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방학에는 남아프리카를 여행하기로 했다. 2년만의 아프리카 여행으로 준비를 하면서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를 대하듯 설레이는 마음으로 여행 준비를 했다.

2007년 1월 에티오피아, 지부티, 소말리아, 2007년 여름 이집트, 2008년 1월 서아프리카에 이은 이번 여행은 4번째 아프리카 여행이다. 그 시기 아프리카를 집중적으로 여행하면서 아프리카는 여행지로서는 매력이 떨어진다. 가난한 나라들이기 때문에 여행비용이 절감한다는 기대를 했지만 배낭 여행객들에 대한 인프라가 거의 없기 때문에 오히려 비용이 더 들 때가 많았다.

여행 인프라가 없는 만큼 아프리카는 여행자에게 색다른 재미로 보상을 해준다. 열악한 교통편은 여행자에게 오랜 기다림을 주지만 그만큼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보너스를 제공한다. 열악한 정보는 여행자에게 불편함을 주지만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설렘을 제공한다. 열악한 숙소는 여행자에게 이름 모를 벌레에게 혈액을 제공해야 하는 고통을 주지만 덕분에 면역력이 생기지 않나 싶은 억지스러운 생각을 한다. 지난 3년 동안 감기 한번 걸리지 않은 것은 여행을 하면서 열악한 있으면서 가지게 된 면역력 때문이지 않을까 스스로 합리화를 해 본다.

여행 준비를 하면서 몇 가지 고민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큰 고민은 항공권이었다. 남아공으로 가는 항공은 남아프리카 항공이 있기는 했지만 발권을 하면 환불이 되지 않는다. 방학 전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비교적 저렴한 말레이시아 항공은 검색해보니 좌석이 없었고, 그나마 싱가포르 항공이 저렴하기는 하지만 140만원대로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학교에서 바쁜 일상을 보내면서 인터넷으로 항공권을 검색하는데 하루는 믿을 수 없는 광고를 발견했다. 에티하드 항공이 우리나라에 취항을 하면서 학생/교사 할인 특가를 내 놓았는데 케이프타운/요하네스버그가 편도 20만원이다. 그렇잖아도 케이프타운으로 들어가서 요하네스버그로 나오는 것을 계획했었다. 여행사에 전화를 하니 편도 20만원짜리 항공은 이미 동났고(예상했음) 그 다음 클래스는 남아있다고 한다. 텍스까지 다 합쳐서 88만원에 내가 원하는 코스가 가능하다고 한다. 혹시 항공권 취소를 하면 어떨지 여행사에 물어보니 70$를 페널티로 내면 가능하다고 답한다. 이건 나를 위한 항공권이다. 두말없이 발권을 했다.

29일 출발 직전 여행사에서는 에티하드 항공이 아시아나 항공과 제휴를 해서 아시아나 마일리지 적립이 가능하다고 전한다. 대략 계산을 해보니 17,000마일이 약간 넘는다. 3,000마일만 추가하면 제주도를 2번 왕복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마일리지이다.


12월 29일(수)

출발 전부터 운이 좋으니 이번 여행은 고생을 많이 한다는 엄살을 부리며 12월 29일 오전 12시 40분 인천공항에서 아부다비로 가는 항공편에 탑승했다.      

항공기는 대형비행기인데 이제 막 취항을 해서 인지도가 없어서인지 승객은 40명을 약간 웃도는 수준이다. 덕분에 좌석을 마음대로 앉을 수 있었으며, 중앙 좌석 4개를 침대삼아 편하게 누워 잘 수 있었다. 승객이 적다고 서비스가 떨어지지 않는다. 승객이 편하게 잘 수 있도록 귀마개, 눈가리개, 칫솔, 치약 등을 제공해주었으며, 식사를 할 때 맥주를 달라니까 아예 2캔을 제공한다. 좌석 아래 부분에 콘센트가 있어 비행 중 노트북을 자유롭게 켤수 있다.

10시간을 비행해 현지시각으로 오전 6시경 아부다비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16시간을 대기한 후(여행기에는 짧게 썼지만 정말 힘들었음) 29일 밤 10시 10분에 케이프타운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이번 비행기는 승객들로 가득 찼다.


12월 30일(목)

공항에 오래 대기하느라 피곤해서 그런지 계속 잠들었는데 옆 좌석에 앉은 영국아가씨가 나를 챙겨준다. 서비스 물건을 챙기는 것부터 식사 후 치우는 것까지 그녀가 다 해준다. 고맙다고 인사하며 어디로 가는지 물어보니 맨체스터에 살며 케이프타운에 있는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고 이야기 한다.

