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3일(토)

가야에 도착할 때쯤 그냥 캘커타로 갈지를 두고 고민을 했다. 이 시각에는 호텔을 잡기는 어려운 상황이고, 그렇다고 추위에 떨면서 역에서 있기도 싫다.

가야역에 도착하고 어떻게 할지 머뭇거리다 결국 짐을 챙기고 역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짙은 안개에 자욱한 상황이고 역을 제외하고는 불빛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인도의 기차역에는 대기하는 승객들을 위해 잠잘 곳을 빌려준다는데 역무원에게 물어보니 이미 꽉 찼다고 한다. 대신 도미토리가 있는데 50Rp를 내면 자게 해주게다고 한다. 절박한 상황에서 마다할 이유가 없다.

안내 받은 곳은 널찍한 방에 침대들이 일렬로 있다. 여기저기서 코고는 소리가 들리는데 자는 사람들 대부분이 총을 머리에 베고 잔다. 역내의 군인들의 숙소인듯 싶다.

바로 옆 침대에 자는 군인의 총의 총구가 나에게 향해져 있어 섬뜩했지만 개의치 않고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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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 일어나 오토릭샤 한대를 잡아(80Rp) 13Km 떨어진 보드가야(Bodh Gaya)로 향했다.

보드가야는 불교 최고의 성지로 2600년 전 씻다르타 고따마 왕자 즉 부처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된 유서 깊은 곳이다.

깨달음을 얻은 자리에는 마하보디 사원(Mahabodhi Teemple)을 중심으로 불교를 받아들인 나라들의 각국의 양식대로 수도원이 서 있다.

10월에서 3월 사이에는 티베트 순례자들이 다람살리에서 내려와 보드가야로 순례를 하는 시기이다.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 불교의 영향력은 절대 무시할 수 없으며, 특히 어린 시절 탐독했던 만화 세계사에 씻다르타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는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 남아있기에 꼭 들리려고 했었다.(어제 잠시 흔들렸지만..)

릭샤는 커미션을 챙기려는 듯 어디에 숙소를 정할 건지 묻는다. 보드가야에 잠시 들렸다 갈 거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게스트하우스에 안내한다. 마하보디 사원으로 제대로 가지 않으면 돈을 안주겠다고 하니 그제야 발길을 되돌린다.
다시 출발하나 싶었더니 또 멈춰서 마하보디 사원 주차장이 20Rp를 받는다며 더 안 간다고 말한다.

훗.. 인도에서 주차비를 받어? 버럭 화를 내리 다시 사원으로 출발한다.

사원 앞에서 오토릭샤에서 앉은 채 100Rp 지폐를 줬다. 내려서 줬다간 거스름돈을 안주고 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운전자는 비굴한 표정으로 10Rp만 더 주면 안 되는지 물어본다.  

흥! 네가 이미 저질러 놓은 짓이 있어 절대 안 돼.

마하보디 사원으로 가는 길은 순례를 온 티벳 승려들의 옷인 적갈색과 노란색 물결이다.  

  마하보디 사원은 세계문화 유산에 등록되었으며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곳이다. 이곳은 6세기에 세워졌다 13세기 무슬림에 의해 파괴 된 수 대대저인 신전 재건에 들어가 1882년 완공이 되었다. 신전은 피라미드 모양의 첨탑으로 높이가 50m이다.      

세계 각국의 후원을 받아서 그런지 입장료는 없으며 마침 법회가 열리고 있다. 신전 주변으로 티벳 승려들을 비롯한 각국 순례객들이 불경을 읽거나 오체투지를 하는 모습이 보인다.

첨탑 입구에서는 티벳 불교 법회가 열리고 있는데 그 모습이 장중하다. 고승이 불경을 낭독하면 전통 악기로 답을 하는 형식인데 많은 사람들이 모여 부처에게 기도를 한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나 역시 무리 속에서 같이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어디서 확성기 소리가 들린다.

한 중국 승려가 확성기로 불경을 읊으며, 첨탑 입구로 오는데 진중한 분위기를 깨는 모양새이다. 아무리 다른 국가이지만 남의 법회에 산통을 깨는 그 모습이 짜증이 났다. 결국 그 승려는 사람들에 밀려났지만 다시 다른 방향으로 와서 산통을 깬다.

