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8일(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 된 카주라호는 에로틱한 조각으로 유명하다. 인도의 성의 참고인 카마수트라의 발생지이기도 하다.

카주라호는 달의 신 짠드라가 개울에서 목욕을 하다가 아름다운 처녀의 몸으로 잉태한 아들이 카주라호에 만들어 졌다는 전설이 있다. 85개의 사원들 대부분은 950에서 1050년 사이에 지어졌으며 싼델라 왕조가 수도를 마호바로 옮길 때까지 활발히 이용되었다.

그 후 이곳의 존재를 잊었기에 무슬림들의 사원 파괴를 모면할 수 있었으나 오랜 방치는 폐허가 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1838년 영국인 관리가 발견하면서 카주라호는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뭐.. 길게 설명할 것 없고, 한마디로 이곳에서 유명한 것은 노골적인 성행위를 담긴 조각들이다. 또한 당시의 생활상을 담은 조각들도 온전히 남아있다.
카주라호는 크게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하는 서쪽 사원군과 마을 곳곳에 위치한 동쪽 사원군으로 나눠진다.

어제 밤늦게까지 어울렸던 오미연샘, 윤길옥샘과 함께 호텔 밖을 나서니 청년 한명이 따라 붙어 안내를 해준다. 두 샘은 어제 서쪽 사원을 받기 때문에 오늘은 마을에 있는 동쪽 사원으로 향했다.

동쪽 사원으로 가는 길은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빨래를 하고 있는 사람부터 한적하게 쉬고 있는 노인네까지.. 그렇게 마을을 가로질러 호수 옆의 브라흐마(Brahma Temple)에 도착했다. 서기 900년 경에 세워진 사원이며 브라흐마는 힌두교 신의 이름인데 원래는 비쉬뉴 신이 봉헌 된 곳인데 성소에 새겨진 남근상 4개 때문에 브라흐마로 이름이 잘 못 붙여졌다. 사원 앞에서 노는 아이가 짓궂은 표정으로 나를 안내하는데 야한 조각이 보인다. 어린애가 벌써부터 밝히다니..

마을 사람들 중에는 나를 보면 ‘쏘니아’라고 외치며 노래를 부른다. 어제 호텔에서 8년전 티벳에서 들었던 쏘니아 노래를 불렀는데 그게 이 마을 사람들에게 퍼졌나보다. 하긴 갑작스럽게 나타난 외국인이 흘러간 노래를 부르는데 나 같아도 재미있겠다. 그렇지만 소문이 너무 빠른 것을 실감했다.

다음은 자바리 사원(Javari Temple)이다. 1075년에서 1100년에 만들어진 사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악어조각이 보인다. 성소에 모셔진 신의 머리가 잘린 채 있어 섬뜩한 느낌이 든다. 사원벽에는 많은 여인 조각이 있는데 섹시미와 가슴을 특히 강조한 것이 보인다. 길옥샘이 특이한 포즈로 사진을 찍으라고 요구한다. 이렇게 같이 다니니 독사진 찍을 걱정을 하지 않아서 좋다. 사원 주변의 호수는 건기라 그런지 말라있으며 그 주변을 소들이 유유히 풀을 뜯고 있는 풍경이다.

다음 사원으로 가는 길에 크리켓을 하는 청년들이 있어 잠시 참여했다. 야구와 비슷할 줄 알았는데 공을 맞추기가 꽤 어렵다. 잘 못해서 공에 맞으니 꽤 아프다. 여행 전 크리켓 규칙을 제대로 조사 했으면 게임을 즐길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바마나 사원(Vamana Temple)은 큰 규모이며 작은 코끼리상이 곳곳에서 보인다. 묘한 포즈의 여인상이 인상적이다.

발길을 남쪽으로 돌려 자이나교 사원군으로 갔다. 간타이 사원(Ghantai Temple)이 그 첫 타자인데 기둥만 남아있으며 그마저도 문이 잠겨 있어 볼 수가 없다. 그대로 Pass!

주변에는 유채꽃과 비슷한 색깔의 꽃이 만발해 있고, 사람들은 저마다 몸을 씻고 있다. 간밤에 날씨가 춥기 때문에 따뜻한 낮에 몸을 씻는다는 추측을 했다.

남쪽의 세 사원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 산티 나쓰(Shanti Nath) 사원을 먼저 들어갔다. 하얀색의 아름다운 사원으로 내부에는 1027년에 세워진 4.5m 높이의 아티나트 상이 있는데 너무 노골적(?)이다.

자이나교 사원군의 하이라이트 빠르스바나트 사원은(Parsvanath Temple) 규모가 큰 사원이다. 이곳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발에서 가시를 빼는 여인과 눈화장을 하는 여인상인데 특히 눈 화장을 하는 여인상은 약 1000년 후의 내가 봐도 가슴을 설레게 할 정도로 섹시한 모습으로 남정네를 유혹한다.

빠르스바나트 사원 바로 옆에는 아디나트(Adinath)는 규모는 작지만 다양한 표정의 여인상이 눈길을 끈다.

다시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2.5m 원숭이신의 조각이 있는 하누만 사원(Hanuman Temple)에 들렸다가 시내로 나와 점심 식사를 했다.

Ganesh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는데 주변에 비해 비싼편이지만 그래도 숙소 레스토랑 보다는 저렴하다고 한다.

시내에는 한글로 된 간판이 많이 보인다. ‘전라도 밥상’, ‘’아씨 식당‘등 재미있는 한글 간판으로 한국인 여행자를 유혹한다. 실제 한국 음식을 하고 있으며 가격도 그렇게 비싸지 않다고 한다.

