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4일(화)

처음으로 오른쪽 운전석에서 운전을 부담감 때문일까? 그런 긴장감 때문에 새벽 6시에 깨었다. 막상 해보면 별것 아닌 줄 알면서도 혹시나 사고가나면 어쩌나 걱정되었다. 침대에 누워서 오른쪽 운전석은 왼쪽 차도라고 되 뇌이며 주문을 스스로 걸었다.  

아침 식사를 하고 계란 5알을 삶아 점심거리로 챙겼다. 내가 불안해 보였는지 핀란드 아가씨가 ‘내가 가서 운전하는 것 가르쳐줄까?’라고 묻는다. 고맙기는 하지만 잘못하다가 사고가 나면 안 되기 때문에 나 혼자 가는 게 편하다고 답했다.

체크아웃을 하려고 하자 직원은 다시 이곳에 올 것인지 묻는다. 돌아와서 따로 갈 곳은 없음으로 그렇다고 하니 하루 숙박비(110N$)를 미리 내면 예약이 가능하다고 해서 미리 예약을 했다.

8시에 렌터카 회사(Budget)로 가서 렌터 할 차량에 대한 것과 지켜야 할 규칙을 설명해주고 곧장 열쇠를 주더니 6일(목) 오후 5시까지 차를 가지고 오라고 한다. 지도를 달라고 하니 나미비아 전체 도로가 담긴 지도를 준다.  

내게 주어진 차량은 폭스바겐의 POLO이다. 우리나라의 모닝보다는 조금 크다. 기어를 살펴보니 후진(R) 기어가 오른쪽이 아니라 1단 옆의 왼쪽에 있다. 1단과 헷갈릴 수 있지만 후진을 하려면 기어를 위에서 누른 채 옮겨야 하기 때문에 1단과 같이 쓸 수 없는 시스템이다. 출발을 하자마자 앞선 차량을 따라 갔고 곧바로 도로에 적응했다. 이렇게 쉬운 줄도 모르고.. 혼자서 너무 오버 했나 싶다.

빈트후크 시내를 지나니 검문소가 보인다. 경찰은 내 국제운전면허증을 체크하더니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잘 가라고 손짓한다.

목적지인 세스림(Seriem)으로 가기 위해서는 남쪽으로 이어진 B1도로를 따라 빈트후크에서 84Km 떨어진 Rehoboth로 가야 한다. 도로는 거의 일직선으로 나 있으며 2차선이기는 하지만 차량이 적기 때문에 마음껏 속도를 내서 간다. 제한 속도가 120Km이지만 대부분의 차량이 그 이상 속도를 내는 분위기이다. 야호! 사바나 지역을 마음껏 달린다.  

도중에 마을 주유소가 보여 잠시 멈춰서 후진 연습을 했다. 두세번 연습해 익히고 있을 때 한 청년이 다가오더니 다른 도시로 태워줄 수 있는지 묻는다. 내가 누군가로부터 태워달라고 부탁받은 처음의 경우이다.(그 반대는 셀 수 없음) 청년에게 곧 세스림으로 빠진다며 거절했다. 사실은 아직은 운전이 불안하고 렌터카라는 이유도 있다.      

10시 41분 갈림길에서 C24 도로로 빠지자 비포장도로가 이어진다. 비포장도로이기는 하지만 평평하게 정비되어 있기 때문에 80km 정도의 속도를 내며 달릴 수 있다.  

갈림길에서 표지판에 세스림으로 가는 길이라 표시되어 있지만 밑에 Spreets-hoogts Pass라 표기되어 있다. 고개를 넘어야 함으로 작은 차로는 좀 무리일 듯싶어 남쪽 길을 선택했다.

B2 도로를 처음 벗어날 때에는 사바나였던 환경이 점점 사막으로 변하였다. 사막 쪽으로 갈수록 왕래하는 차량이 거의 없어진다. 여기서 차량이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할까? 아마 끊임없이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조심해서 몰았다.(나중에 가면 막 몰게 됨.^^)  

Klein Aub(11:30 도착), Bullsport(12:28도착)을 거쳐 갔는데 지도에 표기되어 있지만 집이 몇 채만 있는 작은 규모의 마을이다. 나미비아가 한반도의 4배 정도 되는 반면 인구는 불과 210만이 되기 때문에 인구밀도가 희박하다. 특히 사막지역은 더 희박한 분위기라 바로 옆 마을이 20~30Km는 된다. Bullsport을 지나는 순간 야생원숭이 4마리가 황급히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야생 동물과의 첫 대면.

  꽤 많이 달렸는데도 불구하고 주유계기판의 바늘은 가득 차 있음을 가리킨다. 주유계기판이 고장이 났나? 고장이 난거라면 기름이 어느 정도 남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함을 안고 달려야 한다. 만약 기름이 다 떨어진다면 사막 한가운데 멈추게 되고 차량이 거의 지나가지 않기 때문에 하루 종일 기다려야 한다. 때문에 사막 여행에서는 물을 넉넉하게 준비하는 것이 필수이다.    

