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9일(토)

일출 시간에 일어나려고 시계를 맞춰 놓았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워낙 닭님들이 시끄럽게 울어대는 통에 자연스럽게 오전 5시 30분에 일어났다. 일어나자마 사니톱 샬레(Sani Top Chalet)로 급히 가서 쭉 이어지는 절벽으로 향했다.

절벽에 도착하자 이미 해는 떠오르고 있었고 압도적인 장관이 펼쳐진다. 레소토 지역은 절벽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고도가 낮은 남아공 지역은 구름으로 바다를 이루고 있다. 워낙 높은 지대라 구름도 이곳을 감싸지 못한 것이다. 구름바다 종종이 산봉우리가 불쑥 나와 있는데 그 모습이 바다위의 섬을 연상케 한다. 그 가운데 해가 서서히 떠오르고 있다. 절벽 아래로는 어제 쭉 올라왔던 Sani 패스가 쭉 이어진 모습이다.

절벽을 쭉 따라가니 할아버지 한 분이 이미 나와 일출을 보고 계셨다. 할아버지에게 ‘Very Beautiful!'이라고 한마디 하니 고개를 끄떡거리신다. 지금 이 광경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기에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사진을 찍고 감상을 한 후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사니패스의 일출을 보았으니 서둘러 레소토 안으로 떠나야 한다. 사니톱 샬레로 돌아와 레소토의 수도인 마세루까지 가는 방법을 물어보니 정오 전에는 대중교통이 없다고 말한다. 이곳에서 마세루까지는 300km가 넘는 거리이다. 오늘 안으로 마세루까지 가기 위해서는 히치를 해서 가야 한다.

도미토리에서 짐을 챙겨 나올 때 숙소에 묵은 백인에게 작별을 하니 혹시 오늘 차를 찾지 못하면 내일 같이 레소토 안으로 들어가자고 말한다. 오늘 서둘러 들어가는 것으로 결정했기 때문에 고마운 마음만 받았다.

차량이 지나가는 국경사무소에서 기다림이 시작되었다.(오전 8시) 잠시 기다리니 일출을 함께 감상한 노부부가 차를 몰고 나왔는데, 안타깝게도 남아공 쪽으로 내려가신다고 한다. 작별 인사를 하고 계속 차를 기다렸다. 기다림은 계속 되겠지만 정오에는 미니버스가 도착할 것임으로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

문을 연 작은 가게에서 우유와 튀긴 빵 5개를 사 길가에 앉은 채로 아침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차량이 한대 지나간다. 세워서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물어보니 Mokhotlong으로 간다고 말한다. 아싸~ 내가 가려고 했던 곳이다.

운전자에게 같이 갈 수 있는지 물어보니 잠깐 기다리라며 차에서 내려 뒷칸을 정리한다. 뒷 칸에는 유아용 시트에 어린아이 2명이 타고 있어 내가 탈 수 있도록 시트 위치를 조정했다.

이들은 남아공 가족으로 가족 간의 대화가 영어인 것으로 보아 영국계임을 알 수 있다. 앞좌석에는 부부가 타고, 뒷좌석에는 1살 된 아기와 3살 된 여자 아이가 타고 있으며 강아지 한 마리가 타고 있다. 애꿎은 강아지는 나의 등장으로 뒷좌석을 양보해야 하기에 앞좌석 중간부분으로 밀려났다. 강아지에게 미안하다.

사니패스에서 출발해 험한 산악 도로가 이어진다. 티벳 고원과 비슷한 풍경이다. 간혹 경사가 심해 차량이 지나 가기 힘든 구간이 보이기도 하지만 4륜 구동이라 천천히 속도를 줄여 올라간다. 나의 시선은 장엄한 주변 풍경보다 차 안에 쏠렸다. 이 험한 도로에 차가 크게 흔들려 내 머리가 차 천장에 부딪칠 정도인데도 두 아이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새근새근 잠들어 있다.    