비행기는 현지시각 오전 4시 반쯤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했으며 1시간을 대기하다가 케이프타운으로 출발한다. 아침시간이라 비행기 아래를 볼 수 있었는데, 산봉우리가 뾰족한 우리나라와는 달리 정상부근은 평평한 모양이다. 그것은 지표에 오래 노출되었기 때문에 오랜 세월에 걸쳐 침식된 결과이며 그만큼 오래된 지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케이프타운에 도착하고 입국 스탬프를 받는데 이민국 직원은 내 여권을 쭉 살펴보더니 별다른 질문 없이 스탬프를 찍는다. 여권에 가득 각 나라의 비자는 여행 훈장이 되어 입국 하는데 큰 도움 된다.

남아공에서는 환전을 하면 높은 수수료를 내야 한다. 환전소 앞에서 유럽 청년 한명이 100유로를 환전하려고 하는데 수수료를 11유로를 내야 한다고 하자 깜짝 놀란다. 현금 환전보다 ATM을 이용해 돈을 인출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남아공 환율은 랜드로 1랜드에 170원 정도로 계산하면 된다. 앞으로 랜드화는 R로 표기하겠다.

공항 ATM에서 인출한 후 시내로 나가는 교통편을 알아보았다. 공항 입구에 나가니 시내로 가는 셔틀버스가 있다. 요금은 R50이며, 시내에서 공항으로는 새벽 4시 30분부터 오후 9시까지 운행하며 공항에서 시내로는 새벽 5시10분부터 오후 9시 50분까지 운행한다.

그전까지만 해도 R200 정도를 들여 택시나 버스를 타야했지만 최근에 전용 버스가 생겼다고 한다.

셔틀 버스는 역 근처에서 승객들을 내려준다. 이제부터 남아공 여행의 시작이다. 남아공은  우리에게 월드컵으로 친숙한 나라이며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헤이트와 그에 맞서 평생 투쟁을 해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넬슨 만델라로 유명한 나라이다.

4만년 전에 우리에게 부시맨으로 알려진 산(San)족이 처음 정착했으며 AD500년에는 반투족이 니제르 델타에서 이곳으로 이주했다. 대항해 시대가 시작한 1498년 바스코다가마가 케이프반도의 끝을 희망봉으로 이름 지으며 이곳을 지나 인도로의 항해에 성공했다.

지리적인 발견 이외에는 별 쓸모없는 땅으로 여겨져 방치되었던 케이프타운에 1652년 네덜란드인들이 케이프타운을 건설하면서 정착을 하였으며 그 후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로부터 이민이 계속되어 영역이 확대되었다. 이들 세 개 언어가 서로 섞이면서 아프리카너라는 새로운 언어가 탄생되었으며 이들을 보어인이라 불렀다.

1814년 케이프타운이 영국령이 되고 1836년 영국이 노예 해방을 포고하자 노예에 의존했던 보이인들은 영국의 지배를 피해 내륙으로 진출해 오렌지 자유국과 트란스발 공화국을 건국하였다. 그곳에 자리 잡았던 줄루족과의 치열한 전투 끝에 승리하여 나라를 세웠으며, 승리를 했던 12월 16일은 1994년까지 기념일로 남았다.

아시아 각지에서 이주해온 노예와 원주민 백인과의 사이에 컬러드(혼혈)이 출연했고, 지금도 케이프 지방에는 컬러드가 많고, 더반을 중심으로 하는 나탈 주에는 사탕수수밭 노동자로 이주해 온 인도인 자손이 많다.

평화로운 이곳에 1886년에 요하네스버그 인근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격동의 시기가 다가왔다. 금과 다이아몬드를 욕심 낸 영국이 그 지배권을 둘러싸고 보어인과 전쟁을 벌였다. 전쟁에서 이긴 영국은 1910년에 케이프식민지, 트란스발 공화국, 오렌지 자유국을 통합해 남아프리카 연방을 세웠다.

1948년 결속력이 강한 아프리카너의 국민당이 정권을 수립했으며, 시대에 역행하는 아파르헤이트(인종 격리) 체제를 구축하였다. 국제사회의 비난에 아랑곳 하지 않고 1961년 영국연방을 탈퇴하여 공화국으로 독립하였다.

