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4일(목)

새벽 4시 30분 아우랑가바드에 도착했다. 여지껏 여행하면서 숙소에 가기고 그렇고 다른데 움직일 수도 없는 가장 애매한 시간이지만 인도 여행만큼은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모든 역에 전용 휴게실이 있어 그곳에서 시간을 떼울 수 있기 때문이다.

휴게실에서 한국인 여행자 5명과 만났다. 다들 대학생으로 각자 여행을 하다가 만나 같이 여행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대학생들과 이야기를 했는데 그 중 한 학생이 이번에 마지막 여행이 될 거라면서 돌아가면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한다고 말한다. 군대에서 막 제대하고 대학생활에 꽃을 피울 때인데 공무원 시험 준비로 들어서는 것이 안타까워 젊었을 때 할 일이 많다고 이야기 하며, 코이카를 비롯한 국제 사업에 관한 조언을 하니 그 청년은 새로운 길을 알았다며 고마워한다.

취업이 힘들고 경제가 어려운 지금 시점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무작정 공무원 시험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데 이들에게 세계로 눈을 돌려보면 어떨지 권하고 싶다. 오지 여행을 하면서 견문을 넓히고 자원 봉사와 유학을 통해 그 지역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가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니 나도 대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나이가 되었구나. 처음 여행할 때는 항상 막내라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듣고 먹을 것도 많이 얻어먹었는데 이제 반대가 되었구나..    

2002년 첫 해외여행 때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기대감에 들 떠 있었는데 어느덧 베테랑 여행자가 되어 있는 나를 발견 한다.

휴게실에서 우리나라 배낭 여행자들에 대해 정의해 보았다.

1세대는 여행 자유화 전 서른 가지가 넘는 서류를 작성하고, 반공 교육을 받으며 배낭여행을 개척했던 개척자 세대가 아닌가싶다. 이 세대의 대표적인 여행가는 지금은 돌아가신 김찬삼 교수님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1세대 여행은 그 당시 젊은이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으며 신문에서도 1주일에 한번 여행기가 올라왔던 것이 기억이 난다.  

2세대는 1993년 여행자유화가 되었던 것을 계기로 많은 여행가들이 유럽, 동남아를 여행하면서 배낭여행이라는 문화가 형성이 된 세대이다. 이 때 많은 대학생들이 여행을 시작했으며 세계 일주를 하는 사람들이 생기기도 했다. 또한 중국과 수교를 맺으면서 많은 여행자들이 삼국지와 실크로드의 향기를 찾아 중국을 여행하기 시작했다. 책은 물론 TV 프로그램에서도 여행을 다루기 시작했다.

3세대는 1999년 다음 카페가 생겨 여행에 관한 커뮤니케이션이 형성되면서 누구나 손쉽게 여행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 시기이다. 각 지역별로 인터넷 모임이 만들어졌으며 지금의 대부분의 거대 여행 카페가 이때 생겼다. 미지의 세계를 찾아서 오지 여행을 떠나는 여행자도 생겼으며(내가 포함^^) 또한 여행을 개인 홈페이지와 블로그에 올리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4세대는 여행에서 벗어나 유학과 해외 봉사, 키부츠, 워킹 할리데이 등 다양한 형태의 국제 활동으로 승화 된 시기이다. 여행가들이 있기는 하지만 예전처럼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하며 각 개인별로 자신만의 여행 스타일로 여행을 하게 된다.

지금껏 눈부신 발전을 한 여행문화가 모든 분야가 그렇듯 앞으로는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을까 싶다. 한국인 여행자를 등쳐먹고 교민 사회를 물 흐리는 사람들이 나타 난 것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이며, 현실 도피를 위해 고국에 돌아오지 않는 소토코모리가 사회 문제화 되지 않을까 싶다.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 여행 세대는 빠르게 돌아감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결혼을 비롯한 사회적 제약 때문에 지속적으로 여행을 하지 못함이 그 원인일 것이다. 현재 3세대에서 주로 활동했던 여행가는 거의 퇴장을 한 분위기이다. 그 끝머리에 지금 내가 서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언젠가는 퇴장을 해야겠지.

