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4일(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나 대사관을 찾으러 호텔을 나섰다. 오늘이 금요일이기 때문에 오늘 받지 못하면 월요일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비자를 오늘 받아야 하기 때문에 대사관에 일찍 방문하여 잘 이야기 해 볼 셈이다.

버스를 타고 대사관으로 가는 일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영어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물어보기도 힘든 상황이다.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어렵사리 82번 버스를 타고 아자메(Adjame) 데플래투(Duex Plateaux) 지역으로 이동을 했다.

그런데..

앞주머니에 넣었던 카메라가 없어졌다. 다시 뒤져봐도 없는데..

아무래도 소매치기를 당한 것 같다.

깜짝 놀람과 동시에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앞을 바라보고 있는데도 잠깐 정신을 판 사이 카메라를 꺼내 간 실력이 정말 경탄 할만하다.(젠장... 사실 욕 나온다.)

정말로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아침에 카메라를 넣은 그 자리에 여권과 돈(미화 1600$)을 둘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바쁜 와중에 그냥 카메라만 넣었는데 만약 대사관으로 출발 전 모두 다 집어넣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카메라를 잃어버리고 무엇보다 그 안의 사진이 날라 갔다는 생각에 잠시 슬픔에 잠기고 나서 다시 정신을 차렸다. 카메라는 잠시 잊기로 하자.

오늘은 어떻게든 가나 비자를 받아야 하지 않는가?

영어가 약간 통하는 현지인의 도움으로 세어택시(정해진 구간을 여러 사람이 함께 타는 택시)를 타고 대사관 근처 도로까지 갈 수 있었다.

대사관까지는 함께 탄 여학생이 안내해 주었다. 정말 친절한 사람들이다.

혹시 아비잔을 여행할 사람이 있으면 절대 버스를 이용하지 말기를 바란다. 아비잔은 최악의 치안 상태라고 소문만 무성했는데 스스로 당해보니 실감을 할 수 있었다.(대단한 실력이다.)

가나대사관은 오전 8시 30분에서 11시까지 비자 신청을 받고 오후 3시에서 4시 사이에 비자 발급을 받는다.

신청서를 4장을 써야 하는데 그리 어렵지 않다. 무엇보다 업무를 하는 여직원이 친근하기 때문에 웃으면서 도와줄 것이다.

비자피는 15000CFA인데 달러로 낼 수 없는지 물어보니 불가능하다고 한다. 근처 은행으로 가서 환전을 했다.

환전은 1$당 421CFA이다. 어제 공항에서 환전한 환율이 맞는 환율이다.

은행 직원에게 물어보니 작년에 1$에 553CFA이었는데 달러화의 약세로 무려 25%나 평가 절상 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는 여행 물가도 25%나 올랐다는 이야기이다. 우리 돈으로는 CFA에서 2.2배를 곱해서 환산하면 된다.

100$를 환전한 다음 가나 대사관에 가서 비자피를 지급했다.

혹시나 새로운 디카를 구할 수 있을까 시내를 돌아다녔지만 이름 모를 회사의 철지난 디카가 17500CFA를 한다. 40만원 가까이 되는 돈이다. 아무래도 사진기는 가나 아크라에 가서 사야할 듯하다.

시내의 대형 마켓에 들어가 500ml 콜라 가격을 살펴보니 370CFA.. 우리나라보다 더 비싸다. 다른 음료수도 비슷한 수준이다.

낮이 되자 날씨가 무척 덥다. 길에 돌아다니는 것보다 어딘가에서 쉬고 싶은데..

숙소로 돌아가 또 이곳을 찾기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숙소 찾으러 가는 것도 문제인 상황이다.

다시 가나 대사관으로 가서 여직원에게 3시까지 대사관에서 기다릴 수 있는지 물어보니 대기실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대기실에는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어져 있어서 책을 보면서 시간을 떼울 수 있었다.

오후 3시가 되자 ‘찬수~’라는 소리가 들린다.

친절한 여직원이 비자가 나왔다며 웃으면서 여권을 건낸다. 기념으로 내 증명사진을 주니 꽤 기뻐한다.(증명사진은 사진빨로 꽤 잘 나왔음.)

다음 목표는 최대한 아비잔을 빠져나오는 것이다. 호텔 체크아웃을 안 했기 때문에 얼른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갔다. 택시비는 1500CFA.. 우리 돈으로 3300원.

가나 방향으로 가려면 아비잔의 서쪽으로 가야하는데 서쪽으로 가는 차량은 아비잔 시내 남쪽의 바쌈(Gare de Bassam)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서둘러 떠나야 한다.

호텔 직원은 꽤 늦은 시간에 체크아웃을 하는데도 친절히 플래투(Le Plateau) 지역으로 가는 택시를 안내해준다.(택시비 1000CFA)

택시를 타고 플래투 지역으로 가다보니 사거리 한가운데서 잡상인들이 전자 제품을 비롯한 장물(훔친 물건)인 것 같은 물건을 운전자들에게 팔고 있다. 내 카메라도 저 신세가 되었겠지?

그런데 내 껀 팔아봤자 얼마 안 나올 텐데.. 험하게 써서 겉면에 흠집도 많이 나갔고 무엇보다 배터리 충전기가 나한테 있어서 살 사람도 없을 텐데.. 차라리 나한테 다시 파는 건 안 되나?

플래투와 시내 남쪽을 연결하는 큰 다리가 있는데 다리가 시작되는 지점에 중앙 우체국이 있다. 한국으로 엽서를 부치는데 700CFA이다. 론니에는 엽서가 도착하려면 1달 정도 있어야 하는데 과연 무사히 도착이나 하려나?

