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3일(목)

오늘은 족자 시내 탐방과 쁘람바난 사원을 관람 한 후 저녁에 발리 덴파사로 떠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이 모든 걸 다하기 위해서는 서둘러 움직여야 한다.

숙소에 나와 말리오보로 도로로 들어선 후 곧장 남쪽으로 향했다. 이곳은 남반구라 해가 북쪽에서 뜬다고 하지만 적도 지역이라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 있는 느낌이다. 다행히 날씨가 흐려서 걷는 여행(Working Tour)을 하기에는 괜찮은 날씨이다.

걷는 여행을 하면서 주의해야 할 것은 횡단보도를 건널 때이다. 신호등이 따로 없이 건너야 하며 오토바이나 승용차가 보행자를 발견해도 속도를 줄이지 않기 때문에 순전히 눈치로 건너야 한다.

운전자와의 눈빛이 잘 못 교환되면 큰일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운전자 역시 보행자가 있으면 긴장하기 때문에 너무 겁먹고 다닐 것까지는 없다.

가장 먼저 소노부도요 박물관(Sonobudoyo Museam)에 갔다. 문화 예술품이 많이 전시 되어 있다는데 문이 닫혔다. 쉬는 날인가? 관리인은 내일 아침에 오라고 이야기 한다. 내일이면 이미 족자에 있지도 않을 텐데..

박물관을 못 봐서 아쉽지만 박물관과 붙어있는 식당은 꽤 입맛에 맞는다. 두부요리는 물론 잡채요리까지 있어 밥에다 이것저것 반찬을 지목하며 맘껏 먹었다.

Old City에는 성벽으로 둘러 싸여 있으며 25,000명 정도가 살고 있다. 거대한 술탄 왕국인 끄라톤(Kraton)이 있다. 1755년~1756년 사이 하멩꾸 부위노 1세가 건립했으며 지금도 족자의 주지사이기도 한 하멩꾸 부워노 10세와 가족이 살고 있다.

끄라톤 북쪽으로는 거대한 광장이 있는데 군대 훈련장으로 쓰이던 곳으로 지금은 종교 축제 장소로 사용한다.

입장료(7,500루피아)를 내고 왕궁 안에 들어가니 내부는 경건한 분위기이다. 박물관에는 역대 술탄이 사용하던 가구와 사진, 초상화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다양한 마차가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시대별로 술탄이 사용한 마차 그림이 전시 되어 역대 술탄의 마차에 대한 취향이 어땠는지 알 수 있다. 지금은 부의 상징으로 차를 그 척도로 삼지만 그 전에는 마차가 그 역할을 했으리라.

끄라톤에서 족자 시내에서 가장 볼거리는 따만사리(Taman Sari)로 오는 길에 동물 시장이 있는데 이것 역시 하나의 볼거리이다. 다양한 동물과 새는 물론 거북이, 관상어를 파는데 작은 동물원이라 칭해도 되겠다.

묶여 있는 새끼 부엉이가 있기에 신기한 듯 다가가자 부엉이들은 겁을 먹으며 어쩔 줄 몰라 한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태어나자마자 자유로운 삶을 빼앗긴 불쌍한 부엉이들..

동물을 보느라 따만사리로 가는 길을 놓쳤다. 한 할아버지에게 길을 물으니 따만사리까지 친절히 안내해주신다.

감사를 하다고 말하고 입장료를 어디서 구입하는지 물으니 직원은 영문을 모르겠다고 한다. 어떻게 된 거지? 다른 외국인도 많이 보이는데?

이미 난 뒷문을 통해서 사원 안으로 들어 온 것이다. 할아버지가 정문을 알려준 것이 아니라 뒷문을 알려주셨다.

어쩐지 들어오는 길이 너무 골목틱하다 싶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와야 하는 곳에서 매표소를 물으니 직원들도 황당할 수밖에..

따만사리는 1758년 건립되었으며 물의 궁전으로 유명하다. 건물 사이로 거대한 목욕탕이 있는데 왕비와 후궁이 목욕을 하고 있으면 술탄이 건물 위에서 그날 밤 함께 지낼 여인을 간택했다고 한다.

건물 위로 올라가 주변 풍경을 볼 수 있으며 건물 자체도 아름답기 때문에 꼭 와볼 만한 곳이다.

족자 시내를 관람하고 시내에서 5Km 떨어진 과거 족자의 중심지였던 꼬따 그데(Kota Gede)를 가려고 하는데 시간이 촉박하다.

할 수 없이 꼬따 그데를 포기하고 Giwangan 버스 터미널로 가서 오늘 밤 발리로 떠나는 버스 편을 알아봤다. 발리로 가는 럭셔리 버스는 오후 3시가 막차이며 요금은 220,000루피아(22$)이다. 이미 시간이 지났다.

오늘 어떻게든 족자를 떠나기로 했는데 그럼 옆 도시인 Solo로 가서 탈까?

휴...

한번 더 생각해 볼까?

이젠 더 이상 나를 속이지 말자..

여행은 자유롭기 위한 만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자카르타 국립박물관을 방문한 순간 이미 내 마음은 발리, 동티모르가 아니라 이리인자야로 기울어져 있었다.

지금은 파푸아라고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파푸아 뉴기니와 절반으로 나눠 진 그 곳.

인도네시아 사람들조차 잘 모르는 못한 세계적인 오지 중의 오지이며 아직도 신석기 시대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TV에서는 원시적인 삶을 사는 테마로 자주 나오는 곳이며 우리나라에서는 도전지구탐험대에 간혹 나왔던 그런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리안자야를 여행한 정보는 전무하며 당연히 여행을 하기에는 비용이 많이 들고 위험하며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할 것이다.

