 흑인은 민족마다 반투스탄에 속하게 했다.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흑인에게는 매우 작은 황량한 벽지 밖에 주어지지 않았고, 백인이 국토의 중요한 대부분을 독점했다. 게다가 통행법 등 각종 차별 법안을 강화해 아파르트헤이트를 한층 더 견고하게 유지했다.

이러한 조치에 대해 국제적인 비판이 집중되었고, 1960년부터 남아프리카는 올림픽 참가도 거부되게 된다. 영국연방에서도 비판이 일어나자, 프르부르트는 1960년에 원수를 영국 여왕으로 하는 입헌 군주제에서 대통령을 원수로 하는 공화제로 변경하는 국민투표를 실시하였다. 나타르 주는 반대했지만, 다른 3주의 찬성에 의해 남아프리카는 공화제로 이행하였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성립되었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영국연방을 탈퇴했다. 그러나 남아프리카는 국시를 반공으로 하고 있어, 서방 여러 나라들에게 경제적으로도, 전략적으로도 중요한 우호국이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경제 제재는 동반되지 않았다.

1989년, 프레드릭 빌렘 드 클라크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드 클라크는 전통적인 대결 노선에서 대화 노선으로 전환하고 1990년2월 11일넬슨 만델라를 석방하였다. 또한 올리버 탐보와 월터 시슬 등의 흑인 지도자들을 석방하자, ANC는 1990년8월 무장 투쟁을 포기하였고 대화 채널이 열렸다. 반면 백인 우익 보수와 줄루족의 만고스트 브테레지가 이끄는 잉카타 자유당이 반대를 표명하고, 정치 폭력이 나탈을 중심으로 격화되었다. 1991년 드 클라크는 나머지 인종차별법(원주민 토지법, 집단 지역법, 인구등록법) 등을 폐지하였고, 1993년은 보유한 핵무기를 공개하며 모두 폐기했다. 1993년4월 모든 인종 선거를 실시하여 5% 이상의 표를 획득한 정당은 연정에 참가하기로 주요 정당이 합의하였다. 백인 우익 중 일부도 자유롭게 전선을 결성하여 선거에 출마하고, 또한 선거 며칠 전 마지막 주요 세력이었던 잉카타 자유당도 선거 참여를 표명했다. 선거는 대체로 평온하게 진행되었으며 아프리카민족회의가 62.5%를 획득 제1당이 되었고, 국민당이 20.4%, 잉카타 자유당이 10.5%를 획득하고 정권에 대한 참가 자격을 얻었다. 따라서 넬슨 만델라 대통령, 터보 음베키와 데 클라크가 부통령에 취임하여, 남아프리카 공화국 최초의 모든 인종 정부가 성립되었다. 이로써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는 끝을 맺었다.

박물관에는 격리 된 흑인들의 생활상에 대해 자세히 설명되어 있으며 실물 크기의 밀랍인형이 인상적이다. 아파르헤이트로 인종차별이 폐지된 반면 주변국의 흑인들의 유입이 많아져 실업문제가 사회적인 문제로 부상하였고, 남아공의 치안은 최악의 상태로 다다른다.

올드포트(The Old Fort)는 1842년에 보어군에 포위된 영국군이 세운 성채인데 담장을 제외하고는 볼거리가 없다. 대신 대낮에 연인들의 사랑의 속삭임 장소가 되었다.

박물관 관람이 끝나고 아침에 도착했던 럭셔리 버스 터미널에 가서 언더버그 행 버스를 알아보니 럭셔리 버스는 언더버그까지 가지 않는다고 한다. 내일 기차역부근에서 버스편을 찾아볼 수밖에 없다.    

해변지역으로 가니 끝없는 인도양이 펼쳐진다. 해변에는 해수욕과 서핑을 즐기는 사람이 보인다. 또한 모래 조각 작품을 만든 청년들이 있는데 모래로 꽤 근사한 작품을 만들었다.

해변에서 남쪽으로 2Km을 걸어 Ushaka Sea World로 갔다. Ushaka Sea World는 사우스 비치에서 약간 남쪽으로 내려간 곳으로 수영장 놀이 시설과 세계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의 대규모 수족관인 Ushaka Sea World가 있다.

더반의 명소로 입장료가 99R로 다소 비싸기는 하지만 입장료가 아깝지 않을 정도의 볼거리를 제공한다. 아쿠아리움은 침몰 된 선박을 테마로 각종 해양 생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꽤 잘 꾸며 놓았다.

오후 3시에 상어 먹이를 주는 이벤트가 있어 상어 수족관으로 가니 철창을 타고 온 잠수부가 물고기를 직접 상어에게 먹이는 광경이 펼쳐진다. 4시에는 돌고래쇼를 볼 수 있었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돌고래쇼로 돌고래들의 각종 묘기는 물론 사육사와의 유대감이 강함을 볼 수 있었다. 돌고래쇼를 보면서 감탄을 연발했다.

아쿠아리움은 분위기에 맞게 해양 생물을 잘 관람할 수 있게 잘 꾸며 놓았으며 아이들을 위한 간단한 교구도 구비했다. 해양 생물에 대한 전시 뿐만 아니라 해양 생태와 환경에 대한 교육도 아울러 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펭귄 먹이 주는 이벤트가 있어 펭귄 사육장으로 가니 사육사가 펭귄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펭권 사육장 안의 사육사가 체크리스트를 펼쳐 펭귄 번호를 체크하며 먹이를 주는 것이 인상적이다. 설명을 하는 사육사가 질문이 없는지 묻기에 손을 들어 펭귄이 얼마나 오래 사는지 물어보니 20살~25살까지 산다고 한다. 또 가장 나이 많은 펭귄을 물어보니 19살 된 암컷이 있다고 한다. 학생이 되어 영어로 질문을 해 본 경험을 했다.^^

  아쿠아리움은 수족관내의 스쿠버 다이빙도 신청을 하면 가능하며, 상어 수족관 다이빙도 가능하다.(물론 안전 장치는 한다.)

지난 11월에 부산 아쿠아리움을 다녀왔는데 이곳과 비교를 한다면 더반의 아쿠아리움이 훨씬 좋다. 우리나라 아쿠아리움도 이곳에서 장점들을 배우는 것은 어떨까 권하고 싶다. 더반은 물론 남아공을 여행한 사람들은 꼭 들러봐야 할 곳이다.

더반은 레소토로 가기 위해 거쳐 가는 도시로만 생각했는데 과학박물관, 미술관, 아파르헤이트 박물관, 아쿠아리움 등 볼거리가 그 어느 곳보다도 많다. 뜻하지 않게 보너스를 받은 흡족한 기분으로 숙소로 돌아와 휴식의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