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5일(화)

아가데즈(Agadez)는 말리의 팀북투와 함께 사하라 무역루트의 중심지이지 서아프리카의 관문인 도시이다.

번영했던 시기에는 도시로 낙타 기차와 대상숙소, 노예무역, 금 운송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특히 이곳을 무역하던 상인들은 사하라를 종단하면서 아가데즈를 발견하면 삶의 연장에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으며 그렇지 못한 경우는 이 도시의 이름을 부르며 죽어가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19세기 중반에는 서서히 쇠퇴해 인구가 3000명까지 줄었다가 우라늄의 발견으로 다시 인구가 급속히 증가했지만 1970년대 사헬 가뭄으로 인해 수 천명의 사람들이 떠나갔다.

현재는 투아렉 반군과 정부군간의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우여곡절이 많은 도시이다.

이곳을 찾는 여행자는 극소수인데 그나마도 아이르(Air)산을 트래킹하거나 사막 투어를 위한 프랑스 여행자라고 한다.

이마저도 투아렉 반군이 외국인을 납치하면서 금지되었다고 한다. 아가데즈 이후에는 외국인 출입 자체가 금지되어 있다.

새벽 3시에 호텔을 나와 택시(1000CFA)를 타고 SNTV 터미널로 갔다. 로메, 코토누로 떠나는 버스가 한꺼번에 출발해서 그런지 새벽이지만 복잡하다.

프랑스 아줌마가 어디로 가는지 묻기에 아가데즈로 간다고 하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곳은 지금 위험하니 조심하라고 이른다. 짧은 만남이지만 고마운 마음이다.

버스에 올랐을 때 다행히 세 자리를 한꺼번에 차지할 수 있어서 누울 수 있었다.

잠에서 깨니 반사막인 사헬지역을 한창 지나고 있다. 버스는 구간마다 정차를 하는데 그때마다 물건을 팔려는 이들의 다양한 삶을 볼 수 있는 기회이다.

이곳 버스를 탈 때는 반드시 앞좌석에 앉는 것이 좋다. 마을마다 도로에 큰 턱을 만들어 차량속도를 줄이게 했는데 운전자는 앞바퀴가 통과하자마자 속도를 내기 때문에 뒷좌석은 ‘콰당’하면서 엉덩이가 공중에 부양하기 일쑤다.

외국인은 나 혼자뿐이다가 오후 2시에 브라질 청년 3명이 타면서 늘어났다. 브라질 청년들은 니제르에서 활동하는 NGO로 조사활동을 위해 간다고 말한다. 브라질 출신답게 쾌활한 분위기이다.

아가데즈에 가까워지자 무장경찰들이 호위를 하는데 분위기가 꽤 살벌하다. 끝없는 사막 도로를 달리고 달려 출발한지 14시간이 된 오후 6시가 되어 아가데즈에 도착했다. 니아메에서 1000Km 가까이 달려왔다.

도시 입구에는 검문소가 있는데 그냥 주소만 적고 통과할 줄 알았지만 외국인은 그냥 통과시켜주지 않는다.

나와 브라질인 청년들 그리고 다른 버스에 탔던 프랑스 노부부와 나이지리아인 5명은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계속 검문소에서 기다리게 한다.

결국 버스는 우리 짐을 실은 채 그냥 떠난다.

우리 모두는 경찰서로 호송이 되고 경찰들은 계속해서 여권검사를 한다.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모기가 들끓는 대기실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신세이다.

나이지리아 청년 5명은 아가데즈를 거쳐 리비아로 가는 중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불안한 표정과 복장을 보아 유럽으로 밀입국을 하려다 이곳에서 덜미를 잡힌 게 아닌가 싶다.

같은 외국인이지만 차별이 너무 심하다. 경찰들은 나와 프랑스, 브라질 청년들에게는 웃으면서 친절하지만 나이지리아 청년들에게는 마구 소리를 지르며 때리기까지 한다. 태어난 나라가 달랐을 뿐인데..

두 번째 조서를 썼을 때 경찰은 여권을 오늘 경찰서에 맞기고 내일 찾으러 오라고 한다. 절대 안 될 말씀~

절대 없어져서는 안 될 여권은 절대로 내 품을 떠나게 할 수 없다.

지체 높은 신사가 우리에게 ‘봉주르~’하며 인사를 하며 일일이 악수를 나눈다.

이제 좀 풀리려나..

젠장.. 또 조서를 꾸민다. 세 번째다. 꾸미는 것까지 그렇다 하더라도 부모님 이름까지는 왜 적는지 이해가 안 간다.

브라질 NGO 한명이 나에게 던진 한마디가 꽤 큰 타격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넌 여기 왜 왔어?’

