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일(일)

12월 31일(토) 2011년의 마지막을 비행기에서 보냈다. 케냐항공으로 나이로비까지 가려면 대한항공으로 방콕에 간 다음 거기서 나이로비 행 비행기로 갈아타야 한다. 방콕행 비행기에는 승객이 많지 않아 편하게 갈 수 있었고, 방콕-나이로비 구간은 승객이 거의 꽉 찼지만 내 옆에는 아무도 타지 않아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처음부터 운이 따라 준다.

길고 긴 비행 끝에 1월 1일 오전 5시 20분에 나이로비에 도착했다. 도착 예정 시각은 6시 10분인데 1시간이나 일찍 왔다. 이렇게 새해를 케냐에서 보내게 되었다.

앞서 이야기 했다시피 주어진 시간은 1주일이다. 첫 번째 목적지는 부룬디를 가기 위해서는 탄자니아의 음완자(Mwanza)를 거쳐 가야 하는데, 이 일정이 만만치 않다. 대략 2일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공항에서 부룬디행 비행기를 알아보니 414$를 부른다. 두말할 것 없이 육로 여행으로 결정. 환전을 하려고 보니 1$에 80실링을 쳐준다. 시내에서 ATM으로 뽑기로 했다.

나이로비 시내로 가는 버스는 7시에 시작되기에 기다리고 있는데 한 삐끼가 다가와 15$에 시내가지 택시로 갈 수 있다고 한다. 일단 무시.. 잠시 후 가격은 10$로 떨어지더니 급기야 8$로 부른다. 론니에서 시내버스는 위험하고 안전한 셔틀 버스가 5$이기에 나쁘지 않다고 생각되었다. 8$에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올 수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Akamba 버스 오피스에서 음완자행 버스 편을 알아보니 오후 9시 30분에 출발하며 달러로는 30$를 내면 된다고 한다. 버스표를 받아보니 2200실링.. 한 300실링을 손해 봤다. 처음부터 수업료를 지불한 셈이다. 그건 그렇게 오후 9시 반까지 뭐하지? 아직14시간이나 남았는데..  

일단 ATM에서 돈을 뽑고 버스 오피스 근처의 River Rd의 빨간 건물인 뉴케냐 롯지에 갔다. 이곳은 나이로비로 오는 한국인 여행자들이 묵는 곳으로 게스트북을 보기 위함이다.

이곳에서 숙박할 것도 아닌데 뉴케냐 롯지 직원은 친절하게 안내를 하며 게스트북을 준다. 1권은 이기적인 한국인 여행자가 가져가 2권만 있으나 게스트북을 보니 여행에 관한 유용한 정보는 많이 있다. 나이로비와 주변국의 정보를 볼 수 있었으며 특히 킬리만자로 등반 정보는 유용했다. 킬리만자로는 1인당 최소 1000$는 넘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게스트북을 통해 확인했다. 나머지는 내가 하기 나름.^^

뉴케냐 롯지에 100실링을 주고 배낭을 맡긴 후 시내를 탐방했다. 나이로비는 동아프리카 최대의 도시이며 현대식 건물이 즐비하고 있다.    

나이로비는 동아프리카의 수도라고 할 정도의 큰 도시이지만 특별히 볼거리는 눈에 띄지 않는다. 국부인 Kenyatta를 기념하기 위한 컨벤션 센터가 이곳의 랜드 마크인 듯 관광객이 보였고, 시청과 힐튼 호텔 사이에 고층건물들이 보였지만 휴일이라 그런지 상점이 거의 열지 않은 한산한 모습이다.

시내 서쪽의 Uhuru Park에는 호수와 함께 몇몇 놀이기구가 눈에 띄는데 많은 사람들이 휴일을 맞아 야유회를 나 온 모습이다. 공원을 지나 언덕위로 올라가니 나이로비 View Point가 나온다. 이곳에서 보는 나이로비의 모습은 웅장하면서도 평화로운 모습이다. 이곳이 가장 볼거리가 아닌가 싶다.