8시에 기차표 예약 창구가 열려 아잔타 석굴 북쪽의 잘가온(Jalgaon)에서 아그라(Agra)로 가는 기차표(436Rp)를 예약했다. 인도는 예약이 전산화 되어 있어 어느 역이든 원하는 기차표를 살 수 있는 시스템이다. 잘가온에서 16:50에 출발해 다음날 새벽 06:40에 도착하는 기차표를 구입했다. 오늘 엘로라 석굴을 보고 내일 아잔타 석굴을 본 다음 잘가온으로 넘어가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로 가기에 딱 좋은 스케줄이다.

기차편이 확정 된 다음 걸어서 버스터미널로 가 엘로라 석굴로 가는 버스(20Rp)를 탔다.    엘로라 동굴사원은 아잔타 동굴 사원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되어 있으며 아우랑가바드에서 30Km 떨어져 있는 곳으로 고대 건축 양식의 절정을 보여주는 곳이다.

5세기에 걸쳐 만들어 졌으며 총 34개의 동굴로 구성되어 있다. 12개는 불교(600년~800년), 17개는 힌두교(600년~900년), 5개는 자이나교(800년~1000년)로 각기 다른 시기에 융성했던 종교가 경쟁적으로 동굴 사원을 지었음을 알 수 있다.

동굴 사원은 건물을 바위 자체를 깎아 만들어야 함으로 건물을 세우는 작업보다는 시간과 노력이 훨씬 더 드는 작업이다. 이와 비슷한 유형의 사원으로 에티오피아를 여행했을 당시 경탄해 마지않았던 라리베라 석조 교회가 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배나을 맡기러 매표소를 찾았다. 입구에서 주차요원에게 매표소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니 이미 검표하는 곳을 지나쳤음으로 표를 안사도 된다고 이야기 한다. 무슨 말이지? 론니에는 분명 카일라스 사원 근처에 매표소가 있다고 했는데..

  주차요원은 매표소가 얼마 전에 바깥쪽으로 이동했다면서 그냥 들어가라고 한다. 그걸 모른 상태에서 당당하게 안으로 들어갔기에 검표원은 뭔가를 두고 나간 관광객으로 알고 가만 두었나 보다. 250Rp가 굳혀지긴 했지만 운이 좋았을 뿐임으로 다른 분들에게는 권하지 않은 방법이다.

인도의 유적지는 내국인과 외국인 입장료가 차별이 크다. 엘로라 석굴만 하더라도 내국인은 10Rp인 반면 외국인은 250Rp를 내야 한다. 외국인에게 비싼 입장료 수입을 얻으려는 의도 인 것 같다. 15세 이하는 모든 입장료가 무료이기 때문에 지난 11월 뮤지컬부 학생들을 데리고 인도 공연을 왔을 때 아이들은 무료로 델리 유적지를 볼 수 있었다.

엘로라의 34개의 동굴은 각기 번호가 매겨져 있는데 유적 군에 들어서자마자 16번 동굴인 카일라사 사원(Kailasa Temple)과 마주친다. 카일라사 사원은 760년 라슈뜨라꾸따 왕조의 크리슈나 1세가 시바의 거처인 카일라스산을 상징하기 위해 만든 사원으로 당시 7000명의 일꾼들이 1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바위에 새겼다. 론니에는 한 덩어리의 바위를 이용한 조각품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하는데 직접 탐사를 해보니 에티오피아의 라리베라 석조 교회가 규모는 더 큼을 알 수 있다. 여행을 많이 하다 보니 유적 설명에 대한 과장 된 면도 집어 낼 수가 있는 내공이 생겼다.^^

사원의 꼭대기는 신의 산이라 불리는 카일라스 산을 상징하는데 실제로 2003년 서부 티벳을 여행 할 때 고생스럽게 여행하면서 카일라스 산을 도달한 경험이 있기에 감회가 새로웠다. 카일라스 산을 여행할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훗날 앙코르와트 사원을 비롯한 힌두유적과 유명 불교유적을 볼 때 카일라스 산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진정으로 신성시 되는 산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카일라사 사원은 고대 산스크리트 서사시인  라마에나와 마하바라따 등 힌두교의 대서사시를 묘사했다. 사원 자체도 볼거리 이지만 사원 주변으로 2층에 이르는 통로도 가볼 만하다. 단 어둡기 때문에 계단에서 굴러떨어질 위험이 있다.