법회가 끝나고 첨탑으로 들어가니 세로 2m의 금박을 입힌 부처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부처 앞에서 절을 하고 가져 온 음식을 보시한다.

신전 뒤편에는 커나란 나무가 있는데 바로 보리수나무이다.

보리수나무는 계몽 군주 아쇼카의 아내가 아쇼카의 보리수나무에 대한 사랑에 질투가 나 보리수나무를 죽이고 만다. 다행히 그 전에 아쇼카의 딸 상가마마가 묘목 하나를 스리랑카에 옮겨 놓았고, 그 나무가 계속 자란 후 그 나뭇가지 하나를 여기에다 심었다. 즉 원조 보리수나무의 후손이다.

  불교 역사와 인도 역사에 있어 아쇼카를 빼 놓을 수 없다. 아쇼카는 인도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통치한 정복 왕으로 이름을 날리지만 어느 순간 전쟁의 참상에 진저리를 느껴 불교의 귀의 한다. 불교를 받아들이며 평화와 선의를 전파하려고 노력했다.

아쇼카왕의 통치기는 이도 불교의 전성기이기도 하다. Bc 262년에 불교를 국교로 선포하고 많은 불교 유산을 남겼으며 해외 선교에도 힘썼다. 스리랑카에 아들과 딸을 보내 불교를 전파를 했는데 때문에 현재까지 스리랑카에서는 불교가 융성하고 있다. 불교를 통해 나라를 통합시켰지만 그의 재능이 뛰어나서 일까? 그가 죽고 나서는 누구도 제국을 이끌지 못했다. 아쇼카 왕의 왕실 문장은 인도의 국기의 상징으로 채택 되어 비록 인도인들에게 불교는 거의 사라졌지만 그의 정신은 여전히 인도인들 가슴 속에 존재하고 있다.

보리수나무와 신전 사이에 큰 돌이 있다. 바즈라상(다이아몬드 왕좌)으로 불리며 석가모니가 득도했던 곳으로 아쇼카왕이 표시를 해 놓은 곳이다.

티벳 승려들 사이로 중국 관광객들이 극성이다. 그들은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으며 티벳 승려와 함께 포즈를 취하는데 꼴사납다. 티벳 사람들이 왜 조국을 떠나 인도에 망명을 했는지 그들은 알까? 그래도 티벳 노승은 순순히 중국 관광객들 사진 모델이 되 준다. 하긴 이곳은 평화의 전당이니까..

다른 인도 관광지와 달리 한국 관광객은 거의 없다. 바라나시만 해도 사람들로 북적이는데 이곳은 노점에서 식사를 하면서 우연히 마주친 세 명이 유일하다, 그들 역시 3일 동안 보드가야에 머물면서 한국인 관광객을 못 봤다고 한다. 인도를 여행하면서 우리 문화의 정신적 뿌리인 이곳을 들려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사원 주변에는 많은 기념품 가게와 먹거리 장터가 성황중이다. 이곳에서 아침을 해결 하고 북쪽의 티벳 난민시장으로 갔다.

티벳 난민시장은 생각보다 규모가 작고 티벳이들 보다는 인도 상인들이 더 많은 듯하다. 주변의 야채시장과 닭 시장은 볼 만하다.

가야(Gaya)로 돌아오기 위해 릭샤를 알아보니 150Rp를 달라고 한다. 싼 릭샤를 알아보니 합승 릭샤라 역까지 가지는 않는다며 50Rp를 내면 역까지 데라다 준다고 한다. 대신 다른 사람들도 태우고 운행하겠다고 한다.

나쁘지 않는 조건임으로 승낙하고 릭샤에 탔다. 릭샤를 가서 서다를 반복하며 사람들을 태우는데 나중에 세어보니 무려 16명이 조그만 릭샤에 탄다.

가야에 들어오자 사람들 모두가 내린다. 이제 약속대로 역까지 데려다 줘야 하는데 이 운전자는 역까지 가는 승객을 모집하느라 시간을 계속 끈다. 뭐야? 약속과 다르잖아.