다행히 폭스바겐 Polo 차량은 별 이상 없이(주유계기판 제외) 든든히 목적지로 가고 있다. 끝없는 사막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는 현실.. 이건 어렸을 때 꿈꿔온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13시 40분 사막 지역에서는 차량이 쉴 수 있는 휴게소가 없다. 길에서 잠시 멈춰 아침에 준비한 계란 5알을 꺼냈다. 계란을 먹는데 세스림으로 가는 차량 운전사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괜찮은지 묻는다. 작은 차량이 길에 멈춰 있으니 고장 난 줄 알았나보다. 웃으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괜찮다고 싸인 했다.    

14시 48분 세스림(Sesriem)에 도착했다. 세스림은 나미비아 사막에서도 가장 유명한 소수블레이(Sossusvlie)로 들어가기 위한 관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나미브 사막은 나미브 나우크루프트 공원(Namib-Naukluft Park)로 지정되어 있다. 나미브 사막은 세계에서 강수량이 가장 적은 지역으로도 유명하며, 소수블레이는 거대한 나미브 사막에서도 가장 안쪽으로 붉은 사막을 자랑한다.

비가 거의 오지 않은 지역이지만 하필 내가 갔을 때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마을 청년에게 지나간 먹구름인지 다가오는 먹구름인지 물어보니 다가오는 먹구름이라고 한다. 보아하니 구름 밑에는 비가 내리는 것이 보인다.

서둘러 입장료 80N$+차량 입장료 10N$, 총 90N$를 내고 서둘러 소수블레이로 향했다. 세스림에서 소수블레이는 65Km로 60km로 아스팔트로 잘 포장되어 있고 나머지 5Km는 오직 4륜 구동차량만 들어갈 수 있다. 문제의 5Km 구간에는 셔틀 자동차(왕복 150N$)가 있다고 하지만 오후 3시에 종료되었다고 말한다. 히치를 하거나 정 안되면 걸어가면 되겠지.. 들어가기 전 주유소에 가서 기름을 가득 넣으니 16.25L에 122N$가 나온다. 300Km를 질주했는데 16L 밖에 소비하지 않았다니! 대단한 연비이다.

사막으로 들어가는 도로에서는 게이트가 있는데 직원이 오후 7시 반에 문을 닫으니 그 전에 나와야 한다고 주의를 준다. 아직 4시간 넘게 남았다.

도로에 들어서 속도를 내는데 타조와 스프링복 등 야생동물이 보인다. 야생 타조는 처음보기 때문에 서둘러 사진을 찍으려 하니 빠른 속도로 사막 쪽으로 도망친다.

60Km 구간에는 모래사막이 쭉 펼쳐져 있는데 중간 중간에 멈춰 사진을 찍었다. 렌터카로 둘러보니 마음 내키는 대로 사진을 찍을 수 있어 좋다.        

게이트로부터 45Km 구간에 그 유명한 듄45(Dune45)가 보인다. 이곳은 장엄한 모래 언덕으로 위에 올라가 일출과 일몰을 보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단 돌아오는 길에 올라가기로 하고 패스~

오후 4시 10분에 2WD(2륜구동자동차)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5Km 구간을 왕복하는 빈 셔틀 자동차만 있고 아무도 없다. 이 시간에는 사람들이 거의 오지 않는다고 했는데 정말 없을 줄이야. 여기까지 온 이상 걸어서라도 가야 한다. 배낭의 내용물을 비우고 가져 온 물을 넣고 걷기 시작했다.

5Km라 만만하게 봤지만 사막이라 걷는 속도가 더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구름이 깔려 있어 강한 햇빛을 받지 않는다. 걷는 길에 보이는 사막은 말 그대로 영화에서 본 사막이다. 어린 시절 본 영화중에 주인공이 아무도 없는 사막에 버려진 채 절망스럽게 걷는 모습이 기억나는데 그 모습이 꼭 나의 모습이다. 단지 난 절망적으로 걷기 보다는 목표가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도중에 큰 Gemsbok와 마주쳤다. 덩치가 큰 녀석인데 나를 보더니 잠시 움찔 하더니, 도망치지 않고 나를 바라본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라는 표정이다.

모래를 빠른 걸음으로 걷는 것은 고통이지만 주변 사막 풍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풍경이다. 1시간 10분을 감상 아닌 감상을 하며 소수블레이의 4WD(4륜구동차)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 시간 동안 정말 4WD차 한대도 안 지나갔다.

지금 시각 오후 5시 20분.. 걸어오는 길은 길었지만 다시 돌아가기에 짧게 보고 가야 한다. 빗줄기가 점점 세지기 시작했으며, 잘못하면 게이트 문을 닫는 시간에 못 도착할 수 있다.

그 유명한 소수블레이는 사막 한가운데 마른 호수 형태로 붉은 모래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고 바닥은 갈라졌다. 주변 나무와 풀은 말라 비틀어진 모습이다. 화성 탐사로봇이 보내온  화성의 모습과 비슷하기도 하고 혹자는 지옥의 모습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렇게 훌륭한 풍경을 짧은 시간에 최대한 사진에 담고 돌아가야 한다. 또 1시간 10분을 그대로 걸어가야 했다. 점점 세지는 빗줄기가 원망스럽다. 하지만 그 빗줄기에 대한 평가는 지극히 내 주관일 뿐 이곳 동물들에게는 오랜 기다림의 축복일 것이라는 쓸데없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소수블레이를 채 못 둘러 본 채 돌아서는 찰나...