다음은 남쪽으로 발길을 돌려 불교 유적 군인 1번 동굴 쪽으로 이동했다. 1번 동굴은 곡물창고로 추정이 되며 바위에 큰 공간이 있을 뿐이다. 2번 동굴은 부처의 좌불상이 특징인데 부처의 모습을 보니 우리와는 달리 마른 체형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3번 4번 동굴에도 석상들이 보이지만 완성되지 않은 모습이라고 한다. 5번 동굴은 집회공간으로 사용 되어었다. 너비 18m 높이 36m로 불교 동굴 중에는 가장 큰 규모이다. 이곳에 세워진 기둥은 모두 바위를 깎아서 만들었다.    

6번 동굴은 불교의 배움의 여신 중 하나인 마하마유리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화려하게 장식했으며 7번 8번은 엘로라 사원에서 유일하게 성소와 후벽이 떨어져 있다.

10번 동굴은 훌륭한 발코니가 보이며 천장은 아치형으로 이뤄져 있다. 안쪽에는 거대한 부처 형상이 보인다.

11번은 3층으로 된 동굴로 같은 시기 힌두 동굴보다 더 웅장하게 짓기 위한 산물이다. 커다란 외관과 달리 안에는 볼 것은 없었다.

12번 동굴은 안마당을 통해 갈 수 있으며 벽면에는 거대한 부조가 새겨져 있다.

13번부터는 힌두교 유적이다. 13번은 1번과 마찬가지로 곡물창고로 쓰이기 위해 팠다. 14번 동굴은 불교 동굴이었지만 7세기경 시바를 모시는 힌두 사원으로 바꿨다. 15번은 엘라라의 최고 석굴 중 하나라 시바신, 비슈누와 브라흐마 상을 볼 수 있다.

15번을 보고 나서 처음 봤던 16번 카일라사 사원으로 돌아왔다. 지금껏 배낭을 맨 채 불교 유적을 봐서 그런지 어깨가 약간 저리다. 잠시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는데 5Rp를 받는다.

발길을 북쪽으로 돌려 1Km를 걸어 자이나교 동군 사원군으로 갔다. 자이나교 사원은 5개이며 불교, 힌두 사원에 비해 예술적인 면에서는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34번 사원은 큰 규모로 많은 조각상이 있다. 33번 역시 잘 조각된 조각상이 있다. 다른 동굴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벽화의 흔적이 보이기도 하지만 거의 소실 된 분위기이다.

31번과 32번은 이어진 동굴이다. 인드라 사바로 불리는 32번 동굴은 자이나교 사원 중에서 가장 훌륭하며 1층은 카일라사 사원과 비슷한 분위기이고 2층은 화려하며 장식이 많이 있다. 성지 내부는 자이나교의 창시자인 마하비라 좌상이 있다.

30번 동굴은 다른 자이나교 동굴과 떨어져 있으며 카일라사 사원을 어설프게 모방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관광객이 아예 보이지 않는다. 30번은 사원들 중에서도 왕따 사원이다.

  힌두교 사원군까지 오던 길로 가려면 꽤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30번 사원에서 산을 가로질러 갔다. 도중에 한국인 여성 여행자를 만났는데 꽤 힘든 표정으로 자이나교 사원 쪽이 어떤지 물어본다.

“글세요? 제가 보기엔 다 같은 사원인 것 같은데.. 나중에 후회가 될 것 같으면 쭉 가시고 아니면 돌아가세요. 여행은 노가다가 되면 안 되니까요.”

웃으며 대답하니 여성 여행자는 고개를 잠시 갸웃 거리더니 자이나 사원쪽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샛길로 걸어가니 29번 사원이 나온다. 큰 조각상이 있으며 꽤 큰 규모이다. 29번 사원 옆면에는 다른 사원으로 가는 계단이 있는데 경사가 가파름으로 조심해야 한다. 큰 U자형 절벽에 수도원이 모여 있다. 22번에서 28번까지가 거기에 속한다. 수도원이라고 해도 내부에는 조각상들을 볼 수 있다. 21번 사원은 라메스바라로 알려져 있으며 이 부근에서는 큰 규모의 사원에 속한다.

사원을 다 둘러보고 입구에 나와 식당에서 점심 식사(70Rp)를 했다. 돌아가는 길에는 합승 지프를 탔다.(16Rp) 버스보다 빠르게 갈 줄 알았는데 사람을 많이 태우고 다니느라 좁게 갔으며 시간도 많이 걸렸다.

아우랑가바드 진입하는 사거리에서 내려 곧장 유스호스텔로 향했다. 유스호스텔은 하루 숙박이 70Rp(1850원)으로 저렴하며 모기장이 있기 때문에 모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체크인을 하려는데 여권 카피와 비자 카피가 필요하다고 한다. 시내 입구로 진입하는 사거리로 나오면 대각선으로 건너편에 큰 나무가 있는데 나무 밑의 가게에서 복사를 할 수 있다.