경찰서에 3시간 동안 억류를 당한 끝에 여권을 받고 겨우 풀려났다. 우리 6명(나, 프랑스2, 브라질3)은 짐을 찾으러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프랑스 노부부는 지금 아가데즈의 호텔이 거의 문을 닫았기 때문에 숙소 잡는 것이 부담스러울 거라며 빈 방이 있으니 함께 가자고 말한다.

고마운 말씀이지만 말도 통하지 않고 무엇보다 오늘 아침부터 감기 기운이 있고 이곳에 오면서 더 심해져서 그럴 수는 없었다.

SNTV 사무실에서 짐을 찾고 가장 저렴한 호텔인 아그레뷴(Agreboun) 호텔을 찾으려고 하니 한 청년이 따라온다.

‘너 아그레뷴으로 가?’

청년이 묻기에

‘그랴..’ 라고 대답하니 내 앞으로 걸어간다. 그냥 안내 하는 건 아닐 테고 혼자서도 충분히 찾을 수 있는데.. 에라 모르겠다. 지금은 세상만사 다 귀찮다.

호텔에 가니 주인 청년이 아주 친절하게 맞아주며 정직한 가격 4000~5000CFA에 방을 안내해준다. 뭐 관광객이 끊겼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그런데 앞서간 청년이 자기가 안내해줬다며 2000CFA를 내라고 한다. 그렇잖아도 기분 완전히 다운되었는데 너 오늘 잘 걸렸다.

사람들을 불러 모아 놓고 난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데 왜 쓸데없이 앞에 나서서 돈을 뜯으려 하는지 몸짓으로 이야기 했다.

주인장은 손님이 떠나 갈까봐 쩔쩔맨다. 뭐 알아서 처리하겠지. 휙 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방으로 돌아올 때 심한 폭음 소리가 들린다. 혹.. 테러는 아닐런지. 외국인이 있기에는 너무 위험한 곳이다.

감기가 심해졌다. 더욱 걱정인건 몸이 약해지면 잠재해있던 말라리아가 발병하는 것이 더욱 두렵다. 항공 담요, 두꺼운 옷을 총 동원해서 따뜻하게 자야겠다.

화장실을 가려는데 하늘을 쳐다보니 별빛이 너무나 밝다. 별자리는 평소에 볼 때와 변한 것이 없는데 난 지금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 서 있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는다.

이 고생을 하면서 왜 여기까지 왔을까? 휴.. 편하게 집에 있으면 먹고 싶은 것 먹어가며 편하게 지냈을 텐데. 여행을 하면 한 번씩은 위기가 찾아오는데 지금이 그때가 아닌가 싶다.


1월 16일(수)

아가데즈는 현재 강력한 통제가 이뤄지고 있는데 아이르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투아렉 반군과의 활동으로 외국인에 대한 통제가 엄격하다.

현 상황에서 아가데즈를 찾는 것은 자제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한숨 푹 자고 나니 한결 좋아진 느낌이다. 창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는 순간 강한 햇볕이 나를 반기는데 희망의 햇살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 고생하더라도 즐기면서 여행 하는 거야.

시내의 모든 건물은 흙벽돌로 지어져 있고 3층 이상의 빌딩은 보이지 않는다. 모든 건물의 색깔은 흙색이며 사람들은 저마다의 삶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사막 한가운데 우뚝 선 도시라는 것이 실감이 난다.

먼저 간 곳은 그랜드 모스크이다. 이곳에서는 유명한 건축물 중에 하나로 1844년에 피라미드 형태를 한 첩탑과 목조 비계장치로 완전히 재건설 됐는데 수단 양식 건축물의 본보기가 된다. 안에 들어가 보려고 하니 문이 잠겨있어 특이한 첨탑을 사진에 담기만 했다.

그랜드 마르세(Grand Marche)에는 거대한 시장이 있는데 내부에 들어가면 가지각색의 물건을 사고파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쇼핑을 하지는 않더라도 이곳 사람들이 어떤 물건을 쓰

그동안 사막 지역 여행을 주로 해서 그런지 다른 사막 지역과 크게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인종만 아랍인에서 흑인으로 바꿨을 뿐이다.

아가데즈의 전경을 한번에 볼 수 있으면 좋은데..

마땅한 언덕과 높은 건물이 없는 이상 전경을 보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시내를 동쪽에 높은 건물이 보인다. 수돗물을 모아 놓는 집수장 같은데.. 다가가니 Paix호텔과 연결되어 있다.

좀 부탁해서 저 위에 올라가면 안 될까? 하지만 고분고분 보여주지는 않을 것 같다.

이럴 때 유용한 것이 홈페이지이다.

호텔 지배인에게 노트북에 담긴 홈페이지를 보여주며 이곳 호텔에 정보를 알아보려고 왔다고 하니 반갑게 맞아 준다.