저 멀리 차 한대가 보인다..

기적처럼 나타난 차량의 주인공은 뒤늦게 이곳으로 관람 온 프랑스 커플이다. 프랑스 커플은 2WD 주차장에 세워진 차 주인이라고 물으며 어떻게 여기까지 걸어왔는지 묻는다. 사정을 설명하니 돌아가는 길에 태워준다며 같이 소수블레이를 둘러보자고 한다.  

근처의 높은 모래 언덕에 올라가니 소스블레이가 한눈에 보인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프랑스 커플 덕분에 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엄지발가락의 물집이 터져 모래 언덕 정상까지 오르지 못하고 내려왔다.          

프랑스 커플은 4WD 차량을 빌려 남아공에서부터 여행을 했다고 한다. 차량 뒷간에는 여행에 필요한 텐트와 장비 아이스박스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아프리카를 여행하는 서양 여행자들 대부분이 트럭여행을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차량을 렌터 해 캠핑 여행을 다니는 여행자가 더 많다. 남아프리카 대부분 지역에는 캠핑장이 있어 2명에서 4명 정도가 함께 차량을 빌리고 야영 장비를 갖춰 여행하기에 좋다.

오후 6시 27분에 2WD 주차장에 도착했다. 만약 프랑스 커플 차량이 안 왔으면 훨씬 더 늦어졌으리라.. 비가 강하게 와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내 차에 탔다. Thanks!

강한 속도로 세스림으로 향했다. 15Km를 달리니 듄45가 보이는데 비가 강하게 와 올라갈 수 없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사진만 찍고 다시 출발했다.

아스팔트에 물이 고여서 그런지 많은 동물들이 아스팔트 위로 올라와 물을 마시고 있다. 뜻밖의 사파리를 하면서 세스림으로 돌아왔다. 도착 시각은 오후 7시 20분. 문닫기 10분 전에 도착했다.

세스림에 도착하자마자 환타 한 캔을 사서 벌컥벌컥 마셨다. 달콤한 음료수가 안겨주는 청량감을 느끼니 피로가 풀린다.

내일 항구도시인 스와코문드로 가기 위해서는 될 수 있는 한 오늘 멀리 가야 하기에 세스림에서 출발하려고 하는데 저 멀리서 저녁 해가 보인다.

사막의 날씨는 참 변덕스럽다. 아까까지는 강풍과 강한 빗줄기가 내리더니 어느새 일몰 직전의 해가 나타난다. 소수블레이가 짧은 만남이 아쉬웠는지 잘 가라고 인사를 하는 것 같다. 일몰 태양 주변이 구름이 깔려있어 태양 주변으로는 다양한 색깔의 만화경이 펼쳐진다.   오후 7시 50분 일몰을 보고 북쪽으로 출발했다. 비포장도로에 밤이라 조심스럽게 운전하면서 갔다. 아까까지만 해도 온도가 뜨거웠는데 어느덧 쌀쌀해지기 시작했다.

2시간을 채 안되게 달려 세스림에서 80Km 정도 떨어진 Solitaire country Lodge에 도착했다. 이곳을 지나면 숙소가 없기 때문에 오늘은 이곳에서 여장을 풀었다.

카운터에서 숙소를 알아보니 방은 495N$라고 한다. 비싸다고 이야기 하니 캠핑비는 65N$인데 텐트가 없으면 차에서 자면 된다고 한다.

점심때 먹은 계란 5개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않아 무척 허기졌다. 점원에게 먹거리가 없는지 물어보니 직원들이 먹고 남은 밥과 치즈를 버무린 브룩쿨린, 고추를 준다. 정이 많은 아프리카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며 맛나게 먹었다.

샤워장에서 세면을 하고 정리를 한 다음 차량 시트를 뒤로 넘겨 침낭을 펼쳤다. 작은 차량이지만 의자가 뒤로 완전히 젖혀지기 때문에 차 안에서 잠자는 것이 가능하다. 누운지 얼마 되지 않아 비가 내리는데 차에 빗물이 튕기는 소리가 경쾌하게 느껴진다.

오늘 하루 폭스바겐 Polo를 운전하면서 차에 대한 신뢰감이 생겼다. 사막 한가운데를 하루 종일 달려도 이상이 없고 연비가 좋으며 차 안에서 잘 수 있는 배려까지 한 것이 고맙게 느껴지기까지 하며 기회가 있으면 폭스바겐 차량을 구입하고 싶다. 우리나라 차량도 광고로 판촉 하는 것보다 이렇게 열악한 지역에 렌터를 하게 해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차량을 체험해보게 하는 건 어떨까? 나처럼 차량에 대한 신뢰감을 생기지 않을까 싶다.    

오늘 하루 500Km가까이 운전을 했다. 또한 사막 길을 5Km를 온전히 걸어 피곤하지만 좋은 경험을 했다는 흥분은 감출 수 없는 하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