자리를 정리하고 샤워를 하려고 하는데 “혹시 한국인이세요?”라 묻는 이가 있다. 여성 여행자로 꽤 오래 인도를 여행한 여행자 같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고 1시간 뒤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이름은 이미연으로 대학교 4학년을 다니다 휴학하고 있으며 4개월째 인도 여행을 하고 있는 대단한 학생이다. 남인도를 여행하면서 쭉 한국인을 못 보다가 오늘 처음 봤다면서 꽤 반긴다.

미연이는 1달 반 동안은 인도 현지에서 삼성 관계자들과 일하면서 통역을 했으며 일을 마치고는 쭉 인도여행을 하는데 그동안 고생한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내가 아직 슬리퍼가 준비되지 않아서 슬리퍼를 사러 둘이 시내에 나가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꽤 발랄한 아가씨로 집에서 인도 여행을 반대 했음에도 불구하고 인도여행을 한다고 하면서 앞으로 해외에서 큰 사업을 해서 성공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미연이를 보면서 과연 신세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난 구세대인가.. ㅜㅜ

아직 낮이라 시장이 문을 열지 않아 슬리퍼를 사지는 못했다. 과일을 사서 숙소에 돌아오니 일본인 여행자들이 유스호스텔로 들어온다.

일본 여행자 중에 한명이 ‘혹시 한국인 인가요?’묻는다.

일본인과 섞여 있던 한국인 여행자로 대학교 4학년을 휴학하고 있다. 그 학생은 빵 신봉자로 빵을 값싸게 먹기 위해 인도를 여행하는 특이한 친구이다. 세달 동안 여행 중인데 유적지 보다는 빵에 관심이 많으며 빵이 없으면 못 산다고 이야기 할 정도이다.

그 친구가 인도인과 신에 대해서 이야기 했던 내용을 들려주는데 꽤 재미있다. 인도는 워낙 많은 신이 있기 때문에 각자 섬기는 신에 대해 이야기 할 때가 많다. 한 인도인이 어떤 신을 섬기는지 물어 봤을 때 자신은 ‘뚜레주르’신을 섬김다고 하며 뚜레주르신은 매일 아침 마다 신선한 빵이라는 축복을 주며, 생일이나 결혼식 때는 축복해주며(생일, 결혼식 케이크), 신을 잘 섬기면 누적(마일리지)이 돼서 축복을 내려준다고 이야기 한다.

그래서 인도인 반응이 어떤지 물어보니 ‘나 그 신 어머니에게 들어 본 적 있어.’라고 답했다고 한다.

아무튼 빵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특이한 친구이다.

미연이와 나 그리고 빵친구(이름을 안 물어봤음) 셋이서  론니에 나와 있는 좋은 피자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러 시내로 나섰다. 물론 빵신을 섬기는 친구를 위한 배려이다.  

셋이서 걸어가면서 인도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인도는 여행자들에게 많은 추억을 안겨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스호스텔에서 동쪽으로 두 블럭 걸어가면 Swad Veg 레스토랑이 있는데 피자가 꽤 먹을만하고 가격도 50Rp로 져럼한 편이다.

식사를 마치고 북쪽의 주마 바자르로 갔다. 바자르를 구경하면서 슬리퍼를 가격을 높게 부른다. 깎으려고 하면 요지부동이고 돌아서면 갈 테면 가보라는 식으로 잡지를 않는다. 중국 같으면 물건을 팔려고 필사적으로 잡으며 깎아 줄 텐데 인도에서는 물건을 사지 않는 사람은 나와 인연이 되지 않는 걸로 여겨 붙잡지 않는 편이라고 한다.

시장 구경을 하고 역으로 가 기차표를 알아보려고 하는데 이미 문 닫았다. 대신 근처의 과일주스 가게에서 시원한 과일 주스(15Rp)를 마시며 이야기를 했다.

미연이와 나는 내일 아잔타 석굴로 가야 하기 때문에 근처 가게에서 빵을 사들고 유스호스텔로 돌아왔다.

유스호스텔에서 카메라 충전을 하려고 하니 10Rp를 내라고 한다. 며칠 동안 충전할 기회가 많지 않음으로 10Rp를 내고 충전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