국립박물관 관람 이 후 파푸아는 당연히 나를 모험의 여행의 세계로 유혹을 하고 있었다. 내일 발리~롬북~마트람~쿠팡을 거쳐 동티모르로 가려는 계획을 완전히 틀기로 했다.

자세한 계획은 돌아와서 생각하기로 하고 터미널에서 꼬따 버스를 타고 쁘람바난 사원으로 향했다. 꼬따 버스는 3,000루피아를 내면 환승을 해서라서 시내 곳곳을 통하고 시내에서 17Km 떨어진 쁘람바난 사원까지 가며 시원한 에어컨에 친절한 승무원이 안내하기 때문에 여행하기에 참 편리한 버스이다.

보르부루드 사원이 불교이면 쁘람바난 사원은 흰두교 건축물이다. 세련된 균형미와 정교한 조각미를 자랑하는 자바 건축의 백미로 꼽힌다. 쁘람빠난은 원래 8세기에서 10세기 사이에 세워졌는데 그 수가 244개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16세기 발생한 화산 폭발과 큰 지진으로 건물이 파괴 된 후 방치되었다.

1885년 부지를 정리해서 1937년 어느 정도 복원이 마무리 되었다. 지금도 복원이 진행되고 있다. 지금 복원 된 신전은 18개에 불과하며 관리 부실로 원래 돌덩어리들이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티켓 오피스에 들어가 입장료(어른 10$, 학생6$)를 지불하고 비치 된 커피 한잔을 하며 론니 플래닛을 읽고 있는데 한 가이드가 ‘안녕하세요.’라고 말을 건넨다. 얼마 만에 듣는 한국말인가!
이름은 토토이며 강하르토라고 한다. 한국어로 가이드를 하고 싶다며 한국이 교수님이 남기고 간 보로부르드 한글 자료를 보여주며 읽어 달라고 한다.

관광지마다 영어, 일본어 가이드는 있어서 부러웠는데 한국어 가이드가 있으면 좋겠다싶어 책 자료에서 한국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설명이나 이야기를 집어 주었다. 강하르토씨 오늘 여행가 한명 제대로 만났네요.^^

강하르토와 1시간 정도 이야기 한 후 쁘람바난으로 들어섰다. 47m나 되는 시바신전이 나를 압도한다. 삼위일체인 세 개의 주요 사원 주변으로 작은 사원이 들어서 있다. 그 중에는 아직 복원 중인 사원도 보인다. 사원 벽에는 수많은 이야기를 담은 부조가 늘어서 있다. 이 중에는 인도의 대서사시 ‘라마야나’이야기가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겠지.. 한글 설명이 없어 아쉬울 따름이다.

전체적인 조각은 앙코르와트와 비슷한 분위기이다. 신전의 작은 방에는 관광객이 드나들 수 있는데 한 독일인 꼬맹이가 떼를 쓰며 울고 있다.

가이드는 어쩔 줄 몰라 하지만 아버지는 엄하고 확고한 표정으로 아이 스스로 방에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관광객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라 우리나라 부모 같으며 억지로 끌어내지만 독일인 아버지는 지나가는 관광객들을 아랑곳없이 아이가 스스로 나올 때까지 끝까지 기다린다. 결국 아이는 굴복하고 스스로 나오고 아버지는 그런 아이를 안아주며 껴안아 주고 아이는 울음을 그친다.

독일식 양육이 저런 것이구나. 작은 사건이지만 우리와는 다른 양육 풍토를 알 수 있었다.

쁘란바난 중심인 시바 신전(Shiva Mahadeva) 주변에는 수많은 돌조각들이 복원을 위해 늘어서 있다. 관광객들은 인부들이 복원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대부분의 관광객은 시바 신전만 둘러보는 듯하다. 북쪽으로 조금만 걸으면 규모는 작지만 Cadi Lumburg가 있고, 하나의 큰 사원이 무너진 모습인 Candi Bubrah있다. Candi Swei 는 규모가 꽤 크지만 복원이 시작단계라 관광객들은 바깥에서만 볼 수 있다.

세월이 지날수록 점점 더 완벽한 모습으로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종교 전파 과정이 정복에 의한 전파가 아니라 교역하는 상인들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전파가 되었기 때문에 타종교에 대한 거부감이 없으며 종교에 대해 관대한 편이다.

실제 이슬람 전파 과정을 보면 같은 섬이라 하더라도 무역이 번성한 곳은 일찍이 번성 했으나 내륙은 수백년이 지나서야 이슬람이 전파되었다.

이슬람 전파 과정은 서에서 동으로 이동이 되며 이리인자야 쪽이나 필리핀까지는 전파되지 못했다. 오늘날 필리핀 인구의 80%가 천주교를 믿는 이유이기도 하다.

족자로 돌아오자마자 여행사에 이리인자야에 대해 물어봤다. 족자에서 이리인자야까지 가는 비행기는 어렵지만 수라바야(Surabaya)는 이야기가 좀 다르다.

자바섬 동쪽에 위치한 수라바야는 자카르타를 비롯한 자바 전 지역에서 이리인자야로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비행편수가 많다고 한다. 발리 덴파사보다 더 용이하기 때문에 수라바야로 가기로 했다.

사실 세계적인 휴양지인 발리는 성수기인 지금 밀려드는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도 없을 것인데 잘 되었다.

숙소에서 마지막으로 동티모르와 이리인자야를 두고 고민했다. 결론은 이미 이리인자야로 기울어진 이상 일단 수라바야로 가서 비행 편을 알아보기로 했다. 수라바야에서도 여의치 않으면 동티모르로 틀기로 했다.

처음 생각한 여행 코스와 완전히 틀어져 앞으로의 여행 일정은 안개 속이지만 두려움 보다는 모험을 한다는 즐거움이 더 앞선다.

앞으로 어떤 모험이 나를 기다릴까?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