볼거리가 없어 시내 곳곳의 카페에서 음료를 시켜 놓고 론니 플래닛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케냐 역시 여느 아프리카와 마찬가지로 영국 축구에 열광을 하고 있다. 바에서는 축구 중계 시간표를 걸어놓고 영업 중이며 맥주 한 병을 시키면 대형 TV에서 나오는 축구 중계를 간섭 없이 볼 수 있다.        

시내의 대형마트에서 대략적인 이곳 물가를 체크하고 저녁이 되자 뉴케냐 롯지로 돌아와 가방을 챙겼다.

아직 시간이 남았기에 이곳에서 세면도 하고 휴대폰 충전까지 했는데 직원은 눈치주지 않고 괜찮다고 한다. 배낭 100실링에 맡겨놓고 할 건 다 했다.^^

오후 8시 반에 Akamba 버스 오피스로 갔고 곧 허름한 버스가 왔다. 음완자까지는 12시간이 걸린다고 하는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오후 9시 45분 탄자니아로 향해 버스가 출발하였다.


1월 2일(월)

부룬디의 수도 부줌부라를 육로로 가려면 탄자니아를 거쳐 가야 하는데 만만치 않은 일정이다. 버스는 밤새 달렸는데 비포장도로에다가 추울정도로 기온이 내려간다. 비포장 도로라서 느리게 갔지만 흔들림 때문에 약간의 마찰열이 발생해 체온 유지에는 도움이 되었다.

아직 케냐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동이 틈과 동시에 드넓은 사바나가 펼쳐졌다. 오전 5시 30분 Kisil에 도착했다. 버스는 이곳에서 바로 탄자니아로 가는 것이 아니라 Home Bay를 들리는데 광활한 빅토리아가 수줍게 모습을 드러낸다. 농촌 가옥은 여느 아프리카와 달리 현대식 건물로 지어져있다. 지금가지 본 아프리카 농촌은 대부분이 진흙으로 지어진 것과는 비교하면 케냐가 좀 더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9시가 조금 안 되어 탄자니아에 도착했다. 원래 이 시간에 음완자에 있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역시나 아프리칸 타임은 그 명성을 먹칠하지 않는다.

국경에서 케냐 출국 수속과 탄자니아 비자를 취득했다. 비자는 50$를 받는데 스티커가 아닌 도장만 찍어준다. 수속을 밟은 후 9시 40분에 음완자로 출발했다.    

지도상 도로는 빅토리아 호수주변을 도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실제로는 호수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정오가 좀 지나가 드넓은 초원이 펼쳐지는데 누우와 얼룩말 무리가 보인다. 버스안의 사람들이 신기한 듯 차창 밖을 응시하는 것으로 보아 이곳 사람들도 야생동물 보기는 힘든 모양이다.    

음완자에는 오후 2시 20분이 되어서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린 곳은 외곽이기 때문에 곧장 은행에서 돈을 인출 한 후 미니버스(300실링)를 타고 시내로 들어갔다.

음완자에서 서쪽인 Kamanga로 가기 위해서는 페리를 타고 2시간 동안 가야 하나. 페리 선착장에 가니 한 운전기사가 접근해 게이타(Geita)까지 5000 탄자니아 실링으로 간다고 제의한다.

탄자니아 실링은 1$에 1,580실링으로 5,000실링이면 나쁘지 않은 가격이다. OK를 하고 차에 짐을 실으니 차는 손님을 다 채우고 더 빨리 강을 건널 수 있는 남쪽 30Km 떨어진 Kikongo로 가서 페리를 탄다.

페리는 1인당 400실링이다. 거대한 페리에는 대형 트럭을 비롯한 차량들이 꽉 채워도 끄떡도 하지 않는다. 선착장 주변에는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고, 생활에 필요한 물을 깃는 모습이다. 이왕이면 선착장에서 먼 곳에서 물을 깃지.. 선착장 주변은 오염이 심할 텐데..

페리가 출발하니 광활한 강이 보인다. 호수가 사라져 가는 차드호와 비교되는 풍경이다. 모처럼 흙먼지를 벗어나 강바람에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강을 건너고 빠른 속도로 달려 게이타에는 오후 7시 반에 도착했다. 이미 어둠이 깔려 있는 상황.

여기서 더 진행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해 터미널 바로 앞의 KM호텔에서 정비를 하기로 했다. 비행기를 타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편하게 쉬지 못했다.

