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1일(금)

테이블마운틴으로 가기 위해 오전 6시 35분 체크아웃을 하고 숙소에 짐을 맡기고 출발했다. 테이블마운틴까지 택시를 타면 R40정도 나오는데 걸어서 1시간이면 갈 수 있다고 해서 일찍 출발했다. 테이블 마운틴은 케이프타운의 상징으로 해발 1,087m이며 케이프타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특히 정상이 테이블처럼 평평한 것이 특징이다.

45분 정도를 걸어 테이블 마운틴 입구에 들어서니 한 여행자가 가이드를 데리고 케이블카 입구로 걸어가고 있다. 그는 호주인 여행자로 산 정상까지 같이 걸어가자고 한다. 잠시 동행을 해서 올라가니 가이드는 길을 잘 모르는 것 같고 호주인 여행자도 술에 취한 모습을 보여 아무래도 불안한 모습이다. 결국 케이블카를 타고 간다며 떨어져 나왔다.

케이블카 입구에 가니 아직 케이블카가 개시하지도 않았는데 사람들로 장사진이다. 근처에 등산로가 있고 몇몇 여행자들이 등산을 하는 것이 보인다. 올라갈 때는 걸어서 가고 내려 올 때 케이블카를 이용하기로 했다.

해변에 우뚝 솟은 1000m 넘는 산이라 경사가 가파르지만 길이 잘 정비되어 있어 할만 했다. 30분 정도 오르니 표지판이 보이더니 준비가 되지 않은 등산객은 우회해서 가라는 경고문이 있다. 다른 등산객은 우회하지 않는 것을 보니 갈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등정을 시작했다.

그런데 오르면 오를수록 경사가 심해지더니 급기야 절벽이 나온다. 절벽 밑에는 한 무리의 여행자들이 모여 있는데 인솔자에게 물어보니 이 코스는 INDIA 루트로 전문가 인솔하에 장비가 있는 등산객이 오를 수 있는 곳이라며 다시 내려가라고 한다. 안전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고생해서 이곳까지 올라왔는데 다시 내려올 수는 없었다. 무게 중심을 최대한 앞으로 두며 바위틈을 손으로 집고 등산을 하는데 위험하기는 하지만 스릴을 느낄 수 있었다. 본의 아니게 클라이밍을 체험을 했다. 절벽을 오르면서 바로 옆에는 케이블카가 지나간다. 케이블카에 탄 관광객들은 나를 보면서 ‘저렇게 준비 안 된 사람도 올라가네?’하며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절벽 구간을 오르고 나서 아래를 바라보니 케이프타운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주변 돌산들도 장관을 이룬다. 케이블카를 타거나 돌아서 등산하는 사람들은 볼 수 없는 장엄함이 아닐까 싶다. 해발 1000m 가까운 지점이라 바람 역시 시원하다. 정상은 깎아지는 절벽으로 오를 수 없고, 오른편으로 돌아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    

정상은 산의 이름답게 평평해서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즐기며 사진을 찍고 있다. 정상을 둘러보고 케이블카 타는 곳으로 가니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있다. 내려가는 일도 만만치 않겠구나..

올라올 때 물을 다 마셔서 곧장 매점에서 물 한병을 사서 벌컥벌컥 마시고 편도 케이블카 티켓을 샀다. 줄이 길어 그냥 내려갈까도 생각했지만 이곳의 명물인 케이블카는 타는 것도 좋은 경험일거라 생각되었다. 원래 R80인데 학생할인으로 R60에 살 수 있었다. 대학원 마지막 학기라 국제학생증을 만들었는데 여기서 혜택을 받는다.

40분 정도를 기다려 케이블카를 탈 수 있었다. 케이블카를 타니 아슬아슬한 광경이 펼쳐진다. 케이블카가 움직이자 사람들의 탄성이 나온다.

케이블카는 움직이면서 전체가 한 바퀴 도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자리에 있던 골고루 주변을 감상할 수 있는 다소 민주적(?)인 구조이다.  

3시간 정도를 고생해서 올라온 산을 단 몇 분 만에 내려오는 것이 허무했지만 아래에 대기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인파와 차들을 보니 다소 흡족했다.

케이블카 아래는 그야말로 인산인해이다. 2010년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많은 관광객이 몰려 차들이 진입도로부터 줄 지어서다시피 한다.