카주라호 아니 인도 전역에 한국 여행자들이 많이 보인다. 오히려 일본인을 거의 볼 수가 없다. 덕분에 동양인을 볼 때마다 일본인으로 물어보는 것보다
“친구”, “총각”등 친숙한 우리말로 부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점심 식사 후 오전에 함께 동행 한 두 선생님과는 잠시 이별하고 혼자서 서쪽 사원군을 둘러보러 나섰다.

동쪽과 달리 서쪽 사원군은 한 곳에 몰려있기 때문에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사원을 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입장료는 250Rp 인데, 500Rp짜리 지폐를 주니 잔돈이 없다고 하며 나중에 받으러 오라고 말한다. 혹시 모르기에 사인을 받아 놓았다.(결국 나중에 받았음)
사원군 전체는 잘 꾸며진 정원으로 여기저기 사원이 보인다. 락슈미(Lakshmi)와 바라하(Varaha)는 작은 규모의 건물로 바라하의 강렬한 포스를 뽐내는 멧돼지가 인상적이다. 커다란 락슈마나 사원(Lakshmana Temple)은 954년 완성 된 사원으로 본격적으로 에로틱한 조각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에로틱한 조각 이외에도 각종 신들이 새겨진 상부터 시작해서 사람들의 일상생활, 전쟁 등 다양한 종류의 석상을 볼 수 있다.

깐다리아-마하데브(Kandariya-Mahadeva Temple,)는 1025년부터 1050년 사이에 지어졌으며 30.5m의 높이를 자랑한다. 가장 큰 규모이며 짠델라 건축 예술의 최고봉이다. 사원 안의 조각상들도 스케일이 큰데 1m 높이의 상들이 872개가 있다. 가장 노골적인 에로틱 조각상을 비롯한 다양한 조각상들이 눈길을 자아내게 한다.

무너진 Mahadeva을 지나 데비 자가뎀바(Devi Jagadamba)는 검은 때를 벗겨내는 작업이 한창이다. 마찬가지로 에로틱하 조각들이 많이 있고 사원둘레에는 비슈누, 쑤라쑨다리, 미투나가 있다.

차뜨라굽타(Chitragupta) 인도북부 사원들 중에 희귀하게도 태양의 신 수랴에 봉헌된 곳으로 코끼리 싸움과 사냥, 돌을 나르는 행렬 등이 있다. 이곳에서는 머리가 11개 달린 비슈누신상이 유명한데 어디 붙어 있는지 몰라 경비원에게 물어보니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한참을 찾고 있으니 무엇인지 알았다는 듯 경비원은 비슈누 상이 있는 곳으로 데려간다. 모서리 부근에 비슈누 상이 있는데 많은 머리와 더불어 웅장한 모습이다. 과연 찾은 보람이 있었다.

발길을 돌려 입구쪽으로 향하는데 30~40명 되는 무리들이 지나간다. 한국인 단체 관람객인데 바라나시에서 비행기를 타고 내리자마자 사원을 둘러보는 중이라고 한다. 단체 관람객들까지 올 정도로 인도에서의 한국인의 보폭이 넓음을 실감했다. 빠르스바나스 사원(Parsvanath Temple)은 지금껏 보았던 사원과 별반 다를 게 없는 분위기이다.

비시바나트 사원(Vishvanath Temple)과 이어진 난디 신전(Nandi Shrine)은 1002년에 세워진 것으로 코끼리상들이 배치 된 것을 볼 수 있으며 아기와 놀고, 악기를 연주하고, 일을 하는 등의 일상생활을 다룬 소제가 정겹다. 이곳에는 작은 석상들의 에로틱을 볼 수 있는데 그 어느 사원보다도 더 노골적인 에로틱상이 있어 낯 뜨거운 사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쪽 사원을 다 둘러보니 오후 4시 30분이다. 근처에 박물관이 있지만 오후 5시면 문을 닫음으로 서둘러야했다.

박물관은 사원에서 100m 정도 남쪽에 있으며 서쪽 사원 입장권이 있으면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다. 초기 부처상을 비롯해 각종 힌두교 신의 조각상이 있으며 특히 춤추는 가네시 상이 인상적이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현재에도 유일하게 사용되는 마땅게스바라(Matangesvara)는 기도하는 인파로 북적인다. 사원 내부를 보고 싶지만 기도 하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 것 같아 호수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저녁무렵이라 호수는 고요하고 주변 마을은 평화롭다. 시내에서는 좀 떨어진 짜우싸트 요기니(Chausath Yogini)로 가는데 한 아이가 영어를 배우고 싶다며 나에게 접근한다. 그는 어제 ‘쏘니아’를 부른 한국인이 맞는지 물어본다. 어제 이곳 사람들의 향수를 일깨운 덕분에 유명인사가 되었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짜우싸트 요기니는 9세기에 지어진 사원으로 도착하니 폐허이다. 언젠가는 이곳도 복구가 되겠지..

오늘 하루 동쪽과 서쪽 사원을 다 둘러보았다. 분주했지만 만족할만한 성과이다. 호텔에 돌아와서 오전에 함께했던 여선생님들과 식사를 하고 일상의 이야기를 했다.

처음 인도에 와서 한국인이 많이 발견했을 때에는 남들 많이 오는 곳에 왔다는 실망감이 앞서기는 했지만 덕분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접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고쳐졌다. 누구나 여행지에서는 솔직하고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물론 가끔 사기 치는 사람이 있어 문제가 되지만..

내일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땅 바라나시로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