숙박비는 17,000실링으로 아침이 포함이 된다. 11달러 정도 되는 숙소이지만 시설은 만족할 만하다. 호텔에서 샤워를 하고 바에서 맥주를 시켜 TV를 보면서 휴식을 취했다. 한병에 1500실링으로 부담되지 않는 가격이다.

내일 부줌부라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최대한 갈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겠다.


1월 3일(화)

오전 7시 30분에 버스정류장으로 가 서쪽 도시인 비하람무로(Biharamuro)행 버스편을 알아보니 여의치가 않다. 사람들이 말하는 정보가 제각각이기에 혼란스러웠다. 정오가 돼서야 버스가 도착할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지나가는 차량을 잡기 위해 배낭을 메고 터미널을 나섰다. 도로로 들어서는 순간 청년들이 나보고 좀 더 기다려 보라고 만류한다.

청년들 말대로 곧 버스가 도착했는데 부룬디 국경마을인 느가라(Ngara)까지 가는 버스이다. 버스를 갈아타면서 국경으로 갈 것으로 생각했는데 한 번에 가게 되다니 운이 좋다. 버스 요금은 15,000실링 약 10,000원 정도이다.  

버스 안은 사람들로 완전히 꽉 차 서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버스는 8시 반에 출발했다.

차량이 많지 않은 이유는 버스가 달리다보니 나왔다. 지금까지 포장이 되어 쌩쌩 달렸던 것과 달리 비포장 도로가 나오고 험준한 산악 지형이 펼쳐진다. 그래도 버스는 능숙하게 속도를 낸다.

2시간 정도 달려 비아람무로에 도착했다. 작은 산악 마을이며 이곳에는 차량이 거의 지나가지 않는다. 여러모로 이 버스를 탄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0시 39분 처음으로 표지판을 보았는데 느가나까지 96Km가 남았다고 한다.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왔다

오후 12시 10분 검문소에 도착하자 많은 사람들이 내린다. 드디어 의자에 앉을 수 있다. 여행기는 짧게 썼지만 무려 3시간 40분을 서서 왔다. 오랜 버스 여행에서는 다른 여러 생각들을 하는 것이 지루함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된다. 잡생각을 하며 버틸 수 있었다.

12시 54분에 국경 마을에 도착했다. 느가라인줄 알고 내리려고 했더니 기사는 르완다 국경이라고 말하며 버스 안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국경에서 다시 돌아와 느가라로 통하는 길로 들어섰다. 버스는 험준한 산의 능선을 넘어 오후 1시 44 느가라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국경인 카방가(Kabanga)까지는 25Km 정도가 남았다. 버스에서 내려 국경까지 가는 차편을 알아보려 했는데 이번에도 버스 기사가 만류한다. 버스는 국경까지 간다고 한다. 오늘 정말 제대로 된 버스를 탔구나..

오후 2시 25분 카방가에 도착했다. 버스 기사는 이곳에서 3,000실링을 주고 오토바이를 타고 국경을 통과하면 된다고 말한다. 친절한 기사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국경으로 향했다.

오토바이는 탄자니아 출국 수속을 마칠 때가지 기다려주고 7Km 정도 떨어진 부룬디까지 태워준다. 오토바이 기사는 내가 부룬디 이민국을 찾지 못할까봐 오토바이에서 내려 준 다음에도 나를 지켜보고 있다. 고마운 기사이다.

부룬디에서 국경 비자를 발급했는데 40$이다. 트랜짓 비자는 20$인 줄 알았는데 40$ 하는 것을 보아 비자피가 오른 모양이다.

국경에서 나오니 몇몇 사람들이 말을 거는데 알아들을 수 없다. 부룬디는 프랑스어 지역임을 알 수 있었다.
이곳에서 50$를 65,000프랑에 환전했다. 여행 전 조사한 바로는 환율이 1$에 1315프랑이었기 때문에 나쁘지 않는 환율이다.  

국경에서 2000프랑을 주고 합승 택시를 타고 무잉가로(Muyinga)로 가서 부룬디의 수도 부줌부라로 가는 차편을 알아보았는데 부줌부라로 곧장 가는 차편은 없으며 중간을 들려서 갈아타야 한다.