입구에 내려가니 더 이상 차는 들어올 수 없다고 막아 놓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바로 전날까지 날씨가 좋지 않아 테이블마운틴 케이블이 움직이지 못했다고 한다. 때문에 많은 인파가 몰려 테이블마운틴을 올라가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리는 관광객이 많았다. 고생은 했지만 아침 일찍 올라가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는 마트에 먹거리를 팔기 때문에 마트에서 점심을 해결 할 수 있었다. 점심 식사후 현광씨를 만나 현광씨 홈스테이로 갔다.

홈스테이는 테이블마운틴 밑자락으로 테이블마운틴과 바다가 다 보이는 곳이다. 현광씨는 이곳에서 한달 R3000를 지불한다. 주인장인 피터는 나이든 백인으로 나를 보자마자 반갑게 맞아 준다. 하루 R130면 모든 것을 다 이용할 수 있다며 환영해 준다. 현광씨는 피터가 돈을 좀 밝힌다고 한다.

현광씨는 영어 학원 친구들과 워터프런트에서 새해맞이를 갈 거라고 하는데 어떨지 물어본다. 당연히 OK.. 아침에 등산을 한 관계로 몸이 피곤하긴 했지만 함께 새해맞이를 하러 나갔다.

케이프타운 시내 전체는 이미 축제분위기이다. 친구들은 그린 마켓 부근에서 만났는데 브라질인 3명, 콩고 친구 1명과 함께 했다. 모두 다 재미있는 친구로 특히 콩고 친구는 좀 특이했다.

빅토리아&워터프론트는 옛 항구를 개발한 지역으로 19세기의 건물과 대형 쇼핑몰이 있다. 작지만 놀이기구도 있어 가족 단위로 산책을 하기에 안성맞춤인 지역이다.

저녁 시간의 워터프론트는 이미 축제분위기로 많은 사람들이 새해맞이를 나왔다.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바가지가 극성이다. 맥주한잔 하려고 하는데 자리 값만 1인당 R100, R50.. 심지어 R500을 부르는 곳이 있다.

다행히 독일인 노부부가 자신들은 자리를 뜬다며 레스토랑의 좋은 자리를 우리에게 양보해준다. 노부부의 인자한 미소가 머릿속에 남는다.

이곳은 여름이기는 하지만 바닷가라 바람이 세다. 장시간의 기다림 끝에 사람들의 환호가 커지기 시작한다. 모두 다 함께 외친다. FIVE! FOUR! THREE! TWO! ONE! 와!!

2011년 시작과 함께 뱃고동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불꽃놀이가 펼쳐지며 사람들은 저마다 옆의 사람은 껴안으며 ‘HAPPY NEW YEAR'을 말한다.

개인적으로 많은 일이 있었던 2010년 이제 저물었다. 2011년에는 어떤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새해에도 많은 경험과 추억이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행을 하면서 남반구 자체도 처음이지만 여름에 새해를 처음으로 맞아보는 뜻 깊은 날이기도 했다.        


1월 1일(토)

어제 새해맞이를 마치고 많은 사람들로 인해 새벽 2시에서야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돌아오자마자 골아 떨어졌다.

일어나니 12시..

케이프타운에 온 김에 희망봉을 꼭 보고 싶었는데 현광씨 말로는 희망봉 쪽에는 차들로 꽉 차서 들어가기 힘들다고 말한다. 지금 투어를 신청해 가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내일 오전에 나미비아로 떠나기 때문에 시간은 오늘밖에 없다.

희망봉은 케이프타운에서 70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대중교통편이 없기 때문에 투어나 차를 랜트해서 가야 한다.

일단 남쪽의 사이먼스타운(Simom's Town)까지 가보기로 했다. 케이프타운 기차역에는 우리나라 지하철과 비슷한 철도가 있는데 남쪽 종착역인 사이먼스타운까지는 왕복 R25를 한다. 기차를 타면서 테이블 마운틴의 뒷면을 볼 수 있으며 남쪽으로 가니 해변을 따라 기차가 운행한다. 구경삼아 기차를 타고 괜찮을 듯하다.

기차는 Fish Hoek에서 멈춘다. 사이먼스타운까지 한정거장 남았지만 철로에 모래가 많아 바로 전 역에서 멈춘다. 대신 두 역 사이에는 셔틀버스가 운행한다.