걸어서 다리를 넘으니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아프리카의 파리라고 불릴만하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백작 부인을 연상할 만한 풍광이다. 아.. 사진에 담아야 하는데..

아 참.. 사진기가 하나 더 있지!

바로 휴대폰이다. 출국 직전 정지를 시킨 후 계속 꺼 놨는데 이럴 때 요긴한 사진기기 될 줄은 상상이나 했으랴.

많은 사진을 찍지는 못하지만 아크라에 도착할 때까지는 몇 장 정도는 찍을 수 있을 것이다.

다리를 건너고 사람들에게 바쌈으로 어떻게 가는지 물으니 버스를 타라고 한다. 버스(200CFA)를 타고 바쌈에 도착하니 수많은 차량과 사람이 몰려있다.

가나 국경으로 가는 차량을 알아보니 오늘은 없을 거라고 한다.

어떻게 하지?

한참 고민하고 있는데 가나로 향하는 흑인 여행자와 마주쳤다. 나이가 지긋한 분으로 가나 인이라고 말하며 영어가 통하지 않아 고생을 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코트디부아르 사람과 똑 같이 생겼는데 국경하나 차이로 의사소통이 안 되니 신기하다. 아참! 우리도 그렇지.^^(일본, 중국, 한국)

결국 가나 국경으로 가는 것은 힘들고 국경에서 1시간 반 거리인 아보쏘(Aboisso)까지 가는 차량은 지금도 출발한다고 말한다.

바쌈 남서쪽 정류장에 아보쏘로 떠나는 차량이 있는데 1900CFA 티켓을 끊어야 한다. 정찰제이니 외국인이라 거짓말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짐을 실으니 100CFA를 더 받는다.

차량 안은 좁기는 하지만 그래도 오늘 아비잔을 떠난다니 홀가분하다.

이곳에서 이동하는 차량은 푸조 차량으로 사람이 모두 찰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고 출발한다.

사람이 모두 차고 서서히 떠나기 시작한다.

시내를 벗어나면서 아비잔의 풍경을 눈에 들어온다. 복잡하고 분주하기는 하지만 도시가 아름답고 사람들도 친절하다. 카메라만 소매치기 당하지 않았으면..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카메라를 잃어버리는 데에는 내 잘못이 크다.

평소 교실에서 돈을 잃어버린 아이에게 잃어버린 사람이 더 잘못했다고 강조한 내가 아닌가? 선생님인 내가 더 실천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잠시 주유를 할 때 기름 값을 보니 1L에 545CFA다. 우리나라만큼은 아니지만 이곳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봤을 때 어마어마한 가격이다.

2시간 반 정도를 달려 아보쏘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반겨준 곳은 흑인풍의 레게음악이다. 아비잔을 비롯해서 어디를 가나 신나는 리듬의 음악을 들을 수 있으며 사람들의 복장이 칼라풀 한 것을 보아 이곳 사람들이 긍정적이고 명랑하게 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외국인인 나를 대할 때 항상 신난다는 표정으로 대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아참.

아까 함께 하게 된 노인은 가나 여행자로 이름이 잭슨이다.(어디서 많이 들어봄) 라이베리아에서 가나로 여행 중이며 집은 아크라라고 말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잭슨 할아버지가 나에게 대하는 것이 유럽인과 같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잭슨 할아버지와 함께 숙소를 찾았다. 시내 북쪽에 있는 호텔이 8000CFA이다. 잭슨할아버지와 난 4000CFA씩 내어 방을 잡았다.

잭슨 할아버지는 51살로(할아버지도 아니네?) 사진과 음악을 한다고 말한다. 특히 레게음악을 하는데 돈이 없어 음반을 내지는 못했다고 말한다.

잭슨 할아버지와 서아프리카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서아프리카 역사를 알고 있는데 대해 많이 놀라는 눈치이다.

나와 잭슨 할아버지의 잠깐 대화이다.

‘잭슨. 서아프리카는 8세기 이전의 역사가 없는 것이 많이 아쉽네요. 최초의 가나 제국도 결국 아라비아인의 기록이잖아요. 스스로의 역사 기록이 없네요.’

‘그러게 그 점은 나도 무척 아쉬운 점이지. 하지만 자손 대대로 이야기를 통해 그 전의 역사가 전해지고 있어.’

‘아 그래요? 그럼 그 이야기들을 모아서 음악으로 만드는 건 어떨까요? 많은 센세이션을 일으킬 것 같아요.’

‘좋은 아이디어네. 하지만 아까 말했다시피 음반을 낼 돈이 없어.’

‘그럼 유니세프의 도움을 청해보는 건 어때요? 유니세프는 문화 복원에 힘쓰는 걸로 알고 있고 실제로 동남아에서 그런 작업을 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내 아이디어가 획기적이었는지 잭슨 할아버지는 소상히 메모를 해 놓는다. 가나로 돌아가셔서 꼭 실천하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루 동안의 일이지만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났다. 카메라를 잃어버린 걸 빼고는 모든 것이 순조롭다. 그러고 보니 여행을 할 때마다 카메라가 한건씩 터트려준다. 지난 이집트 여행 때는 카메라가 망가졌고, 몽골 여행 중에도 부서졌었다.

뭐 어찌되었든 카메라를 잃어버린 것도 타산지석으로 삼고 앞으로 여행하면서 절대 방심하지 말고 주의를 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은 하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