지배인은 호텔에는 손님이 한명도 없다면서 한국 여행자들에게 소개를 부탁한다. 꽤 괜찮은 시설에(수영장 딸려 있음) 바로 옆에는 인터넷과 상점들이 있다. 무엇보다 높은 집수장에서 아가데즈를 한눈에 볼 수 있으니 혹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참고하기 바란다.

Hotel de la Paix
전화번호 (227)-20-44-02-34
싱글룸- 25000CFA, 더블룸-35,000CFA, 스위트룸- 75000CFA
아침 3,000 CFA

집수장에 올라가니 사막 위에 우뚝 선 아가데즈가 한눈에 보인다. 바로 이 풍경이야.~ 연신 감탄을 하며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터미널로 가서 교통편을 알아봤다.

니아메까지 가는 SNTV 버스는 13000CFA, 미니버스는 10000CFA이다. 사람들이 꽉 껴서 가는 지옥 같은 미니버스에 12시간 이상 탈 자신이 없어 내일 새벽 6시에 출발하는 SNTV 버스표를 끊었다. 이곳에서 남쪽 진데르(Zinder)로 가는 차도 있는데 7200CFA이고 역시 새벽에 출발한다.

저녁 식사를 참치 샌드위치를 해먹었다. 빵(300CFA), 참치(1000CFA), 샐러드(350CFA)를 따로 사서 해먹었는데 원래 샐러드 가격이 150CFA이지만 마요네즈를 추가하니 200CFA 더 달라고 한다. 그만큼 공산품은 비싸다. 가격 흥정을 하면서 이제 프랑스어가 귀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좀 산다는 아이들은 가게에서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하거나 TV를 본다. 어릴 적 문방구 앞에 설치된 조그만 게임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축구 열기를 반영하듯 모든 게임이 위닝일레븐이다. 실력발휘를 해볼까?

만만해 보이는 꼬맹이랑 한판 붙으니 주변에서는 외국인이 신기한 듯 몰려들었다. 위닝일레븐이면 꽤 자신 있는 게임인데 3:0으로 졌다.

한판 더 붙어~

오기가 생겨 또 붙었다. 사람들은 외국인인 나를 응원했지만 결국 4:1로 졌다. 이곳 사람들에게 찡그린 표정을 발견할 수 없다.

내가 만약 이곳에 살라면 살 수 있을까? 열악한 환경이지만 그 환경에 맞춰 살아가는 인간의 적응력이 놀랍다. 하지만 문명의 혜택을 이미 본 나에게 이곳에 살라고 하면 그렇게 웃으며 살지는 못할 것이다.

사람의 본능이란 그런 건가 보다. 한번 편한 것을 경험하게 되면 더 편한 것을 추구하려고 하고 그래서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여행이야 말로 스스로 불편함을 찾아 떠나는 것이라 생각도 해보지만 또 어떻게 보면 나보다 못한 사람들의 생활을 보면서 대리 만족을 느끼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 아닐까 자성을 해보기도 한다.


1월 17일(목)

새벽 6시 지옥 같은 버스 여행의 시작이다. 이미 경험을 했기에 각오를 했지만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버스에 오르는 기분이 군대에 다시 입대하는 기분과 쪼금 비슷하다. 버스에 타려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기는 하지만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니아메로 가는 승객은 7명에 불과하고 다른 사람들은 인근 도시에 가기 위해 버스에 탄 것이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바로 맨 뒷자리로 가서 자리를 깔고 누웠다. 버스가 크게 덜컹 거릴 거라 생각이 되지만.. 몰라~ 그냥 잘 거야.

흔들리는 버스에서 푹 자고 나니 오전 9시이다. 승객들은 ‘별 놈 다 있네.’라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키득거린다.

버스운전사는 뒷좌석에서 골아떨어진 날 위해 턱이 있으면 조심스럽게 넘는다. 날 위해 신경 써서 운전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무장경관의 숫자는 더 늘어났다. 아무래도 이곳 사정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특히 외국인에 대해 더욱 신경을 많이 쓴다.

그저께 봤던 풍경이 그대로 테이프로 되감기 듯 펼쳐지고 있다. 요깃거리를 찾을 때에서 같은 장소 같은 상인에게 물건을 사니 기억해준다며 좋아한다.

출발한지 오후 16시간이 지난 10시 30분에 니아메에 도착했다. 목사님에게 전화를 해야 하는데.. 밤이 늦어서 그런지 전화를 받지 않으신다.

힘들고 외로웠지만 그래도 많은 생각과 평소에 몰랐던 그리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그래도 또 가라면... 글세? 혹시 알제리나 리비아를 여행하게 되면 둘 다 육로로 연결되어 있음으로 또 들릴지는 모르겠다.

이제 여행의 절반이  지나갔다.