사이먼스 타운은 1687년 네덜란드 총독 사이먼 반 스텔이 겨울철 강한 남풍을 피하기 위해 바람이 평온한 이곳에 항구를 만들자고 제안했고 사이먼스 타운이라고 불렀다. 1814년에는 케이프반도를 접수한 영국이 해군 기지를 건설했으며 지금도 군함이 보인다.

마을은 해변과 어울려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이다. 셔틀버스를 타고 사이먼스 타운을 가로지르며 혹시 있을지 모를 희망봉 버스 편을 알아보았다. 결과는 NO, 경찰서를 방문해서 물어봐도 대중교통은 없다고 한다.

사이먼스 타운은 벗어나 볼터스 비치에 다다랐다. 이곳은 케이프 펭귄으로 유명한 곳이다. 입장권(R40)을 끊기 전에 입구 오른쪽의 산책로로 들어갔다. 산책로를 걷다보니 숲 사이로 펭귄이 보인다. 펭귄은 사람이 다가가도 눈 하나 껌뻑이지 않는다. 산책로를 벗어나 볼터스비치 반대편 주차장에 가니 가까운 곳에 사람들이 몰려있다.

몰려 있는 곳에 가니 펭귄과 사람이 어우러져 있다. 사람들은 바로 앞에서 펭귄을 보고 사진을 찍는데도 펭귄은 도망치기는커녕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펭귄은 사람을 거의 무시하는 수준이다. 가끔 어린애들이 다가가면 귀찮다며 나가라는 시늉을 한다. 이건 동물로서의 직무유기(?) 아닌가? 덕분에 바로 앞에서 펭귄을 구경하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덕분에 입장료 R40 주고 난간에서 펭귄을 볼 필요가 없어졌다.^^      

펭귄 관람을 마치고 희망봉 탐방을 포기하고 과감하게 돌아섰다. 아쉽기는 하지만 여행에 있어서 포기할 때는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 하루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 남는다.

기차를 타고 케이프타운 시내를 돌아오니 대형 퍼레이드가 펼쳐지고 있다. 시내 한 가운데 펜스를 쳤고, 펜스 양쪽으로는 사람들이 텐트와 의자를 가지고 와서 퍼레이드 관람을 한다.

퍼레이드는 아이와 청년이 각기 각색의 복장을 하고 신나는 음악 연주를 하고 춤을 추며 지나가는데 아프리카 음악의 진수를 볼 수 있었다. 딱 1년에 한번 하는 축제인데 마침 시간을 잘 맞춰 왔다. 퍼레이드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흥에 겨워 춤추기도 하며 퍼레이드 안에 가족이 있으면 같이 사진을 찍으며 흥겨워 하는 분위기이다. 어린이들이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퍼레이드를 하면 얼마나 뿌듯해 할까?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안겨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습하는데 고생은 하겠지만 자신이 주인공이 된다는 것이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일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축제가 있으면 많은 아이들이 자신감을 함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퍼레이드 구경을 마치고 현광씨와 함께 숙소 근처의 포르투갈 식당으로 가 저녁 식사를 하며 맥주 한잔을 했다. 식당에는 많은 백인 남성이 맥주를 하며 옆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남아공에서는 밤에 별다른 놀거리가 없어 이렇게 인근 식당에 나와 맥주한잔 하며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이곳 사람들의 낙이다. 또한 술은 지점 된 장소에서만 판매하며 지정된 장소 이외에 음주를 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주변 상점을 문을 닫아 식당에서 맥주 4병을 사들고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주인이 술을 반출하면 안 된다며 이곳에서 마시고 가라고 한다. 아무 곳에서나 술을 마실 수 있는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 이것도 엄연한 문화. 식당에서 맥주 4병을 다 마셨다. 지정 된 장소에서만 술을 마실 수 있는 것은 가뜩이나 악명 높은 이곳 범죄율을 낮추기 위한 남아공 정부의 정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맥주를 총 6병이나 마셔 알딸딸하다. 피곤함이 몰려 여행기 치는 것을 잠시 미뤘다. 그동안 소식을 전하지 못해 주변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하겠지만 일단 내일 나미비아로 출발하기 위한 휴식을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