아이 엄마 이름은 치나이고, 딸은 엔젤이다. 치나는 남편과 연애시절부터 여행을 많이 다녔다면서 지금도 주말을 이용해 여행을 많이 다닌다고 한다. 아이들은 여행에 익숙해서 이정도 도로에 적응했다고 이야기 한다. 그때 아이들이 일어나 칭얼대기 시작했는데 치나는 어제 먹은 과자를 아이에게 던지니 아이들은 과자를 집고는 조용히 먹는다. 참 대단한 가족이다.

큰 고개를 넘자 고원 절경이 펼쳐지고 폭포, 계곡, 초원이 이어진다. 차량에 좁게 타서 그런지 사진을 못 찍어 아쉬웠다. 내가 사진을 꺼내면 차량을 멈춰 줘 사진을 찍게 했기 때문에 오히려 사진 찍기가 부담스러웠다. 풍경은 동티벳을 여행했을 때의 풍경과 흡사하다.

Mokhotlong에는 11시경에 도착했다. 이곳까지 태워준 가족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마세루로 가는 차편을 물어보니 이곳에서 마세루까지 직접 가는 차량은 없고 레소토 북쪽의 부타부테(Butha-Buthe)까지 가서 그곳에서 한번 갈아타야 한다.

1시간 정도 기다린 12시가 지나자 출발한다.(R80) 차량은 산악 지역을 헤쳐 나가고 있으며 차창 밖으로는 산악 지역의 장엄함이 펼쳐진다. 도로는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어 있으나 상태가 좋지 않아 제 속도를 내지는 못한다. 차량은 중간 중간에 손님들을 태우기 위해 잠시 정차하는데 그때 먹거리를 사거나 용변을 볼 수 있다.    

오후 3시에 Moteng 패스에 도착했다. 높은 고개라 주변 풍광이 한눈에 보인다. 마침 View Point가 있어 좋은 자리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50분을 더 달려 바타부테에 도착했다. 이곳에 도착하자 본격적인 도시 환경이 펼쳐진다. 레소토에서도 번화한 이곳에는 유명 패스트푸드점도 보인다.

바타부테 정류장에 내리자마자 운전사는 다른 차량으로 안내를 한다. 곧장 마세루까지 가는 버스이다. 늦게 도착하기는 하겠지만 오늘 안에 마세루에 도착하는 것은 분명해져서 안심이 되었다.(마세루까지 R50)  

이곳은 레소토에서도 저지대이기에 집과 사람들이 부쩍 많이 보인다. 사람이 가득 차지 않은 탓에 차량을 한번 갈아타야 했다. 고지대의 햇볕이 따갑기 때문에 햇볕이 비치지 않는 좌석에 앉았다.

오후 6시 30분에 마세루에 도착했다. 아침 일찍 출발해서 긴 시간동안 버스를 탔다. 론니 지도에 의지해 마세루 백패커즈를 찾았는데 지도에 표시 된 곳 보다 1Km 더 갔음에도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호숫가의 숙소를 어렵게 찾아 들어갈 수 있었다.(R110)

숙소에 가게가 있을 줄 알았는데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 결국 세어 택시(편도 R4.5)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 중국인 슈퍼에서 중국 라면과 우유, 과일 등의 먹거리를 샀다.

숙소는 백패커즈답게 혼자서 해먹을 수 있도록 갖춰져 있지만 바퀴벌레가 너무 많고 물이 나오지 않아 받아 둔 물을 써야 한다. 열악하지만 배가 고픔이 위생보다 앞서가는 상황. 깨끗이 식기를 씻어 라면을 해 먹었다.

도미토리는 깨끗해서 모기가 보이지 않는다. 숙소 전체에서 손님은 내가 유일하다. 다른 여행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며칠째 혼자서 보내서 그런지 외로움이 엄습한다.

외롭기는 하지만 이제 여행의 끝이 거의 다가오고 있다. 내일은 남아공으로 다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