약속과 틀려 배낭을 메고 내리겠다고 하니 깜짝 놀라 얼른 출발한다.

역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1시 30분. 가야에서 캘커타까지 예매한 표는 어제와 같은 3010번 기차이며 오후 9시 반 출발이라 되어 있다. 그 이야기는 어제처럼 새벽 2시가 넘어 도착할 것으로 예상되며 무려 15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절대 그럴 생각이 없다.

가야는 교통의 요충지이기에 캘커타까지 가는 기차가 많다. 환불부스에 가서 어제 구입한 표를 환불하려고 하니 일반 티켓을 끊고 오라고 말한다.

일반 부스에서 환불받으려니 환불 부스를 가리키며 그쪽으로 가라고 한다. 환불 부스로 가니 점심시간이라며 문을 닫는다. 이런 황당할 데가..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며 30분이 지나기를 기다렸다가 부스가 열자마자 환불을 받았다.(페널티 50Rp)

일반 티켓(2등석표, 115Rp)를 사서 캘커타 행 기차가 오면 승차 한 다음 안에서 침대표로 교환할 요량이다.

플래폼에서 기차를 기다리는데 시위 행렬이 모인다. 평화적인 시위로 뒤에는 몽둥이를 든 경찰이 따라다니는 것이 이색적이다.

서점 주인에게 어떤 시위인지 물어보니 마하보디를 반대하는 힌두교 사람들이라고 하다. 즉 자신들의 땅이 불교 성지가 되는 것에 불만이 많은 듯하다.

부처는 힌두교의 여섯 번째 신이기에 힌두교에서는 불교를 자신의 한 종파로 보는데 이곳 사람들은 그런 포용이 없나보다. 약간 위험한 상황이기에 그쪽으로는 아예 신경 쓰지 않았다.

  오후 2시 캘커타행 기차에 탔다. 침대칸에 타자마자 역무원에게 말해 침대표로 바꿨다.(110Rp) 윗 침대칸을 선택해 곧바로 골아 떨어졌다.

오후 10시 40분 캘커타에 도착했다. 캘커타는 인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영국식민지 시절 인도의 수도였으며 우리나라를 동방의 등불로 표현한 시인 타고르의 영혼이 깃은 도시이다. 2001년부터는 콜카타(KolKata)에 도착했다.  

중심역인 하우라역은 거대한 규모이며 역 앞에는 노란 택시들이 줄 서 있다.

론니 지도를 보여 하우라에서 걸어서 쪼우링기 지역으로 걸었다. 밤이 깊었는데도 불구하고 온기가 느껴진다. 확실히 남쪽이 따뜻하다. 지긋지긋한 추위와도 Bye!

거리에는 노숙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힘겹게 길을 가는데 낯선 이방인에게 시비를 거는 무리들이 있다. 바로 개들이다. 6마리쯤 되는 것 같은데 자기네들끼리 놀다 갑자기 나한데 으르렁대며 다가온다.

큰 개들 5~6마리라 적잖이 당황되었지만 이럴 때 도망치면 바로 쫓아올 것이 뻔했고 무엇보다 개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기 싫었다.

태권도 자세를 하며 발차기를 준비 자세를 하면 개들이 약간씩 물러난다. 이때는 눈을 부릅뜨면서 기 싸움을 해야 한다. 한 마리를 진짜 차버릴까 생각했는데 그러면 개들을 더 자극할 것이라 판단했다.

결국 2분 정도 대치 끝에 개들이 물러난다. 승리의 순간도 잠시.. 어서 숙소를 구해야 한다.

조우링기 지역에 도착하여 숙소를 구하는데 가격이 터무니없거나 자라기 없다고 말한다. 다행히 Paragon 게스트하우스에 도미토리(110Rp)가 하나 남아 있었다. 경비원은 연신 운이 좋다고 이야기 한다. 이때가 자정 무렵..

이 게스트하우스에는 일본 애들로 가득하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일본말을 실컷 듣게 되었다. 술 취해서 밤새 떠든 애들이 있어서 질리기도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