중간 지점인 기테가(Gitega)까지 8,000을 부르는데 미심쩍어 깎아달라고 하니 7,000까지 해준다고 한다. 일단 서둘러야 함으로 OK!

승용차 시계를 보니 탄자니아보다 1시간이 늦다. 국경을 넘으면서 1시간 번 셈이다.^^

도로는 산맥 능선을 달리는데 십 수 킬로 건너편에도 산맥이 이어진 모습이다. 거대 칼데라를 연상케 하는 풍경이다. 이 지형은 생각해보니 아프리카 대지구대의 모습이다.  

오후 4시 30분 기테가에 도착해 곧장 부줌부라로 가는 승용차로 갈아탔다. 요금은 8,000프랑. 승용차는 승객 태우고 내림은 반복했다. 산악길이 이어지는 것을 보아 부룬디는 전체적으로 산악 국가임을 알 수 있다.

오후 7시 부줌부라에 도착했다. 이미 어둠이 깔려 있었다.

시내로 가는 차편을 알아보려고 하는데 앞좌석에 앉았던 사내가 3000실링에 같이 시내로 같이 가자고 한다. 순순히 돈을 내 줬더니 내 돈으로 자신의 차비를 지불하려고 한다. 얼른 돈을 돌려받고 차량을 알아보려는 순간 누군가가 내 팔을 잡고 흔든다. 위협적인 표정에 무슨 일인지 상황 파악을 하려고 대응을 하려고 생각하는 동안 팔을 흔들던 청년은 황급히 도망친다.

무슨 일이지? 혹시..

헉.. 역시나 미니 가방 가장 앞에 있던 카메라가 털렸다. 조직적인 소매치기로 한명이 팔을 흔들어 신경을 그쪽으로 곤두서게 하는 동안 다른 한명이 가방에 있는 카메라를 가져갔다.

카메라를 털리는 순간 절망이기보다는 안심이 되었다. 카메라 칸 바로 뒤에는 500$ 넘는 돈이 들어 있고, 신용카드도 있었다. 또 아이폰도 무사했다.

만약 여권을 가져갔으면.. 그건 생각하기도 싫은 치명적인 결과이다. 차드에 가서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전에 귀국길에 올라야했다. 생각지도 못한 수법에 어쩔 수 없이 당한 상황이라면 카메라를 털린 게 가장 좋은 결과이다.

아프리카 여행을 하면서 유독 카메라는 항상 문제가 생겼다. 이것은 내가 아프리카 여행을 하면서 가지고 있는 징크스이기도 하다. 이집트 여행에서는 카메라 액정이 깨졌고, 서아프리카 여행에서는 버스에서 소매치기 당하고, 지난 남아프리카 여행에서는 카메라가 완전히 고장 나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이번에도 혹시나 해서 가장 저렴한 카메라를 가져갔는데 불행하게도 징크스는 계속 이어졌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내 미니 가방을 낚아서 도망쳤더라면.. 그때는 메고 있는 배낭을 버리고 미니 가방을 찾으러 쫓아갔을 것이다.

어두운 변두리에서 카메라를 찾기는 불가능하며 또 위험은 계속되는 상황이다. 금새 포기하고 택시를 타고 시내로 들어왔다.

시내에서 호텔을 찾았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다. 숙박비 아끼는 것 보다는 지금은 안전을 생각해야 하기에 25$에 방을 잡았다.

여행에 지친 몸을 씻고 방에서 정비를 하고 숙소 식당에서 맥주를 시켜놓고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카메라는 1월 8일에 나이로비 공항에서 상걸이와 재용이가 합류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찍은 사진은 아깝지만 그때까지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으면 된다.

이번 여행은 교과부 산하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선발 된 프로젝트이기에 개인 여행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막중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결국 안전하고 무사히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앞으로 여행을 하면서 비용을 절감하기 보다는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기로 했다. 오늘 일이 앞으로의 여행을 위한 액땜이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어찌되었건 나이로비에서 출발하여 긴 여정 끝에 부룬디 부줌부라에 도착했다. 맥주 한잔을 하면서 앞으로의 여행을 계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