이후 끊임없이 반정부 운동을 탄압을 했으며 국제사회의 제제에도 끄떡없던 남아공 정부는 1989년 대통령이 된 데크라크는 아파르헤이트 철폐 정책을 추진하여 1990년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전 의장 만델라를 석방하였으며 1996년 모든 차별 정책을 금지한 헌법을 공포하였다.

남아공은 세계 최대의 금과 다이아몬드 생산국이며 아프리카의 리더 국가로서 그 역할이 격상되었지만 그 때문에 주변 나라에서 이민이 증가해 치안 상태는 최악이다. 때문에 여행객들에게는 여행을 하는데 항상 주의를 해야 한다.

케이프타운은 배낭여행자를 위한 인프라가 롱스트리트(Long St.)를 중심으로 펼쳐져 있다.

이곳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나미비아 교통편과 비자를 받는 것이다.

장거리 버스 터미널은 기차역과 붙어있다. 이곳에는 여러 장거리 버스회사들이 있는데 나미비아 빈트후크로 가기 위해 인터케이프(Intercape) 버스 회사를 방문했다.

1월 2일 빈트후크로 출발하는 버스편을 물어보니 R1600 넘게 부른다. 무려 우리돈 27만원인 말도 안 되는 가격이다. 그 전에 출발하는 버스편을 물어보니 내일 출발하는 버스는 R580이라고 이야기 한다. 빈트후크로 가는 다른 버스편이 있거나 정 안되면 국경 근처까지 가서 버스를 갈아타는 식으로 가기로 하고 일단 발걸음을 돌렸다.  

나미비아는 한국인은 비자를 받아야 한다. 롱스트리트 부근에 여행객을 위한 모든 정보가 있는 Cape Town Tourism이 있는데 나미비아 비자를 받을 수 있는 나미비아 투어리즘도 같은 건물에 있다. 비자폼을 작성해 제출하면 직원은 은행에 입금을 하고 오라며 서류를 준다. 그걸 가지고 바로 옆의 ABSA 은행에 입금을 하고 도장을 받아 나미비아 투어리즘으로 오면 만사 바로 비자가 발급된다. 사실 미국, 유럽 여행자를 비롯해 일본 여행자들도 나미비아는 무비자라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다.

  근처에 위치한 끝 부분에 위치한 Cat & Moose 백패커스에 가니 종업원은 연말이라 오늘만 숙박이 가능하고 내일부터는 자리가 꽉 찼다고 이야기 한다. 주변 숙소도 배낭여행객들로 꽉 찼다. 오늘 하루만 도미토리(R130)에서 묵기로 했다.

마침 케이프타운에서 유학중인 학생인 정현광씨에게 전화를 하니 숙소 주인아저씨에게 이야기를 해놨다며 하루 R130를 내면 그곳에 묵어도 된다고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최성수기인 현재로서 숙소를 구할 수 있어 다행이다.

현광씨가 다니는 영어 학원에서 만나, 근처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식사후 역을 중심으로 나미비아로 들어가는 교통편을 알아보았다. 미니버스, 장거리버스, 기차까지 알아봤지만 빈트후크는 물론 국경까지 가는 교통편도 찾을 수 없었다. 빈트후크로 가기 위해서는 오직 인터케이프버스만 갈 수 있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인터케이프회사로 가서 1월 2일 출발하는 버스편을 알아보니 R780을 부른다. 오전에 알아봤을 때와는 R1,000가까이 내려간 가격이다. R580 했던 내일 출발하는 버스는 R900 넘게 가격이 형성되어 있다. 들쭉날쭉한 가격에 의아스럽기는 하지만 일단 1월 2일 출발하는 빈트후크 버스표를 샀다. 누군가가 1월 2일에 출발하는 걸 취소하고 내일 가는 것으로 변경을 해서 그렇게 가격대가 형성되지 않았나 싶다.

숙소에 돌아와 여장을 푸니 수건을 가져오지 않았다. 마트에서 수건 한 장을 사려는데 우리나라의 2~3배 가격이며 휴대폰 액정 보호막을 사려고 보니 R45이다. 남아공 물가가 얼마나 센지 실감했다.

바람이 무척 세서 그런지 근처 산에 산불이 나 헬기가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산불 진화를 하고 있다. 연말이라 관광객들은 거리에 넘쳐나고 있다. 남아프리카의 첫 하루는 분주한 분위기에서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